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서화 장편소설 '레드'-2
  • <70> 2층 방


    “끼~이~익!”
    그즈음 지원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찾지 않은 2층 방에 올라와 있었다. 언젠가 현우는 2층 방이 햇볕도 잘 들고 전망도 좋을 것 같다며 구경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절대 보여줄 수 없다던 방이다. 물론 2층 방에 오마니가 쓰던 물건을 갖다 놓았다고 말한 건 사실이었다. 하여간 지원은 2층 방을 철저히 외면했다. 심지어 소파에 누웠다가 무심코 그쪽으로 시선만 어긋나도 무의식적으로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2층 방은 그렇게 의식에서 지워버린 공간이었다.
    “콜록! 콜록!”
    지원은 아주 무겁게 첫발을 내디뎠다. 지원이 걸어 들어간 검은 안개 속은 그동안 아무도 찾지 않은 게 확실했다. 그래서 회색의 눈처럼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단지 찾아드는 건 막힌 창문 한 귀퉁이로 스며드는 빛 한 가닥이 전부였다. 그런 방 안에 오마니가 사용하던 침대와 화장대, 그리고 외출복과 구두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지원이 맨 먼저 집어든 건 북한에선 감히 상상도 할 수도 없는 고급향수였다. 갈색병을 들어 향수를 허공에 뿌리자 알코올성분이 기화하며 아직까지 남아 있던 장미와 라벤더향이 코끝을 진하게 자극했다. 설명이 필요 없는 황홀한 꽃향기였다. 순간 지원은 그 향기 속에서 오마니의 환영을 보았다. 하지만 이내 눈을 감아 오마니가 걸어 나오는 걸 막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인생을 사랑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서 배웠어. 그걸 알려준 장본인이 바로 오마니고. 이제 와서 오마니를 추억한다는 건 나 스스로에 대한 모욕과 멸시야.”
    아주 짧은 순간 지원의 평정심이 폭풍 속의 꽃잎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지원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그때 지원의 등 뒤쪽에서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유령이라도 나타나 경고하듯 자신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 것 같았다. 지원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어딘가에 걸려 털썩 주저앉았다. 종이상자였다. 조금 전까지 관심 밖이던 종이상자가 단번에 지원의 시선과 관심을 독차지했다. 지원은 지금까지 종이상자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 적이 없었다. 단지 내다버려야 할 해묵은 잡동사니일 거라고만 짐작했을 뿐이다.
    “안에 뭐가 들었지? 이건 책이고, 이건 여성잡지고. 그럼 또 이건.”
    그런데 그렇게 내용물을 하나씩 확인하다 지원이 맨 밑바닥에서 발견한 건 가족앨범이었다. 지원은 가죽의 질감과 테두리의 고급스런 장식만으로도 그것이 무엇인지 금방 눈치챘다. 하지만 한낮에 뜨거운 모래언덕을 기어서 넘어가듯 선뜻 손길이 닿지 않았다. 지원은 끊어지고 말끔하게 지워진 가족의 꿈과 사랑을 확인하는 게 무섭고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역설적이게도 사실 확인을 통해 진정 기미를 보이던 분노와 증오가 다시금 활활 타오르는 게 싫었다. 하지만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한 변명거리도 필요했다. 그래야 또 다른 영혼이 아픔보다는 납득으로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이미 짐작하고 있는 사실이잖아. 이건 단지 그걸 확인하는 요식행위일 뿐이야.”
    결국 지원은 마지막 용기를 내서 갈등의 좁은 문을 통과했다. 선명한 컬러로 표현된 오마니와 지수의 사진에는 자유를 상징하는 풍부한 색감이 넘쳤다. 거기다 그 화려함에 어울리는 꿈과 행복도 가득했다. 사진 속 두 사람의 얼굴에는 그늘이나 슬픔이 전혀 드리우지 않았다. 한마디로 지원과 아바지와는 너무도 대조되는 삶이었다. 더구나 앨범 속엔 기억조차 하기 싫었는지 나머지 두 사람의 빛바랜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순간 잘 유지되던 지원의 순한 감정들이 손끝으로 친 도미노처럼 일순간 우르르 넘어졌다.
    ‘그래도 우린 가족인데. 난 오마니와 지수가 무슨 옷과 음식을 좋아했는지 또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기뻐했는지 다 기억하는데. 그리고 생일날엔 오마니와 지수가 좋아하던 꽃도 머리맡에 그려놓곤 했는데. 그래! 난 결코 울지 않아. 울면 지는 거야.’
  • 앨범을 다 넘기자 마지막으로 시커먼 블랙보드가 나왔다. 그 느낌이 너무도 슬프고 외롭고 무섭고 황량했다. 마치 먼 바다에서 별 없는 밤에 혼자만 깨어 있는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옆에 식인상어가 우글거려도 모를 만큼 어두웠다. 거기다 블랙보드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었다. 그래서 빨려 들어가는 속도에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그때 지원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준 건 이성이나 감성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본능이었다. 지원은 비로소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시 그랬어. 하긴 오마니와 지수에겐 우리가 이미 잊어야 할 가족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래, 가족이라고 착각한 건 바로 나와 아바지야. 어리석었어, 특히 아바지는 너무…….”
    그때 다른 종이상자와는 달리 플라스틱 재질로 된 하드박스가 눈에 들어온 건 우연이었다. 더군다나 투명하드박스엔 그다지 내용물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왠지 지원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지원은 조금 전 들춰본 앨범상자 위에 하드박스를 옮겨다 놓았다. 실체가 드러난 하드박스는 오마니의 액세서리보관함이었다. 주얼리, 팔찌, 이어링 모두가 촌스럽고 싸구려 같았다. 지원은 왠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무언가가 지원의 뇌리를 스쳤다. 전율을 느낀 지원은 황급히 액세서리를 꺼내 일일이 무언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모든 액세서리의 제조국이 동일했다.
    “Made in China!”
    순간 지원은 콘크리트구조물처럼 견고하던 오마니와 지수를 향한 불신에 작은 균열이 발생했다. 하지만 아바지와 자신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지원의 심장은 다시 차갑게 식었다. 액세서리를 다시 주워 담던 지원은 갑자기 손동작을 멈췄다. 박스 밑바닥에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원이 꺼내든 물건은 크기부터 엄청 작았다. 어린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미니수첩 같았다. 더구나 한쪽 모서리에는 금속링과 줄로 만들어진 단단한 고리까지 있었다. 지원은 호기심 반, 귀여움 반으로 앙증맞은 그 물건을 꺼내들었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런 미니수첩을…….”

    그런데 지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것은 지원이 꼭 한 번 보고 싶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오마니의 감춰진 마음이었다. 아니 진실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미니수첩에 담긴 사진들이었다. 이제까지 발견하지 못한 추억들이 거기에 고스란히 저장돼 있었다. 아바지의 일상은 물론이고 지원의 어린 시절 사진까지 함께 꽂혀 있었다. 지원에게는 기억조차 없는 추억까지 살아 있었다. 더구나 부드러운 촉감에 상큼한 향기가 나는 고급인화지엔 두 사람을 그리워하는 글도 가득 적혀 있었다. 지원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북극에 버려진 듯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였고 원근감마저 사라졌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노력해도 흰색 너머에 또 다른 흰색 그리고 그 너머에도 더 크고 짙은 흰색뿐이었다. 말과 느낌만 다른 흰색의 바다였다.
    “아! 이럴 수가.”
    문득 지원의 뇌리를 스치는 기억 하나가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지원은 이제 실성한 사람처럼 다른 종이박스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지원이 찾아낸 건 걱정을 대신하고 사라지게 해준다는 소위 인형요정이었다. 인형요정은 친근하면서도 인정 많은 이웃아줌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원이 인형을 찾은 이유는 분명했다. 사실 지원과 지수는 어린 시절 갖고 싶은 물건이나 소원이 있으면 꼭 인형의 옷을 걷고 배에 그것을 적어놓곤 했다. 물론 어느 소원은 이루어지고 또 어느 소원은 단지 바람으로 끝났다. 하지만 소원을 적는 순간부터 지원과 지수는 약속이나 한 듯 순수하고 아름다운 생각만 했다.
    “언니, 올해도 2층 방을 새로 도배했어. 매년 하는 일이야. 이 방은 언니 방이래. 햇볕도 잘 들고 전망도 참 좋아. 별님, 달님이 쉬어가기 딱 좋은 방이야. 그래서 나도 갖고 싶지만 언니에게 양보할게. ^^ 언니, 정말 미안해. 그리고 사정이 생겨 오지 못하면 내가 바람이 되어서라도 찾아갈게. 그때까지 꼭 기다려. 알았지?”
    지원은 인형을 끌어안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지원의 철옹성처럼 단단하던 감정의 벽이 진실의 거대한 지진 앞에서 일순간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동안 두렵고 무섭고 복수에 매몰되어 차마 믿고 싶지 않았던 질문에 대한 답이 거기에 모두 있었다. 분명 지원은 오마니와 지수의 진실을 찾으러 왔다. 하지만 지원이 만난 건 엉뚱하게도 자신의 진실이었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다. 눈물은 소금밭의 삽처럼 지원이 갖고 있던 편견과 어리석음을 밑바닥까지 긁어냈다. 얼마나 울었는지 맑고 순수한 지원의 눈빛엔 소금꽃이 모래알처럼 단단하게 영글기 시작했다.
    “나만 어리석어 그걸 깨닫지 못한 거야. 어린 시절에는 우리 가족이, 정치범수용소에서는 은혜가, 그리고 여기서는 달래와 현우 씨가 내가 겪은 모든 슬픔과 기쁨을 함께 했어. 그런데 난 혼자만 끝도 없는 어두운 터널에 버려졌다고 생각했어. 남들에게만 나를 위해 포기하라고 강요한 거지. 내 마음과 눈은 이기적이게도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 거야. 결국 나를 포기하고 버린 건 바로 나 자신이야. 모두 정말, 정말 미안해.”
    지원의 뜨거운 눈물이 호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호수는 거울의 방처럼 지원의 현재와 과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만남이었다. 그리고 운명의 농간에 놀아난 잔인한 만남이었다. 이제 지원은 태초의 혼돈 속에서 빠져나오듯 조심스럽게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곤 달빛이 새어드는 창가에서 바닥이 꺼지듯 한숨과 함께 주저앉았다. 그때 우연처럼 문틈으로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방금 비가 그친 것처럼 무성한 초록의 냄새로 가득 찬 상쾌한 바람이었다. 그 바람은 지원의 의식 속에서 기억용 단어카드를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카드에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의미와 감동이 살아 꿈틀댔다.
    “아바지, 오마니, 지수, 동무들, 그리고 피아노. 피아노?”
    피아노라는 단어가 지원의 의식과 그 흐름을 마치 돌부리처럼 막아섰다. 지원은 주저하고 망설이는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잠시 후 거실 한쪽에 있던 피아노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그리고 지원의 길고 하얀 손가락이 물기를 털어낸 나비처럼 건반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연주곡은 현란한 선율과 기교에 입을 다물 수 없는 쇼팽의 <즉흥환상곡>이었다. 이제 지원의 아름다운 영혼은 비로소 본연의 제 색깔과 무늬를 되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