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피카소가 싫다 
      
     폴 존슨 “전체주의 악당들의 해악을 모두 합해도 그가 예술에 끼친 해악은 따라올 수 없다”
    金成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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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記者)는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를 싫어한다.

    “나는 공산주의자며 나의 그림은 공산주의자의 그림이다”라는 피카소의 말처럼 그가 공산주의자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인까지 거느리며 누구보다 호화롭게 살며 ‘공산주의’ 운운했던 僞善(위선) 때문만도 아니다. 피카소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 뛰어난 天才(천재)로 거짓을 그려온 사악함 탓이다.
     

  • 피카소는 우리 민족과도 관계가 있다.
    그가 6·25사변을 소재로 그린 <조선에서의 학살>은 이른바 <1950년 10월17일부터 12월 7일까지 52일 동안 황해도 신천군에서 저지른 미군의 양민학살>을 다룬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 신천학살은 미군과 무관한 좌우익 피아간 벌어진 살상극이었다. “김일성은 이순신, 세종대왕 같은 위인”이라고 떠받들며 密入北(밀입북)한 황석영마저 소설 <손님>에서 신천학살은 미군과 무관한 것이라고 기록했다.
     
     건국대 이주영 명예교수(사학)는 “황해도는 지주, 엘리트가 많았고 기독교 세력도 강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 과정에서 6·25가 벌어지자 우익들이 봉기해서 좌우익 사이에 희생된 이들이 많았다”며 “황해도 신천군은 평양으로 진군하는 미군의 진격路(로)와 떨어져 미군이 개입할 수도 없었는데 북한은 신천역사박물관을 만들어 반미(反美)선전장으로 활용해왔다”고 말했다.
     
    북한의 선전과 다르게 6·25 당시 학살은 대부분 북한 인민군과 좌익들에 의한 ‘인민재판’의 형식으로 이뤄졌다. 당시 인민재판으로 처형된 민간인은 총 12만 2,799명(대한민국통계연감. 1952년 발간)에 이른다. 이 참극은 남경대학살, 바르샤바 게토(Warsaw Getto)의 유태인 학살과 함께 20세기 세계적 학살 중 하나로 기록된다. 붉은 완장을 차고 다니던 '바닥 빨갱이들'은 죽창이나 도끼, 쇠스랑, 괭이, 곤봉 등으로 우익인사를 죽이는 원시적 학살행위를 자행했다.
     
    북한 입장에서 6·25는 자신들의 도덕성을 부정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다보니 북한은 한국에 의한 6·25北侵說(북침설), 미국에 의한 6·25南侵誘導說(남침유도설) 등 온갖 조작을 해왔고 미군과 국군에 의한 소위 양민학살‘說(설)’을 날조해왔다.

    피카소는 진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증오의 신념’을 따라갔다. 급기야 <조선에서의 학살>이라는 거짓을 화폭에 담아 세계인을 상대로 사기극을 저질렀다.
     
    영국의 유명한 저술가인 폴 존슨(Paul Johnson)은 피카소에 대해 “내가 실제로 만났던 사람 중에 가장 邪惡(사악)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의 <위대하거나 사기꾼이거나>에 나오는 피카소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게르니카>를 그릴 당시 그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두 여자를 서로 공격하게 한 뒤 두 여자가 작업실 바닥에서 싸우는 모습을 흡족한 마음으로 구경했다. 그는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화가였고 고트족, 반달족, 청교도 혁명가들과 전체주의 악당들의 해악을 모두 합해도 그가 예술에 끼친 해악은 따라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