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로 탄생했나

    모두가 피땀 흘려 지킨 자유… 혁명조직 RO에 침식당해
    자유주의에 '신앙고백' 하고 '대한민국 지키기'로 맞설 때

  • 한국의 정치·사회 등 전반에 걸친 국론 분열은
    왜 이렇게 갈수록 더 심해지는가?
    거기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세상이 이토록 [내전(內戰)적] 상황으로 빠져들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라야만 한다"는 데 대한
    건국 당초의 합의가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그래서
    단순한 국정원 댓글 시비나
    채동욱 혼외 아들 진실 공방쯤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오늘의 드러난 갈등들 밑바탕에 도사린
    진짜 큰 싸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들추기 위해선
    대한민국은
    애초에 왜,
    어떤 나라가 되기 위해
    탄생했는지를 되짚어 봐야 한다.

    추석 직전
    문단(文壇) 원로 이호철 선생을
    그의 <고양 평화통일문학관> 정원에서 만났다.

    그는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로 출발했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그의 소설 <별들 넘어 저쪽과 이쪽>을 건네주었다.
    소설 속 조만식 선생의 영혼은
    북한 민족보위상 최용건의 영혼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이승만은 일찍이 1930년대부터 스탈린이라는 자의 본질을 꿰뚫어 보아내고
    (중략)
    미국 땅에서
    (중략)
    언젠가는 그 스탈린에게 대항하는 쪽으로
    (중략)
    인맥을 이뤄갔소.
    1949년에 모택동이 공산당 정권을 세운 뒤에도
    그이는 전혀 끄떡도 않고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았었소.
    (중략)
    초대 대통령이 된 후에도
    거의 극한까지 내몰리면서도
    (중략)
    박헌영과 맞섰던 것이오.
    (중략)
    그것은 바로
    당대에 있어 미·소 대결의 현장이었소이다.
    (중략)
    그로부터 다시 60년이 지나고 보니까
    스탈린의 소련은 송두리째 무너지고
    중국도 저렇게 엄청나게 변하고 있지를 않습니까요.
    범세계적으로 이 일을 해낸
    그 첫 단초(端初)가 바로 6·25 전쟁이었고,
    바로 오늘의 저 대한민국 아니겠는지요."


    한마디로 일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시작일 뿐이라는 것,

    그 후에 닥칠
    [자유주의] [전체주의]냐의
    세계적인 한판 승부가 더 큰 고비라는 것,
    그리고 그때 한반도인(人)들은
    단연 [자유]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을
    이승만 박사는
    이미 독립운동 할 때부터 내다보았다는 것이다.

    8·15 후
    그의 예견은 적중했다.
    그는 김구-김규식마저 가버리고
    미(美) 국무부 유화파가 "나 몰라라" 한 고독한 상황에서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박헌영의 [대한민국 없애기]를 막아서야만 했다.

    그는
    한·미 동맹으로 그 시련을 버텨냈고,
    대한민국은 탄탄히 섰다.
    60년이 지난 시점에서
    국제공산주의는 파산했고,
    조만식 영가(靈駕)는
    "오늘의 저 대한민국 아니겠는지요"
    라는
    감개 어린 토로를 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자 존재 이유다.
    대한민국은
    이런 조만식 영가의 현대사 보기 같은 감격을 떠나선
    제대로 설 수 없다.

    대한민국은
    여당 야당,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이에 대한 공동의 [신앙고백] 위에서만 건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공동의 [신앙고백]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65년 동안
    낙동강에서,
    피의 능선에서,
    서독 탄광과 병원에서,
    중동 사막에서,
    포항제철에서,
    삼성·LG전자에서,
    현대기아자동차에서
    한국인들이 그토록 피땀 흘려 지켜왔던
    [신앙고백]이 다시 [RO의 신앙고백]으로 침식당했기 때문이다.
    일상의 흔한 갈등도 큰 분열로 부채질해온
    악의(惡意)의 촉수(觸手)는 바로 그것이다.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거꾸로 신앙고백]을 인터넷 매체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인민공화국을 세우자는 세력과

    대한민국을 세우자는 세력의 투쟁의 역사다.
    인민공화국을 세우자는 사관이
    해방 전후사의 역사를 왜곡하고

    계급투쟁을 통해 국민을 분열시키고
    북한의 만행을 감추는 방식으로

    6·25 전쟁사를 왜곡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골수파가 한 귀퉁이에 찌그러져 죽치고 있지 않고
    연대(連帶)라는 모습의
    [손에 손잡고]
    로 긴 사슬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석기 구속에 [반란]한 금배지 사슬이 무려 25개였다.
    이 사슬은
    학술 출판 교육 문화에서 [민족]과 [자주]를 제 식(式)대로 풀이해
    광장의 촛불을 횃불로 키우려 한다.
    더러는 아주 안하무인이고 난폭하기도 하다.
    "대한민국 역사는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하면
    즉각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을 한다.

    어찌 할 것인가?

    불가피한 싸움이라면
    회피할 수도 없고 회피해서도 안 된다.
    <아침이슬> 따위로 적당히 비켜서 있을 수도 없다.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박헌영의 [대한민국 지우기] 역사관에 맞서
    [대한민국 지키기] 역사관을 정면으로 들이대야 한다.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 2013.9.24 전재]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i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