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관련법안 20개월 넘게 방치…軍 "탈북 국군 포로 자녀‥위로금 외 방법 없어"
  • <편집자주>

    1948년 8월15일 건국한 대한민국은 태어난 지 2년만에 소련의 지시를 받은 북한의 공격을 받았다. 1950년 6월25일 남침을 강행한 북한은 대한민국 육군 6만명 이상을 포로로 잡아갔고 이들을 북에 남도록 강요했다. 북한에 남은 국군포로들은 평생을 노역에 시달리면서 죽어갔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 살던 국군포로 80 여명이 탈북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을 국가유공자로 받아들이며 생활지원금을 제공했다. 또 국군포로가 북한에서 낳은 자녀들도 2000년대 중반 대거 탈북했고 98세대 302명에 달한다. 정부는 이들에게 지원금을 줄 법령이 없어 특별법을 제정하고 국군포로 자녀들에게도 4,79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탈북한 국군포로 자녀들의 한국 적응은 쉽지가 않다. 평생을 북한에서 최하층 계급에서 살던 이들은 교육이라는 것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또 이들은 북한에서 노예 취급을 받았기에 일반 탈북자와의 문화적 괴리도 존재하기에 탈북자 사회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물론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자 사회에서 조차 외면받고 있는 이들에게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 황진하 새누리당 의원(68)은 지난해 1월 탈북한 국군포로 자녀들을 위해 별도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이라는 암초에 걸린 국회는 어떠한 결정도 미루고 이 법안을 1년 이상 계류시키고 있다. 

    목숨을 걸고 탈북한 국군포로 자녀들은 1년이란 긴 시간을 침묵으로 기다렸고 지난 7월21일부터 국방부 서문 앞에서 절규에 가까운 외침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의 시위 현장을 보도하는데 바쁜 대한민국의 언론들은 이들의 외로운 절규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 ▲ (사)6·25국군포로가족회(회장 한영복)는 지난 7월21일부터 국방부 서문 앞에서 매일 시위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6·25남침전쟁에서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의 2세들로 대부분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탈북했다.ⓒ(사)6·25국군포로가족회
    ▲ (사)6·25국군포로가족회(회장 한영복)는 지난 7월21일부터 국방부 서문 앞에서 매일 시위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6·25남침전쟁에서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의 2세들로 대부분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탈북했다.ⓒ(사)6·25국군포로가족회


    #1.

    한진영씨는 1931년 강원도 삼척에서 출생해 18살이 되던 1949년 국군 8사단 사병으로 입대했다. 한진영씨는 1950년 6월25일 북의 남침으로 일어난 전쟁에서 북한군의 포로가 됐다. 한진영씨는 전쟁이 끝난 1953년부터 평생을 함경북도 아오지 탄광에서 노역을 했다. 

    공산당에 맞서 싸웠다는 이유로 낙인이 찍힌 한진영씨는 평생 북한의 최하층에서 삶을 살았다. 북에서 낳은 자신의 아들 한영복씨(65년생)도 대를 이어 탄광에서 일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 부자는 출신성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북한 사회에서 배척을 당했다.  

    2003년 한진영씨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한영복씨는 2005년 탈북을 결심한다. 노예 생활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의 고향으로 온 것이다.  

    #2.

    1998년 4월, 국방부는 6·25남침전쟁에서 행방불명된 국군을 일괄 전사자로 처리했다. 전사날짜는 임무수행을 하던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6·25남침전쟁 기간으로 정했다. 

    한영복씨의 아버지 한진영씨의 서류도 '행방불명'에서 '전사자'로 변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한진영씨를 국가유공자로 선정했다. 2005년 대한민국에 도착한 한영복씨는 2007년 국방부로부터 4,790만원을 받았다. 이는 국방부에서 국군포로 자녀에게 주는 위로금이었다. 

    당시 법적으로 살아 돌아온 국군포로나 억류지역(북한)에서 태어난 국군포로의 자녀에 대해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다. 국방부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해 살아 돌아온 국군포로에게는 등급에 따라 1~6억원 사이의 생활정착금을 지원했고 억류지역에서 태어난 국군포로의 자녀에게는 4,790만원을 지급했다.  

    #3.

    2014년 7월21일 한영복씨는 국방부 앞에서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한영복씨가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국가유공자 아버지를 뒀지만 유공자 자녀들이 국가보훈처에서 받는 혜택을 받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를 위해 일하다 숨진 국가유공자의 배우자와 자녀는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을 진다. 배우자의 경우는 사망할 때가지 자녀의 경우는 0~20세까지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활지원금을 지급한다.

    탈북자인 한영복씨는 아버지 한진영씨가 국가유공자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그리고 한영복씨가 한진영씨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명확하다. 하지만 국가보훈처에서 국가유공자 자녀에게 주는 생활지원금을 받을 수는 없다. 

    이유는 40세가 넘어서 탈북한 한영복씨는 국가유공자 자녀가 받을 수 있는 생활지원금 대상 나이가 아니다. 또 국방부가 정리한 서류에 따르면 1950년부터 1953년 사이에 전사한 것으로 된 아버지 한진영씨가 1965년에 한영복씨를 낳았다는 것도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