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억 돈상자’ 사건의 전말이 마침내 밝혀졌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딸 정연(37)씨가 재미 교포 경연희(42)씨로부터 미국 뉴저지주 호화 콘도를 사들이는 데 쓴 13억원은 권양숙(65) 여사가 먼 친척을 시켜 환치기 업자에게 전달한 돈으로 확인됐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선글라스 남성’은 권양숙 여사의 먼 친척으로 2009년 1월10일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사과 상자 7개에 담은 현금 13억원을 경기 과천의 비닐하우스까지 운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돈의 출처와 관련해 권양숙 여사는 “13억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를 방문한 지인들과 퇴임 이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로 찾아온 지인들이 준 돈을 모아둔 것”이라고 진술했다.
검찰은 29일 노정연씨를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반면 권양숙 여사에 대해서는 딸 정연씨를 기소하는 점을 참작해 입건 유예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전액 현금이었기 때문에 누구로부터 받았는지 확인하지 못했다”며 출처 조사 없이 용처(用處)만 확인한 채 사건을 마무리했다.
수사의 핵심인 돈의 출처와 관련, 검찰이 진실 규명을 포기한 채 사실상 수사를 덮어버린 것이다. 권양숙 여사에게 13억원을 건넨 지인들이 누구냐에 따라 사건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는데도 의문점만을 남긴 채 손을 떼버렸다.
나아가 검찰은 ‘선글라스 남성’의 신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도 않았다. 다만 “권양숙 여사와 피가 섞였다고 보기 힘든 먼 친척이며 필부(匹夫)”라고만 했다.
일반인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특혜였다.
-
‘13억 돈상자’ 사건이 세상에 공개되자 검찰 수사를 맹비난하던 민주통합당은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 민주통합당 내부에선 이번 사건에 대해 최대한 언급하길 꺼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지난 2월 검찰이 사건을 파고들자 문성근 최고위원은 “검찰의 느닷없는 수사 재개는 인륜을 저버린 패륜”이라고 주장했었다.
문성근 최고위원은 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검찰이 내사 종결을 발표했는데 이는 법적으로 종결했다는 의미다. 검찰에게 촉구한다. 정연씨 관련 수사를 즉각 중단하라”며 검찰을 압박했다.
한명숙 대표도 “무슨 이득을 보려고 유족을 괴롭히느냐. 정연씨와 관련된 수사는 정권차원에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명백한 정치개입”이라고 주장했었다.
이번 ‘13억 돈상자’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면서 민주통합당은 또 한번 체면을 구기게 됐다.
<사건의 흐름>#1. 정연씨는 2007년 9월쯤 경연희씨 소유의 미국 뉴저지주 허드슨빌라 435호를 매수하면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통해 계약금 40만달러를 송금한 뒤 2년 후 소유권을 이전받기로 했다.
#2. 정연씨는 2008년 말 경씨로부터 중도금 지급 독촉을 받았으나 정상적으로 해외 송금할 경우 해외부동산 취득 사실이 알려질 것을 우려해 미국에 있는 경씨에게 국내에서 현금으로 받아가라고 요청했다.
#3. 경씨는 평소 알고 지낸 카지노 매니저 이달호(45)씨에게 돈을 받아 달라고 부탁했고, 이씨의 동생 균호(42)씨가 경기도 과천 소재 비닐하우스 인근에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쓴 남성에게서 현금 13억원이 들어있는 박스 7개를 건네받았다.
#4. 경씨는 13억원 중 8억8,200만원을 환치기 방식으로 미국에 송금하게 했고 2억2천만원(16만5,500달러)은 자동차 수입대금 지급을 가장해 자신이 운영하던 미국 회사 계좌로 송금하도록 해 총 11억200만원을 받았다.
#5. 묻힐 뻔했던 사건은 올해 1월 환치기에 가담했던 이달호-이균호 형제가 사건을 폭로하고 한 시민단체가 외환거래법 위반으로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사건의 핵심 인물인 경씨는 5월에 한국으로 들어와 세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다.
#6. 지난 6월 검찰은 정연씨와 권양숙 여사에게 두 차례에 걸쳐 서면조사를 실시했다. 8월 말에는 봉하마을로 직접 찾아가 권양숙 여사를 조사했다. 그리고 지난 24일 정연씨를 소환 조사하는 것으로 수사를 끝냈다.
검찰은 정연씨와 경씨에게 외국환거래법 제16조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국내 거주자와 비거주자간 거래에 있어 거주자가 외국환업무 취급기관을 통하지 않고 지급하거나 거래 당사자가 아닌 자에게 지급하는 경우에는 그 지급방법에 대해 미리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거주자인 정연씨의 요청을 받은 ‘선글라스 남성’이 비거주자인 경씨가 지정한 이균호씨에게 13억원을 건넨 시점부터 정연씨의 범죄가 성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