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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00교수라는 분이 1988년 국사 교과서를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꾸자고 주장하면서 쓴 논문 중에, ‘고등학생은 민중의 기간부대가 될 자원’이라고 한 부분이 있다.
민중사학자가 한 주장인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 경기 통진고 학생이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을 외쳤다.
제가 위험성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설마 그렇게 되겠어?'라고 믿지 않았지만, 실제로 이렇게 입증이 됐다.“
국내에서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한국사교과서 자체를 학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는 얼마 없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국내 역사교과서의 편향성 실태를 연구한 학자는 사실상 단 한명 뿐이다.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정경희 교수. 서울대 역사교육과 출신인 그는 요즘 본업인 연구와 강의보다는, 기자들로부터 쉴 틈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정부가 ‘올바른 역사교과서’ 편찬을 추진하면서 불붙은 역사교과서 파동은, 역사전쟁이란 표현이 과하지 않을 만큼 격렬한 논란을 빚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과 전교조, 친전교조 성향의 각종 시민단체, 좌파 매체와 속칭 진보를 자처하는 교수들, 역사학계를 장악한 민중사학자 등은, 정부가 준비 중인 ‘올바른 역사교과서’에 대해 일찌감치 ‘친일-독재’라는 주홍글씨를 갖다 붙이고,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반면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지식인사회와 시민단체, 언론은 현행 검인정 교과서의 친북-반대한민국적 서술의 문제점을 강조하면서, 올바른 역사교과서 편찬 방침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지지자들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수치스럽게 여기면서 북한 전체주의 세습 정권을 미화 왜곡하는 비뚤어진 역사교육이 전국의 중고교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현재와 같은 검인정 체제를 유지하는 이상, 역사교육의 정상화는 요원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결국 역사교과서 논란의 핵심은 현재 전국의 중고교에서 사용 중인 역사교과서가 실제로 친북-반대한민국적 성향을 보이고 있는지에 모아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정경희 교수의 역사교과서 비교·분석 연구는 좌우 이념적 성향의 차이를 떠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정경희 교수의 연구는 크게 두 갈래로 이뤄졌다. 하나는 현행 검인정 한국사교과서가 친북적-반대한민국적 성향을 띠게 된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검인정 한국사교과서의 편향적 실태를 비교 분석하는 것이었다.
4년 동안 모든 연구역량을 한국사교과서 분석에 집중한 정경희 교수는 2013년과 올해 10월,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두 편의 논문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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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펴낸 첫 번째 논문은 <한국사교과서 어떻게 편향되었나>(비봉출판사)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논문집은,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교과서의 편찬과정을 섬세하게 밝히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계급투쟁적 시각에서 인식한 수정주의적 민중사관이, 국내 역사학계와 교과서에 침투한 과정을 실증적으로 밝혀낸 최초의 연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에는 현재 역사학계의 주류적 위치를 차지한 민중사학의 계보가 자세하게 정리돼 있다. 정경희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민중사관이 역사학계를 장악하게 된 과정도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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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에 따르면 국내 민중사학은 망원한국사연구실(1984), 역사문제연구소(1986), 한국근대사연구회(1987), 한국역사연구회(1988), 구로역사연구소(현 역사학연구소)(1988), 민족문제연구소(1991) 등을 거쳐 학계의 주류적 위치를 차지했으며, 전교조와 전국역사교사모임을 통해 중고교 교실을 장악했다.
이어 민중사학은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와 같은 대중용 역사 개설서를 잇따라 발행하면서,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한 민중사학은, 1980년대 말부터 지속적으로 교과서 국정제를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검인정 체제로의 변화를 꾀했으며, 이들의 노력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2년 마침내 결실을 맺는다.
학계의 주류적 위치에 올라선 민중사학자들은, 검인정 근현대사 및 한국사교과서 필진으로 적극 참여하면서, 자신들의 사관을 교과서에 주입하는데 성공했다.
민중사학의 발전과정을 이처럼 실증적으로 밝혀낸 정경희 박사는, 올해 10월 두 번째 논문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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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은, 2년 전 발간된 <한국사교과서, 어떻게 편향되었나>의 후편이라 할 수 있다.
전편이 한국사교과서의 편향 과정 및 그 배경과 원인을 실증적으로 밝히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지난달 나온 후편은 검인정 체제에서 발행된 한국사교과서의 편향 실태를 비교·분석한 결과를 담고 있다.
정경희 교수는 이를 위해 18개의 근현대사 핵심 주제를 선정한 뒤, 이를 기준으로 한국사교과서와 남북을 대표하는 역사 개설서의 서술 실태를 비교했다. 그 결과에 대해 정경희 교수는 최근 교과서일수록 용어와 역사 해석 및 기술 방식이 북한의 역사서와 비슷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경희 교수는 그 예로 ‘일제 강점기’라는 용어의 사용 실태를 꼽았다. 정경희 교수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라는 용어는 북한이 ‘미제 강점기’와 함께 만든 용어로, 1980년대 이후 민중사학자들이 북한의 연구성과를 받아들이면서, 우리 학계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정경희 교수는 독립운동사 부분에서, 이승만 박사를 중심으로 한 외교독립운동 및 미주지역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폄하하면서, 한반도에 들어온 미군과 소련군이 내건 포고문의 내용을 대비시킨 점도, 우리 교과서가 북한 역사서의 영향을 받은 사례라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사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는 현행 검인정 교과서들이 그 실체를 과장·왜곡하고 있는 보천보전투와 북한의 토지개혁, 검인정 교과서들이 내용을 축소·왜곡하고 있는 북한 인권 및 핵문제-북한의 군사도발-3대 세습 독재 체제-주체사상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검인정 교과서들의 편향된 서술 실태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건국과 유엔의 국가 승인, 북한 김일성 정권의 수립 등 검인정 교과서들이 편향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관련돼서도, 지면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정경희 교수가 펴낸 이 두 권의 논문은, 한국사교과서의 편향성을 학문적 관점에서 분석한 최초의 연구물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무엇보다 현재 검인정 한국사교과서 필진의 중심세력이 된 민중사학의 태동-발전 과정을 밝혔다는 점은, 정경희 교수의 연구가 갖는 또 다른 성과라 할 수 있다.
뉴데일리는 정경희 교수에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역사교과서 논란의 핵심 쟁점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 대안을 찾는 자리를 마련했다.
정경희 교수는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서양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다. 서울대와 서강대, 성균관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탐라대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대(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역사학과 객원교수, 아산정책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을 지냈다.
정경희 교수는 처음 <미국을 만든 사람들>, <中道의 정치: 미국 헌법 제정사> 등의 저서 및 논문을 통해, 주로 미국사 연구에 주력했다. 그러나 정경희 교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우리나라 중고교 역사교육의 문제점을 절감하게 됐다고 한다. 대학생들을 통해 우리의 역사교육이 얼마나 심각하게 편향됐는지를 깨달은 정경희 교수는 이후 역사교과서에 관심을 가졌다.
정경희 교수가 쓴 역사교육 관련 논문으로는 위에서 소개한 두 권의 책 외에, <미국 역사표준서 논쟁 연구>(《역사교육》 제89집, 2004년 3월), <역사교육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이념논쟁 비교>(《미국학논집》 제40집 3호, 2008년 겨울), <세계사 교과서 속의 미국: 제7차 교육과정 세계사 교과서를 중심으로>(《역사교육》 제114집, 2010년 6월) 등이 있다.
대담 <인>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 <정> 정경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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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역사교과서 논란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역사교과서 전문가시니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정> 쉴 새 없이 전화가 오고, 자료를 요청하고, 설명을 요구한다. 기자들도 그렇고 정치권에서도 전화가 많이 온다.
<인> 역사교육 전문가시니 그럴 만도 할 것 같다. 강연도 많이 하시는 걸로 아는데.<정> 기회가 되는 한 강연에 나선다. 사람들이 현행 검인정 한국사교과서의 문제점을 너무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정화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제가 서양사를 전공했다는 점을 꼬투리 잡으면서, ‘국사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잘난 척 한다’는 식으로 비난을 하는 경우가 있다. 제 강연 동영상에 대한 댓글을 봐도 이런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건 말이 안 된다. 역사학이 따로 있고 국사학이 따로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 요즘 역사교과서 논란을 지켜보시면서 느낌이 남다를 것 같다.<정> 책 두 권 냈고, 논문도 썼고...모두 역사교육에 관한 건데, 사람들이 전문가로서 조언을 하면 좀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조언을 구한다면서 자기 말만 하는 경우가 있다. 자료를 줘도 그 자료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답답하다.
<인> 미국사를 전공하셨고, 논문 가운데 미국 역사표준서 논쟁과 관련된 것도 있다. 교수님의 미국 표준서 논쟁을 소개한 기사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안다. 미국 표준서 논쟁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정> 미국 표준서 논쟁 관련해서 자료를 좀 달라고 해서 줬더니, 제가 설명한 것과는 딴판으로 기사를 내는 경우가 있었다.
미국의 표준서 논쟁은 1994년 일어났다. 역사 표준서를 만드는 과정에 미국에서도 좌파 교수, 교사들이 참여하면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외면하고, 흑인 노예 등 부정적인 역사만을 강조했다.
미국에서도 논란이 됐다. 문제가 커지면서 (연방)상원에서도 논의를 했는데, 당시 상원 정당별 의원 수가 공화당 52명, 민주당 48명이었다. 정원 100명 중 딱 2자리 차이였다.
그런데 논의를 하다 보니, 표준서가 너무 반미국적이란 사실을 의원들이 알게 됐다. 이런 표준서로는 도저히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표준서 폐기 결의안 표결에 들어갔는데, 당리 당략을 떠나 찬성 99표, 반대 1표의 압도적인 결과가 나왔다.
미국 정치권과 사회가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당적이나 정치적 이념을 떠나서 반국가적이라고 할 때는 하나로 뭉친 것이다.
[편집자 주]‘미국의 표준서 파동’과 ‘한국의 준거안 파동’
美, 20년 전 뒤틀린 자학사관 극복...
韓, 친북-반국가적 민중사관이 역사교육 장악 -
1994년 미국에서는 현재 대한민국이 겪는 것과 매우 흡사한 역사교과서 관련 논쟁이 벌어졌다.
이른바 미국 역사표준서 논쟁이 그것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학교의 교육수준을 끌어올리자는 목표 아래, 주요 5개 과목에 대해 표준서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표준서는 일선 학교가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그 기준을 담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역사 표준서를 둘러싸고 이념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역사 표준서의 편향성 논란은 그해 10월 20일 월스트리트저널이 게재한 한 편의 기고문이 계기가 돼, 사회적 현안으로 떠올랐다.
문제의 기고문은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의 부인인 린 체니 국립인문학기금 전 의장이 쓴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이란 칼럼이었다.
이 글에서 린 체니는 당시 미국의 고등학생들이 배우던 역사교과서의 ‘반아메리카적’ 서술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린 체니는 당시 역사교과서가 건국대통령이자 국부인 조지워싱턴을 홀대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의 헌법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린 체니는 역사교과서가 미국의 영웅인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은 가르치지 않으면서, ‘매카시즘’은 19번이나 언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후 표준서의 내용을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진영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부분까지는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그러나 닮은 부분은 여기까지다. 미국의 정치권과 학계는 이후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1995년 1월 18일, 당시 공화당 소속이었던 슬레이트 고턴 연방상원의원은 역사에 길이 남은 연설을 통해, 미국의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도록 가르치는 표준서의 폐기를 주장했다.
“우리 아이들이 미국의 역사와 관련돼 무엇을 더 중요하게 배워야 합니까? (건국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입니까 아니면 (TV만화 주인공인) 바트 심슨입니까”
고턴 의원은 “역사 표준서는 반아메리카적이라 과도한 표현 몇 개를 고쳐봐야 소용이 없다”며, 표준서의 폐기를 역설했다.놀라운 일은 그 뒤 일어났다. 정원이 100명인 미국 연방 상원의 당시 정당별 의석수는 공화당이 52석, 민주당이 48석이었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민생을 협박의 도구 정도로 여기는 한국 정치의 수준에서 본다면, 결과는 뻔했다.
그러나 미국 의회는 당리와 당략이 아닌 국익을 선택했다. 당시 연방 상원의원 100명 중 역사 표준서 폐지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사람은 99명, 반대는 단 1표에 불과했다. 미국 연방 상원은 당적을 초월해, 자랑스런 미국의 역사를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자는 고턴 의원의 호소에 응답했다.
이후 미국의 역사교과서에서 자국의 역사를 귀태(鬼胎)의 역사로 비난하는 행태는 자취를 감췄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과 학계, 국민들 모두가 좌편향적 자학사관에서 벗어나 긍정의 역사를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자는 지적에 공감을 표한 결과다.
한편 한국은 미국에서 역사표준서 논쟁이 벌어진 1994년 이른바 ‘준거안 파동’을 겪었다.
그해 3월, 교육부가 6차 교육과정 국사교과서 개정을 위해 마련한 ‘국사교육 내용 전개 준거안’ 연구보고서 시안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당시 연구에 참여했던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는 이 보고서를 통해 ‘6·25 전쟁’을 ‘한국전쟁’으로, ‘대구폭동’과 ‘제주도 4·3사건’을 각각 ‘항쟁’으로 기술할 것을 제시했다.
서중석의 연구 부분이 지나치게 좌편향적이란 언론의 비난이 이어지면서, 최종 확정된 준거안은 상당히 완화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서중석의 비뚤어진 인식은, 교과서 현대사 부분의 서술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서중석은 준거안 시안에서,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연구 성과를 반영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미군정-대한민국의 건국-6·25-4·19-5·18-북한의 역사 등 현대사 전반에 걸쳐, 기존 교과서의 서술 내용 및 용어를 고치거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할 것을 주문했다.
역사의 주제를 민중으로 설정하고, 한국의 현대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치환한, 서중석과 같은 민중사학자들의 역사인식은, 이후 가랑비가 흙 속에 스며들 듯 한국사교과서에 녹아들었다.
그 결과 2002년 검인정 체제 아래서 등장한 6종의 <근현대사> 교과서를 시작으로, 친북-반대한민국적 민중사관은 한국사교과서의 기본 틀로 자리를 잡았다.
2002년 검정을 통과한 6종의 근현대사 교과서를 분석한 정경희 교수는, 그 결과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6종 모두 편향된 교과서지만, 그 중에서 금성교과서는 극도의 편향성을 드러냈다. 금성교과서는 1987년 이전의 모든 정권을 ‘독재’라고 비판하면서, 북한의 독재체제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남한에 대해서는 ‘이승만 독재-박정희 독재-40년 독재’ 등 13번이나 ‘독재’라는 표현을 썼지만, 북한의 김일성-김정일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독재’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6·25를 의도적으로 왜곡해서 북한의 남침 책임을 희석시키고, 대한민국의 성공과 성취는 부정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인> 미국의 표준서 파동과 현재 한국이 겪는 상황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미국의 표준서 논쟁은 통합 단일 국가 안에서, 사상적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야말로 역사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대한민국을 반대하기 위한 반국가투쟁이다. 목적이 그렇고 내용이 그렇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국가 파괴에 저항하기 위해 국가가 스스로 전면에 나서야만 하는 것이다.역사전쟁이나 교과서, 학문적 전쟁이 아니라, 국가파괴행위를 막기 위해 국가가 할 수 없이 국정화라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간첩단보다 몇 천배 더 위험한 것이 반국가교육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른 선진국 사례와 전적으로 다르다. 그야말로 국가 보위전쟁이다. 그렇게 봤을 때, 지금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 지금 말씀하신 내용 중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제가 첫 번째 <한국사교과서 어떻게 편향되었나>에서 발표한 것처럼, 남00 교수라는 분이 1988년 국사 교과서를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꾸자고 주장하면서 쓴 논문 중에 ‘고등학생은 민중의 기간부대가 될 자원’이라고 한 부분이 있다.
민중사학자가 한 주장인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 경기 통진고 학생이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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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위험성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설마 그렇게 되겠어?'라고 믿지 않았지만, 실제로 이렇게 입증이 됐다.2002년부터 검인정 근현대사 교과서를 통해 그런 교육이 이뤄졌다. 교육현장에서 벌써 그런 교육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고등학생을 타겟으로 했던 그 사람들 입장에선 성공한 거다. 그들의 바람대로 기간부대를 키워낸 것이다.
단순히 검정제도를 보완해서 수정될 문제가 아니다. 국가 차원에서 결단을 해서 국정으로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말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국정을 결단한 건 잘한 일이다.
<인> 집필자 공모가 끝났는데? 정 박사님은?<정> 그 얘기는 꺼내고 싶지 않다. 새누리에서 강연오라는 것도 일체 안 갔다. 특정 정당에 치우치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지난 4년 동안 교과서 문제만 매달린 제 연구가 빛이 바랜다. 집필진이나 정치적인 것은 물어보지 마시고.
<인>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지식인사회의 반응이 흥미롭다. 어떻게 보시나?<정> 좌파지식인들이 문제다. 국정으로 가면, 그 사람들에게는 교과서를 장악할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다.
저항을 위해 집회를 한다고 한다. 광우병 때처럼 일반인들을 동원해 할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좌파에 대항하는 (우파)지식인들이 글을 쓰는 경우가 없었는데, 교과서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 현실을 제대로 보는 지식인들이 등장했다고 본다.
이번에 장신대 김철홍 교수의 글은 대단한 파장이 있을 것으로 본다. (친북)좌파세력이 마치 진보세력처럼 포장돼 있다 보니, 그쪽을 지지하는 사람도 상당히 있는데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통해 ‘좌파가 진보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고 본다.
많은 분들이 분명한 의지를 표명하더라. 김철홍 교수도 이 문제 때문에 일부러 교과서를 사서 보셨다고 한다. 이분 말고도 교과서 문제가 나오니 도대체 교과서가 어떻길래 그러나 하시면서 국사교과서를 저에게 보내달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상당한 변화를 느낀다.
광우병 때와는 지식인사회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고 피부로 느낀다.
속칭 좌파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국가가 하는 것은 다 나쁘다’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이것이 몸에 배면서 권위주의 정권을 벗어났는데도 ‘국가는 무조건 나쁘다’는 그릇된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런 그릇된 인식 때문에 반정부운동이 반국가운동으로 변질된 것이다.
한편으론 모든 걸 국가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행태도 있다. 정작 자기 자신은 국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무슨 사고라도 나면 전부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국가개념의 전도‘가 일어났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국가의 역할 및 의미와 관련돼 지식인들의 새로운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인> 속칭 진보진영은 전교조와 전국역사교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등을 통해 이른바 대중용 역사교과서를 많이 출간했고, 그게 국민들에게 크게 영향을 줬다.비뚤어진 역사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대중용 역사서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정> 대학에서 베트남 전쟁을 조사해보라는 과제를 주면, 돌아오는 답이 한결 같다. 모두 베트남과 미국이 싸운 전쟁이라고 한다.
공산화된 북베트남에 맞서 싸운 월남의 존재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다시피 했다. 베트남 전쟁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였던 월남과 공산정권이 장악한 월맹 사이의 전쟁이었다. 이렇게 볼 때 6.25와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월남과 월맹의 이야기는 온데간데없이, 베트남 사람들이 똘똘 뭉쳐 미국과 싸운 전쟁처럼 묘사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베트남 전쟁을 조사하기 위해 네이버를 치면 특정한 백과사전 등이 뜬다. 그 내용을 보면 기가 막힌다.
지금 잘못된 역사교육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6.25도 한민족이 똘똘 뭉쳐 미국과 싸운 전쟁이라고 가르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벌써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는 교수, 교사, 학원강사들이 있다. 6.25를 ‘한국전쟁’이라고 바꿔 부르면서, 북한의 남침 사실을 쏙 빼고,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과 같은 식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긍정하는 역사 개설서를 맣이 써서, 그 내용을 일반 국민들이 무료로 자유롭게 검색할 수 있도록, 포털 사이트 등에 올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인>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논리로 속칭 진보에서는 ‘친일 독재 미화’라는 용어를 자주 쓴다. 원래 ‘친일’이란 용어는 북한에서 정적을 숙청할 때, 갖다 붙이던 주홍글씨인데.<정> 맞다. 북한은 70년 전부터 이승만 박사를 친일파로 매도했다.
황당한 건 북한의 남침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던 박헌영이 나중에 친미파로 몰려 숙청당했다는 사실이다.
박헌영이 어떻게 친미파인가? 박헌영은 반미 투쟁의 선봉에 섰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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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만 보더라도, 저들의 친일-친미 주장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를 알 수 있는데, 이런 내용을 알려주는 교과서가 없다.
한 가지 더 북한 김일성은 1946년부터 이승만 박사와 김구 선생을 친일파라고 정의했다.
당시 김일성은 연설을 통해 “김구는 해방 전엔 일본의 주구(走狗)였고, 해방 후에는 미제의 주구”라고 비난했다. 속칭 진보가 하는 수법이 이와 똑같다.
진보는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친일과 친미를 갖다 붙인다.
<인> 교과서 문제로 돌아가서. 교육부와 국사편찬위가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사업을 맡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 관료들이나 국편 구성원들이 과연 국정화를 제대로 추진할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정> 쟁점이 되는 건 현대사 부분이다. 즉 대한민국의 역사가 쟁점이다. 현대사가 독립된 학문의 영역으로 인정받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렇다 보니 현대사를 제대로 연구한 분이 거의 없다.
더구나 현대사는 워낙 복잡다단해 역사학자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한국사교과서를 제대로 만들려면 정치는 정치사를 전공한 학자가, 경제는 경제사를 전공한 학자가 각각 집필진으로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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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정치를 설명하면서 ‘수령 유일 체제’라고 하는데, 도대체 이런 게 어디 있나? 이건 검인정 집필진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썼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정치사학자가 집필에 참여했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표현이 나올 수는 없다. 이 문제는 교과서의 질을 업그레이드 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일례로 과거 검인정 교과서 중에 경제용어를 이해하지 못해 관련 한자도 틀리게 쓴 적이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역사학자가 경제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사를 전공한 학자가 썼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국사는 국사학자만 써야 한다는 독선적-배타적 태도를 고집하고 있다.
<인> 미국은 어떤가?<정> 미국은 우리처럼 특정한 이념을 가진 사람이 필진을 장악하는 일이 없다. 좌파역사학자들이 참여를 한다고 해도, 정치적으로 쓰지는 않는다.
일정한 포맷이 있어서 똑같은 분량으로 역대 대통령을 나열하고 있다. 그리고 국기(國旗)에 대한 설명이 잘 나와 있다.
특히 헌법과 관련된 부분은 한 장(章)을 따로 할애해서 아주 자세하게 교육한다.
우리도 한국사교과서에서 헌법, 국기(國旗)와 같이 국가의 기본 틀이 되는 것들을 정말 잘 가르쳐야 한다.
<인> 국사는 국사학자만 가르쳐야 한다는 폐쇄적 태도에 민중사관이 결합하다 보니, 오직 한민족만 이야기하는 측면이 있다. 세계사 속의 한국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정> 우리 민족만을 강조하고 우리 역사를 세계사와 단절시키는 태도를 일국사적 관점이라고 하는데, 물론 이런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다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 국사학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국주의다. 지구상에 마치 한국만 존재하는 것처럼 폐쇄적으로 쓰고 있다.
<인> 국사편찬위 인사가, 집필거부 선언을 한 분들을 삼고초려라도 해서 모셔오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정> 누가 필진에 참여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기준이 문제다. 잘못된 교육과정을 뜯어 고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우리 역사를 투쟁의 관점으로만 쓰기 때문에, 현재의 삶과 역사가 연결이 안 된다. 현재의 삶을 투영하지 못하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오직 민주화와 투쟁만을 강조하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분법적 구도로 보는 것도 문제다. 역사 교육과정 자체를 바로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