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산주의·자본주의 넘나드는 사람 선무당보다 무서워"

    비수는 크기가 작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비수는 날카롭다. 그래서 비수를 품고 다니는 사람은 무섭다. 언제 적으로 돌변하여 상대방의 목숨을 노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발족한 ‘뉴라이트 재단’의 이사장을 맡은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의 기자회견을 보면 그들의 사상 가운데 비수가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잘 발견되지 않는 초기 암세포처럼 숨겨진 이 비수가 장차 어떤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우리들 자유애국세력이 감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이유다.

    좌파 운동을 하다가 우파로 전향하였다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이들의 전향 동기가 철학적 사색의 결과가 아니라 역사적 현실의 변화에 대한 합리화가 궁색한 나머지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라는 점이다. 안병직 교수도 이 범주에 속한다. 안병직 교수는 한때 좌파경제학의 대부로까지 불리다가 1984년 남들보다 10여년 일찍 우파로 ‘전향’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좌파 진영에는 그의 많은 제자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1965년 서울대 전임교수가 되고서도 계속 학생운동에 관여를 했어요.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을 읽고 학생들에게 전해주는 게 일이었지. ‘적어도 일제시대까지 한국사회는 식민지 반(半)봉건사회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선도적으로 주창했고 좌파성향 학생들에게 호소력을 얻었지요. 사실 그것은 모택동 이론에서 빌려온 것이었어요. 그때 우리들(좌파 운동가들)은 1970년대 말이면 한국자본주의는 붕괴할 것으로 생각했지. 박통(朴統·박정희대통령)이 죽었을 때 우리는 역시 우리 생각이 옳았다고 확신했지요.” 말하자면 그는 골수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전향하게된 계기를 이렇게 말한다: “전통이 누구야? 박통보다 훨씬 모자란 사람이잖아. 그런데 한국경제가 죽기는커녕 더 발전하는 거야.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지.” 그리고 결정적 계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85년 일본 동경대의 강의요청이 있어 1년간 머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소련이나 중국 그리고 동구권에서 일본으로 유학 온 사람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어요. 그 사람들 수준이 형편없는 거야. 사회주의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지.”

    결국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맑스, 레닌, 모택동에 빠져 있던 그가 전향하게 된 이유는 공산주의 이론이 잘못이라는 내면적 성찰의 결과가 아니라 전두환 대통령이 좀 모자라는 사람임에도 한국경제가 발전하고, 소련이나 중국 그리고 동구권 유학생을 만나보니 그 수준이 형편없어 사회주의를 버리겠다고 결심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소위 좌파에서 전향하였다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들은 지식인으로서 지적 성찰의 결과 어떤 확신이 서서 전향한 것이 아니라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되자 전향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편의적 궁여지책의 선택인 셈이다.

    안병직 교수는 그가 사상적 빈곤으로 방황하고 있을 때 나타난 구세주가 바로 중진자본주의였다고 한다: “마침 교토대의 나카무라 사토루(中村哲)라는 사람이 제시한 중진자본주의론을 접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고 봐요.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의 자본주의는 정상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중이었던 거지.”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신지호 자유주의연대대표가 92년 무렵 사회주의를 버리고 전향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이론이 바로 안병직 교수가 한국 상황에 맞게 가다듬은 ‘중진자본주의론’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지호 대표가 안병직 교수를 다시 뉴라이트운동에 이끌어 들였다고 한다.

    뉴라이트 재단에 대해 안병직 교수는 이렇게 정의를 내린다: “뉴라이트재단은 그동안 내가 쌓아온 학문적 역량을 바탕으로 젊은 세력과 함께 한국사회를 선진적으로 바꿔놓으려는 사상운동 단체입니다.”

    그런데 이 그룹이 품은 비수는 그의 다음 말에서 나타난다. 그는 “한국의 기존 보수주의는 한나라당의 차떼기 문제와 같은 부패로 덧칠돼 있기 때문에 더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고 비판하면서, “한국의 올드라이트는 권위주의와 산업화세력에 연원을 두고 있어 자유주의 개혁을 하려면 자기부정을 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뉴라이트는 독재, 권위주의, 부정부패에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 출신 인사들이 핵심이며, 사상적으로는 공산주의까지도 논의가 허용되는 다양한 사회를 추구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안병직 교수의 논리는 놀랍게도 그동안 신지호 대표가 주장하던 것과 닮아 있다. “현재의 역사적 과제는 선진화와 현대화다. 나라를 선진화하기 위한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제도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 그러나 막연히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이미 언급했듯이 대외협력이라는 글로벌리즘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발언은 신지호의 발언의 복사판이다.

    안병직 교수는 공산주의가 자유주의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사상적으로 공산주의까지 허용하는 사회를 추구한다고 하였을까? 만약에 두 사상이 공존할 수 없다면 둘 중의 하나는 배척당할 것이 뻔하다. 만약에 그렇다면, 안병직 교수가 이끄는 뉴라이트 재단이 궁극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자유주의인지 아니면 공산주의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그렇게 장황하게 자유주의에 대해 언급하지만 결국 그것은 공산주의라는 비수를 숨기기 위한 겉옷에 불과한 것을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대한민국에는 비수의 날카로운 날이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단순히 지적 사치를 위해 비수를 품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예로부터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하였다. 사상적으로 깊은 고뇌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지 눈에 보이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넘나드는 사람들은 선무당보다 무섭다. 그들의 비수가 언제 어떤 형태로 살인무기로 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뉴라이트재단은 계간지 ‘시대정신’을 재창간하여 그 동안 좌파진영의 대표매체였던 ‘창비(창작과 비평)’나 ‘역비’(역사비평)와 치열한 사상전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대해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 그룹의 정체성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이것이 제2의 ‘창비’나 ‘역비’가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안병직 교수는 기자와의 인터뷰 첫 마디가 “다시 피가 끓는다”였다고 한다. 이 열정이 그 비수를 다시 꺼내들기 위한 것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재단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의 명단을 보면 눈이 부시다. 뉴라이트재단의 설립은 그동안 뉴라이트 운동을 이끌어 온 ‘전향한 386 주사파 세대’와 학계의 ‘안병직 사단’의 결합을 의미한다고 하는 만큼 현세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총집결되어 있다. 기존의 뉴라이트 인사들에 더하여 이번에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이대근, 이영훈 교수 및 소설가 복거일, 이상돈 교수, 이춘근 박사 등도 참여한다고 한다. 희망하기는 이들 새로이 참가한 지식인들이 그 비수가 품속에서 나오지 않도록 잘 간수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주기를 바란다. 

    <뉴데일리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창인 객원칼럼니스트/한국군사평론가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