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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월 13일 치러질 20대 총선의 선거구를 획정하는 문제가 점차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꼬여만 가고 있다. 독립기구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위도 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에서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제안되는 갖가지 해결책들도 장단점이 뚜렷해 선뜻 채택할 만한 묘수는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위원장 김대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차장)는 2일, 오후 2시부터 저녁 9시 50분까지 8시간 가까이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음에도 지역구 정수를 결정하지 못했다.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위조차 답을 내리지 못함에 따라, 선거구 획정 문제가 향후 정치권의 핵심 뇌관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따라 총선이 눈앞으로 다가와서야 벼락치기 식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악습은 국회 산하에 선거구획정위를 둔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 2012년 4월 11일 치러졌던 19대 총선의 선거구는 2월 27일에야 확정됐다. 2008년 4·9 총선의 선거구도 2월 21일 확정됐다.
선거가 치러질 지역구가 선거일로부터 불과 1~2개월 전에 확정되는 악습이 반복되면서, 이번에는 사상 최초로 외부 독립기구로 선거구획정위를 구성했다. 획정위원들도 법정시한(10월 13일) 내에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2일 전체회의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심지어 다음 전체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산회함에 따라, 이러한 뜻을 이루지 못할 우려가 커졌다.
◆헌재 결정에 농어촌 직격탄… 기형·괴물 지역구 나온다
모처럼 선거구획정위를 독립기구로 구성했는데도 또 선거구 획정에 난항을 겪고 있는 이유는 뭘까. 지난해 7월 30일 내려진 헌법재판소 결정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7월 30일,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 상하한 허용 기준을 종래의 3대1에서 2대1로 변경했다. 19대 총선의 선거구 획정 기준은 인구 하한 10만5000명, 상한 31만5000명이었지만, 내년 4월 13일 치러질 20대 총선에서는 인구 하한 14만 명, 상한 28만 명 정도로 변동이 예상된다.
특히 인구 하한이 3만5000명이나 대폭 올라감에 따라, 안 그래도 인구 하한선 근처에 대폭 몰려 있던데다 지난 4년간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인한 자연 사망 등으로 인구가 감소해 온 농어촌 선거구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국회의원 선거구 하나에 6개 군(郡)이 포함되는 기형 선거구, 서울특별시 전체 면적의 수십 배에 달하는 괴물 선거구 등이 현실화될 위험에 처한 것이다.
농어촌 선거구가 꾸준히 감소해 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국민 여론도 이번의 경우에는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선거구획정위원들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셈이다.
헌법재판소의 인구 상하한 2대1 결정을 준수하면서도 농어촌의 지역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가지 묘수(?)가 제시되고 있지만, 각기 장단점이 있어 논란만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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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특별선거구… 지역대표성 확보 효과적이지만 위헌 우려
농어촌·지방주권지키기모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강원 홍천·횡성)은 농어촌 특별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한다. 면적은 넓지만 인구 감소가 심각해 인구비례만을 내세울 경우 대표성에 문제가 생기는 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에 각 1석 이상의 농어촌 특별선거구를 설치하자는 방안이다. 이 농어촌 특별선거구는 인구에 관계없이 1석의 의석이 주어진다.
이는 여권 우세 지역과 야권 우세 지역에 골고루 설치된다는 점에서 딱히 여야 정치권이 반대할 명분이 없고, 특별선거구를 설치한 만큼 늘어나는 지역구 의석(그만큼 비례대표 의석은 축소)이 올곧이 농어촌 지역대표성 확보를 위해 쓰인다는 점이 장점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내세운 표의 등가성 원칙에 배치된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특별선거구는 인구가 특별히 적은데도 1석의 의석이 주어진다는 게 너무 공공연히 드러나기 때문에, 이 지역에 거주하는 유권자의 1표가 다른 지역 유권자의 1표보다 과대대표되는 셈이어서, 헌법적 판단을 받아봐야 할 일이지만 최소한 소송이 제기되는 것 자체는 불보듯 뻔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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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 증원·비례대표 축소, 해결의 첫 단추지만 이것만으로는…
헌재에 위헌소송이 제기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난한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강원 속초·고성·양양)과 새정치민주연합 황주홍 의원(전남 장흥·강진·영암)은 지역구 의석을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을 줄일 것을 제안한다.
헌재의 기준을 지키면서 현행 246석의 지역구 의석을 유지할 경우, 전북과 전남의 의석 수는 한 자릿수로 떨어지고, 강원의 의석 수는 면적이 훨씬 좁은 수원시의 의석 수와 엇비슷해진다. 이에 따라 일단 지역구 정수를 대폭 늘려 전북·전남에 두 자릿수 의석을 유지하는 등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할만한 최소한의 의석은 보장하자는 복안이다.
이는 헌재의 기준과 배치되지 않아 위헌의 우려가 없다는 게 최대의 장점이다. 또, 지역구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여야 한다는 국민 여론과도 부합한다. 비례대표 의원을 자신의 대의대표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의사 결정 과정에서 누구의 이해도 침해할 우려가 없는 셈이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순천(順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다른 보조적인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역구 정수만 늘리면 늘어난 지역구 의석의 상당수가 수도권·대도시에 배정되게 돼, 전체적인 도농(都農) 간의 의석 격차는 오히려 더 커진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지난달 1일 국회 국토위 소회의실에서 열린 농어촌 지역구 의원 모임에서도 새정치연합 신정훈 의원이 "비례대표를 줄인다고 해도 도시만 (의석이) 더 늘어난다"고 지적했고, 같은 당 유성엽 의원이 "그러니까 그것도 궁여지책"이라고 수긍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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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 郡 예외 조항, 광역의원 입법례 있지만 입법적 해결해야
지역구 의석 증원과 비례대표 축소를 전제로, 늘어난 지역구 의석을 오롯이 농어촌 지역대표성 확보에 할애하기 위한 보완책 제시가 뒤따르고 있다. 서울법대를 졸업한 법조인 출신인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경북 영주)은 4개 군(郡)이 합쳐진 선거구는 인구에 미달하더라도 최소 1석의 국회의원 의석을 보장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일견 위헌 우려가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미 비슷한 입법례가 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제22조 1항 단서는 하나의 자치구·시·군의 시·도의원 정수는 최소 1인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도시 자치구나 시(市)가 광역의원 1명도 못 뽑을 정도로 인구가 적을 리는 없으니, 오로지 농어촌의 군(郡)만을 위한 규정이지만 위헌 논란은 일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조항을 본따 '4개의 자치구·시·군이 하나의 국회의원 선거구를 이룬 경우, 해당 선거구의 지역구국회의원 정수는 최소 1인으로 한다'는 단서 조항을 공직선거법 제21조에 추가하면 된다.
다만 이는 국회에서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고, 선거구획정위에서 임의로 이렇게 선거구를 정할 수는 없다는 게 단점이다. 선거구획정위가 2일 전체회의에서 지역구 정수 확정을 불발시킨 것이 정치권을 향한 SOS의 신호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빨리 여야 정치권이 나서서 이와 같은 단서 조항을 최소한 정개특위 차원에서라도 합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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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구·시·군 분할 허용… 농어촌 한정하면 보완책으로 효과적
공직선거법 제25조 1항 후단이 금지하고 있는 자치구·시·군의 분할을 농어촌에서는 예외적으로 대폭 허용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도 있다. 농어촌·지방주권지키기모임 야당 간사인 새정치연합 이윤석 의원(전남 무안·신안)과 신정훈 의원(전남 나주·화순)이 이러한 입장에 서 있다.
예를 들어 전남 무안·신안과 사실상 동일 생활권에 있는 전남 목포의 경우, 올해 8월 행정자치부 주민등록 기준으로 인구가 23만8000명이기 때문에 하한(14만 명)은 훨씬 상회하지만 그렇다고 선거구를 분할할 정도(상한 28만 명)에는 많이 못 미친다. 이 경우 목포를 분할해 일부를 인구가 1만5000명 정도 부족한 무안·신안에 합쳐 전체 선거구를 전남 목포·무안·신안 갑을(甲乙)로 개편하면 2석의 선거구가 유지된다.
입법의 예외를 두는 것인 만큼 선거구획정위가 임의로 할 수 없고 국회에서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미 기존에도 이 조항의 예외 사례가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울릉군은 인구가 1만300명이지만 어엿이 독립된 군(郡)이고, 바다 한가운데 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분할 금지 원칙만 강조하면 국회의원 선거구를 획정할 수가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이미 현행법 부칙 제4조에서 포항시의 일부를 분할해 울릉군과 합쳐 포항 남·울릉 선거구를 형성토록 하고 있다.
인구가 6만7500명인 인천광역시 강화군도 마찬가지 사례다. 섬이기 때문에 어딘가를 분할해서 함께 합치지 않으면 국회의원 선거구를 만들 수가 없다. 역시 현행법 부칙 제4조에서 인천광역시 서구를 분할해 강화군과 합쳐 인천 서·강화을 선거구를 만들도록 했다.
김대년 선거구획정위원장도 전체회의에서 지역구 정수 결정이 무산된 이튿날인 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자치구·시·군 분할 금지 원칙이 있지만, 부득이한 경우 부칙으로 보완해 왔었던 만큼 (예외) 허용 폭을 넓혀서 농촌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노력하겠다"고 이러한 해결책을 시사했다.
◆선거구 획정 유권자 수 기준, 기발하지만 입법례 드물어
선거구 획정의 기준을 현행 인구 수 기준이 아닌, 유권자 수 기준으로 하자는 의견도 제시된다. 새정치연합 김춘진 의원(전북 고창·부안)의 제안이다. 농어촌은 고령화됐지만 대도시는 학령 인구가 많아 대도시가 과대대표되는 만큼, 획정의 기준을 유권자 수로 바꿔 농어촌의 과소대표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이다. 지난달 9일 전남 무안의 전남도의회에서 열린 선거구획정위 주관 지방 의견 수렴 공청회에서 길종백 순천대 행정학과 교수도 "인구가 아닌 유권자 수로 선거구 획정의 기준을 정하자는 의견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기상천외한 묘안이기는 하지만, 선거구 획정의 기준을 인구가 아닌 유권자로 한정하는 선진 외국의 입법례가 없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지난달 9일 전북 전주의 전북도청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새정치연합 전북도당 이경재 윤리심판위원이 "인구 수 대신에 선거구 획정 기준을 유권자 수로 하면 어떻겠느냐"며 "농촌은 고령화되고 도시 지역은 젊은 층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배려라도 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제안했지만, 조성대 획정위원은 외국의 입법례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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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농복합선거구제… 중장기적 과제, 당장 합의 어려울 듯
도농복합선거구제로 선거 제도를 개편해 헌재의 기준을 준수하면서도 농어촌 지역대표성을 확보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새정치연합 주승용 최고위원(전남 여수을)과 유성엽(전북 정읍)·김승남(전남 고흥·보성) 의원이 이러한 지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송파구(갑·을·병)나 경기 수원시(갑·을·병·정에 인구 상한 초과로 증원 예정), 안산시(단원 갑·을, 상록 갑·을) 등 하나의 자치구·시·군에 여러 개의 의석이 있는 지역은 중선거구로 묶으면서 자연스레 의석을 줄이고, 농어촌은 그대로 소선거구제로 선거를 시행함으로써 도농 간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중장기적으로 검토해 볼만한 방안이 될 수 있지만, 총선을 6개월 앞둔 상황에서는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다. 제도 변화에 수반하는 변경 폭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정치권의 합의를 이끌어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문재인의 권역별 비례대표제, 사상 최악의 해결책
여러 가지 해결책 중에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부산 사상)가 고집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최악의 해결 방안으로 손꼽힌다. 농어촌 지역대표성 확보와 무관하기 때문에 사실상 해결 방안이라고 포함시키기도 민망하다는 지적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면서 농어촌·지방 전문가를 뽑자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농어촌 지역구민들과 전문가들의 반발이 잇따랐다. 새정치연합 전남도당의 김현호 수석사무처장은 지난달 9일 전남 공청회에서 "20년 전부터 새정치연합… 과거의 민주당 (생활)을 해왔지만, 지금 민주당에 농어민을 대표하는 비례대표는 한 명도 없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김영기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대표도 같은 날 오후 전북 공청회에서 "지금까지 비례대표를 했던 사람들은 서울·수도권의 학자와 시민단체 (관계자)의 전유물로 우리 (농어촌) 지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제도"라고 인정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권역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기 때문에 농어촌을 대표하는 사람이 뽑힐 수 없다는 점도 거론된다. 지난 8월 11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선거구획정위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출석한 김종철 법무법인 새서울 대표변호사는 "인천·경기·강원이 다 합쳐져 권역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농어촌인 강원도의 이해를 대변하는) 권역별 비례대표가 나올 수 있겠느냐"고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그 외에도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눴기 때문에 도시와 농어촌이 묶여 있어,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농어촌 지역대표성을 확보하는 것은 무리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농어촌 지역대표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많은 방안들이 자당인 새정치연합 소속 의원들로부터도 제시됐음에도, 이러한 안들을 검토하지 않은 채 권역별 비례대표제만 고집하는 것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표가 농어촌과 호남에 대한 애정이 없기 때문에 고민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