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법, 여·야 여전히 '갑론을박'..북한주민은 '고통'
  • ▲ 북한인권법 쟁점 설문조사 발표 기자회견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북한인권법 쟁점 설문조사 발표 기자회견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시민사회가 기자회견을 통해 약 10년간 국회에서 폐기와 발의가 거듭되고 있는 북한인권법을 올바르게 제정하기 위한 민·관·정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현재 광범위하게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인권범죄 증언과 더불어 북한인권법의 조속한 제정을 위해 여야 간 의사소통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탈북난민인권침해센터(이하 탈북인권센터)는 13일 오전 서울프레스센터에서 북한인권법 쟁점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북한정의연대 정 베드로 목사를 비롯, 이한별 탈북인권센터 소장과 그의 어머니 박정옥(가명) 씨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 소장과 어머니 박 씨는 둘 다 함경남도가 고향인 북한이탈주민이다. 탈북을 시도하다 두 차례나 강제북송을 당한 경험이 있는 박 씨는 북한 보위부 수감시설의 처참한 인권실태를 기자회견을 통해 낱낱이 고발했다.

    기자회견은 박 씨가 보위부 수감시설에 대해 증언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준비한 원고를 읽는 박씨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당시의 고통스런 기억과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보위부 감옥은 탈북자로 가득 차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콩나물 시루 같았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고통스런 울음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보위부원들은 임신한 여성에게 약을 먹여 강제로 태아를 유산시키고 갓 태어난 신생아를 발로 밟아 죽이는 등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겨울에는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면서도 여름옷 하나로 겨울을 나야 했다. 청진 집결소에서는 여름에 시체를 감옥 안에 쌓아두다가 한꺼번에 옮겨가기도 했다. 북한에서의 생활은 감옥과 마찬가지다. 조속한 북한인권법 제정으로 저와 같은 탈북자들이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

    박 씨는 1999년과 2004년에 걸쳐 두 차례 탈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2006년 3번째 탈북에서 유엔난민보호소의 도움을 받아 한국으로 입국했다. 그의 남편은 북한에서 생활고로 사망했으며 탈북을 시도하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것으로 추정되는 아들은 현재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다.

  • ▲ ▲탈북민 박정옥씨가 북한 보위부 수감시설에서 이뤄지고 있는 고문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탈북민 박정옥씨가 북한 보위부 수감시설에서 이뤄지고 있는 고문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정베드로 목사는 박 씨의 증언에 대해 “유엔 조사팀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비공개로 증언했던 내용”이라며 “국제사회에서 신동혁씨 등 탈북자들이 정치범수용소와 관련한 증언을 했지만 실재적인 고문은 보위부 집결장과 단련대 등 열악한 수감시설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한별 소장은 북한인권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을 비롯, 시민단체, 북한인권전문가, 학자, 일반 시민 등을 대상으로 ‘북한인권법의 쟁점’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분석•발표했다.

    그는 북한인권법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 찬•반 집단의 입장차이를 주요 쟁점을 사회적 관점에서 규정하는 거시적 프레임과 구체적 사건, 특별한 사례에 초점을 맞추는 미시적 프레임 등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가치적•진단적•처방적 프레임으로 나눠 분석했다.

    이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각 찬•반 집단에서 반대율이 높게 나타난 항목은 북한인권재단의 통일부설치, 인도적 지원을 위한 북한인권법 제정 등이 있었으며 ‘북한인권법 제정이 남북관계에 위협이 되는가’에 대한 항목에서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라는 답변이 많았다.

    반면, 찬성률이 높았던 항목은 ▲북한인권법 제정 ▲국가의 책무 ▲법률적용대상범위 ▲제3국 탈북민에 대한 국가보호 ▲인권개선과 인도적지원 동시 명시 ▲북한인권자문위원회 설치 ▲북한인권대외직명대사 설치 ▲북한인권재단 설치 ▲북한인권기본계획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치 ▲북한주민의 정보 접근권 ▲북한인권침해 사건신고 ▲국제형사재판소 제소규정 ▲북한인권 교육과 홍보규정 ▲인권개선 민간단체 활성화 지원 등으로 나타났다.

  • ▲ ▲이한별 탈북난민인권침해센터 소장. ⓒ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이한별 탈북난민인권침해센터 소장. ⓒ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이에 대해 이 소장은 “야당의 북한인권증진법안의 경우 자유권보다 생존권이라는 가치에 치중되어 있고 여당은 자유권을 보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가치적 프레임이 내재돼 있다”고 분석했다.

    ‘진단적 프레임’을 통한 분석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서로의 북한인권법에 대해 ‘퍼주기식법’, ‘삐라살포법’이라고 비판하는 현상에 대한 원인을 진단했다.

    “갈등구조를 분석하면 북한인권단체의 지원을 규정할 경우 ‘삐라살포법’이라는 진단적 프레임이 작용해 여당의 북한인권법을 반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반대로 야당이 인도적 지원을 실시하는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을 규정하면 ‘퍼주기식법’이라는 진단적 프레임이 작용해 서로의 법안을 반대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이 소장은 이를 여•야가 북한에 대해 취하는 정책적 접근방식이 서로 달라 나타나는 갈등구조라고 설명했다. 크고 작은 갈등의 대립구조로 인해 정책결정자들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10년째 답보상태로 머물렀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북한인권법 제정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을 발의하면서 북한인권전문가, 시민단체, 탈북인권운동가 등에 대한 설문조사가 전무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국민의 의사반영 없이 급하게 북한인권법안을 여•야가 각각 8개나 발의했다는 점도 문제”라고 밝혔다.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시민단체나 인권전문가, 대북인도적 지원단체 등 각 집단의 찬성율과 반대율을 분석해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법안 발의자들은 설문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시민들이나 전문가들이 반대하는 문항을 법안에 넣어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이 소장은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민•관•정 협의체를 제안했다. 이를 통해 여•야 국회의원들이 북한인권법 관련 학자와 인권운동가 등과 충분한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정치적 당리당론에서 벗어나 북한 인권침해 당사자 입장에서 법을 제정해 올바른 방향의 북한 인권법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설문에 참여한 단체•개인은 모두 68명으로 보수성향 단체 30명, 진보•좌파성향 단체 20명, 중도 12명이며 국회의원은 새누리당 심윤조•윤상현•조명철•이인제•황진하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 의원 등 6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