• [확인(確認)!] 황선의 “장군님이 아끼시는 일꾼” 문건(文件)
      
    보안수사대 의견서 중 “나도 못살면...못살면 장군님 가슴 아프시겠지”

    金成昱   

      

  •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15번 황선(黃羨·사진. 38)씨가 김정일을 ‘장군님’으로, 자신을 ‘장군님께서 아끼시는 일꾼’으로 지칭했다는 언론보도와 관련, 문서의 출처가 확인됐다.
     
     <조선일보>는 5월30일 황(黃)씨가 2000년 초 일기 형식으로 쓴 노트에 ‘장군님께서 아끼시는 일꾼’이라는 제목으로 訪北(방북)까지 했다가 전향한 운동권 선배들을 ‘허튼 길로 발을 돌렸다’고 비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보도는 공안당국 소식통을 인용했으나, 구체적 출처를 밝히진 않았다.
     
     보도 이후 논란이 커지자, 黃씨는 30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10년 전을 곰곰이 생각해봐도 일기장 비슷한 것이라도 압수당한 기억이 없다”며 해당 보도는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黃씨의 반박과 다르게, 기자는 최근 논란이 된 “장군님께서 아끼시는 일꾼”의 출처가 되는 문건을 확인했다. 해당 내용은 2001년 7월18일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에서 작성한 ‘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사건 황선 의견서’ 102페이지에 기재된 것이다. 이는 같은 달 8일 10시20분 경 피의자 체포 시 黃씨가 소지하고 있던 압수품 중 하나였다.
     
     黃씨는 이 노트에 ‘장군님은 (방북했던 선배들이 전향한 것을) 자식을 잃은 일보다 더 가슴 아파하셨을 것’이라며 ‘나도 (전향한 선배들처럼) 잘못 살면 장군님 가슴이 아플 것’이라는 취지로도 적었다. 黃씨는 스스로를 ‘장군님의 일꾼 중 하나’라고 지칭하면서 전향한 운동권 선배들에게 자신은 배신감을 느꼈지만 ‘장군님’은 안타까워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 노트의 주요 내용은 이러하다. 

    《역사적 교훈 속에서 수령의 역할의 중요성이 도출되고 영도의 대상들이 이것을 제대로 인식해야만 영도를 받고 혁명 사업에 복무할 수 있다.(···)
    주체는 어떻게 해야 하고, 구체적 방도 ‘범청일꾼'(편집자 주 : 이적단체인 범청학련남측본부 일꾼. 범청남은 황선이 대변인을, 그의 남편 윤기진이 대표를 맡았던 단체다)은 어떠해야 하는가?'

     
     장군님께서 아끼시는 일꾼. 장군님께서 아끼시는 일꾼. 장군님께서 아끼시는 일꾼....
     
     전 방북 선배들이 허튼 길로 발을 돌렸을 때 우리는 배신스러워했으나, 님은 가슴 아파했겠지 동지들을 잡지 못하고 그렇게 정반대의 삶을 살게 한 사람들에게 호통도 치고 싶어 하셨을 게다. 사랑하니까 가슴 아프시겠지. 자식을 잃은 양, 그보다 더하게 가슴 아파하셨을 게다. 
     나도 장군님께서 아끼시는 일꾼중 하나인 나도 못살면...못살면 장군님 가슴 아프시겠지》

     이석기·김재연 당선자와 함께 진보당 구(舊)당권파 소속인 그는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되지는 못했다.
     
     2.
     황(黃)씨는 2005년 10월 滿朔(만삭)의 몸을 이끌고 북한의 아리랑 공연에 나섰다가, 조선로동당 창건 60주년인 10월10일 북한의 평양산원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딸을 출산한 인물이다. 북한 정권은 이를 소재로 단막극 <옥동녀>를 상영하는 등 체제선전용으로 활용했었다.
     
     북한의 체제선전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올려진 <김정일 장군님과 민족대단결>이라는 문건은 黃씨의 출산 관련, “황선 녀성은 남에 있는 친정어머니도 돌려주지 못한 살뜰하고 다심한 사랑을 부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이 너무도 고마와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며 “민족의 태양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민족대단결사상을 받드는 한 성원이 되라는 의미에서 딸애의 이름을 《윤겨레》라고 지어주었다”고 적어 놓았다.
     
     북한의 <복 받은 옥동녀>라는 문건은 “황선녀성의 시어머니를 비롯한 남측성원들은 황선녀성이 현대적인 평양산원에서 조선로동당창건 60돐이 되는 10월 10일에 해산한 것은 커다란 영광이고 북남관계에서 있어보지 못한 사변이라고 기뻐하였다”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을 통해 륙로로 가게 하되 차를 천천히 몰아 산모와 애기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하라고 사려깊은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고 적었다.
     
     黃씨는 1998년 한총련 대표로 밀입북, 실형을 선고 받았던 인물로 ‘범청학련 남측본부’(利敵단체)와 ‘통일연대’의 대변인을 지냈었다.
     
     黃씨가 대변인을 맡았던 범청학련 남측본부는 김정일을 가리켜 “7천만 재결합할 민족지도자”, “구국의 영웅” 등으로 칭송하는 등 종북(從北)성향을 보여 온 이적단체((利敵團體)이다. 통일연대 역시 주한미군철수-국보법철폐-연방제통일을 주장해 온 친북단체(親北團體)로 2005년 인천 맥아더동상 파괴를 주도한 단체다.
     
     북한 <김정일 장군님과 민족대단결>은 98년 黃씨의 방북에 대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황선의 소행을 대견스럽게 여기시고(···)온갖 사랑과 은정을 다 돌려주시였다”며 “경애하는 장군님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 안은 황선은 평양체류기간 한총련 대표로서의 자기의 사명과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고 주장한다.
     
     같은 문건은 이어 “이러한 그였기에 신념과 의지의 화신인 리인모와 상봉한 자리에서 《신념의 강자로 살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길 수 있었으며 공화국의 여러 곳을 돌아보고 각지의 청년학생들과도 상봉하면서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 청년학생들이 앞장설 것을 열렬히 호소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인모는 김일성 가문에 끝까지 충성해 전향을 거부한 비전향좌익수로서 93년 북한에 송환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