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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 KBS 기자협회장이 지난 16일 내부 편집회의에서 "세월호 청문회 뉴스를 메인뉴스(9시뉴스)로 편성해달라"는 다소 무리한 요구를 했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KBS 보도본부 국·부장단 측에 따르면 이병도 KBS 기자협회장은 이날 회의 석상에서 "오늘이 세월호 청문회 마지막 날인 만큼, 마무리하는 보도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9시뉴스에 보도하는 게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해당 취재부서장은 "현재 2명의 기자를 청문회장에 보내 취재하고 있다"며 "기존에 보도된 내용 이상의 새로운 팩트가 나올 경우 메인뉴스 아이템으로 발제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병도 기자협회장은 거듭해서 "9시뉴스에 보도하는 게 좋겠다"며 사실상 보도국 데스크를 압박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정지환 보도국장은 "아이템에 대한 기자협회장의 발언은 부장들에게 압박으로 비춰질 수 있고, 따라서 편집권 침해에 해당된다"며 이병도 회장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게 국·부장단 측의 주장.
문제는 언론노조 KBS본부 측에서 이튿날 '기자협회장의 의견제기가 편집권 침해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 "보도국 간부들이 편성규약 무력화를 위한 도발을 하고 있다"며 보도본부 국·부장단 측에 강력한 항의 표시를 하고 나선 것.
KBS본부는 "다른 어느 곳보다 자유로운 언로가 보장돼야 할 언론사 내에서 평기자 대표가 편집회의에서 보다 나은 뉴스를 만들기 위해 의견을 내는 것을 압박으로 느끼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게 과연 정상적인 언론사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방송법'에 근거해 제정된 '편성규약'을 무력화하려는 사측의 어떠한 도발에 대해서도 단호히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병도 기자협회장의 '월권 발언'에 이어 언론노조 KBS본부마저 보도국 간부들에게 책임을 묻는 입장을 밝히자 보도본부 국·부장단은 17일 공식 성명을 내고 "KBS뉴스의 발전과 공정한 보도를 위해서라면 어떤 대화도 할 수 있지만, 특정 아이템을 넣고 빼라는 식의 요구에는 앞으로도 결코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자협회장의 특정기사 보도 요구는 명백한 편집권 침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보도국 편집회의에서 일어난 사안에 대해 당사자도 아닌 본부노조가 성명을 낸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지만, 편집회의에 시비를 제기한 이상 보도국 국부장단으로서는 우리의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편집회의에 참석한 기자협회장의 월권성 발언은 과거에도 수시로 반복됐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심한 편이었다. 이에 보도국장이 "구체적인 기사를 9시뉴스에 채택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아이템 선정문제는 협회장이 간섭하지 말라"고 질타하기에 이른 것이다.
보도국 편집회의는 KBS뉴스가 내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뉴스제작을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회의체이다. 이 편집회의에 기자협회장이 참석하는 것을 놓고도 논란이 있는 터에 특정 아이템의 채택여부에 관여하는 것은 명백한 편집권 침해이다. 과문한 탓이지만 세계 어느 나라 언론사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양측이 공식 성명으로 '맞불'을 놓은 가운데, 이번엔 보도본부 국·부장단 성명에 참여했던 한 간부가 KBS 내부 게시판에 '사과글'을 올려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 17일 '기자협회장의 특정기사 보도 요구는 명백한 '편집권 침해'이다'라는 성명에 이름을 올렸던 임장원 경인방송센터장은 21일 KBS 보도정보시스템에 "기자협회장의 발언을 압력으로 느끼지 않았음에도 서명에 참여한 것이 부끄럽다"며 "부끄러움을 안고 부서장 역할을 수행하기가 어려워 이미 김인영 보도본부장에게 거취에 대한 생각을 말씀드렸다"는 글을 올렸다.
실제로 이튿날 KBS는 임장원 센터장을 평기자로 인사발령한다는 공고를 냈다. 후임 센터장으로는 이정록 기자가 선임됐다.
한편 KBS 기자협회장은 2년 전에도 사내 편집회의에서 "특정 아이템(천안함 폭침)의 기사가 과도하고, 호전적"이라며 총 12개의 리포트에 문제를 제기해 당시 국·부장단들을 분노케 했던 적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오전 편집회의에 참석했던 함철 KBS 기자협회장은 "천안함 3주기였던 2013년 3월 26일, 관련 리포트 숫자가 과도하게 많고 호전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다"며 KBS의 천안함 폭침 보도 행태를 맹비판했었다고.
이에 KBS 보도본부 국·부장단 일동은 이번 세월호 보도 논란 때와 마찬가지로 "편집회의 참석을 빌미로 9시 뉴스 편집에 간섭하려는 기자협회장의 시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며 "기자협회장이 편집회의에서 뉴스기획과 편집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편집권의 침해 정도가 아니라 초법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