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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량등화(新凉燈火).
"서늘한 가을은 (등불 밑에서) 책을 읽기에 더 없이 좋은 날씨"라는 뜻의 사자성어다.
오래전 송나라 시대 주송(朱松)의 글귀에 나오는 말이다.그런데 [등화] 대신 [청음](聽音)이란 단어를 넣어 보면 어떨까?
신량청음(新凉聽音).
가을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재즈]를 들으면서 떠오른 신조어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폼텍 웍스홀에선 가을 향기를 가득 머금은 재즈의 향연이 펼쳐졌다.
이름하여 <재즈 웍스>(JAZZ WORKS).
매달 첫째 주 금요일에 선보이는 <재즈 웍스> 콘서트는,
[재즈의 대중화]를 기치로 내걸고 재즈 전문 공연 기획사 <플러스히치>와
프린터 라벨 용지 회사 <한국폼텍㈜>이 공동 기획-진행하고 있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류석원>,
<안녕하신가영>,
<꽃잠프로젝트>가 오프닝 무대를 장식한 바 있다.
이날 두 번째 <재즈 웍스> 공연을 수놓은 뮤지션은 재즈피아니스트 이선지와 전용준.지난 6월 <오디오가이>를 통해
네 번째 앨범 <국경의 밤>(the night of the border)을 발매한 이선지는,
탁월한 작곡 실력을 겸비한 재즈피아니스트로 정평이 나 있다.2010년 천재기타리스트 박주원에게 발탁되면서 프로 무대에 뛰어든 전용준은,
재즈와 대중음악을 넘나드는 유연성을 기반으로 최고의 레코딩 세션으로 활동 중인 아티스트.
그 역시 지난 5월 <돈 바더 미 애니모어>(Don’t Bother Me Anymore)를 발매,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노선을 걷고 있다.
이날 100석 규모의 공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에게 자신들의 신보를 들려준 이선지와 전용준은,
편협되지 않은 대중적인 코드로 객석의 귀를 사로 잡았다.
각각 독자적인 쿼텟(quartet)을 꾸려 공연을 펼친 이들은,
정열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운율로 재즈 공연의 진수를 선보였다는 평. -
이선지의 4번째 리더작 <국경의 밤>은,
다양한 경계 선상에서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인간보편의 심리를 회화적인 색채로 그려낸 자작곡 8곡을 담고 있다.
이 앨범에서 이선지는,
밴드적인 색채가 강한, [구성력 있는] 앙상블을 들려주고 있는데,
피아니스트·작곡가·프로듀서로서의 역량까지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기타의 합류가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느낌과 공간감이 사운드의 변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락 음악의 색채가 짙은 곡 dive와 vibe를 비롯해,
매우 자유로운 앙상블을 들려주는 you float, you weave, dark side of the moon 등의 수록곡들은,
전체의 트랙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흘러가는 [회화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팝 음악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컨셉트 형식]의 음반이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에는 여러 연주자의 사이드맨(Side man)으로 활동 중인 색소폰 주자 김성준과,
메인스트림에서부터 월드뮤직, 포크, 사이키델릭, 록 등의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하는 기타리스트 오진원,
많은 국내외 뮤지션들과 협연한 바 있는 베이시스트 김인영,
섬세하고 폭이 큰 다이나믹을 지녀 마치 오케스트라 퍼큐션 전부를 책임진 듯한 드러머 김윤태가 참여했다. -
패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젊은 피아니스트 전용준의 <돈 바더 미 애니모어>에는,
장르를 넘나드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유명한 드러머 김영진과,
타고난 음감과 넘치는 그루브감이 일품인 베이시스트 김대호 등이 합류해,
앨범의 품격을 높였다.
이외에도 고등학교 1년 나이에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 음악과에 최연소로 입학한 [촉망받는 연주자] 송하철이,
섹소폰 연주로 참여,
앨범을 감상하는데 중요한 감상 포인트가 돼 주고 있다.
피아니스트 전용준은 서울예술대학 작곡전공 재학시절,
작곡보다는 연주가 자신의 적성에 더 맞음을 깨닫고 끊임없는 연단의 길을 걸어온 인물.
학교 기말작품 발표 공연에서,
기타리스트 박주원에게 발탁돼 <박주원 밴드>의 일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기성 무대에 뛰어든 케이스다.
이후 NY물고기, 이부영, 허소영, 장효석, 고찬용, 김현철 등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의 사이드맨과 세션맨으로 활동하던 그는,
지난해 신인 뮤지션 지원 프로그램 CJ Tune up에 출전한 것을 계기로,
본인이 직접 프로듀스한 앨범 <돈 바더 미 애니모어>를 내기에 이르렀다.
평소 "장르를 떠나서, 음악 자체가 가장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그의 1집 앨범은,
연주 면에서 재즈에 대한 정통적인 어법으로 가득 차있으면서도,
동시에 팝-락은 물론,
목회 활동을 하는 부친의 영향으로 어릴적부터 접했던 가스펠의 정서를 부정하지 않는다.
앨범 2번 수록곡 Tower of Babel에 이런 점이 도드라진다.앨범 4번 수록곡 When You Fall in Love는,
베이시스트 김대호의 묵직하면서도 개성적인 주제 멜로디 연주가 매력적이다.앨범 7번 수록곡 Deserted house는,
연주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로 음산한 볼레로스타일의 곡.8번 수록곡 BF, Where are you?는,
제목처럼 그의 유난히 짧은 새끼손가락(Baby Finger)이 어디갔느냐고 부르짖는 듯한,
앨범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라이브 느낌이 살아있는 곡이다.<블루 노트>(Blue Note)는,
뉴욕 밀라노 동경 등 세계적 도시에 있는 재즈 클럽.
라이브 재즈의 성지나 다름 없다.
지난 2004년 3월 서울에도 지점을 열었으나 바로 문을 닫았다.
한국재즈의 척박한 현주소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였다.
세계적 재즈클럽의 한국진츨 실패는 청중의 몫이지 연주자의 책임은 아니다.이선지 전용준 등 젊은 한국 재즈의 역량은,
<블루 노트>가 서울에 다시 들어와도 충분할 정도로 성장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사진 = 뉴데일리 D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