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곡동, 수원, 의정부역, 인천 등 곳곳에서 흉기난동․폭행일부 언론 “우리 모두의 책임”…국민들 “범죄는 범죄자 책임” 반발
  • 8월 어느 날 서울 여의도의 평범한 퇴근길

    지난 8월 22일 오후 7시 15분 서울 여의도 렉싱턴 호텔 뒷길. 카페형으로 꾸민 제과점 파리크라상 앞으로 수많은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있었다. 불과 100여 미터 거리에 한나라당 당사와 선진통일당 당사가 있어 경찰들도 늘 상주하는 곳이다.

    갑자기 파리크라상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평범해 보이는 한 청년이 흉기로 사람을 찌르기 시작했다. 칼에 찔린 한 여성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다른 남성 피해자는 “119 불러 달라”고 소리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침 후배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귀가하려던 이 모 씨(51. 대학교수)는 깜짝 놀랐다. 범인이 흉기를 무차별적으로 휘두르고 있어서다.

    “자칫하면 사람들이 많이 다칠 수 있겠다 싶어 나섰습니다. 범인이 정신없이 다가오기에 가슴팍을 발로 걷어 차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일어나 흉기를 휘두르며 달아났습니다.”

    평생 무술로 단련된 이 씨가 없었다면 엄청난 인명피해가 날 수도 있었다는 것이 다른 목격자들이 전하는 이야기였다.

    범인은 국회의사당 방향으로 수십 미터를 도망치다 구석에 몰렸다. 잠시 후 달려온 경찰과 대치하며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다 ‘테이저건’을 맞고 제압당했다.

     

    경찰 수사 결과 “예전 직장 상사와 동료에 복수”

    경찰은 곧 수사 상황을 브리핑했다. 경찰은 범인 김 모 씨(30. 무직)는 과거 다니던 회사 상사와 동료들이 자신을 험담했다고 생각, 복수극을 벌인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2009년 H신용정보에 채권추심 등을 맡은 계약 직원으로 입사했다.

    처음에는 실적이 좋았다. 3개월 만에 부팀장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실적이 언제부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동료와 직장 상사로부터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뭐 하냐” “부팀장이라고 월급만 많이 받아간다” 등의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김 씨는 2010년 10월 H신용정보를 퇴사했다. 이후 다른 회사에 취직했지만, 새로 간 회사에서도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 씨는 이후 생활고를 겪으면서 4천만 원 가량의 카드빚을 지고 결국 신용불량자가 됐다고 한다. 김 씨는 이 모든 일이 자신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한 직장동료와 상사 때문이라고 생각한 뒤 H신용평가 직원 6명을 죽이겠다고 결심하고 사전계획까지 치밀하게 세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여의도를 찾은 김 씨는 술을 마신 뒤 H신용정보 주변을 배회하다 자신의 상사였던 팀장 김 모 씨(32. 남)와 동료 조 모 씨(31. 여)가 나타나자 110여 미터를 따라가 이들의 얼굴과 목, 배 등을 길이 20cm 가량의 흉기를 여러 차례 찔렀다.

    주변 사람들이 제지하자 도망치면서 아무런 관련이 없는 행인 안 모 씨(32. 여)와 김 모 씨(31.남)에게도 여러 차례 흉기를 휘둘렀다.

    김 씨의 범행으로 동료 조 씨는 신장에 손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 씨에 대해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다.

     

    “내가 이렇게 된 건 사회 때문”…이 논리로 연 1백여 명 살해당해

    김 씨의 범행은 그 장소가 여의도 한복판이라는 점도 충격이었지만 최근 곳곳에서 일어난 ‘무차별 흉악범죄’와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더 큰 충격을 줬다.

    경찰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김 씨의 범행 또한 최근 일어난 ‘묻지마 흉악범죄’와 비슷하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서 전자발찌를 차고 있다 남의 집에 무단침입해 가정주부을 수십 차례 구타하고 흉기로 수 차례 목을 찔러 살해한 사건의 범인도, 의정부역에서 ‘바닥에 침 뱉지 마라’고 말했다고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범인도, 수원에서 길 가던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가정집에 들어가 가족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사람을 살해한 범인도 털어놓은 ‘범행동기’는 비슷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사회(또는 다른 사람) 때문이다.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 따돌림이 견디기 어려웠다.”

    언론들은 교수니 전문가니 하는 사람들을 동원해 이런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성범죄자와 흉악범 수천 명이 전자발찌 없이 돌아다니는데 경찰은 대책이 없다.”
    “상습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데 지금 교도소에는 그런 방안이 없다.”
    “불과 100미터 밖의 경찰은 뭐하고 있었나? 경찰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
    “‘묻지마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됐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럴싸하다. 하지만 언론과 전문가 등이 주장하는 이야기는 중요한 전제가 틀렸다.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도, 전과자도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상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자나 ‘묻지마 난동’을 피우는 자는 ‘한둘’이라 할 수 있다. ‘똑똑하다’는 전문가와 언론이 왜 그들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인권’이니 ‘사회구조적 모순’이니 하면서 희석시키려는 걸까.

    정치적 해석은 일단 배제하자.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복수(사적 제재)’를 권장하고 있다. ‘합당한 법 집행’은 ‘로펌’과 ‘인권단체’, ‘정치인’에 막혀 있고, ‘평범한 사람’보다는 ‘범죄자’의 인권을 더 챙겨주는 사회가 됐다.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흉악범은 피해자의 각종 신상정보를 마음대로 열람할 수 있는 반면, 피해자는 교도소에 갇힌 범인이 언제 풀려날지 몰라 평생 도망 다녀야 한다.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도와주는 제도, 사람, 기구는 많지만, 졸지에 피해를 입은 사람을 도와주거나 생각해주는 ‘세력’은 거의 없다. 이들의 법적 분쟁을 도와줄 변호사나 ‘로펌’도 거의 없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수많은 미디어가 ‘복수’와 ‘폭력’을 미화했다. 

    어이없는 건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조차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서울 중곡동의 ‘상습 성폭행 살인범’도, ‘여의도 묻지마 칼부림’의 범인도 본인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우리 사회 때문’이라며 자신을 합리화한다. '피해자'를 자처하는 범죄자의 '복수'로 연 1백여 명이 살해당한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진짜 피해자’가 누구인지부터 밝혀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 모두의 책임’ ‘가해자의 인권’ 운운하며 범죄를 희석시키는 건 ‘진짜 피해자’들을 평생 지옥으로 몰아넣는 ‘집단 폭행’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