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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의 반성보다는 책임론이 먼저다.
그리고 책임론보다는 권력을 잡는 게 더 먼저다.대선에서 예상 밖의 참패를 당한 민주당이 이번에는 내부 권력 싸움 조짐을 보이고 있다.
100만표가 넘는 차이로 대패(大敗)한 문재인 후보(당대표 대행)에 대한 처분(?)을 놓고 민주당이 분열을 보이는 것.
나아가서는 권력을 더 쥐고 있으려는 문 후보를 비롯한 친노(親盧) 세력과 대선 패배 책임론을 앞세워 권력을 빼앗으려는 비노(非盧) 세력간의 전쟁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아직까지는 서로 탐색전을 펼치는 형국.
비노 세력은 기세가 올랐지만, 당분간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친노 세력은 묵묵부답이다.
그러나 곧 탄생하는 새 정권에 대한 견제와 내년 4월 재보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지키려는 친노’와 ‘빼앗으려는 비노’간의 전면전이 곧 벌어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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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원 원내대표와 이해찬 민주당 전 대표. 친노 세력의 민주당 점령을 이끌었던 두 사람은 현재 전면에서 물러난 상태다. ⓒ 정상윤 기자
◆ 반성을 모르는 친노
입은 다물고 있지만, 발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문 후보를 비롯한 친노 세력은 대선 패배의 책임론이 더 이상 불거지기 전에 재빠른 당 지도부 재편을 노리고 있다.
비노 세력의 공세가 힘을 얻기 전에 또 다른 친노 지도부를 구성하겠다는 속셈이다. 패배의 원인을 친노만의 책임이 아닌 민주당 전체의 책임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물타기 전략이다.
한번 폐족을 겪었던 세력인터라 살기 위한 몸부림이 지난번과는 또 다른 처절함을 보인다.
“세번째 민주정부 구성은 실패했지만, 희망은 보지 않았나?”
낙선 소식에 끌려나온 문재인 후보의 이 말에서 ‘다시 한 번 친노를 중심으로 민주당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넘어 ‘이번에 밀려나면 정말 끝이다’는 절박함을 읽을 수 있다.‘선거는 졌지만, 우리 뒤에는 1천400백만표가 있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역대 최다표 차이로 진 정동영 후보를 은근슬쩍 깔아뭉갠다.
이른바 ‘비노 불가론’이다.
이들은 벌써부터 새로운 지도부 인사에 친노 인사들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다.
김부겸, 박영선, 이인영 등 문재인 캠프 선대본부장들의 이름을 향후 지도부를 대신할 비상대책위원회 명단에 넣으려는 작업이다.패장들을 아무런 문책도 하지 않고 다시 전장에 내세우겠다는 격이다.
◆ 문재인 무슨 낯으로 금배지 달고 있나?벼르고 별렀던 비노 세력도 가만있지는 않는다.
친노 세력의 핵심 축이었던 이해찬 전 대표는 민주당 경선과 안철수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
국회 원내 일정으로 직을 유지하고 있었던 박지원 원내대표도 사퇴함으로써 당 지도부는 완전한 공백 상태다.남은 건 문 대표대행 뿐이다.
하지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선거 이후 문 후보가 당연히 전면에서 물러날 줄 알았지만, 여전히 대표대행직은 계속하고 있다.
오히려 책임론은 회피하고 ‘당 재건을 위해 몸바치겠다’며 나서는 뻔뻔함을 보인다.비노 진영은 짧은 비대위 시기를 거쳐 곧바로 전당대회를 통해 당 정상화를 꾀해야 한다는 의견이지만, 여전히 당당한 친노 세력의 기세에 주춤한 모습이다.
더 큰 문제는 지난 총선과정에서 주요 비노 인사들이 대부분 축출된 상황이란 점이다.
친노 세력을 몰아낸다고 해도 민주당 위기를 극복할 마땅한 비노 지도자를 구하지 못한다는 점이 이들의 한계로 분석된다.그래서 제기된 것이 문 대표대행의 의원직 사퇴론이다.
유례없는 박빙이 예상된 가운데서도 100만표 이상의 차이로 패배했다. 자신의 지역구인 사상에서도 12%p 차이로 박근혜 당선자에게 패배했다.
게다가 의원직을 사퇴하고 배수의 진을 친 박근혜 후보에 비해 사퇴론이 불거졌음에도 문 대표대행은 끝끝내 의원직을 내놓지 않았다.실제로 문 대표대행과 민주당 상임고문단과의 21일 회동에서 정대철 상임고문이 “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지 않았느냐”며 조목조목 따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 대표대행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 문재인 국회의원 사퇴 없이는 민주당 재건 불가능
“좀스럽게 굴지 말고 대선후보다운 태도를 보여라.”
새누리당 대선 경선 당시 경기도지사직을 내려놓지 않고 참가했던 김문수 경기지사에게 박용진 문재인 캠프 대변인이 쏟아낸 비난의 말이다.경선 참여조차 현직을 내려놓고 참가하라고 닥달했던 민주당.
반대로 대선 후보까지 선출됐으면서도 의원직을 내려놓지 않은 문재인.
박 대변인의 이 말이 지금은 문 대표대행에게 그대로 돌아가고 있다.아무도 패배의 책임을 지지 않는데 어떻게 새로운 민주당을 재건할 수 있느냐는 한탄의 목소리는 민주당 내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사실상 정계 은퇴를 선언했으면서도 여전히 당대표를 유지하며 향후 구성될 비대위원장 임명권도 쥐고 있는 문재인이다.
여기에 앞으로 3년 이상 국회의원으로 국회를 출근하면서 여전히 친노의 아이콘으로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패배의 책임을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는 감성적 말 한마디로 내팽개친 문재인과 친노 세력의 ‘무늬만 반성’을 또다시 국민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그들의 생각은 그야말로 ‘착각’이다.”
23일 <뉴데일리>와 만난 민주당 한 초선의원의 읍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