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좌제 피해자들이 연좌제를 써먹는대서야
-
박근혜 씨의 정적들이 5. 16, 유신을 가지고 그를 공격하는 전법을 구사하고 있다.
정치 싸움이란 의례 그런 것이려니 할 수도 있다. 또, 5. 16과 유신에 관한 역사논쟁은 두고두고 반복적으로 할 수도 있는 문제다.5. 16이나 유신에 관해서는 그러나 이미 어느 정도는 교과서적인 정리가 돼 있다고도 할 수 있다.
“5. 16은 쿠데타였다. 그러나 그 이후의 산업화 시대는 세계적인 성공 스토리였다. 그래서 그저 적당히 수습할 양이면, 그 시대는 총체적으론 공칠과삼(功七過三)이었다. 그리고 ‘체제 지킴이’ 김재규가 ‘체제 총수’ 박 대통령을 시해하게끔 이르렀던 엉망진창의 결말만 두고 봐도 유신은 잘못 들어간 골목이었다.” 하는 정도로 ‘통과통과’ 한 과거지사 아니었나?
그러나 여기서 5. 16이나 유신에 대해 말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다. 문제는, 5. 16과 유신이 설령 아주 잘못 된 것이라 설정하더라도, 그걸 가지고 박근혜 씨를 단죄하려 드는 것이 과연 온당하냐 하는 것이다.
권위주의 시절의 민주화 운동가들과 진보 활동가들 중에는 선대(先代)가 좌익 활동 경력이 있는 사례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청소년기 마음에 상처를 준 것 중에는 ‘연좌제’라는 게 있었다. 이 연좌제 때문에, 일부 청소년들은 운동가가 되기 전부터 이미 '대를 이어' 사찰을 받고, 사회진출 계획도 원하는 대로 세우지 못하고, 해외로 나갈 생각도 못하고, 동네에서조차 백안시당했다. 그들이 훗날 감옥에 들어가자 그 가족, 특히 아내와 어린 자녀들까지 덩달아 사회적인 냉대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연좌제란 아주 고약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매도했었다.
그런데 그런 연좌제의 화살을 이번에는 그들이 박근혜 씨를 향해서 쏘아댄다면?
아버지, 형이 좌익이면 나어린 아들딸, 동생들도 자동적으로 좌익 낙인을 받아야 하느냐고 그들은 항의했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5. 16, 유신을 했으면 그 딸도 '대를 이어' 자동적으로 쿠데타 일당, 유신 일당이란 낙인을 받아야 하나?
-
박근혜 씨가 유신 때 퍼스트 레이디 노릇을 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그야말로 딸이니까 ‘배정받은' 의전(儀典)적 배역이었을 뿐이다. 그나마 그 때의 그 딸의 나이는 어렸다. 이것도 연좌제 감이라면 ‘민주화 시대’가 권위주의 시대와 다른 게 뭔가?
박근혜 씨를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정치인 박근혜 씨에 대해서는 이와는 다른, 오늘의 정치적, 정책적 차원에서 얼마든지 시시비비로 논평할 수 있다. 그의 이른바 ‘불통(不通)’, 공천헌금과 관련한 그의 도의적 책임문제, 그의 ‘그 나름의’ 포퓰리즘...에 대해서는 단 소리만 있는 게 아니라 쓴 소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를 ‘아버지의 딸’이란 이유로 정쟁적 공격의 표적으로 삼으려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다. '아버지의 자녀'라는 이유로 어린 아들딸들이 상처를 입는 것을 보며 가슴아파했을 사람들이 연좌제를 아예 없애버리지는 않고 오히려 그것을 역(逆)으로 칼처럼 써먹는대서야 어디 피해자로서의 그들의 도덕적 우위(優位)인들 유지되겠는가?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