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는 인상을
짙게 받기는 6.25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그래도 김대중, 노무현 시대엔 흔들리는 나라를 지키자는
국민의 산 목소리가 저들의 전횡을 어느 정도 막아주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국민정신이 퇴폐적으로 흐르는 가 싶더니
요즘 들어 그 도가 지나쳐 편하고 즐겁게만 살자는
생물학적 속물근성이 시대의 흐름이 돼가는 모습이다.
일선 교육현장에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2352對 0으로 퇴출당하는 참담한 현실에도
별다른 국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조전혁 교수가 주축이 돼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살리기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근 한 달이 된 현재 1만 여권의 주문을 받았을 정도다.
5천만 국민에게서 1만 여권이면 5천명에 한 권 꼴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국가정체성은 그 국가의 탄생(건국)의 역사적 배경이 먼저 고려돼야 한다.”는
이주철 교수의 말처럼, 바른 역사교육은 국가정체성 확립의 기본 요소가 되며,
진정한 애국심은 국가정체성에서 나온다.
분통 터지고 염려스러운 일이 어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뿐인가. 제주 4.3 무장폭동을 ‘제주 4.3 국가추념일’로 지정해 국가차원에서 기념행사를 치르겠다는 정부방침은 이념혼란을 더 혼란하게, 국민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해, 국민화합과 사회통합을 이루려는 박대통령의 정신에도 반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국민의 목소리는 조용하기만 하다.
정부가 먼저 할 일은 ‘제주 4.3 국가추념일’ 지정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이 악의적으로 왜곡한 제주 4.3 무장폭동의 진상을 바로 잡는 일이다. 다시 말해 4.3 무장 폭동의 성격부터 분명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책임자겸 인민유격대 사령관인 김달삼이 김일성의 지령에 따라 <5.10 선거(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해 실시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반대>, <적화통일>, <반미투쟁>, <남로당 수호>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제조도내 13개 경찰지서를 습격하면서 시작된 것이 4.3 무장폭동 사건이고 이것은 분명히 국가전복을 꾀한 공산혁명사업의 하나였다.
이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노무현 정권이 악의적으로 왜곡한 사건의 진상을 그대로 두고 두루뭉수리로 ‘국가추념일’로 지정한다면 대한민국 건국이념과 국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 되며, 자칫 종북세력에게 이념적 오해를 제공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김달삼에 이어 제2대 사령관이 된 이덕구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 데서 그 폭동의 성격은 분명해진다. 대한민국 정부를 ‘괴뢰정부’로 규정하고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한 행위는 대한민국 정부를 뒤엎으려는 ‘내란죄’에 해당한다. 이런 사실을 사실대로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국가추념일’로 정한다면 그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선전포고’는 곧 전쟁상태를 말한다.
물론 어떤 상태에서든 무고한 양민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무고한 희생이 따르게 되는 것 또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 아닌가.
규모가 크든 작든 전쟁에는 억울한 죽음이 따르기 마련이다.
민간인의 희생이 컸던 것은 폭도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위해 양민들을 총알받이로 삼았기 때문이다. 폭도와 양민을 구별할 수 없게 만든 상황에서 양민들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삼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제주 4.3 무장폭동을 일으키고 지휘한 1대, 2대 인민유격대 사령관 김달삼과 이덕구의 묘비가 평양의 ‘애국열사능’에 세워져 있다. ‘애국열사능’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건국의 일등공신들이 누어있는 곳이다. 김일성이가 그들을 ‘북조선 인민공화국’ 건국의 일등공신으로 대우했다는 이야기다. 이 사실만으로도 제주4.3 사건은 국가전복을 목표로 일으킨 공산 무장폭동이라고 그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한다.
두루뭉수리로 ‘제주 4.3 국가추념일’로 지정해버리면 무장폭도들을 추념하겠다는 것인지, 무고한 영령들을 추념하겠다는 것인지 국민에게 혼란만 더해줄 뿐이다. 공산 무장폭도들까지 싸잡아 추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제주 4.3 평화공원에 무장폭동을 주동했던 공산폭도 사령관, 북한 인민군 사단장, 남로당 핵심 간부들의 위패까지 전시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공산통일을 위한 4.3 폭동을 ‘4.3 국가추념일’로 지정하면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가 된다.
굳이 ‘4.3 국가추념일’을 지정하려거든 먼저 제주 4.3. 무장폭동 사건은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북한식 공산정부를 세우기 위해 김일성의 지령에 따라 일으킨 ‘공산 무장폭동’이었다는 성격규정을 분명히 하고 무장 폭도들을 추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념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두루뭉수리로 ‘4.3. 국가추념일’이라고 해버리면 국민간의 이념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국가혼란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제주 4.3 추념일’지정의 부당성을 생각하며 한 마디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건국절’ 제정문제다. 세상에 자기나라 건국을 기념하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나. ‘건국절’을 기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의 생일을 지워 없애고 축하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생일 축하를 못 받는 아이는 출생자체에 문제가 있다든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란 뜻이다. 그러니 그 아이에게 무슨 애정이 갈 것이며 보듬을 마음이 생기겠는가.
내 아이 내가 사랑하고 보듬어야 남도 사랑하고 귀여워하는 법이다. 집에서 귀염 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 아이를 누가 제대로 챙겨 주겠는가. 내 아이가 남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기 바란다면 집에서부터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 상식이 아닌가.
국가도 마찬가지다. 정부자체가 국가의 생일을 축하하지 않는데 국가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겠는가. 그러니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 인정에 인색해 지고 충성심이 없어지는 것이다.
국민이 국가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인정하고 충성심을 가지기 바란다면 먼저 국가의 생일을 챙기는 일, 다시 말해 ‘건국절’을 제정하고 대한민국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모습을 정부가 먼저 보여야 한다.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북한도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일과 1948년 9월 9일의 건국일을 구분해 ‘공화국 창건의 날’ 또는 ‘건국절’이라고 해서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벌이는데, 세계 일류국가로 발돋움한 성공한 대한민국에 ‘건국절’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언제 태어난 지도 모르는 나라, 어떻게 태어난 지도 모르는 나라에 대해, 광복의 환희를 직접 맞보지 못한 젊은이들, 건국의 벅찬 가슴에 직접 눈물을 흘려보지 못한 젊은 학생들에게 존경과 애정을 가져주기 바라는 것은 우리 기성세대의 염치없는 주문이 아닐까.
간접 경험자에게 진실을 전해주기 위해선 가시적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수단)을 택해야 한다. 다시 말해 건국의 기쁨과 가치를 제대로 느끼고 고마움을 가지게 하려면 그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매년 7월 4일이 되면 미국 전체가 축제분위기에 쌓여 미국독립(건국)을 경축하며 국민에게 애국심을 심어준다. 200년 전 건국의 기쁨을 직접 경험한 자가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매년 열리는 건국 경축행사는 건국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게 하고 국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세계를 지배하는 막강한 미국의 힘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대한민국 ‘건국절’의 중요성, 더 말할 필요 있을까.
‘제주 4.3 국가추념일’을 지정해 이념갈등과 국민간의 불신을 조장하기 보다는
대한민국의 가치와 정신을 되새기며 국민들 마음에 애국심과 존경심을 심어주는 축제일,
바로 ‘건국절’을 제정해 그날의 감동을 직접 느끼게 한다면, 그 축제를 통해
국가와 국민의 마음은 하나가 되고 국가의 정체성과 정통성은 제자리를 찾게 될 것,
이것이 바로 ‘건국절’을 제창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