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진설계 ‘특등급’…韓 기업은 물론 ‘소프트뱅크’ 등 日 IT기업도 사용 중
  • ▲ 2014 안전한국훈련 홍보 영상. 과연 '훈련'만 잘 해두면 지진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을까? ⓒ유튜브 영상캡쳐
    ▲ 2014 안전한국훈련 홍보 영상. 과연 '훈련'만 잘 해두면 지진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을까? ⓒ유튜브 영상캡쳐

    네팔, 일본에서 잇달아 일어난 지진으로 국내에서도 지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지진’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추상적이다. 지진이 일어나면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SNS도, TV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생각하지 않는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 정보’를 얻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외부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단은 SNS와 인터넷이다. 하지만 인터넷과 SNS 또한 ‘지진’에 의해 통신망이 ‘물리적’으로 파괴되면 무용지물이 된다. 한국 사회는 여기에 대해 얼마나 대비가 되어 있을까. 


    소프트뱅크와 KT 손 잡은 2011년 11월 11일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도호쿠(東北) 대지진’이 일어나자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다. 세계 언론은 일본 도호쿠, 간토 지역에서 생산돼 전 세계가 사용하는 자동차 부품 수급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했다. 실제로도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은 일정 부분 지진의 영향을 받았다.

    같은 때 일본의 한 기업가는 다른 시각에서 지진을 쳐다봤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안정적인 인터넷 및 모바일 서비스의 핵심은 ‘물리적 안정성’이라고 판단, 몇 달 뒤 한국에 IDC(인터넷 데이터 센터)를 짓겠다고 발표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한국에서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적으면서도 일본과 가까운 지역을 물색하기 시작한다.

    소프트뱅크는 KT와 2011년 11월 11일 ‘KT-SB 데이터 서비스’라는 법인을 설립한다. IDC는 법인 설립 불과 넉 달 뒤인 2012년 3월 15일 김해에서 준공한다. 

    ‘KT-SB 데이터 서비스’ 측에 따르면, 부지를 선정할 때 재난재해 발생 시 피해 지역을 계산한 ‘해저드맵(Hazard Map)’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김해에 소프트뱅크의 자본과 기술이 들어간 IDC가 세워진다.

    KT와 소프트뱅크가 각각 51%와 49%의 지분을 투자한 김해 IDC는 해발 85m의 산등성이에 있다. 김해에서는 지난 100년 동안 진도 3.0 이상의 지진이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 또한 KT와 소프트뱅크가 IDC 입지로 선정한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소프트뱅크 측은 한국 역사에서 지진이 일어났던 기록 등을 모조리 조사했다고 한다.

    KT와 소프트뱅크가 만든 IDC는, 재난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시설이어서인지 내진설계가 국내 최고 수준이다. 길이 15미터의 콘크리트봉 76개를 지하에 박아 넣은 뒤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

    서버를 보관하는 랙은 모두 건물에 단단히 고정시켜, 진동으로 인해 서버 속의 데이터가 손상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런 여러 가지 보강작업을 통해 김해 IDC는 진도 6.5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특등급 시설’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KT와 소프트뱅크는 김해 IDC를 완공한 뒤에는 세계적인 기준에 따라 운영하기 시작했다. 2012년 8월 23일에는 품질관리 인증인 ISO/IEC 27001, ISO/IEC 20000, ISO 9001을 취득했다. 같은 해 12월 11일에는 한국 KISA에서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ISMS)’도 취득한다.

  • ▲ 손정의(마사요시 손) 소프트뱅크 회장은 2011년 3월 日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난 뒤 한국에 IDC를 짓겠다고 밝혔다. 사업 영속성을 중시한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인도 TRAK 보도화면 캡쳐
    ▲ 손정의(마사요시 손) 소프트뱅크 회장은 2011년 3월 日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난 뒤 한국에 IDC를 짓겠다고 밝혔다. 사업 영속성을 중시한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인도 TRAK 보도화면 캡쳐

    ‘KT-SB 데이터 서비스’ 측은 김해 IDC에 대해 “도호쿠 대지진 이후 일본의 IDC 수요가 급증하는 것에 대응함과 동시에 IT 산업의 백업 체제를 강화하고 일본 산업부흥을 지원하기 위해 김해 IDC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KT-SB 데이터 서비스’에 따르면, 현재 김해 IDC에는 소프트뱅크 관계사들의 서버들은 물론 한국과 일본의 주요 IT기업들의 서버가 입주해 있다고 한다. 일본 IT기업들은 김해 IDC에 백업용 서버와 사내 시스템, 상용 서비스용 서버 등을 입주시켜 놓고 있다.

    ‘KT-SB 데이터 서비스’ 측은 “IDC에 서버를 입주시킨 기업들과 맺은 영업비밀계약(NDA) 때문에 해당 업체들의 명단은 밝힐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한국과는 다른 일본의 기업문화 때문이었다. 


    韓 김해 IDC에 있는, 소프트뱅크 제2의 ‘두뇌’


    ‘KT-SB 데이터 서비스’ 관계자는, 일본 IT 기업들은 IDC에 서버를 입주시킨 기업의 명단은 물론 IDC의 주소와 장비 등도 모두 ‘비밀’로 취급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IDC에 서버를 입주시킨 기업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실제 김해 IDC를 찾아가 보면, 보안절차를 보고 놀라게 된다. 일반적인 한국의 IDC는 입주기업의 IT 담당자라는 것이 확인되면 언제든지 서버에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김해 IDC의 경우 사전 방문 예약, 신분 확인 등 6단계의 보안절차를 거쳐야만 서버를 보관한 곳에 출입할 수 있다.

    김해 IDC에는 카메라, 노트북, 휴대전화, USB 반입도 불가능하다. 노트북은 IDC 입주기업의 IT 담당자가 작업용으로 지참한 것만 가능하다. 과거 농협 해킹 사건이나 합참 해킹 사건 당시 외주업체 직원이 마음대로 USB를 들고 출입한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 ▲ KT와 소프트뱅크가 손을 잡고 경남 김해에 만든 IDC. '글로벌 데이터센터(GDC)'라고 부른다. ⓒKT-SB 데이터서비스 제공
    ▲ KT와 소프트뱅크가 손을 잡고 경남 김해에 만든 IDC. '글로벌 데이터센터(GDC)'라고 부른다. ⓒKT-SB 데이터서비스 제공

    ‘KT-SB 데이터서비스’가 김해 IDC의 보안 관리를 이처럼 철저히 하는 것은 이곳이 지진 등과 같은 재난재해에 대비한 서버들을 보관한 곳이기 때문이다. KT 측은 김해 IDC에 ‘클라우드 재해복구센터’를 갖추고 있다고 자랑한다.

    ‘클라우드 재해복구센터’란 기존의 재난대비용 백업 서버를 ‘클라우드 컴퓨팅’과 같은 방식을 활용, 기업이 사용 중인 서버를 먼 곳에 있는 IDC에서 원격으로, 실시간 백업 처리한 뒤 재난재해가 발생해 서버가 작동할 수 없을 경우 해당 기업의 직원이 직접 오지 않더라도 원격으로 즉각 서비스를 재개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KT 측은 “재해복구센터란 재해발생 시 서비스 중단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 서버와 거의 동일하게 시스템을 구축한 것을 말한다”면서 “현재 IDC를 단순한 데이터 백업 센터가 아니라 재해복구센터로 전환하는 것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 ▲ 지붕 위로 올라간 여객선. 2011년 3월 11일 日도호쿠 대지진 이후의 모습이다. ⓒ산도네미코 학교 홈페이지 캡쳐
    ▲ 지붕 위로 올라간 여객선. 2011년 3월 11일 日도호쿠 대지진 이후의 모습이다. ⓒ산도네미코 학교 홈페이지 캡쳐

    이는 현재 한국 기업들의 서버의 백업 수준이 50~60%에 불과, 각종 재난재해 발생으로 전산실이 파괴되면,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할 수 없는 현실에서 매우 필요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보다는 ‘지진’에 이미 충분한 대비를 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IT 기업 ‘소프트뱅크’와 일본의 주요 IT 기업, 한국 대기업들만이 이런 시스템을 활용 중이다.

    즉 한반도와 일본에서 동시에 거대한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야후 재팬’은 접속이 가능하지만, 한국의 ‘네이버’나 ‘다음’, ‘카카오톡’ 등은 접속할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진’ 나면 네이버, 카톡 쓸 수 있을까?


    日소프트뱅크 측은 일본에서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대지진’에 대비해 최고 수준의 내진설계를 적용한 IDC를 한국 김해에 지었다.

    한국의 KT는 ‘지진’ 뿐만 아니라 다른 ‘재난’을 대비해서라도 이런 시설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다음은 ‘재해복구센터’에 대한 KT 측의 설명 가운데 일부다.

    “…지진 뿐만 아니라 태풍, 해일 등 각종 재난재해가 발생하더라도 기업들의 업무 연속성을 극대화하고, 고객 정보와 같은 귀중한 데이터를 완벽하게 보호하기 위해 KT는 재해복구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KT 측은 이를 위해 서울, 부산,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 10여 곳에 IDC를 만들고, 이곳들 모두에 최고 수준의 ‘내진설계’를 적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IDC와 ‘클라우드 재해복구센터’ 시스템을 결합하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IT 기업들은 서비스를 계속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KT의 설명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한국에는 매년 태풍이 불어닥친다. 최근에는 "올 여름에는 '슈퍼 태풍'이 한반도에 불어닥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한국과 중국 지질학자들은 백두산 폭발설을 제기하고 있다. ‘환태평양 조산대’에서 화산폭발과 대형 지진이 빈발하고 있다.

    만에 하나 한반도에서 지진이나 화산폭발, 슈퍼 태풍과 같은 재난재해가 발생했을 때 국민들은 ‘네이버’나 ‘다음’을 통해 현재 상황을 확인하려 할 테고, ‘카카오톡’을 써서 가족과 지인들의 안부를 물을 것이다.

    이때 ‘네이버’와 ‘다음’, ‘카카오톡’이 모두 먹통이 된다면? 안전한 곳으로 떠나기 위해 신용카드와 현금카드를 챙겼는데 전국의 모든 ATM 기기가 사용불능이 된다면? 이 모든 일이 바로 IDC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 ▲ 한국에서 지진이나 화산폭발과 같은 재난이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네이버 등 포털과 카카오톡 같은 SNS를 통해 외부정보를 수집하고 가족과 지인들의 안부를 확인할 것이다. 이때 네이버, 카톡이 안 된다면? ⓒ2010년 2월 9일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캡쳐
    ▲ 한국에서 지진이나 화산폭발과 같은 재난이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네이버 등 포털과 카카오톡 같은 SNS를 통해 외부정보를 수집하고 가족과 지인들의 안부를 확인할 것이다. 이때 네이버, 카톡이 안 된다면? ⓒ2010년 2월 9일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캡쳐

    ‘KT-SB 데이터 서비스’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김해 IDC를 ‘1단계(Phase 1)’로 보고, ‘2단계(Phase 2)’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구체적인 결과나 논의는 없지만 ‘검토’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소프트뱅크는 김해 IDC의 효과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일본이 건축물과 토목공사에 내진설계를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1924년부터라고 한다. 그 결과 현재는 단독주택이나 작은 건물 등 거의 대부분의 건축물에 내진설계가 적용돼 있다고 한다.

    한국은 1988년부터 일부 건축물과 토목공사에 내진설계를 적용하도록 했다. 이미 27년이 지났지만, 내진설계를 적용한 건축물은 아직도 절반이 안 된다. 내진설계를 적용한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은 5%도 안 된다고 한다. 

    한국 사회는 ‘안전제일’을 내세우는 일본을 가리켜 “작은 재난에도 호들갑을 떤다”고 비웃기만 할 것이 아니라 태풍이나 지진, 백두산 폭발과 같은 ‘더 큰 재난’이 닥칠 가능성이 높은 현실을 인정하고, 더욱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