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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한국에서 체포된 남파간첩 중 40%가 탈북자로 위장해 침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북한 대남공작기관들이 남파 간첩을 탈북자로 위장시키기 시작한 것이 1998년부터였다는 주장이 뒤늦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가 2년 전에 작성한 칼럼에 따르면, 북한이 남파간첩을 탈북자로 위장시켜 보내게 된 것은 1998년 함경북도 보위부의 활약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은 식량난으로 탈북한 북한 주민들을 붙잡아 강제북송하기 위해 1996년부터 중국 동북 3성에 보위부 체포조를 보내 활동을 벌였다고 한다.
이들은 겉으로는 ‘탈북자’ 신분이었지만, 김정일 정권의 전폭적인 지원와 중국 공안의 암묵적인 지지를 얻어 한 해에 수백 명이 넘는 탈북자를 붙잡아 강제북송 했다고 한다. 조선족 중국인을 ‘협조자’로 활용한 것도 이들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1998년 가을, 함경북도 보위부와 북한 인민군 보위사령부는 “탈북자들이 한국 안기부의 지령을 받아 ‘반공화국 단체’를 결성, 북한 내부에 전단을 살포하는 등 반체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한다.
이에 당시 함경북도 보위부는 중국으로 파견했던 보위부 체포조를 모두 불러들여 간첩 교육을 시키고 대남공작원 임무를 부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비슷한 시기 중국에 있던 탈북자들은 ‘양강도 김일성 동상 폭파’를 계획했는데, 함경북도 보위부가 중국에 보낸 체포조에 의해 무산됐다고 한다. 이와 함께 ‘진달래회’, ‘민족통일연합’, ‘조선민주화연맹’ 등 탈북자 단체 지도자들도 체포조에 납치돼 강제북송 당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보고받은 김정일은 함경북도 보위부의 역할을 칭찬하며, “앞으로 탈북자로 위장한 공작원들을 적극 활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김정일이 직접 지시를 내린 뒤부터 보위부를 중심으로 남파 간첩들을 탈북자로 위장시켜 보내는 일이 크게 증가했고, 보위부가 정찰총국, 225국과 맞먹는 권력을 지니게 됐다는 것이 김성민 대표의 설명이다.
김성민 대표의 설명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 2011년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를 독침으로 암살하려다 붙잡힌 탈북자 안 모 씨 등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실제 2000년대 들어 매년 한국으로 들어오는 탈북자 수는 1,000여 명 내외다. 이들 가운데 위장 간첩이 숨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TV조선도 지난 8일 “최근 10년 사이 검거된 남파 간첩 49명 가운데 21명이 탈북자로 위장해 들어온 간첩”이라고 보도했다.
탈북자 위장 간첩의 소속 부서로는, 국가보위부 출신이 10명, 정찰총국 5명, 인민군 보위사령부 3명, 노동당 35호실 1명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남파 간첩 가운데 국가보위부 출신이 매우 많은 것 또한 김성민 대표의 설명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까지 남파간첩을 탈북자로 위장시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탈북자의 경우 한국 정부가 비교적 ‘느슨한’ 검증과 감시를 한다는 점, 또 하나는 탈북자로 확인될 경우 한국 정부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북한 대남공작기관들은 한국 정부의 ‘검증’을 통과하는 훈련을 주로 받는다고 한다.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들이 한국에 와서 하는 일은 기밀 수집, 사보타지 등 과거 정예 남파간첩들이 하던 임무와는 다르다는 게 눈에 띤다.
탈북자 위장간첩의 주요 임무는 탈북자 사회 지도자와 북한 인권단체 대표 등의 암살, 유언비어 유포 등이 주를 이룬다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들이 더욱 소외되도록 만들어, 북한의 실상을 한국 국민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게 하는 게 일차적인 목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한국으로 오지 못한 탈북자 위장간첩은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탈북자의 가족이나 대북지원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포섭하거나 납치해 강제북송 하는 일도 맡고 있다는 것이 ‘진짜 탈북자’들의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