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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2014년 가을입니다. 남과 북의 가을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풍년에 대한 백성들의 기원은 조금 차이가 있어 보이네요. 내가 살았던 북한에서는 어떻게든 농사가 잘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지만 쌀이 남아도는 이곳 남한에서는 별로 그렇지 않죠.
어느 날 아침, 제가 출석하는 교회의 장로님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림 집사님! 시간이 되면 오늘 오후에 금요노동 가요” 하는 거 있죠. 피식 웃었습니다. 교회에서 유일한 탈북민인 저한데서 북한바로알기 학습을 많이 받는 교인들이죠.
장로님은 서울교외에 2천 평 정도의 밭을 갖고 있으며 여기서 생긴 농작물을 생활이 어려운 교인들과 교회식당에 공급합니다. 제가 수년 전 여름의 어느 날, 그 곳에서 구수한 흙냄새 속에 땀 흘려 일하며 ‘금요노동’을 하는 기분이라고 했죠.
‘금요로동’이란 지난 1980년대 초 김정일이 “간부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근로현장에서 일을 해야 업무능률도 높일 수 있다”는 지시에 의해 당 및 국가 간부들과 사무원(공무원)들이 매주 금요일마다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현장노동입니다.
제가 살았던 평양에서는 중앙당과 정무원(내각본부), 인민무력부와 사회안전부, 국가보위부 등 이른바 ‘특수기관’이라 불리는 권력기관들은 자기 기관소속 부업지(평양시 주변에 별도로 갖고 있는 돼지사육농장)로 금요노동을 갑니다.
지난 1985년부터 4년간 제가 근무했던 철도안전국의 부업지는 평양시 력포구역 석정리에 있었고, 매주 금요일이면 우리 노동자들도 같이 농장에 나갔지요. (간부들은 저들이 편하게 일하려고 일부러 우리를 데리고 가죠.)
국장과 정치부장은 승용차를, 과장급 간부들은 소형버스를, 지도원(일반직원)과 노동자들은 화물차를 타고 현장에 나갑니다. 농장원, 지도원, 노동자들은 부지런히 일하고, 간부들은 빈둥거리다가 식사시간이 되면 제일 먼저 식탁에 앉죠.
이때 치사한 풍경이 생깁니다. 간부들의 국그릇에 돼지고기가 수북이 담기고 우리는 그 절반만한 량이죠. 그래도 명절이 아니고 평일에 고깃국 먹어볼 수 있는 날은 바로 농장에 나오는 금요일이어서 은근히 기다립니다. 이제는 추억에 남는 지난날이네요.
제가 평양의 철도안전국 시절 상급간부가 타던 승용차보다 더 멋지고 고급스러운 자가용을 타고 교회 장로님 농장에 나왔습니다. 환한 얼굴로 저를 맞는 장로님이 “노동당 간부동지가 오셨습니다” 하자 교인들은 미소로 반기네요.
보기만 해도 즐거운 곡식이 무르익은 푸른 들판에서 10여 명의 교인들과 함께 잘 익은 고추며 호박, 고구마 등을 캤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흙을 밟을 기회도 적지만 이런 농작물을 손으로 만지는 것이 신기할 만큼 행복한 우리네 생활이죠.
어느 덧 ‘새참시간’이라며 장로님이 김밥, 떡, 치킨, 아이스크림, 커피 등을 꺼내놓습니다. 일상에서 늘 접하는 음식이지만 왼지 농촌에서 맛보니 별미네요.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 최고라는 조상들의 말씀이 틀리지 않지요.
성실히 땀 흘려 가꾼, 신이 주신 수확물을 정리하며 오는 추수감사절을 맞아 교회제단에 올릴 것을 먼저 고르시는 장로님의 모습에서 살짝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벌써 저에게 수십 번도 넘게 했던 가슴 찡한 말씀을 또 하십니다.
“림 집사님! 우리 대한민국은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셔서 이렇게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어요. 북녘의 동포들보다 일을 별로 하지 않았지만 이 땅에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을 경애하고 찬양하며 기도했기 때문에 이런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지요. 우리 신앙인들이 이걸 잊으면 안 되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해요.”
“아멘!”
- 림 일 작가 (서울 OO감리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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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수산성(남한의 해양수산부) 일군(직원)들이 ‘금요노동’으로 평양시 주변의 농촌을 찾아 토지정리 및 흙 갈이 작업을 하는 모습이다. ‘금요노동’은 일종의 강제노동이나 마찬가지며 간부들과 사무원(공무원)들이 불온생각(정권에 대한 불만불평 등)을 못하도록 하기 위한 ‘뺑뺑이’(쉴 새 없이 돌리는 훈련)라고 보면 정확하다. = 림 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