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터운 관람층, 좌파의 도발, 정치색 배제, 수준급 연출력


  • 격동의 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아온 우리네 아버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국제시장'이 대망의 천만 고지를 넘어섰다. 개봉 28일만인 13일, 한국 영화로는 11번째로 누적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하며 충무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국제시장'은 지금도 일일 평균 15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끌어모으며 식을줄 모르는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국제시장'의 다음 목표는 역대 최다 관객 기록(1,761만 1,849명)을 보유 중인 '명량'을 뛰어넘는 것. 영화계 관계자들은 '변호인(누적 1,137만 5,954명)'보다 5일, '괴물(누적 1,091만 7,221명)' '7번방의 선물(누적 1,281만 1,213명)'보다 4일 빨리 천만 관객을 돌파한 만큼, 현재로선 '명량'이 세운 전인미답의 기록도 넘어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사실 개봉 초기만 해도 '국제시장'의 흥행을 점치는 관계자들은 많지 않았다. 산업화의 주역인 아버지 세대를 오점(汚點)으로 여기는 이들이 '문화 권력'을 굳게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 아버지에 대한 헌사(獻詞)로 점철된 영화가 자칫 대중으로 하여금 '반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 ◆ 문화계 침투한 좌파, '저항문화' 확산 노력

    "시장경제 시스템은 자본과 경찰이 아니라 제도권이 이끄는 문화에 의해 유지된다"는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주장을 역으로 이용한 좌파 세력은 자신들의 '저항문화'를 들고 시장경제 시스템에 침투하는 전략을 썼다. 실제로 80년대부터 '노동 운동'을 이끌던 이들이 문화계에 스며들면서 '문화 콘텐츠'와 '시위운동'이 상호 영향을 주는 관계로 발전했고, 이는 '효순-미선 촛불사태'나 '광우병 파동' 같은 현대판 레지스탕스 투쟁으로 이어졌다.

    이같은 자들이 '문화 권력'을 쥐고 있으니 제대로 된 콘텐츠가 나올리 만무했다. 특히 지난 십여년간 국내 영화계에선 과거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기득권층에 대항하는 반골(反骨) 기질의 영화들이 호황을 누려왔다. '변호인' '더 테러 라이브' '부당거래' '아저씨' '살인의 추억' '화려한 휴가' 등 관객몰이에 성공한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대개 경·검찰과 군인은 부패한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대중은 이들에게 착취를 당하는 피지배층으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기틀을 세우고 산업화를 완성한 '이승만'과 '박정희'란 존재는 타도의 대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자연히 '앞선 세대' 모두는 이상적인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무너뜨려야 할 장애물일 뿐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 세대'에 감사를 표하는 영화라니,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좌편향 된 문화계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업계 실무자들 입장에선, 대놓고 '산업화 세대'를 찬양한 '국제시장'은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이같은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개봉 첫날부터 역대 휴먼 드라마 사상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한 '국제시장'은 개봉 4일 만에 100만을 돌파하고, 8일 만에 200만, 15일 만에 500만 고지를 넘어서는 등 가파른 흥행세를 보이며 영화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 ◆ 좌파 도발로 보수층 결집..흥행탄력 가져와

    '국제시장'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크게 4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국제시장'은 전 세대 관객을 타깃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어느 영화보다도 관람층이 두텁다는 장점이 있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영화라 하더라도 남녀노소 모두에게 고른 지지를 받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국제시장'은 한 남자(덕수)의 일생을 그리면서 각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냈고, 반려자 '영자'의 삶 또한 비중있게 다룸으로써 최근 개봉작 중 가장 폭넓은 관람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장면도 없어 근래 보기드문 '건전 영화'라는 점도 다양한 연령대를 스크린으로 불러 들인 요소 중 하나.

    둘째는 흥행 열기에 기름을 끼얹은 좌파 평론가들의 '도발'을 빼놓을 수 없다. 국내 영화 사상 최초로 '흥남철수작전' '파독광부' '베트남 참전' '이산가족찾기' 등 현대사를 수놓은 굴곡진 사건들을 함께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국제시장'은 개봉 초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오프닝부터 각종 기록을 경신하며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흥행몰이를 한 '국제시장'은 앞서 천만 관객을 달성한 '7번방의 선물'이나 '광해, 왕이 된 남자' 등과 비교회자 될 정도였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변호인'에게는 조금씩 뒤쳐지는 양상을 보였다.



  • '국제시장'이 아무리 인기가 좋아도 개봉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어선 '변호인'의 초반 돌풍에는 다소 못 미쳤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허지웅'이라는 영화평론가가 등장, 관람객 전체를 비꼬는 발언을 내뱉는 바람에 '국제시장'에 급격한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매스컴이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흥행열기가 급등, '변호인'보다 빠른 시기에 천만 관객을 달성할 수 있었다. 좌파들의 흠집내기는 결과적으로 보수층의 결집을 이끌어냈고, '국제시장'의 관람율을 높이는 기폭제가 됐다. 순진무구한 영화를 억지성 계급 논리로 파헤친 평론가들의 발언이야말로 '국제시장'의 천만 돌파를 가능케 한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다.



  • 셋째는 '국제시장'이 정치색을 철저히 배제한 영화라는 점이다. 이 영화가 관객들의 고른 지지를 얻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혹자는 '국제시장'을 박정희 정권을 미화한 영화라고 힐난한다. 하지만 이는 억지논리일 뿐 사실이 아니다. '국제시장'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두둔하거나 치적을 긍정적으로 기술한 대목이 단 한 군데도 나오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이 등장한 것도 이승만 대통령의 라디오 육성 연설 정도가 고작이다. 남녀 주인공이 말다툼 중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저도 모르게 일어서서 경례를 하는 장면이나 베트남 현지에서 아이들을 구하는 장면, 영화 초반 피란민들을 살리기 위해 과감히 군수물자를 바다에 버리는 미군 장성의 모습은 특정 계층이나 시대를 미화한 것인 아닌, 동시대를 극명히 드러내는 상징으로 쓰였을 뿐이었다.



  • 영화를 감상한 허지웅은 국제시장을 아버지 세대의 희생을 강조하는 '반동 영화'로 규정했다. 그러나 '국제시장'은 세대간 편가르기를 하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 속 아버지는 "힘든 일을 자식세대가 아닌 우리가 겪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로 '절대적인' 부성애를 드러내고 있다. 이를 '우리가 이렇게 희생했기 때문에 너희들이 이만큼 잘 살게 됐다'고 가르치는 기성세대의 오만이나 고압적 태도 쯤으로 여긴다면 심각한 오산이다.

    아버지 덕수는 속내를 몰라주는 자식들을 원망하거나 세상에 고함을 외치는 대신 스스로 눈물을 삼키는 연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언제 어디서나 '가족'과 '핏줄'을 최우선시하는 덕수의 진심이 읽혀지는 대목. 이들에게 고명하신 평론가들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라"며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댔다. 정치적인 수사를 사용한 쪽은 '국제시장'이 아니라, '국제시장'의 흥행열기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좌파 일동이다. 문화계 주류를 '좌파'가 선점하고 있다고는 하나, 관객 대다수가 여기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국제시장'이 거둔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 넷째는 완벽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열연, 수준급의 연출력 덕분이다. 주인공 덕수는 마치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대한민국의 굵직한 역사의 현장마다 나타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을 겪는다. 흥남철수작전을 통해 목숨을 부지한 주인공이 파독 광부가 되고, 베트남 현지에서 건설기술자로 활약을 한다. 나중엔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에 나가 생방송 중 어릴 적 흥남부두에서 잃어버린 '막순이'를 찾게 된다. 대형 사건들이 굴비 엮듯이 줄줄이 터지는 대목에선 작위적인 설정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내용 전개상 큰 무리가 없다.



  • 특히 황정민과 김윤진, 오달수의 명연기는 영화의 '사실감'을 높이는 주된 요소다. 수십년을 넘나드는 설정 속에서도 각 시대에 맞는 절묘한 연기를 선보여, 보는 이로 하여금 캐릭터에 쏙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발휘하고 있다. 코믹과 정극을 오가는 능수능란한 연기톤은 영화의 긴장감을 밀고 당기는 역할을 한다.

    영화 속에서 각각 흥남철수, 서독의 탄광, 과거 국제시장, 연령대별 배우들의 외모를 재현한 현란한 '특수 효과'도 관람객들의 이목을 끄는 요소로 작용했다. 40대 배우들의 '20대 외모'를 표현하기 위해 한국 영화 최초로 '에이지 리덕션' 기술이 사용됐고, 국내외 4개 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 공동으로 컴퓨터 그래픽(CG) 작업을 진행하면서 실사를 방불케 하는 완성도 높은 장면들이 탄생했다.

    [사진 및 자료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지금 전쟁나면 총들고 뛰어나갈 용기 있으신가요?"


    허지웅 曰, 아버지들은 무릎꿇고 국제시장 봐라?!

    허지웅, 국제시장 흥행열기..토악질 나온다? 망언 파문


    최종편집 2014.12.29 조광형 기자




  • 최근 영화팬 사이에 '허지웅'이라는 이름 석자가 다시금 화제선상에 오르내리는 분위기다. 한때 다수의 영화평론으로 유명세를 날린 바 있으나, 종편 JTBC에 얼굴을 내비친 이후부턴 입담 좋은 '방송인'으로 이미지를 굳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요 며칠새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영화 '국제시장'을 잘근잘근 씹는 비평을 수차례 올리면서 다시 '예전의 허지웅'으로 돌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05년 영화 전문지 '필름2.0'으로 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허지웅은 곳곳에 자신만의 전선(戰線)을 형성하며 격한 찬반 양론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 '디워'를 비판할 때도 그랬고, '열성 노무현 팬덤'을 지적할 때에도 허지웅은 논란의 한 가운데에 서서 양 진영 모두와 '입씨름'을 하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이번 국제시장 논란도 종전 패턴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국제시장을 '아버지 세대의 희생을 강조하는 반동 영화'로 규정한 그는 영화를 감상한 관람객 전체를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불편한 게시글로, 영화 팬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시니어들의 문제가 다루어져야 마땅한 시점에, 아버지 세대의 희생을 강조하는 '국제시장'의 등장은 반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관객 중 영화 '국제시장'을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해석한 이가 극히 드문 현실을 감안할 때 여전히 고리타분한 이분법적 사고로 '국제시장'을 바라보는 허지웅의 시각은 '별종'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나아가 허지웅은 "'더 이상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시니어들의 문제가 다루어져야 마땅한 시점'이란, 매우 당연하게도 '세월호 이후의 세계'를 의미한다"며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 사람들 탓에 이런 캡션이 따로 필요하다는 것조차 소름끼친다"는 독설을 퍼부었다.

    멀쩡한 영화를 굳이 사회적 이슈와 연관지으려는 저의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세월호 침몰 사건은 소위 기성세대의 부패로 야기된 사건이므로, 아버지 세대는 손들고 무릎꿇고 반성하며 연말을 보내야한다는 말인가? 특정 세대에게 책임과 잘못을 전가하는 사고 방식도 문제지만, 모든 영화가 품위 있고 의미 있어야 한다는 사고 역시 '강남좌파식 위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국제시장은 우리들을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아버지 세대에 헌사하는 일종의 트리뷰트 영화다. '아버지'라는 단어 앞에 감히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무조건적인 부모의 사랑을 함부로 비판하는 것은 지독한 교만이요, 자신의 뿌리를 저버리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이나 다름없다.

    머리를 잘 썼어. 어른 세대가 공동의 반성이 없는 게 영화 '명량'수준까지만 해도 괜찮아요. 근데 '국제시장'을 보면 아예 대놓고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라는 식이거든요. 정말 토가 나온다는 거예요. 정신 승리하는 사회라는 게.


    허지웅은 지난 25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서 영화 국제시장에 쏠린 흥행열기를 두고 "토가 나온다"는 표현을 썼다. 아마도 그는 △공동의 반성이 없는 어른 세대 △이들을 미화하는 영화 △영화를 통해 자신들을 포장하려는 기득권층 모두를 비판하고자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같은 '줄세우기식 비판'은 마치 영화 속 '작위적 설정'처럼 짜맞추기식 비판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영화 속 주인공이 전후 산업화를 이룬 아버지 세대이고, 이들의 희생이 아름답게 그려진 것은 맞다. 그런데 이게 잘못이란 말인가? 자식의 성공을 위해 당신의 모든 걸 희생한 '절대사랑'이 그렇게 어리석은 짓이었나? 이들의 '어리석은' 희생과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방법이 투박하다고, 절차가 비합리적이라고, 인권이 배제됐다고, 아버지를 손가락질 하는 건, 자기부정(自己否定)도 아닌 자기비하(自己卑下)에 가까운 졸렬한 태도다.

    허지웅의 가시돋힌 발언을 곱씹어보면 그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을 심히 부끄럽게 여기는 듯 하다. 그들을 찬양하는 게 아직도 부끄럽다면 아래의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누군가의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젊은 나이에 이역만리 사우디로 떠난 한 남자의 인생을 우리가 함부로 논할 수 있을까? 그들의 피눈물로 건설된 이 나라에서, 아버지에게 고맙다고 한 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제 나이 36, 딸하나를 둔 가장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저보다도 어렸을 그 시절 삼십대 초반에 엄마와 저, 제 동생먹여살리고자 사우디에 다녀오셨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과연 허지웅씨한테 고마워해달라는 말씀 하셨을까요? 지금도 저희 아버지는 소주 한 잔하시면 넉넉하게 못키워줘서 미안하다는 말씀 하십니다.

    정치적 이념이 꼭 들어가야 영화인가요? 저 조금 전에 국제시장 봤습니다. 보는 동안 많이 울었습니다. 삐딱하게 보지마시고 그냥 보이는 것만 봐주셨으면 합니다. 허지웅씨는 과연 지금 전쟁나면 총들고 뛰어나가실 용기있으신가요?

            - 네티즌 2000****



  • [사진 = 영화 '국제시장' 스틸 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