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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해군 제7함대의 주축인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는 2015년 가을, 원자로 교체를 위해 미국 본토로 돌아갔다. 대신 같은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존 C. 스테니스’호가 그 빈 자리를 메워주고 있다.
‘존 C. 스테니스’호는 지난 1월 말(현지시간) 美워싱턴州 키스텝 기지를 떠나 한반도로 향했다. 중간에는 잠깐 남중국해에 들러 미국의 동맹국들을 안심시키기로 했다.
‘존 C. 스테니스’호는 지금 이 시간에도 13일 한반도 도착을 위해 동중국해를 열심히 항해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난 7일 국내 언론들이 “美핵추진 항공모함이 남중국해에서 中인민해방군 해군에게 포위당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게 사실일까.
지난 7일 다수의 한국 언론들은 中공산당 관영매체 ‘환구시보’, 친공산당 매체 ‘봉황위성TV’의 온라인판인 ‘봉황망’ 등에 나온 내용을 인용, “최근 남중국해에서 美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전투단이 다수의 中해군 군함에게 포위당했다”고 보도했다.
中공산당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중국 매체들은 ‘미국의 한 매체’ 또는 ‘美해군 사이트’를 인용해 “남중국해에 파견된 美핵추진 항모전단이 지난 1일 필리핀 인근 남중국해 동부 해역에서 작전을 하다 中인민해방군 군함들에게 포위를 당했다”고 전했다.
중국 매체들은 “스테니스 호 지휘관은 ‘이렇게 많은 중국 군함에 둘러싸인 것은 처음’이라면서 ‘우리는 통신 채널을 통해 우호적인 소통을 진행했다’고 말했다”며, 마치 美핵추진 항모 전단이 中인민해방군 군함들에 둘러 싸여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도했다.
한국 언론들은 中공산당 관영매체 등의 보도를 ‘사실’로 받아들여, 이 같은 내용을 주요 뉴스로 다루면서,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한국 언론은 홍콩 ‘성도일보’를 인용, “美해군이 공개한 당시 사진에는 中해군 전자정찰함인 851함이 근거리에서 정찰하고, 다수의 中해군 구축함이 美항모 주변에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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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매체들의 보도를 본 한국 언론들이 ‘포위’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美해군 브리핑과 언론 보도를 확인한 결과 ‘포위’라는 표현은 中공산당 특유의 ‘과장’이 잔뜩 들어간 ‘주장’이었다.
中공산당 관영매체 ‘환구시보’가 말한 사건은 지난 3월 1일(현지시간) 남중국해의 필리핀 영해 ‘루손 해협’을 통과해 中공산당이 자기네 영해라고 주장하는 파라셀 군도 인근의 ‘트리톤 섬’을 지나던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 소식을 처음 전한 美‘네이비 타임스’나 지난 4일 언론에 해당 사실을 직접 공개한 美태평양 함대(제7함대)의 브리핑을 보도한 美언론에 따르면, ‘포위’가 아니라 ‘접근 및 감시’ 수준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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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태평양 함대에 따르면, 당시 美해군 항공모함 ‘존 C. 스테니스’호는 남중국해 순찰 임무를 마친 뒤 제7함대 기함 ‘블루릿지’호와 이지스 순양함 ‘모빌 베이’와 ‘앤티텀’, 이지스 구축함 ‘청훈’과 ‘스톡데일’, 군수지원함 ‘레이니어’호와 합류해 한반도로 향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존 C. 스테니스 항공모함 전투단’의 일원인 이들 함대가 ‘트리튼 섬’에서 12해리 떨어진 해역을 지나갈 때 中공산당 소속 관공선(한국의 해양지도선과 비슷)과 구축함 등 모두 5척의 중국 선박이 나타나 ‘따라왔다’는 것이다.
美해군 측은 조우한 中관공선과 구축함의 구체적인 등급이나 제원 등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위협이 될 만한 수준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美해군은 CNN 등 美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선박과의 ‘조우’를 “이는 中공산당의 주장과 달리 남중국해 일대의 군사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라며 비판했을 뿐 이야기나 어조에서 ‘두려움’이나 ‘긴장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존 C. 스테니스'호 공보실에서 美해군을 통해 지난 7일 오전(현지시간)에 발표한 보도자료에서도 이런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존 C. 스테니스'호 항공단 전자전 비행대(VAQ-133) 소속 제이슨 포크 대위는 中인민해방군 군함들이 접근하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It feels exciting)"며 "이 일을 통해 배웠다"고 말하면서, 재미있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존 C. 스테니스’호와 이지스 순양함 2척, 이지스 구축함 2척, 군수지원함에다 美7함대 기함까지 포함한 함대를 위협할 만한 전력은 남중국해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中공산당 인민해방군 해군은 북해함대, 동해함대, 남해함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남중국해 일대에서 주변국을 상대로 ‘행패’를 부리는 부대는 남해함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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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에 사령부를 둔 中남해함대는 남중국해 일대의 파라셀 군도와 스프래틀리 군도 일대에서 주로 활동한다. 051급 구축함 3척, 051B급 구축함 1척, 052B급 구축함 2척, 052C급 구축함 2척, 052D급 구축함 3척, 장카이(054A)급 프리깃함 8척, 장웨이(053H3)급 프리깃함 3척, 지앙후(053)급 프리깃함 6척, 지앙다오(056)급 콜벳함 10척 등을 보유하고 있다.
전투함 수가 매우 많아 보이지만, 이들이 담당해야 하는 해역 면적을 따지면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11척의 구축함, 17척의 프리깃함, 10척의 콜벳함 중에서 美해군과 맞서 싸울 정도의 전투력을 가진 함정은 절반이 채 안 된다. 中남해함대 전체를 끌어 모아도 이 정도인데, ‘존 C. 스테니스 항모 전투단’을 따라간 중국 함선 가운데 구축함 또는 프리깃함으로 추정되는 전투함은 2~3척 뿐이었다.
그렇다면 중국 함선이 ‘포위’했다고 주장하는 ‘존 C. 스테니스 항모 전투단 일부’의 전투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일단 기함인 ‘블루릿지’호와 지원함인 ‘레이니어’호는 전투함이 아니니까 뺀다. 나머지 전투함들의 위력은 대충 이렇다.
‘존 C. 스테니스’호는 美해군의 주력 항공모함 ‘니미츠’급 가운데 7번째로 건조된 항모다. 길이 332.8m, 폭 76.8m, 배수량 10만 3,300톤급의 핵추진 항공모함으로 약 5,700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전 세계를 무대로 작전을 수행한다. 승무원의 식량과 생필품, 항공기 연료 때문에 보통 6개월에 한 번 기지로 복귀한다.
‘존 C. 스테니스’호 또한 다른 ‘니미츠’급 항모처럼 90여 대의 각종 항공기를 탑재하고 있다. 이 가운데 60여 대는 전투비행대 소속 F/A-18E 슈퍼 호넷으로 항모 반경 1,000km 내외에서 적을 요격하거나 공격할 수 있다. 4대의 E-2C 호크아이 조기경보통제기는 해상과 공중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함대에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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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함선들이 “美항모전단을 포위했다”고 주장하던 때 옆에 있던 ‘모빌 베이’와 ‘앤티텀’은 ‘타이콘테로가’급 이지스 순양함으로, 길이 173m, 폭 16.8m, 배수량 9,600톤의 대형 전투함이다. 8기의 RGM-84 하푼 대함미사일 외에도 122기의 수직발사기(VLS)에는 용도에 따라 개량형 SM-2 대공 미사일이나 BGM-109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다. 여기에 2대의 SH-60 시호크 헬리콥터는 다양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이들과 함께 있던 ‘정훈’함과 ‘스톡데일’함은 길이 155.3m, 폭 20m, 배수량 9,200톤의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으로, 순양함과 맞먹는 크기의 대형 전투함이다. 이들 또한 8기의 RGM-84 하푼 대함미사일 외에도 96기의 수직발사기에 SM-2 대공미사일 또는 BGM-109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 RUM-139 애스록 대잠 로켓을 장착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4척의 이지스 전투함을 거느리고 함재기 90대를 탑재한 항공모함을 과연 ‘기관총으로 무장’한 관공선과 2~3척의 구축함이 ‘포위’할 수 있을까. 아니, ‘위협’이라도 할 수 있을까.
양측의 전력을 단순 계산 해봐도 어느 정도 차이인지 알 수 있다. 1,000km 바깥에서부터 200개의 적을 감시하고, 24개의 목표를 동시에 공격 또는 요격할 수 있는 이지스함 4척의 방어벽을 뚫으려면, 산술적으로 적은 최소한 96번의 동시다발적인 미사일 공격을 서너 차례 이상 퍼부어야 한다. 中남해함대 소속 구축함과 프리깃함, 콜벳함이 보유한 대함 미사일이 아음속으로 비행하는 형태라는 점을 고려하면, ‘존 C. 스테니스’호가 탑재하고 있는 F/A-18E 슈퍼 호넷의 방어벽도 뚫어야 한다.
물론 이는 각 전투함마다 장착하고 있는 RIM-116 근접방어 미사일과 팰랭크스 CIWS, 레이더 재밍 장치 등은 뺀 계산이다. 中남해함대의 ‘마지막 자존심’을 위해 E-2C 호크아이 4대의 존재도 없다고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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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中인민해방군의 전투함이 호기롭게 美항모전단을 공격했다 치자. 하지만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할까. 中구축함(또는 프리깃함)의 공격을 막고 적을 격침한 美항모전단이 ‘응징 차원’에서 그들의 배후를 타격하겠다며 이지스 순양함에 탑재한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남중국해 인공섬에 ‘뿌린다’면 中공산당은 지난 5년 동안 공들여 만든 모든 인공섬 군사기지를 잃게 된다. 이래도 중국 함선들이 美항모 전단을 ‘포위’한 걸까.
‘들개’ 5마리가 코끼리 1마리와 호랑이, 사자 4마리에게 접근한 것을 과연 ‘포위’라 할 수 있을까.
2016년 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때문에 한국 정부가 미국에 방어용 ‘사드’ 미사일의 배치를 요구하자 中공산당은 한국 정부와 국민을 향해 ‘내정간섭’ 수준을 넘어 공갈협박 수준의 언사를 해대고 있다. 이 와중에 ‘친중파’들 또한 슬슬 드러나고 있다.
中공산당의 ‘허풍’은 아무런 의심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정작 한국의 ‘동맹국’이 공식 브리핑한 것은 찾아보지도 않는 것이 현재 한국 내 친중파의 본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