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기업 선진화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주택공사와 토지공사의 통합 문제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에 따른 청와대와 내각의 개편, 화물연대 파업 등 민생 현안 때문에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와 여당은 전기, 가스, 수도를 현 정부에서는 민영화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는 등 공기업 민영화와 구조개혁 전반이 주춤하고 있어 주공과 토공의 통합문제도 아직 가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양 공사 통합 문제는 청와대와 정부간에도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공기업의 조기 개혁을 주장했던 곽승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20일 개편에서 막판에 경질대상에 포함된 것도 점진적이고 단계적 개혁을 주장해온 임태희 정책위원장 등 한나라당 입김이 반영된 것으로 정가에서는 해석하고 있다. 주무 장관인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도 19일 이 문제와 관련, “구조조정 후 통합이 필요하면 통합을 하고 인원감축이 필요하면 그 단계에서 고민할 것”이라며 “통합이 전제가 되면 안된다”라고 말해 신중한 추진을 시사하는 미묘한 변화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직접적 이해 당사자인 주공과 토공 양사는 서로 반대와 찬성 논리를 펴며 치열한 ‘물밑 힘겨루기’를 하고 있어 앞으로 이 문제가 표면화될 경우 논란은 ‘뜨거운 감자’로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양 공사 통합문제는 15년 동안 지속된 난제다. 김대중(DJ) 정권 때 ‘공기업 민영화 및 경영혁신 계획’에서 통합을 결정했으나, 당시 국회 용역 결과 기능중복이 미미하고 양 기관 모두 공적 역할이 증대되고 있는 점을 감안, 통합보다는 지향하는 비전에 따라 특화․전문화하기로 해 오늘에 이르렀다.

    청와대와 정부는 일단 공기업 선진화 추진 계획에서 주공과 토공을 통합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토공측은 노사가 일관되게 통합을 반대하고 있는데 통합시 양 기관 동반부실, 국가정책사업 수행 차질, 조직원 갈등 등을 그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토공 노조는 공공성이 약해진 주공이 토공의 공공성, 개발이익, 사업 등에 무임승차해 생명을 연장하려는 것이라며 ‘기업적 양심’을 문제 삼고 있다.

    주택공사는 통합에 적극 찬성이다. 양 기관 업무가 대부분 중복돼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토지·주택 건설 체계를 일원화하여 경영상 비효율을 개선하는 것이 양 기관 모두 잘 살 수 있는 윈-윈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주공 관계자들은 “기능중복에 따른 불필요한 비용 발생으로 국민부담이 늘어나고 과거 수차례 기능조정에 실패하여 오히려 기능중복이 심화됐다. 근본적 처방은 통합 밖에 없다”며 “토공의 택지개발이익을 서민주거안정에 활용하면 재정부담을 줄일 수 있어 효과적”이라고 통합 찬성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들은 “양 기관의 사업 물량이 많을 때 통합하는 것이 전반적 사업 개편에 부담이 덜하고 인력 구조조정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적기다. 또 직원수 7200여명은 철도공사와 한전에 비교하면 적은 수준이며, 통합과정에서 중복인력을 감축하고 한시적 개발사업이 종료되면 점진적으로 축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토공에서 단순 통합의 부작용으로 주장하는 거대 공룡기업 탄생 및 양기관 동반부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통합공사의 재무 및 수익구조는 검증된 바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토공 노조 관계자는 “통합을 주장하는 노조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 강제적 통합은 당장 박수는 받을 수 있지만 결국 둘 다 부실화 돼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새 정부의 큰 짐이 될 수 있다”며 “토공의 개발이익은 임대산업단지, 랜드 뱅크(Land Bank) 등 국가 기반사업에 사용되면 수 배의 국부가 창출될 수 있는데 주공의 손실을 보전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 시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토공과 주공은 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다르며, 기능 중복이란 말은 맞지 않고 한시적으로 주공이 토공 업무를 수행한 것 뿐”이라며 “토공은 작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SOC 확충 등 국토정책을 수행하는 반면에 주공은 국토정책의 극히 일부인 임대주택 공급업무가 주된 임무인데, 마치 극심한 중복인 것처럼 매도하여 일방적으로 통합을 추진한다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부작용이 심한 통합보다는 법이 정한 설립 목적대로 기능을 조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토공 전략경영실의 한 관계자도 “통합이 거론되는 근본적 이유는 주공의 주택경쟁력 상실에 따라 비롯된 것이다. 반면 토공은 정부 재정 지원없이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엔진과 같은 기업이다. 새 정부에서도 한반도 선벨트, 새만금 사업, 해외 신도시 수출 등과 같은 새로운 국책 프로젝트를 통해 일자리 창출 및 경제성장 목표 달성에 기여하고자 국토 재창조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미 토공이 제안한 임대산업단지 3000만평 조성, Land Bank 사업 등은 국정 과제로 선정돼 진행 중이다. 염려되는 것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갚지 못하는 통합공사의 재무구조에서는 이런 경제성장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제는 적시 처방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양 공사의 상반된 주장에 대해 강남대 이춘호 교수는 “주·토공 통합은 정치적 상징성 때문에 매 정권에서 급하게 추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15년간 통합이 안된 이유를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기업의 기능, 국민 경제적 실익, 개혁의 효과 등을 신중히 검토해 봐야 한다. 더구나 지금 공기업 개혁의 세계적 추세는 분담화, 전문화로 가는 상황으로 두 기관의 기능을 특화하여 대국민 서비스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기관 모두 통합 외에 또 하나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통합 이슈에 가려져 표면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토공의 택지개발 사업, 주공의 소형 분양주택 사업 민영화 문제다. 

    주공 관계자는 “주택 공공성이 많이 약화되고 민간이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이 많지만 시기상조다. 서민주거와 직결된 소형분양주택은 수급안정이 중요하나, 시장에서는 필요한 만큼 공급되기 어려워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 민간에서는 대형위주로 공급하기 때문에 소형주택은 공급이 감소 추세”라고 말했다.

    토공 관계자는 “사실 국민생활에 더 밀접한 문제는 택지개발 민영화 문제다. 공공재인 택지를 시장에 맡기면 부동산 경기가 나쁠 때나 민간이 사업을 꺼려하는 지방에서는 택지난이 일어날 수 있다. 부실한 통합공사는 급격한 부동산 경기변동시 탄력적 조절 능력이 약화돼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강남대 이 교수는 “민생과 직결된 수도 전기 가스 등에 대한 민영화 보류 방침은 대환영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환호 속에 간과되는 토지의 공공성이다. 수도, 전기, 가스는 몇백원, 몇천원 오를 수 있지만 토지는 자칫 관리가 소홀하면 수천만~수억원씩 오르내리게 된다. 지금 토공-주공 통합이 이뤄지면 택지 개발의 민간 부문이 확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개발이익 환수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를 먼저 해야 한다. 즉 택지개발 등에서 예상되는 개발 이익을 공공에서 어떻게 회수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제어장치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