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동 美․英정보기관, 테러로 개망신...2002년부터 변신 이스라엘이 롤모델
  • 국정원 등 국내 안보기관은 자신들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가 나가면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

    물론 일부에서는 문제제기에 수긍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도 자신들에게도 ‘맹점(Blind Spot)’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민간인은 잘 몰라서 그러는데”라는 식이다.
    꼭 '관료화된 장성' 같다.

    이런 태도에서 나오는 문제들이 국정원의 ‘야성’을 좀먹는데도 말이다.

    국정원이 늘 부러워하는 ‘강대국 정보기관들’도 과거 이런 ‘맹점’과 ‘약점’을 인정하지 않으며 ‘관료집단’처럼 굴다가 [개망신]을 당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과 영국이다.

    9.11 테러 미리 알았던 美정보기관,

    ‘타성’과 ‘오만’에 빠져

    미국 뉴욕.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테러를 생중계로 지켜본 세계인들은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쌍둥이 빌딩이 무너질 때, 미국의 ‘자존심’도 함께 무너졌다.

  • ▲ 9.11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이 공격으로 미국의 자존심도 무너졌다.
    ▲ 9.11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이 공격으로 미국의 자존심도 무너졌다.



    9.11테러 당시, 미국은 냉전을 종식시키고 소련을 이겼다는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군사비 지출은 세계 전체 군사비의 절반을 차지했고, 140여만 명의 미군이 세계 50여 개국에 주둔하고 있었다.

    정보능력도 사상 최고로 평가받았다.
    CIA, NSA, FBI 등 57개의 크고 작은 정보기관은 곳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며,
    미국의 국익을 지키는데 앞장섰다.
    이들이 연간 사용하는 예산만도 1,000억 달러를 넘었다.

    사실 미국은 알 카에다가 뉴욕 세계무역센터 지하에서 차량폭탄테러를 시도할 때부터 그 위험성을 파악하고 있었다.

    알 카에다는 1993년 예맨에서의 美이지스 구축함 ‘콜(Cole) 호’ 테러, 사우디 아라비아 미군기지 폭탄 테러,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美대사관 폭탄 테러 등을 저질렀다.

  • ▲ 예맨에서 소형보트 자살폭탄테러에 당한 美이지스 구축함 콜(Cole)호.
    ▲ 예맨에서 소형보트 자살폭탄테러에 당한 美이지스 구축함 콜(Cole)호.



    이런 테러위협이 거세짐에도 미국 정보기관들은 ‘냉전 후 질서 적응’을 핑계로 다른 정보기관과 예산 경쟁이나 하고 자기 영역을 넓히려는 정치게임에 몰두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美의회가 3년 이상 조사해 발표한 ‘9.11 리포트’ 등에 따르면 미국 정보기관들은 알 카에다와 미국을 겨냥한 테러 첩보를 서로 공유하지 않아 ‘자산’을 비효율적으로 활용했고, 정작 필요한 ‘자산’은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멍청한 짓’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어학 전문가의 부족이다.
    9.11테러에 관한 일도 있다.

    9.11테러가 일어나기 몇 달 전, 미국 정보기관들은 ‘알 카에다가 美본토에서 동시다발 테러를 하기 위해 비행기 조종이 가능한 조직원을 미국에 보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협력관계에 있는 해외 정보기관도 유사한 첩보를 제공했다.

    하지만 미국 정보기관들은 ‘우선순위’가 밀리는 아랍어 전문가를 충분히 채용하지 못해, 이 첩보의 번역을 못했다고 한다.
    이 첩보 내용은 테러 발생 이틀 뒤인 9월 13일에야 번역을 마치고 보고되었다.

    9.11테러를 겪은 뒤에도 미국 정보기관의 ‘멍청한 실패’는 이어졌다. 



    이라크 출신 사기꾼 말에 힘 실어준 CIA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해 테러 조직에 확산시키고 있다’는 이유로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침공을 개시했다.

  • ▲ 부시 행정부가 거짓 정보로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 CIA 국장이었던 조지 터넷.
    ▲ 부시 행정부가 거짓 정보로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 CIA 국장이었던 조지 터넷.



    당시 부시 정권 수뇌부는 잘못된 ‘소스(Source)’의 주장을 믿고 있었다.
    그 '소스'는 이라크 출신으로 여러 건의 사기죄로 고소당한 사람이었다.
    정보기관들은 그 ‘소스’가 실은 사기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의 주장이 틀렸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조지 테닛 CIA국장은 나중에는 정권 수뇌부의 ‘취향’에 맞춰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보고를 올리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일들이 속속 드러나자, 美의회와 행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정보기관 전체의 ‘판(Framework)’을 뒤집어 엎어버린 것이다.

    결국 자잘한 정보기관 22개를 통합해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를 창설하고, 정보공동체(Intelligence Community)를 이끌던 DCI(Director of Central Intelligence) 자리를 CIA 국장으로부터 뺏어 별도로 국가정보장(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자리를 만들었다.

    미국 정보기관에서 절대적인 ‘파워’를 자랑하던 CIA와 美국방성의 힘을 빼버린 것이다.  

    하지만 미국 정보기관은 ‘자만’과 ‘아집’, ‘관료주의’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다 2009년 또 한 번 망신을 샀다.
    민간인들이 직접 테러를 막으면서 또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 ▲ 美의회가 만든 9.11리포트. 9.11테러 이후 美의회는 3년 넘게 진상조사를 벌였다. 이후 미국 정보기관의 '판' 자체를 뒤집어 버렸다.
    ▲ 美의회가 만든 9.11리포트. 9.11테러 이후 美의회는 3년 넘게 진상조사를 벌였다. 이후 미국 정보기관의 '판' 자체를 뒤집어 버렸다.



    2009년 12월 크리스마스, 나이지리아 출신 테러범 우마르 파루크 압둘라무 탈라브가 300여 명을 태운 여객기를 디트로이트 상공에서 폭파시키려 했다.
    하지만 여객기 승객들이 이 테러범을 제압해 테러는 실패로 돌아갔다.

    2010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은 16개 정보기관장을 모두 백악관으로 불러 강하게 질책했다.
    9.11테러와 똑같이 이미 정보를 입수해놓고도 테러를 막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강한 힐책이었다. 테러범의 아버지가 테러 한 달 전 나이지리아에 있는 美대사관을 찾아 “아들이 테러를 저지르려 한다”고 신고했는데 무시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007 제임스 본드 부활?

    ‘정보귀족’ 때문에 다 죽었다!


    미국만 이런 ‘삽질’을 하는 게 아니다.
    거의 맞먹던 일을 저질렀던 게 영국이다.

    영화 ‘007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는 영국 대외정보국(SIS. 속칭 MI6) 소속이다.

    23번째 007영화 ‘스카이폴’에서 제임스 본드는 “(내 취미는) 부활(Resurrection)”이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 ▲ 23번째 007영화 '스카이폴'의 한 장면. MI6 요원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한다는 내용이다.
    ▲ 23번째 007영화 '스카이폴'의 한 장면. MI6 요원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한다는 내용이다.



    영화 속 007은 살인면허만 있는 게 아니라 두둑한 배짱, 맡은 임무에 목숨을 거는 집요함 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영국 정보요원’은 2차 대전 때 SOE(Special Operation Executive. 특수작전집행국) 이후로는 보이질 않는다.

    현실에서 제임스 본드는 MI6를 차지한 ‘정보귀족’들 때문에 죽었다.
    이를 보여준 사례가 2005년 7월 7일 영국 런던에서 일어난 4건의 대중교통 폭탄테러다.

    런던 지하철역 3곳과 2층 버스 1대에서 폭탄이 터져 55명이 숨지고 200여 명이 다쳤다.
    테러범들은 폭탄가방을 든 채 자살테러를 감행했다.
    비슷한 시기 스코틀랜드 글렌이글스에서 열릴 G8회의를 방해하기 위한 테러였다.

    9.11테러 이후 세계 정보기관들은 ‘테러 대응’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한동안은 새로운 양상의 테러와 테러조직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영국도 그 중 하나였다.

    영국은 1990년대 들어 이슬람 이민자들을 대량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2000년대가 되자 영국은 프랑스, 독일과 함께 이슬람 이민자 천국이 됐다.
    인구의 17%가 이슬람 이민자인 런던은 ‘런더니스탄’이라고 불렸다.

    해외 정보기관들은 영국 내 이슬람 이민자들 중에는 ‘성전(聖戰. Jihad)’을 독려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와 테러리즘을 전파하는 자들이 ‘정치난민’으로 대거 유입되어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했다.

    특히 ‘테러와의 전쟁’에서 선봉에 섰던 모사드는 2003년 초반 MI6의 리처드 빌링 디어러브 국장, MI5(국내안보부. 정식명칭 SS)의 엘리자 머닝햄 블러 국장 등을 만나 “영국 내에서 자생적인 테러조직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 ▲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런던에서 하마스 지지시위를 벌이고 있다.
    ▲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런던에서 하마스 지지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실과 멀어진 ‘정보귀족’,

    테러 뒤에도 “어쩔 수 없었다”


    모사드의 경고는 ‘우려’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무슬림 극단주의 종교 지도자들이 BBC 인기 프로그램에 나와 공개적으로 “미국인과 이스라엘인을 처단해야 한다”고 선동하고 있었고, 1997년부터 총리를 하던 토니 블레어의 고문이라는 무슬림 변호사는 “자살테러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던 때였다.

    ‘정치난민’으로 인정받은 한 사우디 출신 이민자는 영국인과 미국인들이 참수당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놓고는 ‘성전’을 독려했다.

    이들 모두 영국으로 이민 온 무슬림 과격분자들에게 ‘영국과 미국,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성전(주로 폭탄테러)에 나서야 한다’고 떠들어 댔다.

    모사드는 2005년 5월 초 다시 한 번 ‘런던 테러 계획’에 대한 첩보를 제공했다.
    이 첩보는 파키스탄 정보부(ISI)에 검거된 알 카에다 연계 테러조직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 ▲ 2005년 7월 7일 런던 테러의 현장.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들이 벌인 테러다.
    ▲ 2005년 7월 7일 런던 테러의 현장.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들이 벌인 테러다.



    하지만 영국 정보기관은 모사드의 경고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고 한다.
    특히 MI6 측은 자신들을 ‘진짜 제임스 본드’나 ‘정보기관 위의 정보기관’인 듯한 태도를 보여 다른 정보기관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 MI5와 MI6 요원 또는 간부 대부분은 명문 사립학교를 졸업한 뒤 옥스퍼드나 캠브리지에 진학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들이다.
    귀족 출신도 많다.
    이들은 정보요원이면서 고급 수제 양복에 호화 취미를 갖고 유유자적하게 살아,
    세계 정보요원들로부터 ‘정보귀족’이라 불렸다.

    런던 테러가 일어난 뒤 테러조직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자기 합리화’에 더욱 열중해 동맹국 정보요원들을 맥 빠지게 했다.

    MI6와 MI5는 이스라엘과 미국, 독일, 프랑스 정보기관에 ‘SOS’를 보냈다.
    1년 뒤인 2006년 5월 14일, 영국 정보보안위원회가 ‘런던테러 최종보고서’를 발표했을 때 이런 글이실렸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의 제한된 자원과 업무 부담을 감안할 때 MI5가 더 잘 했을 것 같지 않다.
    또한 앞으로도 테러 공격을 완전히 저지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다.”


    이를 본 다른 정보기관들은 “역시 정보귀족” “007은 모두 죽었다”며 혀를 찼다고 한다.

  • ▲ 영국 해외정보기관 MI6 본부. 테임즈 강변에 있다.
    ▲ 영국 해외정보기관 MI6 본부. 테임즈 강변에 있다.

    영국 정보기관은 이후 2006년 3월 창설한 ‘다국적 반테러 네트워크 TF’인 ‘오버트 공작’을 시작하면서 그나마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돈도, 사람도 없지만….”

    잠에서 깨어난 모사드


    사실 모사드 또한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삽질’과 실패를 거듭한 적이 있다.
    가장 중요한 전쟁징후를 놓친 적도 있다.

    하지만 2002년 9월 신임 국장이 부임한 뒤 다시 잠에서 깼다.

    2002년부터 모사드는 스스로 ‘테러와의 전쟁’에서 선봉에 서기로 했다.

    모사드가 테러와의 전쟁 선봉에 선 것은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 사건에 이어 두 번째였다.
    당시 모사드는 ‘검은 9월단’ 추적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에게 ‘반테러 네트워크’를 설립을 요청했다.

  • ▲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 이후 이스라엘의 주창으로 만든 반공무장조직 '글라디오'의 로고.
    ▲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 이후 이스라엘의 주창으로 만든 반공무장조직 '글라디오'의 로고.

    이 ‘반테러 네트워크’는 이후 반공 암살부대로 알려진 ‘글라디오(Gladio. 라틴어로 단검)’ 또는 ‘잔류자 부대(Stay Behind Unit)’를 창설하게 된다.

    여기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물론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덴마크, 독일, 그리스, 네델란드, 노르웨이, 터키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973년 7월 노르웨이의 릴레함메르에서 ‘검은 9월단’ 두목 알리 하산 살라메를 암살하려던 모사드 요원들이 엉뚱한 식당 종업원을 살해, 현지 경찰에 검거되면서 ‘반테러 네트워크’의 선봉에서 빠지게 된다.

    모사드는 이후 겪었던 침체에서 벗어나고자 9.11테러와 알 카에다의 등장을 기회로 삼았다.

    2002년 9월 이후 ‘테러 조직’을 쫓아온 모사드의 활약은 눈부시다.

    모사드는 영국, 미국 등 우방국과 서방 각국에 테러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 커넥션과 미사일 수출 커넥션, 탈북자들의 동남아 경유 루트 또한 대부분 모사드의 첩보망을 통해서 나온 것으로 보면 된다. 

    특히 모사드의 추적 결과 그 실체가 명확하게 밝혀진 '이란-북한 핵개발 커넥션'은 이제서야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실시한 뒤인 지난 15일 일본 교도 통신이 보도한 내용이다.

    “이란이 지난해 11월 북한에 핵실험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이란은 대신 수천만 달러를 중국 위안화로 지급하겠다고 했다.”


    지난 17일 영국 선데이 타임스도 같은 맥락의 보도를 했다.

    “북한 핵실험 당시 이란 핵무기 개발 총 책임자인 모흐센 파크리자데 박사가 참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 ‘월드 트리뷴’은 북한이 3차 핵실험에 사용한 핵무기가 이란의 자금을 받아 북한이 개발한 무기라고 보도했다.

    ‘월드 트리뷴’은 ‘북한 핵실험, 핵심 최종 사용자(key end-user)인 이란이 비용 제공’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2월 12일 북한의 핵실험은 이란을 위한 것으로, 이란에서 비용을 받았다”
    “3차 핵실험이 이뤄진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는 이란 과학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현장에는 ‘이례적으로' 거대한 인공위성 통신장비도 발사장 입구에 마련됐는데, 이는 북한·이란 합작 무기의 테스트이기 때문이다.”


    ‘월드 트리뷴’은 북한의 3차 핵실험이 핵무기 개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과 이란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진짜 핵무기’의 위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했다.


    영국 정보기관들의 ‘야성’을 일깨우고 ‘정보귀족’들을 ‘현실’로 끌어내리는 계기가 된 ‘오버트 공작’ 또한 모사드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오버트 공작’에는 현재 영국 MI5, MI6, GCHQ, 런던 경시청 특수부, 미국 CIA, FBI, NSA, 독일 BND, 프랑스 DGSE, 파키스탄 ISI 등이 참여하고 있다.

    모사드는 2003년부터는 중남미 지역에도 요원을 보내 ‘테러 네트워크’를 추적했다.
    알 카에다 등 테러 조직들이 마약으로 돈벌이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모사드의 암살부대인 ‘키돈(Kidon. 히브리어로 단검)’팀은 미국 CIA와 DEA(마약단속국)의 도움을 받으며, 베네주엘라,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멕시코, 칠레의 도시와 정글을 누볐다.

    이들은 알 카에다 조직원을 추적해 살해하고, 정글 속에서 그들의 아지트를 찾아냈다.

    여기서 나온 자료 중에는 알 카에다가 돈세탁을 거쳐 3천여 개 미국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증거도 있었다.
    2004년 말 기준으로 테러 조직들이 미국에 투자한 금액은 10억 달러대였다고 한다.

    모사드는 이런 성과로 세계 정보기관의 롤 모델(Role Model)이 됐다.
    2002년 9월 국장이 바뀐 지 불과 3~4년 사이의 성과였다.

  • ▲ 美랜드(RAND) 연구소가 만든 알 카에다 연계조직 지도. 모사드는 중남미 지역에도 알 카에다 연계조직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 美랜드(RAND) 연구소가 만든 알 카에다 연계조직 지도. 모사드는 중남미 지역에도 알 카에다 연계조직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모사드는 예산도, 인원도 미국,영국, 프랑스 정보기관보다 훨씬 적은데 어떻게 그 짧은 기간 안에 테러와의 전쟁 선봉이 될 수 있었을까?

    답은 유대인과 모사드의 관계, 리더의 솔선수범, 그리고 직원들의 역량에 있다. 



    ‘애완’ 국정원과 ‘야성’의 모사드,

    가장 큰 차이는….


    모사드의 가장 큰 역량은 사야민(Sayamin)이라는 유대인 협조자들이다.

    세계 곳곳의 유대인들은 모사드 공작요원(캇차라고 부른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한다.
    이런 협조자들은 세계적으로 수 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세계 220여개 나라에 400만 명 이상의 재외국민이 있는 우리나라 국정원은 과연 어느 정도의 협조자를 확보하고 있을까.

    리더의 솔선수범은 정치권과 정보기관의 관계, 그리고 직원들을 통솔하는 리더십 때문에 무척 중요하다.

    정보기관의 리더들이 나서서 정치권, 언론과 거리를 멀리하고, 국익을 위해 목숨 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를 보고 따르지 않을 직원이 몇이나 될까?

    간부도 마찬가지다.
    정가나 관가의 ‘나쁜 버릇’만 배워 ‘정보의 중요도’가 아니라 사회적 명성과 지위, 저술 등 소위 ‘급’으로 사람을 만나고 판단하는 것부터 버려야 한다.

    정보요원들의 역량 강화?
    이 문제는 채용방식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 ▲ 국정원 '수험생'들이 본다는 국정원 합격 가이드북. 학원도 많다.
    ▲ 국정원 '수험생'들이 본다는 국정원 합격 가이드북. 학원도 많다.

    1980년대 후반부터 국정원 요원은 ‘공개 채용’으로 뽑는다.
    반면 해외 주요 정보기관들은 평소에 모든 요원들에게 ‘자질’이 우수한 인재들을 추천하라고 요구한다.

    “우수한 인재를 찾았다”는 보고가 올라가면, 기관에서 검토한 뒤 인재들에게 직접 제안한다.
    이때 중요하게 평가하는 자질이 ‘심리적 안정성’ ‘도덕성’ ‘지능 및 지식’ ‘건강한 신체’ ‘사회적 배경’ 등이다.

    반면 호시탐탐 적화를 노리는 북한, 아시아 패권을 쥐려는 중국, 일본에 맞선다는 우리나라 정보기관은 국정원부터 기무사령부까지, 모두 ‘성적’으로 뽑는다.

    이러니 그 안에 ‘간첩’이 숨어 있을지 좌익세력, 무정부주의자가 숨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성적 순’으로 뽑은 ‘바른생활 직원’이 과연 흔쾌히 ‘비합법적 공작’을 할 것인지, 그러면서도 자신의 신념과 도덕성을 지킬 지도 의문이다. 

    국정원은 '권력의 정보기관 흔들기' '언론의 소설 쓰기' '좌파 진영의 공격' 등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하소연을 하기 전에 이런 점들에 대해 고민하는 게 먼저 아닐까.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장,

    ‘안보 개념’부터 제대로 잡아야


    현재 박근혜 당선자는 청와대 및 주요 부처 장관 인선을 하고 있다.
    18일 현재 차기 국정원장 인선을 하지 않았다. 

    국정원 측은 부족한 예산과 인원,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관련 법률 개정 등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언론, 학계, 정계는 물론 안보기관조차 “안보의 핵심은 ‘국방’”이라고 말한다.
    제 정신인가?

    우리나라와 같이 ‘안보=생존’인 나라에서는 ‘정보=안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능력이 뛰어나다면, 앞으로 닥칠 위기까지도 미리 대응할 수 있다.
    그런 사례로 이스라엘 모사드의 예를 든 것이다.

    특히 지난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군사적 대북 억지력’은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킬 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

    북한이 핵무기를 소형화한 다음 탄도 미사일만 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가?
    북한 대남사업요원이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가장한 뒤 국내에 들어와 ‘핵 테러’를 벌이는 게 더 쉽지 않나?

    이런 대응책이나 얼렁뚱땅 내놓고 ‘안보’를 말하나?

  • ▲ 美육군 비밀부대 ISA의 로고. 카터 행정부 때 '대숙청'을 당했던 미국 정보기관은 레이건 행정부 때 정보기관의 손발이 될 조직들을 구성했다. 육군의 ISA(정보지원처)도 1981년 창설된 비밀부대다.
    ▲ 美육군 비밀부대 ISA의 로고. 카터 행정부 때 '대숙청'을 당했던 미국 정보기관은 레이건 행정부 때 정보기관의 손발이 될 조직들을 구성했다. 육군의 ISA(정보지원처)도 1981년 창설된 비밀부대다.



    적이 누군인지만 제대로 알아도 승산이 30%를 넘는다.
    능력 있는 정보기관일수록 눈과 귀 뿐만 아니라 손발까지 갖추고 있다.
    그래서 강대국일수록 21세기 안보의 기초를 정보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上편. '평양것들'이 영화 '피스메이커'에 나오게 됐다
    中편.[야성] 잃은 국정원…국정원 대비 학원까지
    下편. 박근혜 5년, 가장 중요한 자리는 국정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