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춘 보훈처장, 유족 거센 항의에 발길 돌려
  •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 등 소속의원들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 등 소속의원들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국민화합은 고사하고 막말과 고성이 난무하는 격한 갈등의 현장이었다. 18일 '5·18 정신으로 국민화합 꽃피우자'는 주제로 열린 '제 36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하나에 국립 5·18 민주묘지 행사장은 난장판이 됐다. 기념곡 지정 및 제창을 요구하는 5·18 유족회 등 일부 시민단체 회원들이 정치권 인사들을 향해 격한 욕설과 고성을 지르면서다. 이런 게 진정 광주의 정신인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국립 5·18 민주묘지 주변에서는 기념식이 시작되기 직전부터 곳곳에 충돌 양상이 나타났다. 하얀 소복을 입은 5·18 유족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은 행사장에 입장한 당정 관계자들에게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회원들은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고성을 내지르는 것은 물론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등 정치인들을 향해 "(임을 위한 행진곡)제창도 못하게 하느냐"고 고함을 질렀다.
  • ▲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 결정에 항의하는 유가족들에 의해 발길을 돌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 결정에 항의하는 유가족들에 의해 발길을 돌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특히 황교안 국무총리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을 향한 항의가 극에 달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제창 불가 결정을 내렸다는 게 이유였다.

    이들은 오전 9시 55분 쯤 박 보훈처장이 도착하기 전부터 자리에 부착된 박 처장의 이름표를 떼내기 시작했다.

    박 처장이 행사장에 도착하자 이들은 주변으로 몰려들며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 "XX 당장 나가라" "사퇴하라"고 소리를 지르며 박 처장을 밖으로 내몰았다.

    단체들의 위협적인 항의에 경호원들은 "긴급지원"을 연발하며, "밀지마세요"라고 소리쳤고, 박 처장은 결국 참석을 포기한 채 차량을 타고 국립5·18민주묘지를 떠나야만 했다.

    박 처장은 차량에 탑승하기 직전 기자들과 만나 "저를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박 처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 결정과 관련,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다. 국민의 의견을 들어서 결정하는 것이지 특정 개인이 독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항변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정부 기념식이 진행되는 5·18 추모탑 앞에서도 계속됐다. 행사 직전 황교안 국무총리가 입장하자, 휠체어를 탄 참석자와 흰 소복을 입은, 유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고함을 질렀다.

    항의로 인해 황교안 총리의 착석이 지연되자, 기념식장 악단을 지휘하던 지휘자도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며 한없이 입장 음악을 길게 늘여 지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소란이 쉽게 가라앉을 조짐을 보이지 않자, 10시 정각에 기념식은 그대로 강행 시작됐다. 국민의례가 선언되고 국기에 대한 경례가 이어지면서 소란은 겨우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 와중에 원만한 기념식 진행을 위해 노력해야 할 총리실 수행원과 경호원들은 보도라인을 둘러싸고 취재진과 시비를 벌여 참석자들의 눈총을 받았다. 총리의 입장과 착석을 앞두고서도 총리의 동선과 무관한 취재진 쪽에서만 오가며 신경전을 벌인 것은 총리실의 미숙한 일처리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일시 소강 상태를 보이던 장내 소란은 10시 20분 무렵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이 끝나자 다시 한 번 폭발했다. 예년보다 식순이 축소된 가운데 기념식의 종료가 선언되자, 일부 참석자들은 감정이 격앙돼 내빈석으로 뛰어나왔다.

    이들은 이미 자리를 빠져나간 황교안 총리 대신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 의원들에게 거세게 삿대질을 하며 항의를 이어갔다. "당신들은 뭣했느냐" "이럴 것이면 총리는 왜 불렀느냐"며 내빈들에게 거세게 달려들고 식순 축소에 항의하는 참석자들 탓에 하마터면 큰 안전사고가 날 뻔 하기도 했다.

    추모탑에 헌화·분향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과 내빈석에 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의원들, 그리고 항의자들이 한데 엉키면서 사람들이 쓰러지고 넘어지는 소동이 발생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자 이번엔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 등이 돌출행동을 선보였다. 이들은 이날 황 총리의 기념사 도중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행사장 밖에서도, 기념식이 끝나고서도 갈등의 연속이었다. 광주광역시의회 의원들은 기념식에 불참한 채 밖에서 침묵시위를 벌였고, 한쪽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전주가 흘러나오자 보수단체들이 일제히 자리를 뜨며 항의의 의사를 표했다.

    유족 및 단체 회원들의 항의가 도를 넘어서자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의원들과 함께 기념식장에 참석한 지지자들이 이들에게 달려들어 "그런 항의는 전두환이에게나 가서 하라"고 몸싸움을 벌이는 등 제36주년 5·18 기념식은 공식 식순이 끝나고나서까지 목불인견의 장면이 연출됐다. 

    고성과 갈등으로 얼룩진 제36주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 진정한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새기며 국민화합을 꽃피우기에는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다는 지적이다.

    여권 관계자는 5월의 갈등이 반복되는 현실에 대해 "본질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느냐 합창하느냐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며 "오래 전부터 쌓여 온, 정부를 향한 그들의 불신과 분노가 핵심"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