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전문가가 전문가에게 호통치는 나라

    난마같이 헝클어져서 부글부글 들끓는 한국의 여러 문제들은
    대부분 전문가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데 있다고 본다.

    최성재   
       
    *2001년에 쓴 글이라 입시제도에선 달라진 게 있지만,
    전문가 푸대접 현상은 변함없이 한국의 고질병으로 남아 있습니다.
    세월호 비극에서도 전문가 목소리는 모기소리처럼 잦아들었지만,
    방송과 포털 등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문화권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황색언론의 질타는 천둥처럼 한 달 이상 울려 퍼졌습니다.
    ‘연예인’ 손석희는 낯 뜨거운 오보를 내고도
     ‘우리 결혼했어요~’의 가상 드라마에서 연기한 듯이
    사과 한 마디 않고 구름 광팬의 호위 속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전히 슈퍼스타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2014.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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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중기 이후는 전문가가 희귀했던 사회]
      
      조선중기 이후로 우리 나라는 전문가가 별로 없었다. 중인 계급이 의학, 통역, 산술, 천문, 음악, 미술 등을 담당하여 대대로 전문가 집단을 형성했지만, 그 숫자는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위정자들은 조선말 2천만 인구 중에 겨우 1천 명밖에 안 되었는데, 이들은 인문학을 달달 왼 교양 있는 사람들이었지 정치에 대해서도, 행정에 대해서도 전문 지식이 거의 없는 문외한이었다. 경제와 과학기술이라는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무인들은 군사에 대해서 전문가였지만, 이들은 철저히 소외되었다.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군사에 대해서 겨우 중국 역사책과 중국 소설을 읽은 정도의 상식으로 문인이 큰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나 막상 적군이 다가오면,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가기 바빴다. 조선에서는 천 명의 관료, 그 중에서도 득세한 겨우 백 명 정도가 국정을 농단했다. 밤낮 사서오경을 인용하면서 제 일신과 가문을 위해서 나라와 임금을 이용했다. 음풍농월하면서 태평성대를 누렸다. 죽은 조상 제사 지내는 것으로 일년의 반 이상을 바쳤다. 
      
      [일제 시대에는 일본인이 전문가 독차지]
      
      일제 시대에도 한국인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간악한 왜놈들이 백의민족이 신학문을 배울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했기 때문이다. 그 흔한 기술자도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기능공도 거의 없었다. 일본인에 비하면 전문가가 겨우 백의 한 명 꼴이나 되었을까. 조선에는 4년제 대학이 아예 없다시피 했고 그나마 2년제도 일본인이 반 이상을 차지했다. 조선인이 일본이나 중국으로 유학 가는 경우는 모래밭의 금 덩어리처럼 희귀했다. 
      
      [6·25와 경제개발은 전문가 양산의 결정적 계기]
      
      한국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가 본격적으로 양성된 것은 해방 이후, 좀더 정확히 말하면 6·25 이후와 경제개발 이후이다. 근대 군사학을 배운 것은 일제 시대에 일본 육사와 중국 황포군관학교를 통해서였는데, 그 숫자는 미미했다. 독립군을 잡는다는 선입견 때문에 군사 전문가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한 거부감이 있어서 당시로서는 동양에서 가장 군사학이 발달한 일본 육사에 들어간다는 것은 여간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방은 되었지만, 군사 전문가는 아주 드물었다.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조금씩 배워나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군인 숫자만 해도 우리의 두 배가 되는 인민군이 소련에 의해 잘 훈련받은 군사 전문가를 앞세우고 압도적인 화력을 내뿜으며 순식간에 낙동강까지 밀어 붙였다. 
      
      군사 전문가들이 대거 탄생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이미 만만찮은 미국 유학파가 포진했던 군대였지만, 조직과 인력, 물자, 화력이 태부족이었던 상황에서 미국에서 배운 현대 군사학이 겉돌고 있던 차, 일방적으로 밀리는 전쟁에서, 전우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그 피로 강을 이루는 처참한 경험을 통해서, 확실하게 '필드'에서 본의 아닌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한국형 군사학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마침내 인천상륙작전으로 미군과 합동작전을 펼치면서 곳곳에 군사전문가가 우후죽순처럼 태어났다. (장교만이 꼭 전문가가 된 것은 물론 아니다. 이하 글에서 다른 부문의 전문가도 마찬가지이다. 짧은 가방 끈으로도 자기 분야에 전문가가 된 사람이 숱하다. 이른바 우리가 '도사'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전문가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전쟁을 통한 처절한 배움인 만큼 그들은 군사학에만 전문가가 된 것이 아니다. 과학과 기술뿐만 아니라 건설도 배웠다. 행정도 놀랍도록 잘 익혔다. 보급을 통해서 경영도 배웠다. 이렇게 하여 한국군은 강군으로 거듭 나면서 한국 사회 전체 전문가의 반은 족히 길러냈다. 
      
      전후에는 본격적으로 장교들이 웨스트 포인트로 유학을 가서 군사학뿐만 아니라 선진 제도를 보고 들음으로써 정부 어떤 부서보다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전문가가 많이 탄생했다. 군인 유학파가 외무부 유학파보다 많았다. 
      
      [5·60년대의 군대는 가공할 전문가 집단]
      
      돌이켜보면 당시 군인은 자체 교육을 통해서 100% 한글을 깨우쳤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것은 군대가 가공할 집단으로 거듭나는 원동력이 되었다. 거기에 전쟁을 통해 다져진 일사불란한 조직을 갖췄다. 늘 일본인으로부터 모래알 민족으로 멸시 당하던 한국인이 일제의 관동군 이상의 효율적인 60만 군대란 대조직을 갖췄다는 것은 한국 역사에서 굉장한 의미를 갖는다. 2천만 인구의 나라에 산에서 토끼나 꿩이나 잡을 정도의 무기로 무장한 고작 3천명의 군대밖에 없었던 구한말을 생각해 보면, 비록 배는 고팠지만 현대 무기로 무장하고 전문 지식을 갖추고 사선을 넘나드는 전쟁이란 직접 경험을 통해 위에서 내린 명령 한 마디가 가감 없이 60만 전체에게 전달되는 조직이 한국에 탄생한 것은 역사적인 대사건이라고 본다. 고려 초 광군 30만 대군 이래 1천년만의 쾌거였다. 
      
      3천만 명 인구에 실전 경험이 있는 60만 군대, 한국은 평화와 더불어 대지진이나 대해일, 또는 일대 신바람이란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일어날 기반을 완벽히 갖춘 셈이다. 만약 그 힘이 경제개발 쪽으로 향하지 않고 각기 소속을 달리하는 정치인들과 손잡고 끝없는 정권 탈취 쪽으로 향했다면, 한국은 2차 대전 후 아직도 끝없는 내전을 거듭하는 아프리카의 여러 독립국과 비슷한 운명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제2의 월남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중국 아니면 일본, 또는 미국 그도 아니면 소련이나 북한 기준으로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는 바람에 우리는 이렇게 간단한 현상도 제대로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김일성은 본의 아니게 한국을 간접적으로 변혁시킨 일등 공로자(?)였던 셈이다. 한국 사회를 탈바꿈시킨 박정희란 군인도 6·25가 아니었으면 민간인으로 돌아갔던 그가 새로 군복을 입었을 리가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역사의 흐름이란 것이 몇몇 힘 가진 인간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도도히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이 전문가 집단은 소외되기 시작했다.
      이들 전문 지식과 경륜에 물리력과 조직을 아울러 갖춘 군인들의 눈에 비친 조국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민주주의'라는 말만 내세우면 아무 것도 모르는 비전문가도 하루아침에 출세할 수 있는 사회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마침내 '은인자중'하던 한국 최고 최대의 전문가 집단이 총칼을 앞세우고 한강을 건넜다. 놀라운 일은 이 때 총격전이 벌어졌지만, 단 한 사람 죽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이 때 박정희 소장이 실패했더라도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지나친 불균형으로 보아 누군가가 다시 한강을 건넜을 게 틀림없다. 
      
      [정치 안정과 치안 확보, 법치를 가져온 군인들]
      
      이들 전문가들은 힘을 앞세우긴 했지만, 그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무엇보다 법치국가를 만들었다. 헌법만 우리말로 되어 있을 뿐, 일제 시대의 일어로 된 법과 미군정 시대의 영어로 된 법으로 다스려지던 나라가 이들에 의해 불과 반 년 만에 우리말로 정비된 법으로 다스려지게 되었다. 행정도 일사불란했다. 열흘 걸릴 일을 단 하루만에 깔끔하게 해치웠다. 대학의 전문가들도 속속 영입했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진다. 이들이 경제 개발을 주도하면서부터 어느새 산업 현장에서 사회 곳곳에서 전문가들이 상상을 초월한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다. 불과 10년도 안 되어 군인 전문가는 군사학 이외의 분야에서는 속속 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 힘으로 공장을 세우고, 우리 힘으로 건물을 짓고, 우리 힘으로 수출하고 수입하면서, 우리 힘으로 관료들이 전국민을 독려하면서, 전문가들이 불과 10여년 만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대학에서도 학사, 석사, 박사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학사가 대학 교수하던 일은 중세의 낭만으로 남게 되었다. 
      
      [이공계열의 전문가가 대거 탄생한 70년대]
      
      무엇보다 70년대 이후 이과 출신 전문가가 대폭 늘어났다. 인문 숭상 전통이 뿌리깊은 나라였지만, 거대한 공장과 종합 상사가 만석꾼 살림을 동네 구멍가게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정부가 공대를 대폭 증설하는 것에 발맞추어 인재들이 그 쪽으로 서서히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70년대 말쯤 되자 군인 출신들은 이제 높은 자리나 차지하는 장식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일은 밑의 전문가들이 거의 다했다. 군인 출신들은 로비 활동이나 담당하게 되었다. 이들은 이제 군사 전문가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제2의 군사 쿠데타가 있었지만, 또 다른 군인 출신 대통령 시대에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문가들이 크게 우대 받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경제의 고 김재익 경제수석과 정보통신의 오명 전체신부장관이었다. 전문가들이 소외되기 시작한 것은 희한하게도 민주화 이후였다. 
      
      [민주화 이후 전문가가 도리어 소외되다]
      
      민주화 이후 전문가 중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하는데, 산업화 초기에 등장하여 농업밖에 모르던 40대 기수가 70노인이 되어 어르신 신분으로 용상에 앉는 바람에 모든 게 꼬이게 되었다. 이들과 이들을 뒤따르던 무리는 만능 전문가로 자처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한 데 한국의 불행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권모술수의 전문가일 따름이다. 30년을 똘똘 뭉쳐 돌아다니다 보니까 늘어난 것은 아름다운 명분을 내세워 권력을 잡는 한국형 권모술수뿐이었다. 사회 발전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아름다운 명분에는 전문가들이 쓰는 전문 용어가 들어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암기한 것이지 절대 이해한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도 전문가가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대거 전문가들이 발탁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권이 없었다. '가신(家臣)'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전문가 대접이 얼마나 소홀했나하는 것은 그 인사정책을 보면 안다. 장관이든 차관이든 1년이면 장수 장관이요 2년이면 초장수 차관이다. 개혁이란 아름다운 명분은 내세웠지만, 전문가를 알아보는 안목이 부족한 바람에 고도의 전문가가 필요한 개혁 담당 장관들을 수시로 바꿨다. 
      
      '참여' 정부는 더 심하다. 대통령이 젊어지면서 세대 교체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나, 청와대의 84%나 차지한다는 386세대는 한국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념으로 모든 것을 재단한다. 이른바 코드 정치를 한다. 자연히 철학이 빈곤하고(칼 마르크스) 전문지식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아담 스미스). 행정의 달인인 정통 관료들은 보수세력이요 반개혁 세력이라고 쫓겨나거나 소외된다. 
      
      어느새 제대로 된 전문가는 얼씬도 않게 되었다. 알랑거리는 자들은 사이비 전문가요, 또 다른 정치꾼이다. 80년대, 90년대 접어들면서 이제 대학 교수도 전문가 집단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사회 곳곳에 놀라운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어디 가든 아는 체하다가는 혼이 나는 세상이 되었는데, 기껏해야 공부 안 하는 정치 교수를 전문가로 우대하여 모셨다가 마음에 안 들면 한 달도 안 되어 갈아치우는 일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미있는 현상은 곳곳에 전문가가 넘치다 보니까, 어떤 정책도 거센 반발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집단이기주의로 나타난다. 이걸 잘 조정하는 일이 바로 정치인데, 우리 비전문가 집단 정치인들은 뭘 모르니까 한 번은 이쪽 말 들어주고 한 번은 저쪽 말 들어주고 또 한 번은 이쪽, 또한 번은 저쪽 --그러다가 강력한 경찰력을 동원하고 엄포를 놓고 법을 엄격히 적용한다. 그러다 보니 개혁이란 개혁은 모조리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게 되었다. 개혁은 하나같이 거창한 명분만 남고 속은 텅 빈 석회 동굴이 되어 버렸다. 
      
      [전문가를 키우기에 부적절한 한국의 교육 제도]
      
      한국 사회는 전문가를 키우기에 아주 부적합하다. 우선 교육 제도가 그렇다. 고3까지 전과목을 다 잘해야 하는 체제이다. 6차 교육과정이다, 7차 교육과정이다, 요란을 떨지만 실지로 3년 동안 배우는 과목은 이전과 거의 똑같다. 오히려 늘어났다. 한 학기 당 10과목 이상 배워야 한다. 무엇보다 내신과 수능 때문에 어떤 과목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애꿎게 예체능과 인기 없는 제2외국어만 축소되었을 따름이다. 더불어 쓸데없는, 떠들고 놀아도 되는 과목이 우르르 늘었다. 
      
      [많은 외국의 교육제도는 전문가 키우기에 적절한 교육제도]
      
      어떤 나라도 대학 입시에서 4과목 이상 보는 데가 없다. 대신 선택의 폭이 넓다. 다양한 전문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문제도 어렵다. 미국은 영어와 수학 두 과목만 보는 SATⅠ이나 쉽지 선택인 SATⅡ만 해도 그 난이도가 만만찮다. 능력이 있는 학생은 대학 강좌를 미리 신청하여 시험을 본다. 통과하면 그 과목은 대학에서 그대로 인정받는다. 이런 시험에서 한국인 2세들이 미국 전체의 10등 안에 일등 포함하여 꼭 서너 명 끼인다. 환경만 조성되면 성취욕구가 유난히 강한 한국 학생들이 폭발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반증이다. 
      
      독일은 졸업시험(아비투어)이 곧 대학 시험인데, 졸업 전 2년 동안 네 과목만 선택해서 그야말로 코피 터지게 공부해서 시험을 본다. 난다 긴다하는 김나지움 졸업자도 3분의 1밖에 통과하지 못한다. 두 과목은 기본적인 문제이지만, 나머지 두 선택 과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렵다. 
      불란서의 입학 시험 바깔로레아 문제는 한국 학생은 거의 손을 못 댄다. 독서량과 작문 실력이 부족하여 요구하는 양의 3분의 1도 채우기 힘들다. 애국가나 쓸 수밖에 없다. 아니면 유행가 가사나 쓰든지. 
      영국은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세 과목만 배워서 시험 치는데 이 시험에는 대학 1학년 과정까지 나온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아예 교양과정이 없다. 따라서 대학은 3년 과정이다. 
      
      일본의 대학 본고사가 어렵다는 건 전세계적으로 악명 높고. 그러나 그들은 수학을 보더라도 대학마다 학과마다 범위가 다르다. 수학 전체 영역을 다 보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처럼 기가 질리게 하는 두툼한 '수학 정석' 같은 참고서가 없다. 미분 따로 적분 따로 수열 따로 단행본으로 나와 있다. 그 중에 몇 분야만 고르면 되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입시 전문가는 1년 동안 수학 문제 단 한 문제만 내고도 엄청난 연봉을 받는다. 수학의 노벨상이란 필드상을 일본인이 두 번이나 탄 게 절대 우연이 아니다. 
      
      흔히 한국을 상식인(generalist)의 나라로 일본인을 전문가(specialist)의 나라로 일컫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게 된 역사적 문화적 연유가 있지만, 이젠 불균형을 바로잡을 때가 차고 넘쳤다. 상식이 풍부한 교양인이 지닌 넓은 안목에 전문가가 지닌 깊고 날카로운 눈매를 합하면, 시야가 좁아 오로지 자기 분야밖에 모르는 일본을 능가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 될 것이다. 제발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고질병이 없어져야겠다. 
      
      '대통령 어르신'께서 말씀하시고 '장관 아이'가 눈을 반짝이면서 메모하는 풍토부터 바꿔야 한다. 정반대가 되어야 한다. 사계의 최고 '전문가'인 장관님이 천금같은 무게로 말씀하고 나라에서 제일 큰 종인 '상식인'인 대통령이 모르는 것은 질문을 거듭하면서 또박또박 메모하는 모습부터 보여 주어야 한다. 대통령은 한 마디하고 장관은 열 마디 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그는 역사상 길이 추앙 받을 대통령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 그 졸업생을 한 명이라도 데려가는 게 소원인 인도공과대학(I.I.T.)은 10만 명의 지원자 중에서 겨우 2천5백 명을 합격시키는데, 그 시험이 얼마나 어려우면 2년 동안은 하루 네 시간 이상을 잘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합격한 학생을 교수들이 기숙사에서 같이 자면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더 혹독하게 공부시킨다. 졸업시킬 때는 10억 인구에서 뽑아 그렇게 혹독하게 가르친 이런 천재들을 인정사정 없이 5백명이나 탈락시킨다. A는 한 강좌에서 오로지 한 명만 주는데, 그것은 '신의 영역'으로 통한다. 인도가 소프트웨어 세계 2위가 된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1위로 올라서는 게 시간 문제일 뿐이다. 
      
      [내신과 입시 합쳐서 12과목 이상을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
      
      한국만이 독특하다. 이전에는 실지로는 모든 학생이 10과목 이상을 보다가 2005학년도부터는 최대 8과목을 보지만, 이것도 너무 많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신과 입시가 따로 논다는 것이다. 내신 때문에 입시에 안 나오는 여러 과목을 3학년 때도 안 할 수 없다. 고3 때는 12과목 이상을 해야 한다. 만약 학원처럼 입시에 나오는 과목만 가르치면, 지엄한 교육부의 교과과정을 어긴 게 되어 사립학교일지라도 당장 교문에 빗장을 질러야 한다. 그에 앞서 입시 과목에 소외된 학과의 교사들이 교장실을 점거할 것이다. 지금은 구조적으로 재학생들의 성적이 잘 나올 수 없다. 고4란 말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하여튼 돌아서면 다 잊어버릴 지식을 누구나 다 배워야 한다. 공부가 지겨울 수밖에 없다. 적성과 소질에 맞게 가르쳐야 키울 수 있는 예비 전문가를 키울 도리가 없다. 자연히 개성이 강한 요즘 학생들이 입시와 관련 없는 수업에 떠들고 자는 게 일상사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평준화된 공립 학교에서. '악법도 법'이라며 잘못된 제도를 원칙대로 지키려면, 학생과 학부모와 동료교사와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순환보직은 전문 관료를 키울 수가 없다]
      
      정부에서는 이른바 순환보직 제도 때문에 전문가를 키우지 못한다. 한 분야에서 10년, 20년 근무해야 민간인 못지 않은 유능한 전문가로서의 관료가 되는 법인데, 2년이나 3년이면 많이 근무한다. 이유는 이권 때문이다. 어느 부서는 '눈먼 돈'이 생기고 어느 부서는 '눈 밝은 돈'이 눈을 부라리고 --이것이 유일한 기준이다. 공무원 숫자를 확 줄이고 봉급을 획기적으로 올려 주면 일시에 해결할 문제를 미적거리다 보니까, 아직도 국민과 기업을 상대로 돈 뜯어먹을 궁리나 하게 되고 이것을 잘 아는 위정자들은 공무원을 믿을 수 없어서 마구 자리를 바꾸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쁜 아이'들에게 좋은 자리를 안겨 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은 대학도 전문가 키우기엔 부적절]
      
      놀라운 일은 대학에서도 전문가가 크지 못한다. 보직 교수, 정치 교수가 판을 친다. 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업적을 쌓는 일은 거의 기적적인 일이다. 학과와 학과끼리 높은 담을 둘러치고 그 위에 철조망 치고 그것도 안심 안 되어 사금파리도 박아 놓고 남의 나라 책을 이리저리 짜집기해서 논문이랍시고 책이랍시고 자기도 모르는 어려운 전문 용어를 총동원하여 소리소문 없이 세상에 내놓는다. 누구도 읽지 않을 거니까 양만 채우면 된다. 
      
      대학생도 전문 지식 쌓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사회정의와 자주통일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다. 많은 대학생이 비분강개하면서 대학가의 술집, 당구장, 게임방, 비디오방, 여관에 출퇴근한다. 서점은 한산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가 전문 지식은 재학 중일 때는 학원에서 졸업 후에는 회사에서 배우고 익힌다. 
      
      제도적으로도 대학교의 시설이나 예산, 교수진에 비해 학생이 너무 많다. 우리보다 3배 잘 살고 우리보다 인구가 3배인 일본과 대학생수가 거의 비슷하다. 학생들의 전문 지식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이런 척박한 땅에서도 한국인은 위대하여 어느 분야에 가든지 귀신이 곡할 전문가가 한둘은 박혀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선진국에는 까마득히 못 미친다. 
      
      한국은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전문가를 우대하고 전문가를 키우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민족의 폭발적인 잠재력은 싸움과 욕설로 화려하게 꽃피다가 끝내 열매 맺지 못하고 허무하게 스러질 것이다. 
      
      [중국의 위정자는 하나같이 가공할 테크노크라트(technocrat)]
      
      중국의 정치가 아주 후진적으로 보이지만, 안으로 나라 전체가 희망에 넘쳐 있고 밖으로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이 중국을 최대의 경쟁국으로 인정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고 본다. 강택민, 주용기, 이붕, 호금도, 온가보, 오의 등 중국의 전현직 지도자들은 거의 대부분 이공대 출신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구 못지 않은 전문가여서 섣부른 정치논리는 철저히 배제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들은 말의 애국은 모르고 행동의 애국을 알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고 겉보다 속을 중시하는 법이다. 전문가는 과거보다 현재를 중시하고 현재보다 미래를 중시하는 법이다. 전문가는 잿밥에는 아예 관심 없고 염불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법이다. 나아가 염불보다 보시에 더 관심을 갖는 법이다. 그렇지 못한 전문가연하는 자들은 모조리 사이비 전문가이다. 유명한 사람들 중에 한국에는 유난히 이런 자가 많다.
     그들은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이거나 권력과 부를 탐하는 정치꾼이나 약장수다.
    양의 탈을 쓴 늑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