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측 역사학계, 언론계, 지식인사회는 어떻게 이처럼 조용한가

도올 金容沃(김용옥)의 위험한 역사 강의

최응표 뉴데일리 고문 | 최종편집 2016.07.09 18: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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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金容沃(김용옥)의 위험한 역사 강의

최 응 표 / 뉴데일리 고문 (뉴욕에서)


6.25 해석의 문제

 며칠 전 우연히 도올 김용옥의 ‘역사 강의’를 You Tube를 통해 보았다(전남 광주 강연). 강연 내용은 6.25에 관한 것이었다.

도올의 6.25에 대한 원인 분석은 자신의 말대로 철학적 사유에 바탕을 둔 접근법인지는 모르나 어떤 면에서는 전교조 이상으로 위험한 역사 해석으로 들렸다.

우선 6.25는 1950년 6월 25일이 아니라 1945년 8월 15일에 일어났다는 것과, 북침이냐, 남침이냐를 가지고 6.25를 말한다면 6.25자체가 철학적으로 의미가 없으며 그런 역사는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근, 현대사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에게는 무척 헷갈리는 말이다.

그는 명치유신에서 8.15해방기간의 일본 제국주의 100년이 뿌려놓은 전쟁불씨와 1945년 8.15로부터 1975년 월남에서 미군이 철수할 때까지의 동아시아 30년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6.25를 봐야 하며, 6.25는 일본제국주의와 미국 제국주의의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100년과 동아시아 30년 전쟁이 6.25의 원인(遠因)의 하나는 될 수 있겠으나, 6.25와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되며,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제국주의의 합작품이라는 그의 접근법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도올의 철학적 접근법은 결과적으로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에게 면죄부를 주는 역사적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6.25전쟁은 현재진행형이며 우리에게 극심한 정신적 혼란과 국가적, 민족적 고통을 안겨 주고 있다. 그런 전범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일반 국민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철학적 접근법(또는 해석법)을 들고 나와 6.25 인식에 혼선을 더하는 역사 강의는 아직 가치판단기준이 확고하게 정립돼있지 않는 젊은이들(특히 중, 고등학생)에게는 毒이 된다는 말이다.

6.25는 다각적인 공평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본인의 접근법에 따라 일본 제국주의 100년과 동아시아 30년 전쟁을 말한다면, 냉전(冷戰) 후에 밝혀진 새로운 자료들을 근거로 해서 스탈린의 세계 공산화 전략, 좀 더 자세히는 스탈린의 모택동 견제와 김일성의 한반도 적화통일 야욕이 맞물린 공산세력의 침략이라는 말도 해야 다각적인 접근법이 공평하고 설득력을 가질 것 아닌가.

하지만 그는 6.25의 직접고리인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도올의 접근법은 북한식 역사교육에 가깝다는 점에서 위험하고 젊은이들의 6.25인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상해임시정부의 광복군과 모택동의 팔로군(八路軍)에 속해 독립운동을 하던 같은 독립군이 8.15 해방 후 광복군은 남한에 붙고 팔로군의 독립군은 북한에 붙어 서로 총부리를 맞대고 죽이고 죽인 것이 바로 6.25전쟁이라는 해석은 그렇잖아도 전교조의 역사왜곡으로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는 중, 고둥학생들에게는 毒이 되는 접근법이다. 6.25전쟁의 성격을 어떻게 중국(만주포함)에서 활동한 독립군이 좌우로 갈라진 결과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나.

냉정하게 말해서 모택동의 팔로군에 속했던 조선인(도올은 의용군이라 표현)은 일본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했다기보다는 모택동의 赤軍을 토벌하는 장개석 軍을 상대로 싸웠다고 보아야 한다,

8.15 후, 국공내전(國共內戰)이 격화되면서 모택동 자신이 일본보다는 장개석과 싸우는데 더 전력(戰力)을 쏟은 것이 역사적 사실 아닌가. 1936년 서안사변(西安事變)을 계기로 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진 다음에도 모택동은 장개석과는 달리 일본군을 상대로 싸우기보다는 자신의 군력확장(軍力擴張)에 더 열을 올렸으니 하는 말이다.

 

인민위원회와 제주4.3 무장폭동

1945년 9월 9일부터 미군정이 남한을 통치하게 되면서 미군정은 미군정 외의 어떤 정부형태의 정치조직과 단체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포고령을 내렸다. 당시의 남한 환경에서는 당연한 조치였다. 8.15 후, 북한에서는 소련군정이 스탈린 식 철권통치, 다시 말해 피로 다스렸기 때문에 김일성의 인민위원회 외의 정치활동은 일체 존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한에는 수 십 개의 정치단체가 활거(割據)하던 시기였다. 그 많은 정치단체가 저마다 정부행세를 한다면 남한 사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미군정의 포고령에 정당성이 있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박헌영의 ‘인민공화국’과 지방 인민위원회가 해체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군정과 인민위원회간에 자연히 충돌이 일어나게 되는 것, 김용옥은 구체적인 예(例)는 들지 않고 하지(미 군정사령관) 그 무식한 촌놈 개새끼(부적절한 표현이지만 김용옥의 표현그대로 옮긴다)가 인민위원회를 전부 빨갱이로 몰아 총으로 쏴 죽여 버렸다고 열을 올렸다. 한마디로 광주 시민에게 미국과 대한민국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심어주기 위한 선동 강의였다.

그리고 도올은 종북 좌경세력들의 논리대로 제주 4.3무장폭동을 ‘4.3 항쟁’으로 표현했다. 그 뒤에 다른 뜻이 숨겨져 있는지 궁금하다.

제주4,3무장폭동은 대한민국건국을 방해하기 위한 남로당의 무장폭동임이 역사적 사실로 밝혀졌는데도 김용옥은 끝까지 남아서 활동하는 제주인민위원회를 북에서 내려온 서북청년들 그 개새끼들이(도올의 표현 그대로)없애버렸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은 자칫 제주 4.3무장폭동을 제주인민위원회를 서북청년단이 해체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난 단순사건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래서 ‘위험한 역사 강의’라는 것이다.

 

미군정과 소련군정

도올은 또 미국은 한국에 대해 아주 무식했기 때문에 일본 항복 후, 오키나와에 있는 하지 그 무식한 촌놈을 군정책임자로 보내 지방인민위원회를 총으로 쏴 없애버린 반면, 소련은 오래전부터 한국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고 따라서 스티코프라는 전문가를 북한에 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식한 하지는 남한에서 좌익들의 정치활동도 인정했고, 좌우합작정부수립도 추진했다. 미군정기간 동안 우익진영 보다는 오히려 좌익들의 활동이 더 활발했고 극열했다.

반면 스티코프라는 전문가는 평양에 소련군정을 설치하고 가짜 김일성을 만들어 북한의 정치, 경제, 문화 일체를 스탈린의 전체주의 식인 피로 통치했다.

외견상으로는 김일성이 지도자처럼 돼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소련군정이 모든 것을 통치했다.
도올의 표현대로 완전한 지배자였다. 그런데 김용옥은 이런 진실을 일체 말하지 않았다.

스티코프가 북한의 절대 통치자(지배인)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대한민국 건국의 재인식’의 도진수 교수 논문 참조)

김구: 오늘(김구가 남북지도자연속회의를 마치고 평양을 떠나는 날) 조 선생(조만식)을 데리고 가고 싶으니 같이 가게 해주구려!

김일성: 아! 제 마음이야 얼마든지 같이 가게 해드리고 싶습니다만 어디 제가 무슨 권한이 있어요? 주둔군 당국(소련군정)의 양해가 있어야 됩니다.

이 대화내용은 북한이 완전한 소련의 위성국 상태임을 말해준다. 이렇게 보면, 평양에 와서 북한을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든 전문가 스티코프 보다는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활동을 허용한 무식한 하지가 우리에게는 오히려 복이 되지 않았는가.


박정희와 숙군(肅軍)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6.25직전에 국군내부에 조직돼 있던 남로당원 색출작업(숙군)은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이 적화될 수 있는 불씨를 미리 제거한 사건이라고 박수를 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김용옥은 숙군에 대해 대단한 원한과 분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정말 듣기 거북할 정도로 쌍욕을 섞어가며 분노를 토해 냈다. 숙군(肅軍)에 대해 왜 그처럼 깊은 원한이 사무쳐있는지 알 수가 없다. 부적절한 표현인줄 알지만 도올의 표현 그대로 인용한다.

“박정희는 사범학교 출신으로 황국신민이 되도록 가르치는 교육을 받은 자로서 선생노릇을 하다 만주로 갔으면, 김산(장지락-사회주의혁명가)처럼 혁명가가 되던지, 아니면 임시정부의 광복군이 되지 않고 만주 군관학교를 찾아간 이상한 놈이다. 그리고 돌아와 군대에서 남로당이 됐으면 여순사건에 책임을 지고 거기서 뒈지지 않고 신념을 배신하고 동료 남로당원을 팔아먹은 배신자다. 박정희 때문에 국군내의 남로당조직이 쑥대밭이 됐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6.25 전에 숙군을 하지 않았다면 6.25의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는 것이 역사적 평가다.

그런데 김용옥은 숙군으로 인해 軍내의 남로당이 쑥대밭이 되어 국군과 싸우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恨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전에 내가 알던 김용옥은 아닌 상 싶다.

나는 6.25 직전에 숙군작업을 매듭지었다는 것은 하늘이 준 기회이며 축복이라고 생각해 늘 감사하게 여긴다. 만약 6.25 전에 숙군이 이루어지지 않아 남로당 군인들이 총부리를 거꾸로 돌렸다고 상상해보자.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 아닌가. 그런데 도올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정상적인 대한민국 국민의 6.25에 대한 인식과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이해가 상반된 입장에 서있는 도올 김용옥의 역사 강의는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는 아주 위험한 강의다.

김용옥의 그런 저질 쌍욕과 막말로 청중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진행되는 역사 강의는 정서적으로도 어린 학생들에게 毒이 될 뿐이고, 역사인식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올 김용옥은 우리사회에서 저명인사다. 그의 말과 행동은 사회전반,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는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그의 역사 강의가 더욱 위험하다는 갓이다.

그런데 우익 측 역사학계, 언론계, 지식인사회에서는 어떻게 이처럼 조용한가.
모든 게 잘못돼도 한참 잘못 돌아가는 것 같다. 조국의 하늘이 언제나 화창하게 개일까?
오늘도 여전히 찌푸린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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