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드 인원 불과 1,500여 명…전 세계 테러조직이 두려워하는 기관
  • 지난 12일 원세훈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한 말로 국민들의 반응이 뜨겁다.

    좋은 뜻으로 뜨거운 게 아니라 ‘국정원 무능론’ 때문이다.

    안보에 관심이 있는 국민들은 이번 국정원장의 발언이 보도되자 2009년 5월 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 2010년 3월 북한의 천안함 폭침, 같은 해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2011년 2월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 등을 거론하며 국정원을 질타하고 있다.

  • ▲ 국정원 사상 최악의 원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만복 前국정원장. 김정일에게 허리를 숙여 큰 비판을 받기도 했다.
    ▲ 국정원 사상 최악의 원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만복 前국정원장. 김정일에게 허리를 숙여 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식물화’된 국정원을 되살린다더니 왜 아직도 DJ-盧정권 시절 ‘국정원’의 모습을 보이는 걸까?

    1998년 국정원 ‘거세’ 이유는 ‘권력 애완기구화’


    1998년부터 시작된 국정원 대숙청은 우리나라 정보기관이 갖고 있던 일말의 야성까지 없애버린 사건이다.

    제2공화국 때 중앙정보위원회로 시작한 우리나라 정보기관은 중앙정보부를 거치면서 세계 유수의 정보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 됐었다.

    냉전 시절에는 서방 정보기관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대북첩보, 대공산권 정보수집에서 뛰어난 역량을 드러냈다.

    중앙정보부 시절에는 AIU(육군첩보대), UDU(해군첩보대), OSI(공군첩보대) 등과 함께 북한에 휴민트(HUMINT)를 보내 스파이망을 구축하고, 해외에서 다양한 비밀공작을 펼쳤다.

    냉전이 절정이던 제5공화국 때는 대북침투용 코스모스급 잠수정을 도입하고, 신세기함과 신천지함을 건조했다.
    정보요원들의 공작비용도 ‘넉넉하게’ 지급했다.

  • ▲ 대북침투를 위해 면허생산해 배치한 코스모스급 잠수정.
    ▲ 대북침투를 위해 면허생산해 배치한 코스모스급 잠수정.



    그 결과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는 서방 진영에서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에 대한 인간첩보(HUMINT)능력은 최고라고 평가받았다.
    모사드 수준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김영삼 정권 때는 대통령이 직접 간섭하지 않아 조금이나마 ‘야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98년 김대중 정부 때부터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안기부의 이름을 ‘국가정보원’으로 바꾸고 간부급 요원을 대거 숙청했다.

    이때 김대중 정부가 한 ‘개혁’은 단순히 대북첩보수집과 대북공작만 없앤 게 아니었다.
    해외공작이나 해외 비밀첩보 수집 분야의 역량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우리나라 정보기관은 남북대치 특성상 북한이 테러조직이나 ‘불량국가’와 연계해 ‘음모’를 꾸미는 것도 쫓게 되는데 해외 활동이 줄어들자 중요한 정보는 점차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에 심어놨던 고급 첩보망 수백여 명이 처형되는 일도 벌어졌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대북첩보망도 완전히 망가졌다.

    첩보위성이나 새로운 감청장비, 정찰기 등의 도입도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졌다.
    방첩, 대공수사 분야의 전문가들은 기세등등한 좌파의 눈치를 보느라 편하게 말도 못할 정도였다.

  • ▲ 김대중 정부는 1998년 국가안전기획부의 이름을 '국가정보원'으로 바꿨다. 이후 국정원 대숙청이 시작됐다.
    ▲ 김대중 정부는 1998년 국가안전기획부의 이름을 '국가정보원'으로 바꿨다. 이후 국정원 대숙청이 시작됐다.



    김대중 정부가 국정원의 ‘야성’을 거세한 뒤 들어선 노무현 정부는 국정원을 아예 ‘권력의 애완기구’로 만들어 버렸다.

    국정원 과거사조사위원회를 만들어서는 국가기밀을 파헤친 건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북 첩보수집을 했던 요원들이 [깡통진보] 인사들의 평양 방문을 ‘수행’하면서 술값을 내주는 일까지 있었던 건 대부분 모른다.

    더 한 일도 있었다.
    주요 부처마다 숨겨놓은 국정원 예산을 찾아내 절반 이하로 줄였다.
    ‘비밀유지’가 생명인 국정원 요원들에게는 “회계 투명성을 갖춰야 한다”며 카드를 쓰도록 강요해 활동범위를 드러내도록 했다.

    국정원 요원이 당시 고위층이 개입된 비리 혐의를 파헤치자 시골로 내쫓기도 했다.
    하기야 ‘일심회’ 간첩단을 수사하려는 국정원장까지 쫓아낸 정권인데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권력의 이런 ‘국정원 길들이기’에 숨은 뜻은 이거였다.

    “너희가 과거에는 군사권력의 시녀였으니 이제는 우리의 시녀가 돼라.”


    '슬픈 일'은 이런 권력층에 호응하며 자기 역할을 잊어버린 국정원 요원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의 아프간 납치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테러조직과는 공식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서방국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탈레반과 협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 ▲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 납치 당시 '선글라스맨'과 김만복 국정원장. 정보기관 요원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해놓고도 '해맑게' 웃고 있다.
    ▲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 납치 당시 '선글라스맨'과 김만복 국정원장. 정보기관 요원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해놓고도 '해맑게' 웃고 있다.

    이어 김만복 국정원장이 직접 아프간 현지로 가는 등 국정원이 나서 탈레반과 협상을 했다.

    국정원은 탈레반에게 수천만 달러 상당의 '몸값'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들어간 돈이 국정원의 '특별활동비 예산'이라는 소문도 세간에 퍼졌다.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과 그 옆에 선 '선글라스맨'의 태도도 세계 정보기관의 비웃음을 샀다.

    국정원장이 현지 백색요원(외교관 신분으로 파견된 정보요원)도 아닌 비밀요원을 옆에 세워놓고 세계 언론들 앞에서 '자랑질'을 해댄 것이다.

    국정원 현장요원들 사이에서는 '최악의 언론플레이'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후 우리나라 정보기관들은 '테러와의 전쟁' 중이던 서방 정보기관들과의 협조관계가 눈에 띠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 ▲ 최근 MBC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7급 공무원'의 한 장면. 이런 학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게 노무현 시절이다.[사진: 영상캡쳐].
    ▲ 최근 MBC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7급 공무원'의 한 장면. 이런 학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게 노무현 시절이다.[사진: 영상캡쳐].

    이런 일이 벌어지던 시기 국정원 요원 채용도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때 노량진 등에는 ‘국정원 대비 학원’이라는 게 생겼다.

    국정원 출신도 아닌 강사들이 이상한 말을 퍼뜨려 대중에게 잘못된 ‘국정원상’을 심어줬다.

    “방송국이나 공사 시험 준비하다가 국정원에 간 사람이 많다.
    국정원도 다른 곳과 별반 차이 없다.
    그냥 공무원 조직이다.
    사명감?
    그런 거 안 중요하다.
    성적만 좋으면 된다.
    좋은 곳에 배치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 같은 힘들고 어려운 일 그리 많지 않다.”


    ‘국정원 대비 학원’들은 자기네가 합격시킨 사람 명단 일부를 인터넷에 공개하기도 했다.
    그래도 국정원은 이런 학원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우수한 인재’를 찾는다며 공채와 특채를 진행했지만 국정원에 지원하는 이들 중 ‘애국심’이나 ‘사명감’을 가진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스펙’이 최고라는 말만 돌았다.

    이런 상황이 언론을 통해 ‘바깥’에 알려지면서 전 국민이 국정원을 우습게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계를 넘나들며 목숨을 걸었던 국정원 요원 이야기는 ‘구전’으로 남게 됐다.



    세계 테러조직의 저승사자 모사드, 부활 이야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고생했던 국정원 요원들은 이때를 [돼지로 살던 때]라고 부른다.
    나오는 월급 꼬박꼬박 받으며, 괜히 권력의 눈 밖에 나는 일을 벌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런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니 국정원이 자랑하던 ‘대북 인간정보(휴민트)’ 능력과 비밀공작능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2011년 2월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사건도 그 결과다.

  • ▲ 이스라엘 모사드의 로고. 성경 중 잠언 24장 6절이 모토다.
    ▲ 이스라엘 모사드의 로고. 성경 중 잠언 24장 6절이 모토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이런 모습에 자조적인 요원들이 많다.

    그렇다면 국정원이 다시 [야성]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의 비슷한 경험을 했던 이스라엘 모사드를 살펴보자.

    모사드는 1930년대 시오니즘 운동 때 활동하던 무장조직 ‘하가나’, ‘팔막’ 요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이스라엘 독립 후 군과 내무부, 외교부 정보기관들이 불필요한 경쟁을 벌이자 총리실이 직속 정보기관을 만들어 교통정리를 한 것이다.

    정식 명칭은 ‘중앙공안정보기관(ha Mossad le Modiin ule Tafkidim Meyuhadim)’이다.

    인원은 2000년대 들어 1,500여 명으로 늘었다.
    국정원의 ○분의 1수준이다.
    하지만 이들은 ‘머릿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세계 각국의 유대인 협조자(Sayanim) 수만 명이 이들을 헌신적으로 돕기 때문이다.

  • ▲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를 저지른 '검은 9월단'을 암살하는 모사드를 그린 영화 '뮌헨'.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허술하게 작전하지 않았다.
    ▲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를 저지른 '검은 9월단'을 암살하는 모사드를 그린 영화 '뮌헨'.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허술하게 작전하지 않았다.



    모사드하면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 납치, 뮌헨 올림픽에서 테러를 저지른 검은 9월단 암살을 떠올리며 “CIA도 못하는 일을 해낸다”고 생각하지만 이들도 참담한 실패를 많이 경험했다.

    특히 ‘권력자가 개인적인 욕심과 집착으로 정보기관을 휘두르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모사드는 큰 실패를 거듭했다.

    1988년 영국 내 모사드 거점 폐쇄, 1992년 사린가스의 원료를 실은 화물기 추락, 1997년 예후다 질의 가짜 공작원 사건, 1998년 스위스에서의 암살 실패 등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국장까지 몇 차례 바뀌었다.

    모사드는 공작 실패와 함께 냉전 체제 붕괴, 팔레스타인과 중동 평화 협상 등의 변화를 겪으면서 유능한 요원들이 떠나고 노하우를 전수받지 못해 10년 넘는 침체기를 겪는다.

  • ▲ 모사드를 부활시킨 메이어 다간 前국장. 2011년 물러났다.
    ▲ 모사드를 부활시킨 메이어 다간 前국장. 2011년 물러났다.



    이들이 다시 되살아난 계기는 2002년 9월 메이어 다간 국장의 취임이다.

    모사드의 부활에는 다간 국장의 공이 가장 컸다.
    다간 국장은 “적의 뇌를 삼켜라”라는, 유명한 취임사를 남겼다.

    “나는 레바논에 참전했을 때 가문끼리의 싸움이 초래한 비참한 결과를 본 적이 있다.
    한 족장의 머리가 깨져서 뇌가 거리에 흩어져 있었다.
    주변에는 족장의 부인과 어린아이들의 시체가 있었다.
    이때 살아남은 한 아이가 족장의 뇌수를 한 움큼 쥐더니 집어삼켰다.
    이것이 레바논 사람들이 가문끼리의 싸움에서 하는 행동이다.

    뇌를 먹어 삼켜라.
    그렇게 힘의 근원을 취하라.
    나는 여러분의 뇌가 다른 자들에게 먹히기를 절대 바라지 않는다.
    뇌를 먹는 사람은 여러분이어야 한다.”


    다간 국장은 취임과 함께 하루 14~18시간씩 일하며, 직접 현장을 뛰며 솔선수범을 보였다.

    그의 행동으로 ‘무기력’했던 모사드는 새로운 개념의 [테러와의 전쟁]에서 다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때 모사드가 ‘과거’에서 발굴한 무기는 [예방][보복]이라는 목표, 그리고 [최고의 인간첩보] 능력이었다.

    모사드 "깡패들에게는 말로 하지 않는다."


    그들의 부활을 알린 사례 중 우리나라에서 '공작'을 펼친 것도 있다.
    2004년부터 시작한 '북한-시리아 핵커넥션' 저지 공작이다. 

  • ▲ 이스라엘군의 대표적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 정부의 명령이면 '암살'도 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주변의 위협에 '말'로 대응하지 않는다.
    ▲ 이스라엘군의 대표적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 정부의 명령이면 '암살'도 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주변의 위협에 '말'로 대응하지 않는다.

    2004년 4월 22일 남포로 향하는 북한 열차 한 대가 폭발했다.

    당시 언론에는 화공약품 폭발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폭발한 열차에는 납 등으로 밀봉한 화물칸과 함께 12명의 시리아 과학자가 타고 있었다.

    시리아 과학자는 폭발 사고로 모두 사망했고, 북한 당국은 화생방 방제요원을 보내 폭발사고 주변을 격리한 채 방제작업을 벌였다.

    모사드는 이 열차에 55㎏의 플루토늄이 들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2004년 여름, 모사드 비밀요원들이 서울로 날아왔다.

    이들은 모사드 요원임을 숨기고 탈북자들을 만났다.
    그 중 북한 395공장에서 생산 지배인이었던 탈북자를 만나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생산과 수출에 대해 파악한다.

    이 탈북자는 북한 395공장에서 생산하는 미사일 유도장치에 들어갈 부품을 일본인들이 수출하고 있다는 사실과 북한 전역에서는 20여만 명이 핵무기와 화학무기-생물학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구체적인 첩보를 제공했다.

    모사드 요원들은 서울에서 북한의 무기 수출 커넥션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수집했다.  

    2005년 9월에는 북한청천강무역회사가 이란에 로켓 액체 추진체를 수출했다는 첩보도 입수했다.

    시리아와의 무기 커넥션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북한은 시리아에 스커드-C 미사일 60여 기를 수출했다.

    2005년 10월 18일 메이어 다간 모사드 국장이 중국 베이징을 찾았다.

    다간 국장은 중국 정보당국에 "북한이 이란과 시리아에 대량살상무기 수출을 하지 않도록 압력을 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달 모사드는 북한이 H5N1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무기로 만들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 무기가 이란이나 시리아 손에 들어가면 이스라엘은 심각한 위협에 빠지게 된다.

    모사드는 중국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판단, 북한과 이스라엘 커넥션을 막겠다고 결심한다.

  • ▲ 이스라엘은 2007년 9월 5일 오후 11시 59분 '선버스트 작전'을 펼쳐 시리아 핵시설을 파괴했다. 사진은 폭격 전(왼쪽)과 폭격 후(오른쪽)의 모습.
    ▲ 이스라엘은 2007년 9월 5일 오후 11시 59분 '선버스트 작전'을 펼쳐 시리아 핵시설을 파괴했다. 사진은 폭격 전(왼쪽)과 폭격 후(오른쪽)의 모습.

    2007년 9월 3일 시리아 타루투스항.
    한 사람이 항구로 들어오는 1,700톤급 화물선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화물선 이름은 '알 하메드'.
    태극기가 달려 있었다.
    인천항에 등록된 배였다.

    '알 하메드'호는 북한 남포항을 출발, 인도양을 가로질러 희망봉을 돌아 타루투스항에 들어왔다.

    '알 하메드'호는 항해 중 국기를 바꿔 달고 선박 등록처를 인천으로 꾸미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

    이 화물선에는 북한에서 생산한 플루토늄이 실려 있었다.
    플루토늄은 곧 시리아군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2007년 9월 5일 오후 11시 59분, 이스라엘 공군 69비행전대 기지에서 5대의 F-15 I 전투기가 떠 올랐다.
    비슷한 시각 이스라엘 최정예 특수부대 '사예렛 매트칼' 요원들이 시리아 핵시설 인근에 잠입했다.

    1시간 20분 뒤 올메르트 수상은 작전명 'Sunburst'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리아 핵단지 폭격이 성공한 것이다.
    여기서 일하던 시리아와 북한 핵기술자들도 모두 사망했다.

    이 작전 외에도 모사드는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암살 및 파괴공작을 성공시켰다.

    그 결과 모사드는 세계 테러조직이 가장 두려워하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났다.

  • ▲ 팔레스타인 하마스 조직원을 암살한 뒤 CCTV를 보며 미소를 짓는 모사드의 암살팀 '키돈' 요원. 암살전문조직인 키돈은 6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여성은 8~10명이다.
    ▲ 팔레스타인 하마스 조직원을 암살한 뒤 CCTV를 보며 미소를 짓는 모사드의 암살팀 '키돈' 요원. 암살전문조직인 키돈은 6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여성은 8~10명이다.




    국정원이 잃어버린 ‘야성’, 어디서 찾을까?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보다 훨씬 적은 예산과 자원, 인원을 가진 모사드가 [테러와의 전쟁]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이에 정보 관계자들은 [실전감각][야성]을 꼽는다.
    ‘임무수행에 목숨을 건다’는 말이다.

    국정원이 모사드와 같은 [야성]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쉽지만 실행은 무척 어렵다.
     

  • ▲ 국정원의 '야성'을 부활시키려면 원세훈 국정원장은 물론 국가 수뇌부의 강한 결단이 필요하다.
    ▲ 국정원의 '야성'을 부활시키려면 원세훈 국정원장은 물론 국가 수뇌부의 강한 결단이 필요하다.



    먼저 지난 20년 동안 쌓아온 교육, 조직, 관리 등 모든 시스템을 다 갈아엎어야 한다.
    신임 국정원장은 청와대와 정부 부처의 협조를 얻어 예산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다른 안보기관과의 관계도 새로 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요원들을 ‘위험한 현장’으로 보내 끊임없이 단련시켜야 한다.

    [야성]을 키우려면 [현장]으로 나가는 방법 외에는 없다.
    “국정원 입니다”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혼자 살아남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대신 요원들의 [충성]을 위해서는 그들 가족을 위해 국가가 무엇이든 다 해줘야 한다.
     
    이런 ‘부활 준비’를 위해서는 새 대통령의 의지와 유능한 신임 국정원장의 인선, 현 원세훈 원장의 ‘성실한 인수인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16일 북한 김정은이 중국에 4차 핵실험을 실시할 것이라고 통보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제 북한 핵문제는 [집안 문제]가 아니라 [세계 문제]가 됐다.

  • ▲ 국민들이 바라는 것? 제발 김정은이가 질질 짤 때까지 패 주라는 것이다.
    ▲ 국민들이 바라는 것? 제발 김정은이가 질질 짤 때까지 패 주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안보기관은 북한이 '사고'를 저지를 때마다 "좌시하지 않겠다"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좌시(坐視)'하지 않고 '입시(立視)'만 하면 되나?

    미친 김정은 정권의 행패를 언제까지 지켜만 볼 건가?

    모사드가 테러조직의 저승사자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협박하면서 까불면 인정사정 없이 그냥 패 버린다.

    '미친 북한'의 핵문제가 점점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정원의 [야성 부활]이 시급하다.





    上편. 영화 '피스메이커'의 핵배낭이 북한제라면?
    中편. ‘애완’ 국정원, ‘야성’의 모사드에게 배워라!
    下편. 우리나라 안보, 특수하기에 ‘관리’ 아닌 ‘예방’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