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온건 대안세력'에 대한 갈망 컸다! '리버럴 정당 건설' 택해야 했다!"

  • 안철수!
    [안철수 현상]을 배신하고 [도로 민주당]을 시작하다!


     

  • 문재인-안철수 단일화에 대해 새누리는 “야합” 혹은 “정치 이벤트”라고 비판한다. 야합 좀 하면 안 되나? 또한 정치는 어차피 일련의 이벤트(연출된 사건) 아닌가?

    노골적으로 말하자. 무엇인가 화끈하게 좋은 것을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야합이어도, 이벤트이어도 좋다.

    그러나 이번 단일화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난다.
    교수형 집행장의 음울한 분위기가 돈다.
    무엇인가 거대하고 소중한 것이 죽어가고 있다.

    안철수가 민주당과 손을 잡는 것은 [안철수 현상]을 죽이는 짓이다.
    [안철수 현상]
    은 합리적이고 온건한 야권 정치세력을 갈망하는 거대한 에너지이다.
    이는 매우 소중하고 가치 있는 에너지이다.

    단일화는 [합리적 온건 대안세력에 대한 갈망]을 정면으로 배신하는 행위이다.

    국민들은 민주당에 대해 불안해 하기 때문에 [합리적 온건 대안세력]을 갈망한다.

    불안갈망.

    이것이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다.


    그런데 민주당 문재인과 단일화?

    이는 [도로 민주당]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정치적 자살이다.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이라 불리는 초특급 태풍, 초대형 에너지를 자기 손으로 망쳐 버렸다.

    물질이 썩으면 악취가 나듯 정치 에너지가 부패하면 사회를 후퇴시킨다.
    [안철수 현상]
    이라는 초대형 에너지가 망가짐으로써 [합리적 온건 대안세력]의 등장은 최소한 4년 이상 늦춰지게 되었다.

    안철수가 꿋꿋이 [합리적 온건 대안세력]을 지향했더라면 야권 전체를 클릭 이동시켜 대한민국 정치문화, 정치생태계 자체를 업그레이드 할 뻔 했다.


    그러나 안철수는 [도로 민주당]을 시작했다.

    통합공화(共和)가 아니라 분열갈등을 증폭하는 정치가 앞으로도 최소 4년 지속된다.
    [합리적 온건 대안세력]의 등장은 지금으로서는 언제 이루어질 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이 가슴 아픈 사건—[안철수 현상의 종말]에 대해 짚어 보자.

     

     1. 안철수는 깡통이다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에 올라탈 궁리만 했다.
    “이 현상은 도대체 무엇을 지향하는 에너지인가?”
    라는 고민이 하나도 없었다.

  • 위대한 시인 김지하는 ‘신(神) 들린 통찰력’(the divine insight)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안철수는 (알맹이가 없는 빈) 깡통”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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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발:
    안철수는 ‘깡통’이라 불린 것에 대해 기분 나빠할 것 하나도 없다.

    흔히 김지하는 정치적 저항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그의 전체 업적 중에서 세 번 째 중요성 밖에 가지지 않는다.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죽어 나자빠져 있던 판소리, 탈춤, 마당극, 전통리듬을 40여 년 전에 부활시켜 낸 것이다.

    두 번째로 가장 위대한 업적은 세상을 그토록 투명하게 통찰하는 여리고 순수한 감수성 덕분에 미쳤었지만(의학 용어로는 아마 ‘정신분열’ 쯤 될 것이다), 이를 극복해 내고 정상성을 회복한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업적은 엄청난 휴먼 스토리이다. 게임이론의 선구자인 수학자 존 내쉬(J. Nash)를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보다 훨씬 더 감동적인 휴먼스토리이다.

    이 위대한 대선배가 ‘깡통’이라고나마 언급할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점에서 안철수는 뿌듯한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

    나는 평생 얼굴도 못 보았음은 물론 욕 한 번 얻어 먹을 기회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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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존 내쉬의 일생을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
    정신분열에 걸린 천재 수학자가 자신의 힘으로 정상성을 회복한 인간 승리를 다룬다. 그는 늙어서도 환각과 환청에 시달려서 매 순간 자신의 감각경험(sensory perception)이 현실인가 아닌가를 검증하며 살았다.
    예순 여섯 때에 노벨재단에서 온 사람으로부터 “선생님께서 노벨상을 받게 되셨습니다”라고 통보받자, 옆에 있던 학생에게 “이 사람, 진짜야 아니면 환각이야?”라고 묻는 장면은 영화의 하일라이트 중 하나.


    김지하가 말하는 알맹이는 ‘민주당에 대한 불안과, [합리적 온건 대안세력]에 대한 갈망을 꿰뚫어 보는 통찰’을 뜻한다.

    [안철수 현상]에 대한 통찰이다.

    안철수에게 이 통찰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쯤 민주당과의 정책 차별화, 노선 차별화가 분명해졌어야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런 통찰이 없었다.
    정책과 노선을 차별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일화’라는 올가미에 자기 발로 걸어 들어갔다.

    [안철수 현상]이라 불리는 거대한 에너지는 안철수라 불리는 깡통에 갇힌 채 질식 당해 죽어가고 있다. 

     

    2. [안철수 현상]은 죽고 [도로 민주당]이 나온다


     

    [안철수 현상]
    이라 불리는 에너지가 지향하는 [합리적 온건 대안세력]이란 무엇인가?

    정식 명칭은 ‘리버럴’(liberal)이다.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공화가치(공화가치, republican values)를 존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와 트렌드를 민감하게 수용하는 정치성향’을 가리킨다.

    공화가치는 감히 다수결(민주주의)로 훼손하거나 파괴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사회의 근본가치를 뜻한다.

  • 이런 공화가치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떼의 힘’(다수결, 소위 ‘일반의지’)을 신격화한 루소(Rousseau) 공화주의, 즉 ‘인민공화국’의 공화주의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링컨(A. Lincoln)토크빌(A. Tocqueville)의 공화주의이다.

    다수결(떼의 힘, 민주주의)만으로는 사회가 순조롭게 운영되지 못 한다.
    인민 재판에서 사람을 돌로 때려 죽인 것도 다수결에 의한 일이었고, 나치가 집권한 것도 다수결을 통한 일이었다.

    민주주의(다수결)는 오직 공화가치가 확립된 사회에서만 순조롭게 작동한다.
    그때에만 비로소 참된 민주공화국이 된다.


    해방 이후 67년의 세월은 우리 사회에 다수결(민주주의)을 앞세워서 흔들거나 훼손해서는 안 되는 근본 가치를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공이 응축되어 DNA가 된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에는 다음 4개의 공화가치가 거의, 거의 확립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우리가 명확하게 자각하고 있지 못 할 뿐이다.

    1) 대한민국을 소중한 삶의 터전으로 보는 관점
    2) 북한 전체주의의 붕괴가 임박했음을 예감하고 그에 대비해야 한다고 보는 관점
    3) 자유민주주의(사유재산, 시장, 개인의 자유-선택-책임)를 삶의 기본 원리로 보는 관점
    4) 세계시장을 삶의 조건으로 보는 관점

    이 같은 공화가치를, 첫 글자를 따서 ‘대-북-자-세’라고 부른다.


    유시민은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 뒤늦게나마 민주주의를 더 확충해야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에서는 민주주의 자체가 후불인 것이다”라는 취지의 엉터리 주장을 했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공화가치가 후불이다. 민주주의는 농숙해졌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주춧돌—공화가치는 이제야 거의, 거의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 동안은, 주춧돌이 부실한 가운데 민주주의라는 상부 구조만 웃자랐던 셈이다.

    지난 4년 동안 민주당은 공화가치를 손상시키고 파괴하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이 사정을 어눌한 국민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래서 민주당을 불신하게 된 것이다. 불안과 갈망이다.

    안철수는 마땅히 한편으로는 ‘공화가치'를 존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와 트렌드’를 민감하게 수용하는 정치 지향—'리버럴’을 추구했어야 되었다. 그것이 [안철수 현상]이라 불리는 초특급 태풍 에너지를 제대로 살려내는 길이었다.

    지난 9월 하순 안철수가 출사표를 던졌을 때, 나는  <안철수 초대형 사고! 왼쪽 깜박이에 우회전!>이란 칼럼을 썼다.  이 글에서 나는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 리버럴 세력 한 번 근사하게 만들어 봐!”

    이는 안철수에 대한 충고였다.

    김지하는 그에게 알맹이가 있는 줄 착각했었지만, 나는 그가 알맹이를 가지고 있을 것을 희망했을 뿐 아니라 이를 정치 세력으로 실현해 주기를 기도했다.

    <뱀발: 지난 9월 말에 이런 칼럼과 트윗메시지를 쓴 덕분에 나는 한때 ‘안빠’라고 분류되기도 했다. 한국의 정치문화는 '빠' '까'를 실시간으로 구분하는 고성능 분류기 아닌가!>


    안철수 등판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2강1약 구도를 만들어 낸다.  이번 12.19 선거는 박근혜와 안철수 사이의 경쟁이 된다.


    문재인 및 민통당은?

    다 털려서 아무 존재감이 없는 집단으로 추락한다.

    이번 선거는 한국 정치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안철수가 [왼 쪽 깜박이에 우회전]을 계속하면서 끝까지 완주한다면, 대한민국은 매우 건강한 2당 시스템으로 진화하게 된다.

    지금의 야권에서 미국의 민주당과 같은 ‘건강한 리버럴’ 정당이 나온다.

    안철수가 그 물고를 트게 될 것이다.

    안철수가 이 같은 행보를 계속한다면, 박근혜-새누리를 엄청나게 자극하게 된다. 

    안철수가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를 내세우면서 ‘대-북-자-세’에 바탕해서 야권 정당정치 자체를 재창출하겠다고 표방했기 때문에, 박근혜-새누리는 ‘주류제도권의 원칙과 가치’를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가 되었다.

    주류제도권의 원칙과 가치가 정립되면 미국의 공화당과 같은 ‘건강한 보수’ 정당이 나온다.

    그리하여 [보수-진보 편가르기]가 아니라, [보수-리버럴 양당체제]가 출현한다.


    안철수는 자연인이 아니다. 안철수는, 한국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은 ‘20년 묵은 변비’가 터져 나오는 일대 사건이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 정치의 한쪽 날개는, 종북에게 단단히 발목 잡혀 있었다.

    위대한 세계적 시인 김지하가 1991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명칼럼을 썼다고, 그를  ‘배신자, 변절자, 수꼴’로 낙인 찍어 생매장한 게 바로 종북이다.

    그들은 막강했다.

    ‘종북과의 동거’야말로 한국 정치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김정일의 죽음에서 최근의 통진당 분당 사태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종북은 스스로 주저앉았다.
    그 덕분에 20년 동안의 변비가 풀려서 이제 터져나오는 것이다.
    이 터져나옴이 바로 ‘안철수’이다.


    나는 또한 <멀리 보는 새가 높이 난다> 라는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그런데 김정일 죽음에서 통진당 분열에 이르는 과정에서 종북성골의 사악한 장악력이 해체되어 버렸다.
    그 최대의 수혜자는 바로 그 동안 친노종북과 전대협에 치여서 기를 펴지 못 했던 야권의 인적 자원들이다. 그 성정이 여리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핵심 당료로 성장할 햇볕을 보지 못 한 사람들. 그 심리가 점잖기 때문에 지난 4.11 총선에서 한명숙-이해찬 체제에 의해 공천학살 당했던 사람들. 야권에는 이런 인적 자원이 많다.
    80년대 초 학 번을 기준으로, 이 같은 성향의  프로급 정당 활동가들이 못 잡아도 수 천 명. 이들이 대부분 안철수를 적극 지지하면서 뛰고 있다.
    그래서 안철수는 개인이 아니라 진영이다."



  • 안철수에 대한 이 같은 생각은 이제 착각, 헛된 희망, 헛된 기대로 통째로 주저 앉았다.
    안철수 본인이 [안철수 현상]을 배반했기 때문에.

     
    김지하는 40여 년 전에 ‘풍자냐 자살이냐?’란 뛰어난 문학논평을 썼다.
    권위주의 시대를 정면으로 풍자하고 조롱하는 김지하 문학의 출사표였다.
    “송곳 같은 풍자를 하지 못 할 바에야 차라리 자살하고 말겠다”—이 고백이 바로 ‘풍자냐 자살이냐?’란 문학논평의 핵심 메시지이다.

    안철수가 추켜들었어야 마땅했던 화두 역시 같은 문장 구조를 가진다.

    “리버럴이냐 자살이냐?”


    안철수는, “[합리적 온건 대안세력]—즉 리버럴을 만들어내지 못 하면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는 각오로 정치판에 나왔어야 한다. 그 각오를 가질 때에만, [안철수 현상]이라 불리는 거대한 에너지를 다루어 낼 수 있는 용기와 힘이 나온다.
    이 각오는 시민의 불안과 갈망에 대한 깊은 통찰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안철수는 불안과 갈망을 통찰하지 못 했을 뿐 아니라, 리버럴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지 못 한 채 정치판에 나왔다. “돌아갈 다리를 불태워 버렸다”라고 자못 비장한 멘트를 날렸지만, 스스로 [불안과 갈망의 원인제공자]인 민주당과 단일화하는 코스를 택하고 말았다.

    안철수는 불타 없어진 다리가 있던 자리에 싸구려 외줄을 하나 맸다.

    그 외줄의 이름은 ‘도로 민주당’.

     

     
    3. 민주당은 노선 투쟁, 정책 투쟁의 대상이 되었어야 한다

     

    안철수는 단일화를 하는 대신, 민주당에 대해 노선 투쟁, 정책 투쟁을 벌였어야 한다. 민주당에 대한 불안과 리버럴에 대한 갈망이 바로 자신을 날게 해 준 에너지—[안철수 현상] 아닌가! 그렇다면 마땅히 민주당은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도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안철수는 민주당이 불안한 정당이라는 점을 실감하지 못 했다. 그래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리버럴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 했다.

    불안한 것을 불안한 것으로 직시할 수 있을 때에만 그에 대한 대안을 상상할 수 있다. 민주당이 어떤 흉측한 합성괴물로 타락했는지, 그 속내를 들여다 보자.

    <뱀발: 민주당은 내가 가입한 적이 있는 유일한 정당이다. 2007년 당내 경선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가입했었다. 내 지인들은 새누리보다는 민주당에 훨씬 더 많다>

    민주당은 지난 4.11 총선에서 대승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통진당과 연합함으로써, 또한 통진당의 종북성향이 폭로됨으로써 스스로 주저앉았다. 국민들은 종북-친북 문제에 대해 “안 돼!”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타락은 4.11 총선 훨씬 이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급한 대로 지난 4년 동안 민주당이 스스로 타락해 간 3 개의 계기를 짚어 보자.

    첫째, 지난 2008년 민주당은 마땅히 5백 만 표 차이의 대선 참패를 심각하게 반성했어야 한다.
    그런데 반성은커녕 광우병 난동 세력과 손잡고 정치적 승리—이제 막 출범한 MB 정부를 반병신으로 만드는 것—를 거두었다.

    그래서 지금 민주당은 정강정책 서문 첫 문장에서부터 촛불을 찬양한다. “촛불은 시민정신의 발현이며 정의에 대한 갈망이다”라고. 광우뻥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광우뻥 난동 찬양은 비단 민주당의 정강정책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조국의 <진보집권플랜>과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와 같은 야권의 ‘최고 수준’의 지식인이 쓴 책에도 일관되게 촛불 찬양이 나타난다. 이들의 멘탈은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라는 [촛불 집착증]에 신음하고 있다. 이들의 촛불 찬양에는 이런 사고방식이 숨어 있다.

    “우리에게는 진실을 거짓으로, 거짓을 진실로 뒤바꿀 힘이 있다.
    이 힘이 곧 촛불이다.
    촛불의 힘에 의해, 적(敵)의 말과 행동은 아무리 정당해도 불의한 것이 되며, 아무리 선량해도 사악한 것이 된다.
    우리를 가로막는 자는 반드시 파멸한다.”


    한마디로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분별력이 없고, 자신들이 저지른 짓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다.
    현실에 대한 감각과 인식이 퇴화된 상태이다.

    그래서 어눌한 국민은 민주당을 불안하게 여긴다.

     

    둘째, 지난 2010년 천안함이 폭침되었을 때 민주당은 마땅히 햇볕정책을 뒤집어 엎었어야 되었다.

    그러나 정반대의 길을 갔다.
    이스라엘 잠수함 충돌설, 미군 오폭설, 피로 파괴설, 좌초설 등 갖가지 루머를 증폭했다.

    그 결과 거의 절반 가까운 국민들이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만행이 일어날 때까지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시킨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라는 음침한 루머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아가 민주당은 6.2 지방선거에서 천안함 루머에 편승해서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해괴망측한 슬로건을 내걸고 대승을 거두었다.

    진실을 경멸하는 것, 과오에 대해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이 ‘민주당 식 성공의 비밀 노하우’가 된 것이다. 이 ‘사악한 성공’의 역사가 민주당의 멘탈을 더욱 더 타락시켰다.

    그래서 어눌한 국민은 민주당을 불안하게 여긴다.

     

    셋째, 2011년 12월 김정일이 죽었을 때 민주당은 북한 전체주의의 붕괴가 급가속 된다는 현실을 직시했어야 한다.

    김정일은 20세기 좌파 전체주의 지배자 중에 가장 지능적이고 잔인한 사람이다.
    1990년대 말 3백만명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은 북한 전체주의가 사실상 거덜났음을 증명한다. 그 지경임에도 지금까지 북한 전체주의가 유지되어 온 것은 김정일의 ‘뛰어난, 그러나 가장 사악한’ 리더십 덕분(?)이다.

    김정일 같은 인물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없다. 김정일의 죽음은 곧 북한 전체주의 체제가 붕괴를 향해 급가속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민주당은 여전히 '평양것들'‘교류와 협력의 파트너’라고 부르고 “MB 정부의 엄격한 상호주의 때문에 한반도 평화가 깨졌다”라고 울부짖는다.

    심지어 탈북자에 대해 ‘변절자 새끼’라고 부른 임수경을 문재인의 통일 정책 특보로 앉히기도 했다. 북한 전체주의가 빠르게 붕괴하고 있음에도 북한을 여전히 떠받드는 태도—이는 스스로 북한 전체주의를 위한 빨대(전빨) 역할을 자임하는 짓이다.

    그래서 어눌한 국민은 민주당을 불안하게 여긴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의 병든 멘탈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한미FTA를 뒤집고,
    해양 휴전선인 NLL을 뭉개고,
    강정 해군기지를 백지화하고….
    심지어 불과 8개월 전에 자신들이 찬성해서 개정한 투표법을 또 다시 개정해서 지금 당장 시행하자고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올 2월 말, 18대 국회는, “내년 1월부터 사전에 아무데서나 투표한다”고 여야 합의로 법을 고쳤다.  박지원, 정동영, 김진표 등 거물급을 포함한 민주당 의원 36명이 법 개정에 찬성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투표시간 연장 캠페인은 일년에 투표법을 두 번씩 고치자는 소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 코메디의 제목은 ‘신성한 참정권’.
    온 국민을 저질 코메디에 열광하는 상스럽기 짝이 없는 조급증 환자로 만드는 것이 민주당의 로망이 되었다.

    참정권을 그토록 소중하게 여긴다고?

    웃기는 소리다.

  • 그들은 불과 1년 전인, 2011년 8월 서울 주민투표 때, 투표 행위 자체를 ‘나쁜 투표’라고 선전하고 “투표하는 사람은 일당 받고 동원되는 알바”라는 악질적 암시를 퍼뜨렸지 않았는가!

    안철수는 민주당의 이 같은 정신적 파산상태를 정확하게 꿰뚫어 봤어야 되었다.

    보라!

    민주당은,
    안보와 외교에 있어서는 북한 전체주의에 봉사하는 빨대(전빨)로 타락했고,
    경제에 있어서는 분열을 선동하는 3류 복지(福祉)팔이 집단으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책임 있는 집권세력]의 모습인가?

    민주당의 비참한 멘탈을 모른다는 것은 왜 [안철수 현상]이 일어났는지 모른다는 것을 뜻한다.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몰랐던 사람이다.

    알았더라면 당연히 민주당과 노선 투쟁, 정책 투쟁을 벌였어야 되었다.

     

    4. 정치혁신은 주식회사 안철수의 가짜상품일 뿐이다


     

    안철수는 ‘정치 혁신’을 내세운다. 심지어 민주당의 리더십 구조에 대해 “계파 이익을 앞세우고 있다”라는 무례한 악담마저 서슴지 않는다. 정치혁신이 대단한 상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신은 그 자체로서는 상품이 될 수 없다.

    안랩을 예로 들어 보자.
    소비자는 백신을 살 뿐, 안랩의 경영혁신을 사지 않는다.

    정치혁신 마찬가지이다.

    정치혁신은, 정치인들끼리 밥그릇 경쟁을 하는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정치인들끼리의 비즈니스이다.

    정치혁신을 일반 국민에게 상품으로 제시한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자기들끼리 내부에서 진행할 아젠다를 왜 일반 국민에게 제시하는가?

    우리는 민주당이 계파 정치를 하든 보스 정치를 하든 관심 없다.
    민주당의 정책과 행보가 관심 있을 뿐이다.

    안철수의 정치혁신은 정치사심(私心)일 뿐이다.
    사심이 그득하기에 정책과 국가경영 아젠다에 집중하는 대신에, 남의 정당(민주당)의 정치혁신을 이야기한다.

    그토록 욕망이 치열하다면 제발 민주당 당사를 찾아가서 그 지도부를 쥐어패든 달래든 붙잡고 이야기하라. 우리 일반 국민들에게 정치혁신을 이야기하는 것, 지긋지긋하다.

    ‘정치혁신’은 [권력투쟁을 위한 슬로건]이다. 안철수는 노선투쟁, 정책투쟁을 할 수 있는 내공이 없기 때문에 권력투쟁을 택한 것이다.

    [안철수 현상]을 반겼던 국민들은 안철수가 민주당에 대해 노선투쟁, 정책투쟁을 감행하기를 목 빼고 기대했다. 가치와 가치, 정책과 정책이 불꽃을 튀기며 충돌하는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안철수는 노선과 정책에 대한 투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권력투쟁을 택했다.

    권력투쟁이 바로 단일화 줄다리기이다.

    [추잡한 권력투쟁 개싸움 판에 걸린 간판]에는 ‘단일화 정치혁신’이라고 써 있다.

     

    5. 해독되지 않은 수수께끼: 이승만과 박정희

     

  • 새누리, 즉 주류제도권과 뚜렷이 구분되는 리버럴 정파를 건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주류제도권이 정치적 심볼인 이승만 박정희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Janus) 혹은 스핑크스 같은 수수께기(enigma)이기 때문이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리버럴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건강한 대등한 경쟁관계](peer relationship)’를 형성할 수 있는 맞수 혹은 파트너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권위주의로 내몰린 리버럴’이다.

    따라서, 새누리, 즉 주류제도권과 뚜렷이 구분되는 리버럴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더 심오하고 깊게 이승만과 박정희를 이해해야 한다.

    리버럴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천만 다행으로, 우리 사회의 주류제도권이승만과 박정희의 비밀을 알지 못 한다.

    얼른 서두르면 (박정희는  좀 어렵다고 치더라도) 이승만을 리버럴의 아이콘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야권은 이승만을 두목 사탄으로, 박정희를 두목 악마로 본다.
    이승만이나 박정희를 꿈에서 보면 가위에 눌려 신음할 사람들이다.

    사람의 성격(character)은 대충 세 살까지 그 틀이 잡힌다. 셰익스피어는 “성격이 운명이다”(Character is fate)라는 말을 남겼다.

    대한민국은 해방 후 35년 동안 이승만과 박정희에 의해 주도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기본틀공화가치는 그 두 사람이 잡은 것이다.

    이 기본틀—공화가치가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택하고 북한 전체주의와의 숙명적 경쟁을 결정한 것은 이승만이었다.
    세계시장을 삶의 조건으로 택한 것은 박정희였다.
    ‘대-북-자-세’라 불리는 공화가치의 건설35년 동안 주도한 리더들이 바로 이 두 사람이다.

     
    이들의 비극은, [정신의 힘]이 너무 뛰어나서 ‘건강한 대등한 경쟁관계’에 설 수 있는 맞수들이 없었다는 점에 있다.

    이 맞수에는 반드시 정치인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기업가, 언론인, 지식인, 관료 모두가 포함된다.
    사회 전체를 통틀어서 같이 대등하게 의논하고 (최소한 지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상대가 없는 상태에서 평생 권력 게임을 하면서 사는 것…끔직한 운명이다.

    원래 이런 사람들은 고독 속에서 예술가 혹은 학자로 살 때 가장 행복한 유형의 인간들이다.
    정치에 들어오면 권위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정치에는 영혼과 정신에 적당히 굳은 살과 못이 박힌, 유들거리는 사람이 가면 딱 좋다.

  • 그러나 우리 민족이 처했던 비상한 상황이 이승만, 박정희 같은 특출한 유형의 사람들을 3D 직업인 정치로 끌어들인 것이다.

    마치 임진왜란을 앞둔 풍전등화의 위기가 오자 유성룡이 이순신이라는 특이한 사람을 발탁해서 끌어들인 것처럼. 위기를 감지한 유성룡이 없었다면, 또한 평화가 계속 유지되었더라면 이순신은 함경도 변방에서 즐겁게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일선의 영관급 장교로서 편안히 살다 죽을 수 있었을 것이다.

    <뱀발: 이순신은 활을 무척 좋아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 사회의 주류 제도권은 아직도 이승만과 박정희의 비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대한민국 현대사가, “대한민국은 수치스런 나라이며 민족정통성은 평양에 있다”라는 친북자학사관에 의해 능욕당하도록 내갈겨 두었을 리 없다.

    야권은 더 한심하다.
    DJ보다는 노무현이, 노무현보다는 지금 야권이 훨씬 처진다.
    열성유전이 급속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북한 전체주의의 빨대(전빨) 노릇을 하는 지경까지 타락했다.

    우리 사회 지식층과 정치인들이 이승만과 박정희를 깊게 이해하는 날이 오면, 그들의 정신의 힘이 고스란히 부활할 수 있다. 그들은 ‘예외적 개인’(exceptional individual)들이었지만, 그 정신의 힘이 널리 전파되면 그들의 [정신의 힘]을 닮은 ‘전형적 개인’(typical individual)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할 수 있다.

    속된 말로 예비군 훈련장에 백 명이 모이면 그 중 한 명은 이승만과 박정희가 가졌던 [정신의 힘]을 닮은 사람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시오노 나나미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로마의 기풍이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비극성에 대한 이해는 독특한 정치사상을 가지도록 우리를 분발시킨다.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긴장과 유대에 대한 깨달음이다.

    아직 우리 사회 지식층, 정치인들 사이에는 이런 깨달음이 널리 전해지지 못 했다. 천박하다.

    이번에 안철수가 단일화 코스를 택함으로써 정치적 자살을 저지르게 된 것은 그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다.

    깨달음이 부족한 지식층, 자신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는 ‘천박한 정치 투기꾼의 정치적 자살’이라는 해프닝을 만들고 또 만들고 또 다시 만들어내기 십상이다. 보고 배운 것이 그것 밖에 없기 때문에, 그 버르장머리가 안 고쳐지는 것이다.

    게다가 성공한 코스닥 사장 아닌가?
    사회의 온갖 혜택과 스포트라이트를 즐겨 온 사람 아닌가?

    나폴레옹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권력을 졸로 보지 말라. 우스꽝스런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Power is never ridiculous.”


    이 명언을 바꾸어 안철수에게 충고한다.


    "정치를 졸로 보지 말라. 우스꽝스런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Politics is never ridiculous. "



  • 박성현 저 술가/뉴데일리 논설위원.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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