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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주도했고 광복 후 우파정당을 창당했던 ‘고당 조만식 선생 순국 62주기 추모식’이 오는 18일 오후 3시 서울 YWCA 대강당에서 (사)고당조만식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방우영) 주관으로 열린다.
고당 조만식 선생은 1883년 2월 1일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일본으로 유학갔다 나라가 망한 뒤 귀국했다. 1919년 오산학교 교장으로 재임하던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교장을 사임하고 평양으로 가 제2차 만세운동 조직 책임자로 활동하던 중 일제에 체포됐다. 이후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 갇혔다.
1922년에는 민족경제의 자립과 발전을 위해 조선제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물산장려운동’을 전개해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본인은 ‘조선물산장려운동회’ 부회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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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에는 조선민립대학기성회(朝鮮民立大學期成會)를 조직했고, 1927년에는 신간회(新幹會) 결성에 참여해 평양지회장에 추대됐다.
1929년에는 서울역 앞에서 광주학생운동 진상보고 민중대회를 개최하려다 다시 일제에 체포됐다. 1932년 조선일보 사장으로 취임해 언론으로써 독립운동에 이바지했다.
이 같은 선생의 활동을 일제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1945년 자기네가 패망할 것을 예감한 일제 총독부에서 선생에게 정권인수를 제안했지만 선생은 거절했다. 일제의 제안을 받아들인 좌파 박헌영이 다시 선생을 찾아와 정권인수를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광복 후 조만식 선생은 평안남도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1945년 11월에는 우파정당인 조선민주당을 창당하고 반공노선을 기반으로 신탁통치반대를 전개하다 김일성 일당과 소련군에 의해 평양 고려호텔에 연금, 1946년 1월 행방불명되었다.
이후 김일성은 1950년 ‘조만식 선생과 김삼룡, 이주하를 교환하자’고 이승만 정부에 제안한다. 이승만 정부는 간첩으로 극악한 죄를 저지른 김삼룡과 이주하를 풀어줄 것인가로 고민했지만 민족 지도자인 조만식 선생을 풀어준다는 말에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김일성은 6월 25일 기습남침을 일으킨다. 김일성은 일당을 시켜 1950년 10월 선생을 살해한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7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오는 18일 추모식은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 김유길 광복회 부회장 등 광복회원, 평남도민 회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사업회이사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산정현교회 김관선 목사의 기도, 서울지방보훈청장, 광복회장의 추모사, 장진성 시인의 시 낭송과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의 ‘고당이 그리운 까닭’이라는 주제의 추모강연에 이어 숭실대 OB합창단의 합창 순으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