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대한민국은 반봉건·반식민·반전체주의 혁명으로 이끌어 낸 결과
  • ▲ (왼쪽부터)남정욱 숭실대교수,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배진영 원간조선 차장,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왼쪽부터)남정욱 숭실대교수,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배진영 원간조선 차장,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기틀을 잡은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혁명'이 재조명 받고 있다. 조선시대 봉건체제와 일제 식민지배를 겪은 한반도가 당시 세계를 뒤덮고 있던 공산주의와의 이념전쟁에서 승리하고, 세계적인 자유국가로 발돋움 한 배경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선구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29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이승만은 산타였다'를 주제로 연속토론회를 개최했다. 

    "자유민주주의로서의 건국 - 자유의 역사를 시작하다"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토론회에는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이 사회를 맡고,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의 발제로 시작됐다.

    발제를 맡은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자유민주주의의 예외적 성공'이라고 밝히며 "지금을부터 140년 전인인 1870년대까지 우리 민족은 전형적인 봉건왕조체제였으나, 현재 대한민국은 경제·정치·사회·문화적으로 완벽히 변화했다"고 평가했다. 

    김 원장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준은 세계적 수준으로, 정치자유와 민주주의 수준에서 일본과 함께 서유럽국가와 미국, 캐나다 등과 유사수준에 있는 몇 안되는 나라"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사회만큼 종교에 선택에 제약을 받지 않는 나라도 드물다"며 "중국, 북한, 베트남 등 대부분 아시아 국가들이 종교의 자유가 금지되는 상황이고 일본의 기독교 인구가 불과 2% 전후이며 필리핀의 인구 대부분은 천주교를 믿는 것과도 큰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 ▲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선포식 사진ⓒ뉴데일리DB
    ▲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선포식 사진ⓒ뉴데일리DB

"폐쇄적 봉건왕조였던 조선시대, 일제의 식민통치, 내전의 혼란스러운 근대사를 겪고 어떻게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김원동 원장은 3가지 근거를 들었다. 

김 원장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활동으로 봉건왕조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를 만드는 등 투쟁에 나선 반봉건혁명가 김구 등과 함께 반식민, 반제국주의 투쟁의 최전선에 선 독립운동가  공산전체주의와의 투쟁의 최선봉에 선 열혈 투사이자 세계 반공주의 지도자 라는 점을 강조했다. 

"대한민국은 늦게까지 봉건왕조(조선)가 계속됐지만, 군국체제(일제 식민지배)와 공산주의라는 전체주의와의 이념전쟁을 이겨내고, 자유민주주의가 성숙한 세계적 강대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고 김 원장은 설명했다. 

나아가 김 원장은 "반식민, 반공산, 반전체주의 혁명을 주도한 세기적 인물"로 이승만 대통령을 평가하며, "그 결과가 대한민국의 건국이고 대한민국 자유민주체제의 확립과 성공적 정착"이라고 밝혔다. 

권혁철 소장(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은 "이승만은  이미 1923년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이라는 논고를 통해 공산주의의 허구성에 대해 냉철하게 비판했었고, 더구나 이승만의 이런 비판이 나온 것이 1920년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 6.25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정일권 소장. ⓒ뉴데일리DB
    ▲ 6.25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정일권 소장. ⓒ뉴데일리DB
    권 소장은 "당시 미제스나 하이에크 같은 소수의 자유주의 학자들만이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했다"며 "사회주의 몰락을 예견한 하이에크는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까지 듣던 시절이었다고 말해, 이승만 대통령의 세계관과 선견지명을 극찬했다.
    아울러 권 소장은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세우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었다"며 "이승만 대통령이 '6년 의무교육' 도입과 문맹퇴치운동을 중점적으로 실시하면서 민주주의가 정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은 "이승만은 왕조체제를 공화제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입각한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김 편집장은 "이승만은 한국의 독립방안을 미국에 직접 알리기 위해 한국 문제를 유엔에서 다룰 것과 남한에 과도 정부 수립 등 6개항을 제안했다"며 "이 건의서를 받은 국무부의 피점령국 담당 차관보 존 R. 힐드링(John R. Hilldring)장군은 이승만의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해 대한민국 건국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남정욱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는 "반 공산, 반 전체주의 혁명은 철저히 이승만의 공이다. 그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며 "공산주의자들과는 결코 같이 갈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은 다들 사회주의를 나라의 틀로 생각하던 시절 자유민주주의를 강제해야 한다고 믿었다"며 "토지개혁과 전 국민 교육, 국제사회와의 외교 등을 실시한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건국은 세계사의 명작"이라고 말했다.

  • ▲ 19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선포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데일리DB
    ▲ 19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선포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데일리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