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은 긴장이 풀어져 있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권후보자인 이명박 서울특별시장이 지난 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3일 뒤 박근혜 대표는 이 시장의 이 발언을 겨냥해 "자신은 마치 당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처럼 당을 희생해 개인플레이를 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고 다음 날엔 이 시장의 친형까지 나서 이 시장을 꾸짖었다. 이 시장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당이 얼마나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지금 제정신이냐"며 이 시장을 비판했다.

    그러나 최근 한나라당을 보면 '정말 긴장이 풀어진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최연희 의원에 대한 사퇴여론이 높지만 사건이 터진지 열흘이 넘도록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이해찬 국무총리의 '3·1절 골프질'이란 호기를 잡아놓고도 최 의원 잠적에 발목을 잡혀 제대로 공세를 취하지도 못하는 모양새다. 특히 사퇴할 것이라고 전망했던 이 총리의 거취문제가 유임쪽으로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임에도 적극적인 대응을 펼치지 않는 모습이다.

    한 신문은 9일 "청와대가 '3·1절 골프'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의사를 밝힌 이 총리를 유임시키기로 잠정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총리의 이강진 공보수석도 8일 "이 총리는 사의를 표명한 것이 아니다. 언론이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이틀동안 회의를 열지 않았다.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일부 당직자들이 일본을 방문 중이라고 하지만 이재오 원내대표, 이방호 정책위의장, 허태열 사무총장과 원내부대표단 정책위의장단 등이 남아있어 회의를 열 의지만 있다면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열리는 '주요당직자회의'는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8일에 이어 9일 아침에도 회의를 하지 않았다. 이유는 회의를 주재해야할 박 대표가 부재 중이고 처리할 안건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열리는 '최고위원회의'는 박 대표가 주재하는 회의다. 또 최고위원회의는 당 최고의결기구로 안건을 처리해야 하는 회의가 맞다.

    그러나 이번 주의 경우 박 대표의 방일 일정으로 최고위원회의 대신 이 원내대표가 주재하는 확대당직자회의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박 대표의 부재와 특별히 처리해야 할 안건이 없다는 이유로 회의를 취소했다.
     
    박 대표 대신 당을 이끌어야 할 이 원내대표는 8일과 9일 이틀동안 지역일정을 챙기고 있다. 이는 이 원내대표의 개인 일정이다. 이에 대해 당의 한 관계자는 "시간이 날 때 개인일정을 챙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나 '성추행 사건'과 '이해찬 3·1절 골프질' 파문이 해결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제1야당의 원내수장이 개인일정으로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행동으로 판단된다.

    특히 한나라당은 청와대와 정부·여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언론 보도가 빈약한 점을 지적하며 늘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때마다 "야당이 무슨 힘이 있겠느냐"며 긴 한숨을 내쉰다. 한나라당이 매일 아침 개최하는 회의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기회임과 동시에 수단이다.

    하지만 이 총리의 거취문제와 의혹만 부풀어 가는 3·1절 골프질에 대해 강한 공세를 퍼부어야 할 중요한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정부·여당을 비판하고 제1야당의 존재를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버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