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여기자 성추행 장면을 재연해 물의를 빚은 열린우리당 정청래 의원은 3일 파문이 확산되자 “성추행 장면을 재연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며 전면부인하고 나섰다.

    정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장을 찾아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에게 성추행 은폐 의혹을 따져 묻는 과정의 제스처를 두고 ‘여기자들 앞에서 이 대변인을 상대로 뒤에서 끌어안는 등의 상황을 재연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대단히 악의적인 주장”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성추행에 대한 ‘제스처’만 했을 뿐 이 대변인을 상대로 신체접촉까지 하면서 재연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이어 자신의 행동을 ‘제2의 성추행’이라고 비난한 한나라당을 향해 “최 의원의 성추행 사건과 한나라당의 은폐 의혹을 ‘물타기’하기 위한 의도”라며 “정치인으로서 씻을 수 없는 매우 심각한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악의적 주장에 맞서 철저히 진실을 밝혀낼 것이며 납득할 만한 수준의 공개사과가 없으면 사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나 정 의원은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짚었다. ‘성추행 장면 재연’에 대한 논란은 그가 이 대변인에게 직접 재연을 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추행 사건을 대하는 정 의원의 인식이 잘못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당시 술이 덜 깼는지 술냄새를 풍겨가며 직접 몸으로 성추행 장면을 재연하는 정 의원에게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여러 기자들이 있는 앞에서 더욱이 여기자들도 있는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문제의 장면을 제스처까지 취해가면서 재연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정 의원이 재연을 펼치는 자리에 ‘최연희 성추행’ 사건의 전말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굳이 재연할 필요가 없는 ‘오버액션’이었던 것이다.

    정 의원은 “민주화 투쟁으로 감옥에 가서도 다른 사람들의 탄원서 항소이유서는 써줬지만 성폭행 범죄자들에게는 써주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로 성폭력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정 의원은 이번 ‘성추행 장면 재연’에 대한 비난이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데 있어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처벌과 함께 피해자에 대한 배려도 갖춰야 한다는 의미임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성폭력 사건이 조심스러운 이유는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돼 공론화될수록 피해자들의 고통도 커진다는 데 있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아직 그러하다. “아이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동네에 알려지니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벌레 보듯 피하더라”는 한 아동 성폭력 피해자 어머니의 하소연이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를 대변해 준다.

    정 의원이 ‘최연희 여기자 성추행’ 사건을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남성위주의 성문화 개선과 성폭력 범죄 근절의 계기로 삼으려 한다면 이번 사건을 대하는 본인의 태도에 대한 자성부터 하는 것이 옳다. 정 의원은 ‘제스처’라는 말로 성추행 장면 재연에 대해 ‘물 타기’ 하려 하지 말고 당당하게 ‘부적절했다’고 인정한 뒤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게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