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광주서 했던 '정계은퇴' 약속 지켜주세요"

'정계은퇴'를 약속했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5.18 행사장에서 본의 아니게 팬 사인회(?)를 개최하는 듯한 촌극을 벌였다. 수십 명의 광주 시민들의 요구에 사인(sign)은 물론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빴던 것. 

문 전 대표에 대한 호남 지지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정계은퇴 약속을 어기는 것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해명도 없는 후안무치한 행태라는 비판도 적잖이 나온다. 

문 전 대표는 17일 광주 금남로 일대에서 개최된 5.18 민주화운동 전야제에 참석해 정계 인사로는 맨 앞줄에서 행진을 하는가 하면 수십 명의 시민들과 기념 사진을 찍는 등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부각시켰다.

앞서 문재인 전 대표는 전날 전남 고흥 소록도를 방문한 뒤 이날 오후 전야제 부대행사가 열리는 광주 금남로로 이동, 현장에서 주먹밥 나눔 행사에 참석했다. 정계은퇴를 주장했던 문 전 대표가 광주에 모습을 드러내자 호남 민심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 시민은 문 전 대표 면전에서 "총선 때 광주에서 했던 약속을 지켜달라"고 거세게 항의를 했다. 문 대표는 특별한 발언을 하지 않았지만, 주변에 모인 시민들 사이에서 정계은퇴를 놓고 찬반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치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문 전 대표로 인해 광주가 두 개로 갈라지는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날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자 이런 현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옛 전남도청 앞에 이르러 문 전 대표가 바닥에 앉아 행사를 지켜보자, 한 중학생이 문 전대표에게 다가가 사인을 부탁했다. 문 전 대표는 이 학생의 티셔츠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줬다  

젊은 학생들은 물론 40대 여성 등 10여 명의 광주 시민들이 행사가 끝날 때까지 문 대표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문 전 대표는 이들에게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이라는 내용의 사인을 해준 뒤, 시민들과 기념 사진을 찍기도 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문 전 대표에게 집중되면서, 주변에선 불만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주변에 있던 한 시민은 "가만히 있는 사람(문 전 대표)을 왜 자꾸 사진을 찍느냐"고 거세게 항의했고, 또 다른 시민은 "조용히 좀 합시다. 문재인 화이팅"을 외치며 문 전 대표를 옹호했다.

현장에 있던 한 시민은 이에 대해 "이 자리가 숭고한 5.18의 정신을 추모하는 자리이지 누구 개인의 사인회 현장이 아니다"며 "민주당을 외면하고 국민의당을 택한 게 호남 민심인데, (문 대표는) 정계은퇴 약속을 지키는 게 도리"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문 전 대표에 대해 "유일한 야권의 희망"이라고 치켜세운 뒤 "대선 후보 1위인 문재인을 지지하는 호남 시민이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광주의 한 음식점에서 광주·전남 지역 낙선자들과 가진 만찬에서, 지난 4·13 총선에서 더민주의 호남 참패에 대해 "선거결과에 도움을 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피해가 된 것 같다.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문 전 대표는 4.13 총선 닷새 전인 지난달 8일 광주를 찾아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저는 미련없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광주 선거에서 국민의당에 지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 더민주는 호남에서 28석 중 겨우 3석만 건지며 참패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전 대표는 자신의 거취에 대한 입장 표명도 없이 "호남 민심이 저를 버린 것인지는 더 겸허하게 노력하면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문 전 대표가 5.18행사를 기점으로 스리슬쩍 야권 전면에 나서 정치행보를 재개하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문 대표를 향한 정계은퇴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