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북 표심은 10년 식민 심판… 국민의당, 민심 겸허히 받들어야
  • ▲ 새로 단장한 전라북도 전주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의 모습. ⓒ전주(전북)=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새로 단장한 전라북도 전주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의 모습. ⓒ전주(전북)=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4·13 총선 선거운동기간 동안 전북 지역 취재를 위해 자주 찾았던 전라북도의 관문이자 전주의 관문인 전주고속버스터미널이 확 바뀌었다.

    한 달여 만에 다시 전주를 찾았더니 2층 매표소에서 빙글빙글 돌아 1층 대합실로 내려가야 해서 '달팽이관'이라는 비아냥을 듣던 구 고속버스터미널의 모습은 가림막 너머로 가려져 있었다. 그 대신 영풍문고가 입점하고 커피 전문점들이 세련되게 늘어선 신 고속버스터미널이 영업을 시작했다.

    관련 공사가 마무리되면 광주광역시나 성남 등 수도권 도시와 비교해도 전혀 꿀릴 것 없는 버스터미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총선 기간 중에 서부신시가지에서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하던 택시 안에서 "호남이 친노(親盧)에게만 표를 주다보니 변방으로 전락했는데, 호남에서도 다시 변방인 전북은 어떻겠느냐"라며 "(전주고속버스터미널) 이게 천만 명이 찾는 관광도시의 터미널 맞느냐"고 울분을 토하던 택시 기사의 말이 떠오른다.

    총선을 통해 전북도민의 손으로 친노·친문패권세력을 척결하자 먼저 도시의 관문인 고속버스터미널부터 바뀌었다. 물론 총선 결과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어 불과 한 달만에 바뀐 것은 아닐테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적지 않다. 이제 친노친문패권세력의 식민 치하에서 울분을 토하던 전북도민, 전주시민의 설움이 조금이나마 가셨을지 궁금하다.

    전북도민들이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는대로, 그동안 전북 발전이 정체됐던 것은 모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수장으로 하는 친노·친문패권세력 때문이다. 그들은 전북 정치의 구심점이 될만한 큰 인물이 나는 것을 가로막고, 다선 의원을 '물갈이'하거나 뿌리째 뽑아 지역구를 옮겨버리는 방식으로 제거해왔다.

    국민의당 정동영 당선인은 패권 세력의 등쌀에 동작으로, 강남으로, 다시 또 관악으로 부평초처럼 옮겨다녀야 했다. 전북이 낳은 경제통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도 친문(親文)에 학을 떼고 반대편 진영으로 넘어갔다. 더민주 정세균 의원은 당권과 대권을 능히 노릴 인물이지만, 친문 계파패권 공천에 의해 수족을 모두 잃은 신세로 전락했다.

    이러다보니 전북의 이익을 중앙에서 대변할 인물이 사라졌다. 더민주 소속의 전북 의원들은 그저 공천권을 쥔 친문패권세력의 눈치만 보며 벌벌 떠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송하진 전북도지사가 17일 전북도지사 집무실에서 본격 회동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송하진 전북도지사가 17일 전북도지사 집무실에서 본격 회동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전북의 발전이 멈춰 있었던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 칭하는 이유는 10년 전인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치러진 5·31 지방선거에서 전북은 전국 16개 광역시·도(당시) 중 유일하게 열우당 도지사를 당선시켰다. 이 때문에 친노패권세력에게 만만히 보이기 시작한 전북은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되고 홀대받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4·13 총선에서 전북도민들은 지역구 10석 중 7석을 국민의당에 몰아주며 친노·친문의 어두운 10년 식민지배를 청산했다. 지역 정가의 관계자는 "전주의 관문이 바뀐 것은 시작일 뿐"이라며 "이제 모든 것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에 찬 어조로 기대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도백(道伯) 송하진 전북도지사가 아직 친노·친문·운동권 정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신당인 국민의당이 창당한지 두 달만에 '녹색 폭풍'을 일으켜 호남의 의석을 석권했지만 지자체장은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을 위시해 여전히 더민주에 당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대로는 의정과 행정 사이에 엇박자가 우려된다.

    정기국회가 개회하고 예산안 심사에 돌입하기 전에 호남 지역 광역자치단체장들이 거취를 결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송하진 지사의 '결단' 여부도 관심사인 가운데, 17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회동에서 송하진 지사가 국민의당을 상징하는 녹색 넥타이를 매고 나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날 안철수 대표와 송하진 지사는 공교롭게도 '신당'을 주제로 말문을 열었다. 송하진 지사가 "나와 본지 2년된 것 같다"고 운을 떼자, 안철수 대표는 "3년 됐다"며 "(전주)시장 하고 있을 때, 내가 따로 신당을 만들려고 할 때 만났다"고 화답했다.

    광야에서 신당을 만들려고 악전고투하고 있던 사람과 기초자치단체장이었던 사람 사이의 3년 전의 만남과, 원내 38석의 의석을 가지게 될 번듯한 제3당 대표와 광역자치단체장인 사람 간의 지금의 만남은 느낌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정치적인 의미와 파장도 전혀 다르다.

    안철수 대표와 송하진 지사가 이른바 '탄소법'(탄소소재 융복합기술개발 및 기반조성지원법)과 넥타이 색깔, 관광산업 진흥 등을 놓고 환담하는 사이, 정동영·유성엽·박지원 등 호남 지역 정치인들은 송하진 지사의 '결단'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정동영 당선인은 "(국민의당) 전북도당의 지금 최대 과제는 송하진 지사를 영입하는 것"이라고 했고, 유성엽 의원은 "넥타이도 국민의당 색깔로 한 걸 보니 마음이 상당히 움직이고 있는가보다"고 흔들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행동으로 보이라"고 거들었다.

  • ▲ 국민의당 지도부와 송하진 전북도지사가 17일 전북도지사 집무실에서 회동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천정배 공동대표, 안철수 상임공동대표, 송하진 전북도지사, 정동영 당선인. ⓒ뉴시스 사진DB
    ▲ 국민의당 지도부와 송하진 전북도지사가 17일 전북도지사 집무실에서 회동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천정배 공동대표, 안철수 상임공동대표, 송하진 전북도지사, 정동영 당선인. ⓒ뉴시스 사진DB

    송하진 지사가 '결단'한다면 친노(親盧)의 낡고 어두운 잔재를 호남에서 쓸어내 도 경계 밖으로 추방하는 역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안철수 대표 등 국민의당 지도부가 전라북도에 보다 진정성 있는 행보를 통해 다가가고 애정을 보여야 한다. 자치단체장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민심이기 때문이다.

    나름 공을 들인다고 하지만 전북 민심은 아직 반신반의하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전북은 여전히 국민의당과 친노·친문패권세력 사이에서 '스윙 스테이트'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이 지역 정가의 분석이다.

    안철수 대표 등 국민의당 지도부가 전북을 자주 찾는다지만, 결국은 서울에서 광주를 오가는 사이에 오며가며 들르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는 시선도 있다. 이날 전북도의회 기자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이와 같은 지적이 나왔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화들짝 놀라 "이번에 전북에서 1박 2일 제대로 머무르려고 했지만 갑자기 이러한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광주로 가는 길에 들르는 것으로 일정이 축소된) 그러하게 됐다"며 "꼭 그렇게 광주 가면서 들른다고 생각하지 않아줬으면 좋겠고, 우리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해명했다. 안철수 대표도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것을 이해바란다"고 호소했다.

    해명은 이뤄졌지만 전북이 워낙 오랫동안 패권 세력에 의해 이용당해왔기 때문에 말이 오가는 것만으로 납득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 앞으로 국민의당 지도부가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거가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호남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둥 호남을 헌신짝처럼 버리려는 안철수 대표 주변 인사들에 대한 입단속부터 해야 한다. 또, 향후 지명직 최고위원 인선 등에서 '호남 홀대' 시비 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