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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가 백낙청을 깐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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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한국 정치지형의 분계선이 새로운 모습으로 그어졌다.
이것이 선거 이후로도 길게 이어질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그러나 어쨌든 지금으로선 엄청 중요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진영의 확산(擴散)과 범좌파 진영의 '고착(固着)'이 그것이다.박근혜 후보 쪽으로는 최근 1960년 4. 19 세대의 멤버이자 <김형욱 회고록> 집필자인 김경재, 1964년 6. 3 학생운동의 리더 김중태, 1960년대 후반 ‘오적(五賊) 사건’의 당사자이자 1974년 ‘민청학련 세대’의 선배인 김지하, 1980년대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장본인 김현장이 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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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김지하는 오늘(12/4) 아침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한류 르네상스 가로막는 쑥부쟁이’를 통해 이른바 ‘재야 원탁회의’라는 좌파 노인 그룹의 좌장격인 백낙청을 묵사발 만들었다.
거짓 우상의 허구를 깨부순 통쾌한 직격탄이었다.
그의 논고(論告)는 서릿발 같다.
"일곱째, 그 깡통 같은 시국담이다.
무슨 까닭인지 그의 입은 계속 벌려져 있는 상태다.
그렇게 벌린 입으로 과연 지하실 고문은 견뎌냈을까?
그런데 하나 묻자.
백낙청은 지하실에 가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이를 전후해서는 DJ의 분신 한광옥 한화갑이 박근혜 지지를 선언했다.
YS와 '상도동 계'도 그 뒤를 이었다.
가출(家出) 했던 이회창 이인제도 본가로 귀가했다.안철수도 ‘문재인이 바라는 만큼’의 지원은 하지 않는 눈치였다.
왜 이렇게 됐는가?
한 마디로 범야권이 순 NL(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운동권, 노빠, 486 이념집단의 배타적인 헤게모니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왕년의 ‘혁혁한’ 운동권 상징(象徵)들 마저, 그리고 왕년의 DJ 진영 터줏대감들마저 떨어져 나갔겠는가?
변질된 민주당이 이정희 이석기 김재연과 ‘연대’를 하고, 천안함 폭침을 ‘ 침몰’이라고 우기고, 김대중 노무현 묘소를 찾으면서 이승만 박정희 묘소엔 눈길 한 번 안 주고... 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장기(長技)인 통일전선 속임수마저 쓰지 않는 채 오로지 자기들만의 ‘집토끼 진지(陣地)’ 안으로 두더지처럼 기어들어갔다.
그러니 ‘집토끼+알파’가 될 리가 있었겠나?
이제 대선(大選) 국면 한국정치는 “대한민국 연합진영이냐, NL이냐?”로 갈라졌다.
이 대치선이야말로 한반도 정치 갈등의 적나라한 본래의 모습이다.
경제민주화나 복지를 부차적(副次的)인 것으로 포괄하는 최상위, 최고위의 개념이다.
흐릿한 안개 속을 벗어나 한국정치가 비로소 발가벗은 맨 몸을 드러내는 느낌이다.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