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 지지층 끌어오려는 민주당의 안쓰런 '몸짓'쉽지 않은 구도..만약 노무현이라면 어땠을까?
  • “안쓰럽다.”

    24일 기자와 만난 수도권 한 민주당 의원이 한숨과 함께 풀어낸 말이다.

    전날 안철수 후보가 전격 사퇴 기자회견을 한 이후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무려 9번의 브리핑과 논평을 했다. 모두 같은 내용. “안철수 후보의 희생정신을 받들겠다.”

    초상집 같은 안 후보 캠프에 대고 공동 선거 캠프 구성을 제안하며 문 후보 캠프 선대위원장들이 전원 사퇴를 의결했다. 상대편의 허무함과 침울함은 안중에도 없는 듯 자신들의 조급함만 드러내는 셈이다. 어떻게든 안 후보의 지지층을 끌어안겠다는 몸짓에 같은 민주당 후보들도 “낯부끄럽다”며 고개를 젓는다. 결국 안철수를 사퇴하게 만든 것은 민주당과 문재인이라는 건 그들 스스로도 부인하지 못했다.

  • ▲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캠프 브리핑룸에서 후보직 사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중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 연합뉴스
    ▲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캠프 브리핑룸에서 후보직 사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중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도 처음부터 이렇게 부산스러운 모습을 보이려 했던 것은 아니다. 안 후보의 기지회견 직후 브리핑에 나선 캠프 대변인은 극도로 말을 줄이는 모습이었다. “문 후보의 입장(발표)도 오늘 중으로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었다.

    사퇴한 마당에 이제는 안철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 섣불리 움직였다가 안철수 지지층을 잃게 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당분간은 안 후보의 지지자들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이었다. 사실 조용히만 있으면 저절로 ‘우리 쪽으로 오겠거니’ 하며 한 '표정관리'만 하면 된다는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보다 급박했다.

    안철수 지지자들은 그동안 그들이 상대했던 분노를 속으로 삭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캠프 출입기자들의 ‘기사’보다 더 빨리 스스로 ‘논조’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불과 한두시간 만에 ‘여론’을 형성했다.

    “아름다운 단일화 같은 소리하네.” 완득이로 유명한 배우 유아인이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일갈은 안철수 지지자들에게는 큰 공감을 얻었고, 분노의 화살은 문재인 후보로 모아졌다.

     

  • ▲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캠프 브리핑룸에서 후보직 사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중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 연합뉴스

    급해진 문 후보 측은 결국 이날 오후 10시40분께 ‘메시지’란 이름으로 후보 명의의 입장을 발표했고, “안 후보께 정중한 예의를 따로 갖추겠습니다”며 사태 수습을 시작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구태정치에 막힌 안철수’라는 내용으로 민주당을 공격했고, 그렇지 않아도 답답했던 민주당은 유례없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발끈, 날선 공방을 벌였다.

    안철수의 예견대로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지는 순간이었다.


     

    ◆ 급해진 문재인, 지지율 득실 계산 시작

     

    대선 구도가 박근혜 vs 문재인 양자 구도로 재편된 만큼 문재인 후보에게 최우선 과제는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을 끌어들여 최소한 박 후보와 오차범위내로 지지율 구도를 만들어야 하는 점이다.

    이미 문 후보 캠프 측은 지지율 변동과 시나리오 구상을 끝낸 것으로 보인다.

    평균적인 지지율 구도를 살펴보면 다자구도에서 박근혜 40, 안철수 25, 문재인 25의 형국이었다.

    그렇다면 안 후보의 지지층 25%가 과연 얼마나 문재인 후보에게로 넘어가느냐가 관건이다. 산술적으로 보면 문 후보가 최소한 20%는 가져와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안 후보 지지율의 80%를 '내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 ▲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1차 단일화 당시 장면. 안철수의 표정이 눈에 띈다. ⓒ 정상윤 기자
    ▲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1차 단일화 당시 장면. 안철수의 표정이 눈에 띈다. ⓒ 정상윤 기자

    하지만 사퇴 기자회견의 모양새가 좋지 않았던 만큼 기대했던 만큼의 지지층 이동은 어려울 전망이다.

    현재 정치권 분석은 60%를 기준으로 보는 게 중론이다. 정치평론가인 고성국 박사도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 가운데 60~70%는 문재인 후보 지지층으로 옮겨가고, 10% 정도는 박근혜 후보로 돌아서고, 나머지 20%는 아예 투표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대로 ‘단일화 실패’라는 평가도 힘을 얻은 만큼 박근혜 후보에게도 중도층을 공략할 기회가 열렸다. 특히 안 후보의 지지율의 상당수는 중도층과 20~30대 층이어서 박 후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표심 이동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 여전히 칼자루는 안철수에게…답답한 문재인

     

    재밌는 점은 결과적으로 모든 칼자루를 안철수 후보가 쥐었다는 점이다.

    안 후보는 박근혜 후보가 이기든 문재인 후보가 이기든 모두 제2의 정치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문 후보가 부족한 탓이고, 문 후보가 된다면 그 역시 자신의 공으로 돌릴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섰다.

    이런 사정을 알기에 문재인 후보는 여전히 안 후보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이 민주당 입장에선 더 답답하다.

  • ▲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1차 단일화 당시 장면. 안철수의 표정이 눈에 띈다. ⓒ 정상윤 기자

    그래도 어쩌나?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입장임은 분명하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대선에서 중도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핵심은 결국 ‘안철수’다. 안 후보와 큰 틀에서조차 입장을 달리했던 정책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역시 민주당의 판단이다.

    단일화 과정에서 생겼던 감정의 골을 빨리 털어내고 안철수와 안철수 캠프 인사들을 얼마나 빨리 달래느냐가 시급한 과제다.

    하지만 안 후보는 기자회견 곳곳에서 불만과 서운함을 드러냈기에, 이 같은 일이 실현될 지는 미지수다. 최소한 안 후보가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했던 ‘편지 지원’ 정도라도 문 후보에게는 ‘감사한 일’이 될 지도 모른다.


     

    ◆ 등 돌린 안철수…이럴 때 노무현이었다면?

     

    문재인 후보의 기대와는 달리 당분간 안철수 후보가 문 후보를만나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안 후보는 일말의 희망까지 갖지 못하게 하려는 듯 24일 돌연 지방으로 내려가 버렸다.

    안 후보 캠프의 인사들도 당분간 ‘묵언’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입은 닫았지만, 문 후보 캠프로의 이동설에는 펄쩍 뛴다. 유민영 대변인은 <뉴데일리>와의 만남에서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잘라 말했다.

    문재인 후보 입장에서는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상황.

  • ▲ 2002년 대선 바로 전날인 12월 18일 단일화 파기를 선언한 정몽준 대표 자택을 찾은 노무현 후보가 문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 2002년 대선 바로 전날인 12월 18일 단일화 파기를 선언한 정몽준 대표 자택을 찾은 노무현 후보가 문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어디서 본 듯한 광경이 아닌가? 딱 10년 전에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문후보의 주군 노무현 후보가 그랬다. 여론조사에서 밀리면서도 정몽준 후보에게 단일화 제안을 한 것도 노무현 후보가 먼저였고 선거 전날 버림받은 것도 노무현 후보였다.

    달라진 것도 분명히 있다.

    역사를 지켜본 안철수 후보는 좀 더 영리해졌고, 참여정부 실세였던 문재인 후보는 지킬 게 더 많아졌다. 지킬 게 많아진 문 후보는 노 후보처럼 상대방의 제안을 배짱 있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영리해진 안 후보는 정몽준 후보보다 더 빨리 떠났다.

    2012년과 2002년의 차이는?

    용감하게 경쟁에 나서 단일화를 이룬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제쳤고, 상대방의 탈락으로 단일화를 이룬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제칠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차이.

    2002년 12월 18일.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파기 선언에 노무현은 정 후보의 집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안철수의 선처에 목을 매면서 선거 마지막 날 안철수 후보의 집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 문 후보. 그의 주군이었던 노무현처럼 말이다.

    야권 단일화의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