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재판부 판단, 형평에 반해”
  • ▲ '북한 보위부 직파간첩 사건' 피고인 홍모씨 무죄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간첩 사건으로 기소된 홍모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이날 오전 석방된 홍모씨가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오른쪽은 홍씨를 변호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장경욱 변호사.ⓒ 사진 연합뉴스
    ▲ '북한 보위부 직파간첩 사건' 피고인 홍모씨 무죄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간첩 사건으로 기소된 홍모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이날 오전 석방된 홍모씨가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오른쪽은 홍씨를 변호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장경욱 변호사.ⓒ 사진 연합뉴스

    수사기관의 조사과정에서 모두 20차례에 걸쳐, 자신이 북한 보위사령부로부터 직파된 간첩이란 사실을 자백한 피고인에 대해, 법원이 ‘미란다 원칙 위반’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사건과 관련돼, 이를 비판하는 법조계의 반론이 나왔다.

    이른바 ‘북한 보위부 직파간첩 사건’이라 불리는 이번 사건에서, 1심 법원은 “수사기관이 국내 절차법 지식을 모르는 피고인에게 변호인 조력권과 진술거부권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의자신문조서 자체를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로 보고,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한발 더 나아가 재판부는, 피고인의 자필 진술서와, 반성문이 “외부 압력에 의해 허위로 작성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들 직접증거의 증거능력도 부인했다.

    특히 수사과정에서 자신이 ‘직파간첩’임을 자백한 피고인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의 조력을 받으면서 태도를 완전히 바꾼 것으로 알려져,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 '北보위부 직파간첩 사건' 무죄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열린 '보위사령부 직파간첩 조작사건 1심 선고에 대한 변호인단 기자회견'에서 장경욱 변호사(왼쪽에서 두번째)가 판결요지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에서 세번째는 석방된 홍모씨.ⓒ 사진 연합뉴스
    ▲ '北보위부 직파간첩 사건' 무죄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열린 '보위사령부 직파간첩 조작사건 1심 선고에 대한 변호인단 기자회견'에서 장경욱 변호사(왼쪽에서 두번째)가 판결요지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에서 세번째는 석방된 홍모씨.ⓒ 사진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헌변)은 23일 성명을 내고, 1심 재판부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했다.

    먼저 헌변은, 민변 소속 변호인들이 피고인에 대한 변론을 맡기 전에도 국선변호인이 선임돼 있었고, 피고인이 절차법상의 흠결을 문제 삼지 않았다고 밝혔다.

    헌변은, 국정원과 검찰 등 공안수사기관이 ‘미란다 원칙’ 고지를 소홀히 했다는 재판부 판시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공판기록을 보면, 담당 검사는 1회 피의자신문을 진행하면서 진술거부권을 고지한 사실이 영상 녹화를 통해 드러난다.

    다만, 담당 검사는 변호인조력권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해당 피고인이 “지루하다, 그만 갑시다”라고 말하자, 이후 고지내용을 생략했다.

    이런 사실 역시 영상녹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진실거부 및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로 대표되는 ‘미란다 원칙’ 고지를 해태했기 때문에, 해당 피고인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헌변의 설명이다.

    조서를 보면, 피고인이 신문조서 초안을 읽어 본 뒤 수십 차례에 걸쳐 자신의 답변 내용 수정을 요청했고, 정정된 신문조서에 서명날인 및 간인을 한 사실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런 사실은, 국정원이나 검찰이 처음부터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능동적인 요구’에 의해 그 과정을 생략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정이 이렇다면, 검찰의 ‘진술거부권 고지’ 사실과, 그 이후 피고인 스스로의 요청에 의한 ‘변호인조력권 설명과정 생략’ 사실을 무시한 재판부의 판단은, ‘심리미진’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았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추론을 이유로, 피고인 본인이 직접 작성해 법원해 제출한 진술서와 반성문의 증거능력을 부정한 재판부의 판단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헌변은 이런 문제점을 예로 들면서, 1심 재판부의 판단에 강한 의문을 나타냈다.

    헌변은 재판부의 석연치 않은 태도가 “내국인보다 간첩이나 외국인을 더 두텁게 보호한다”는 비난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변은 “피고인이 북한 직파간첩 혐의를 받은 탈북자라고 해서, 내국인보다 법률상 우대를 받는 것은 형평의 원칙이 반한다”고 우려했다.

    재판부의 형평성을 잃은 판결이 ‘사법불신’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헌변이 문제를 제기한 [북한 직파간첩 무죄판결]은 지난달 5일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김우수 부장판사)는 지난달 5일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간첩·특수잠입 혐의로 구속기소된 홍모(41)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그를 석방했다.

    2012년 5월 북한 보위부 공작원으로 선발된 홍씨는, 이듬해 6월 상부의 지령을 받고 북한·중국 접경지대에서 탈북 알선책(브로커)을 유인·납치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됐다.

    홍씨는 지난해 8월, 자신의 신분을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뒤, 탈북자들의 동향을 탐지한 혐의도 받고 있다.

    홍씨를 수사한 국정원과 검찰은, 범죄사실을 시인한 피의자신문조서, 홍씨의 자필 진술서와 반성문 등 직접증거를 유죄의 입증자료로 제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사, 홍씨가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작성한 자필 진술서, 홍씨가 기소 뒤 작성해 법원에 제출한 반성문 등, 검찰이 제시한 직접증거의 증거능력을 모두 부인했다.

    재판부는 “홍씨는 (국정원)합신센터 조사 당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수사를 받는 사실상 피의자 지위에 있었다”며, “그럼에도 홍씨에게 진술거부권, 변호인조력권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으므로 진술서 등은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홍씨의 자필 진술서와 반성문도 외부의 압박 등에 의해 허위로 작성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탈북자인 피고인이 국내 절차법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변호인 조력 없이 조사를 받으면서 심리적 불안을 느끼고 위축됐을 것”이라며 “틱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진술서가 작성됐다고 보기 어려워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무죄선고에 검찰은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검찰은 선고 직후 이례적으로 기자 브리핑을 열어, 재판부 무죄선고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 사건 수사를 지휘한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법원의 형식 논리에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공안사건 재판에서) 법원이 지나친 형식 논리를 기준으로 증거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오늘 판결이 그렇다고 본다.

    법원의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

       -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


    ‘형식적 요건의 충족 여부’에 목을 매는 법원의 행태가 ‘실체적 진실 발견’이란 사법제도의 근본목적을 훼손한다는 비판이다.

    검찰은 1심 재판부의 무죄판결이 나온 다음날,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서울고법에 즉각 항소했다.

    다음은 23일 헌변이 발표한 성명 전문.


    탈북자에 대한 미란다원칙의 적용에 대하여


    1. 간첩사건에 대한 무죄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이 2014. 9. 5. 간첩사건에서 증거법을 이유로 무죄판결을 선고한 일로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검사가 작성한 피고인의 자백조서가 미란다원칙을 위배했고, 피고인이 구치소에서 작성한 반성문의 신빙성이 없다하여 그 증거능력을 배척했다.

    피고인은 국정원에서 12차례, 검찰에서 8회의 신문을 받으면서 한 번도 빠짐없이 자신이 북한에서 직파한 간첩이라는 사실을 자백했다고 한다.

    또 그는 같은 취지의 반성문, 진술서 등을 자필로 작성하여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 모든 증거를 배척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수사단계에서는 국선변호인이 선임되어 있었고, 피고인은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이나 효력에 대하여 전혀 이의를 하지 않다가 기소 후 사선변호인을 선임한 후부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모든 증거의 효력을 부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2. 검찰의 피의자신문 과정

    ① 미란다원칙이라 함은 수사기관은 피의자신문을 개시하기 전에 먼저 진술거부권이 있다는 사실, 그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 진술을 거부하지 않고 한 진술내용은 추후 유죄판결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 신문을 받을 때 변호인을 참여케 하여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등을 고지해야 하고(형사소송법 제244조의3), 이 절차를 위배한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하여는 증거능력을 배제한다는 형사소송법상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피의자로부터 무리하게 자백을 받기 위하여 자행되는 고문을 방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② 이 사건 피고인은 국정원에서 여러 차례 피의자신문을 받아 미란다원칙의 내용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는 검사의 제1회 피의자신문에서도 검사로부터 진술거부권을 고지받고 거부권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답변했으며, 또 검사로부터 변호인 선임권을 고지받기 시작하자 그냥 진행하자는 취지의 답변을 하여, 위 원칙 중 그 밖의 사항에 관한 고지와 답변절차를 생략한 채 전체적인 피의자신문절차를 마쳤다.

    조서 첫머리의 미란다원칙 고지에 관한 부분 중 잔여부분은 조서작성 완료 후에 피의자가 기재했음이 영상녹화되어 있다고 한다.

    위 피고인은 위 조서작성 후 이를 제시받고 그 중 자신의 답변내용을 수 십 차례 정정한 후 서명날인과 간인을 하였음이 조서 자체에도 나타나 있다.

    ③ 검사는 제2회 피의자신문 때부터는 영상녹화를 하지 않았고, 위와 같은 이유로 미란다 원칙을 구두로 고지를 하지 않으며, 조서 작성한 후에 그 첫머리의 미란다원칙 고지에 관한 부분에 피의자의 답변내용을 기재하였다고 한다.


    3. 법원의 무죄이유

    ① 제1심 법원은 위와 같이 미란다 원칙의 고지가 중도에서 중단되어 완벽하지 않음을 들어서 검사의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배제했고, 제2회 이후의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서는 그 기재의 피고인 진술내용이 피고인의 실제 진술내용대로 작성된 것임을 인정할 영상녹화물 등 증거가 없어서 임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역시 증거능력을 배척했다.

    ② 또 피고인이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 등은 그가 탈북자로서 국내법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데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마저 실질적으로 보장받지 못하여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여지므로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작성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역시 증거능력을 배척했다.

    ③ 제1심 법원은 이런 자료들을 전부 배척한 후 그 밖의 증거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4. 판결이유에 대한 의문

    ① 인권보장을 위하여 제정한 형사소송법 상의 원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는 판결이유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란다 원칙의 적용에 관하여는 인권보장이라는 입법취지를 고려하여 융통성 있게 적용할 수 있다고 해석할지 또는 눈을 감고 기계적으로 적용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는 것이다.

    ② 미란다원칙은 피의자의 능동적 제의로도 적용을 제한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권리라고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 사건에서 수사검사가 제1회 피의자신문을 시작하기 전에 위와 같이 미란다원칙 중 일부의 고지를 중단한 것은 피의자의 능동적인 요구에 따른 것이었음이 영상녹화물로 증명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위 중단 조치가 피의자의 방어권을 침해했다고 기계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의문이 제기된다.

    ③ 또 검사의 제2회부터 제8회까지의 피의자신문조서가 영상녹화물이 없다는 이유로 일률적으로 임의성을 부인하는 것도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와 다른 기준을 적용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이번 판결은 영상녹화를 하지 아니한 모든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배제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상급심의 판단이 주목된다.

    더구나 피고인이 자신의 진술내용을 일일이 검토하여 조서를 수정한 흔적이 명백한 것인데도 진술과 다른 조서가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결이유는 이해하기 어렵다.

    피고인이 자신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임의성을 부인할 경우 통상적으로는 수사에 참여한 사무관의 증언으로 임의성을 인정하고 있다.

    항소심에서 피고인이 임의성 있는 자백을 했고 피의자신문조서에는 그 때마다 피의자의 진술내용을 그대로 기재했다는 참여사무관의 증언을 받더라도 증거판단을 위와 같이 엄격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 증언을 믿을지 여부가 불투명한 것이다.

    ④ 나아가 탈북자가 구치소에서 변호인의 조력이나 참여가 없는 상태에서 작성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피고인이 스스로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한 반성문, 진술서 등의 임의성을 부인할 사유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항소심에서는 구치소의 영상녹화물 또는 교도관의 증언을 통하여 피고인이 어떤 분위기 하에서 이들 서류를 적성한 것인지를 밝히는 것도 그 진술서 등의 특신상태를 증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⑤ 혹자는 이러한 판결이유는 결과적으로 형사소송법 적용상 국내인보다 간첩이나 외국인을 더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피고인이 북한의 직파간첩 혐의를 받는 탈북자라 하여 내국인 보다 법률상 우대한다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2014. 10. 23.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회장  이  종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