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에 누구보다 확고히 반대..그 어떤 투쟁도 마다하지 않아""이승만이 나서지 않았다면, 남한 공산화 막지 못했을 것"
  • ▲ 자유경제원은 '이승만은 산타였다' 세번째 토론회를 11일 서울 마포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개최하였다. ⓒ이종현 기자
    ▲ 자유경제원은 '이승만은 산타였다' 세번째 토론회를 11일 서울 마포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개최하였다. ⓒ이종현 기자
    20세기 초 전 세계가 공산주의에 열광하고 공산화의 물결이 한반도를 서서히 물들이고 있을 당시, 공산주의의 한계와 허구를 간파한 식민지 조선 청년 우남 '이승만'을 재조명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이승만은 산타였다' 세 번째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공산화 물결에 맞서다 - 공산주의와 타협은 없다'는 주제로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발제했다.

    류석춘 교수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시작된 공산주의는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새로운 정치 이데올로기라는 후광을 업고 전 세계로 전파 되기 시작했다"며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나라들은 물론이고, 동남아의 인도차이나 나아가서 아프리카와 남미도 이 거대한 물결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이러한 공산화의 물결에 남한이 공산화 되지 않았던 것은 이승만이 미국하고 까지 충돌을 감수하면서 공산주의에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류 교수는 당시 이승만에게 공산주의란 무엇이었을까라는 의문은 그가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직접 발간했던 '태평양잡지' 1923년 3월호에 이승만이 쓴 글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류 교수는 이 글의 내용을 압축해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고 밝혔다.

    공산주의는 옳고 그른 것이 각각 있다. 옳은 것은 세상사람들이 평등하다는 주장이다. 그른 것은 평등을 위해 재산, 자본가, 지식인, 종교, 국가를 각각 없애자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재산의 소유권을 없애면 모든 사람이 일을 안해 게을러지고, 기업을 하는 자본가를 없애면 경쟁이 없어 발전이 없고, 지식인을 없애면 지식의 하향평준화가 초래되고, 종교를 없애면 인간의 도덕심이 없어지고, 국가를 없애자는 주장은 공산주의의 본산인 러시아에게마저도 말로만 하는 실현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남 이승만 박사,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 中


  • ▲ 공산군 남침전쟁(6.25) 피란지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
    ▲ 공산군 남침전쟁(6.25) 피란지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
    토론자로 나선 나라정책연구원 김광동 원장은 "이승만은 대부분 저발전, 식민국가 지도자가 갔던 길과는 정반대로 공산주의가 인간기본권을 유린하는 전체주의이자, 일제보다 더 가혹하고 악독한 제국주의 라는 것을 확고히 인식해, 일관된 반공투쟁을 펼쳤다"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1940년대에는 공산주의의 본질이 또 다른 전체주의라는 것을 이해하고 대처하기는 극히 어려웠다"며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전체주의인 공산주의와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의 혜안과 리더십, 그리고 세계적 반(反)공산 연대투쟁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김 원장은 "결국 공산주의는 또 다른 제국주의였고, 제국주의 확장전쟁에 맞서 싸워 이기는 것이 이승만이 주도한 자주독립과 근대 문명국가의 길이었다"고 덧붙였다.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남정욱 겸임교수는 "지금은 허구성이 드러난 공산주의가 당시에는 희망이었다"며 "공산주의는 자유주의와 달리 형태가 제각각이므로, 각 나라마다 제 스타일에 맞는 것을 고안하거나 고쳐 쓰기에도 좋았다"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이승만은 그러한 공산주의의 함정을 파악하고 1923년 3월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며 김광동 원장의 주장에 동의했다.

  • ▲ 자유경제원 리버티홀 벽면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그림이 걸려 있다.  ⓒ이종현 기자
    ▲ 자유경제원 리버티홀 벽면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그림이 걸려 있다. ⓒ이종현 기자
    월간조선 배진영 기자는 "당시 선진국에서도 이렇게 명쾌하게 공산주의를 비판한 지식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며 "이승만이 1923년에 이미 공산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정확하게 논증한 것은 지성사적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 배 기자는 "건국 후 이승만 정권이 반공정책을 추진하면서, 반공주의가 오남용된 사례 또한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해, 당시 시대적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배 기자는 "특히 이승만 정권 말기, 대한반공청년단, 국가보안법 파동 등에서 보듯 반공주의를 악용하는 현상이 강해졌다"며 "이러한 부분도 언급해주는 것이 균형잡힌 역사 서술을 위해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조우석 문화평론가는 "지난 수 십 년 한국의 좌파 지식인 그룹은 이승만을 악마로 만드는 작업을 매달려 왔는데, 그 근본적인 이유는 건국과정에서 좌우합작을 노선을 거부한 것에 대한 응징"이라고 밝혔다.

    조 평론가는  '이승만과 네이션빌딩(김용삼(미래한국 편집장) 저)'을 인용해 "오늘날 한국의 좌파들이나 주사파들이 이승만에 대한 극악무도한 공격의 본질은 바로 이승만이 남한의 공산화를 막아내고 자유민주국가를 건국하고 지켜낸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조 평론가는 "미군정기 때 미군정의 노선은 이승만, 김구마저 배제한 중도세력에게 남한을 맡기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해서 좌익이 내미는 통일전선 정책과 호응했더라면 지금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아닌 전혀 다른 현대사의 그림이 그려졌을 것"이라 말했다.

  • ▲ 김일성의 6.25 남침을 적극 지원한 중국 마오쩌둥(왼쪽), 소련 스탈린(오른쪽). ⓒ뉴데일리DB
    ▲ 김일성의 6.25 남침을 적극 지원한 중국 마오쩌둥(왼쪽), 소련 스탈린(오른쪽). ⓒ뉴데일리DB

소설가 복거일 씨는 논평을 통해 "이승만이 없었다면, 남한이 공산주의 세력에 장악되었을 가능성이 결코 적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복거일 소설가는 "공산주의의 본질과 위협을 간파한 우남의 확고한 신념과 결연한 행동이 임시정부의 공산화를 막았다"며  "미군 군정기에는 남한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좌우합작을 통해 뿌리를 내리는 것을 억제했고,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이 생존할 수 있는 정신적 보루가 됐다"고 평가했다.

자유경제원의 주최로 연속해서 열리는 '이승만은 산타였다' 토론회는 오는 24일 '이승만 탄신 141주년'을 맞아, 서울시 마포구 자유경제원 리버티 홀에서 다양한 기념행사와 함께 네 번째 토론을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