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인권 다루는 유엔과
    국제 NGO에 대한 모니터링 필요하다


    김미영 / 전환기정의연구원장( Transitional Justice Mission, Director)

  • 1994년 7월 30일,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49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그중에는 1979년 노르웨이 연수중 행방불명된 고교 지리교사 고상문씨와
    미국 유학중 행방불명된 전직 국회의원 아들 이재환씨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발표는 정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누구나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지독한 은둔의 공화국(Republic of Hermit)이었던 북한의 상황에 대해
    외부에서 실체적인 감각을 갖고 인식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우리가 이름을 아는 이웃이 억류되어 있다는 보도는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앰네스티는 명단 발표에만 멈추지 않았고,
    북한에 여러 차례 확인을 요청했다. 북한의 대답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정치범수용소는 없고, 납치가 아니라 자진 월북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조선중앙방송에 얼굴을 드러낸 고상문씨는
    “자신은 의거 입북 후 수용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리연구사로 일하고 있고
    재혼하여 새가족을 꾸렸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북한인권운동사에서 하나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고 보여진다.
    국제사면위원회로 번역되는 앰네스티는 사면(amnesty)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억눌린 자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애써왔고 이 사건을 통해
    북한에도 그 자유의 빛을 비추는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이면에는 그만큼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고상문씨를 뺀 대부분의 인물들은 행방조차 알 수 없었고,
    나중에 이재환씨는 정치범수용소에서 사망했다는 풍문이 흘러나오기는 했으나 확인조차 안 됐다. 무엇보다 고상문씨의 아내 조복희씨는
    남편이 유럽 연수를 떠났을 때 임신한 새댁이었는데
    혼자 낳아 기른 아이가 16살이 되도록 재혼하지 않고 기다렸다.
    조씨는 남편이 북한에서 재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시름하다
    앰네스티 발표 2년 후 고3이 된 딸을 두고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후로도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확대되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정작 ‘사면’을 받은 것은 북한 당국이었다.
    외부의 요구에 적당히 대응하는 방법을 익힌 것이다.
    물론 이런 비극적인 상황은 앰네스티 탓이 아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닌데 피해자들에게는 고통만 배가되었다.
    적어도 이 사건을 통해 북한의 인권문제가 얼마나 독특하고(unique), 선례가 없으며,
    민감한 영역을 갖고 있는지는 학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국제기구나 NGO라 할지라도 말이다.

    최근 앰네스티가 지난 4월 중국식당에서 일하다 탈북한
    12명 여성 종업원들의 인신구제 청구를 낸 민변의 입장에 동의하여
    우리 정부에 이들의 인신구제를 요청하는 성명서를 냈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제네바의 유엔 인권을 다루는 기관과
    한국에 설치되어 있는 북한인권 서울사무소 역시 민변의 입장에 동의하는 상황이다.

    고상문 부인 자살로부터 만 20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앰네스티는
    그동안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 인식도 연구도 없다.
    북한의 가족들과 탈북한 딸들이 처해 있는 특수한 상황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인권침해자 북한 당국의 의사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북한측 가족을 대변한답시고
    정작 탈북 여종업원 자신들은 대한변협 변호사를 통해 명백히 민변의 인신보호 청구에
    반대의사를 표했는데도 마치 우리 정부 당국이 이들을 납치했다는 식의 터무니 없는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탈북 여성들의 입장이 공식화되는 순간 자신들이든 가족들이든 사지로 몰릴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도저히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외국인의 시각이라고 해서 ‘중립’적인 것이 아니다.
    중립을 가장하여 무책임을 변명할 수 없다.
    북한의 극악한 인권상황에 대해 북한인권 COI 보고서만 숙지해도
    남과 북을 중립적으로 보겠다는 식의 말을 할 수는 없다.
    정보가 무한 공개되는 남한과 방문조사(on-site visit)조차 불가능한 북한의 인권문제가
    나란히 놓일 수 있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남한 정부를 적으로 두고 민주화 운동하던 시대의 패러다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민변과 같은 단체를 파트너로 하여 일하면서 온 인식의 위기가 아닌가 한다.

    7월 19일자 nknews.org는 한국에서 일하는 한 외국인 북한인권 운동가의 칼럼을 통해
    유엔 서울 사무소에 대한 비판이 북한인권 활동에 해를 끼친다고 말하며,
    13명 탈북 종업원들의 가족들을 북한에서 직접 면담하는 것이 왜 쟁점이 되는지 알 수 없고
    유엔 활동 범위에 속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복잡한 것은 알 수 없다”고 순진한 척 말하지만
    지금 12명(민변은 의도적으로 남성 지배인은 제외) 여성 종업원들에 대한 쟁점은
    범상한 북한인권 쟁점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유엔이든 국제 NGO든 이해해 보려 애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인권 COI 대표를 맡았던 마이클 커비씨도 북한인권운동가들과의 회합에서
    통합진보당 해산과 ‘이석기’ 전 의원 체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소회를 밝힌 적이 있다고 한다.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위해 서명을 하고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 보도를 보고 직접 노암 촘스키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히틀러 찬양을 형법으로 다스리는 독일에 대해 이해한다면
    히틀러 이상으로 인명 살상을 하고 현재도 그 살상이 계속되는 김일성 정권에 대해
    지지하고 찬양하는 활동을 불법시하는 한국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유태인 학자 촘스키 교수는 나의 서신에 몹시 당황스러워 하고
    “히틀러에 비견해 입장을 묻는 이상 아무 것도 답해 줄 수 없다(I am afraid I cannot respond to your questions any more than you would respond if someone asked you
    what you think of Hitler-Noam Chomsky)”고 바로 답장해 주었다.

    독일이 히틀러 찬양을 형법으로 다루는 까닭은 ‘인간의 존엄성’ 보장을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가 김일성 찬양자를 형법으로 다루는 이유도 같고, 그 이상의 이유도 있다.
    인간존엄성뿐 아니라 지금 당장의 생명권 보장, 안전보장을 위해서이다.
    왜 외국인이라고 해서 이렇게 심각한 한반도 문제에 대해 모르쇠를 미덕으로 삼는가?

    오랫동안 접근의 어려움을 빌미로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 상황을 방치해 왔다.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이 가까운 지금 시점에도 단지 접근이 어렵다는 이유 만으로
    지상 최악의 인권 상황이 방치되어 온 것은 인류의 수치다.

    바야흐로 북한인권에 관한 유엔의 진지한 결단,
    즉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설치,
    엄밀한 조사보고서의 발간, 유엔 차원에서 김정은의 ICC 제소가 거론되는 상황은
    국제 인권운동사의 쾌거를 넘어서서 하나의 ‘기적’이다.

    비팃 문타본, 마르주키 다루스만, 나비 필레이, 마이클 커비 등의
    훌륭한 국제인권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개선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같은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은
    우리가 이름을 모르는 숨은 공로자들의 노력일 것이다.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을 도운 유엔의 한 스태프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조사하면서
    눈이 붓도록 울고 다녔다고 한다.
    가슴으로 일한 스태프들이 유엔에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북한의 인권상황은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북한이 눈을 저렇게 가리는데 마음으로 가슴으로 봐야 하지 않겠나?

    무책임한 성명서로 그동안의 유엔과 국제 NGO들의 노력을 깎아먹는
    앰네스티와 서울의 유엔 인권사무소는 깊이 반성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얄팍한 지식, 관행이 된 프로토콜만으로 북한 문제를 다룰 수 없다.
    유엔 사무총장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 개선을 위해 애써 주셨으면 한다.

    유엔은 언제나 그저 겨우 망신만 주는 방식(naming and shaming)으로 접근하지 말고
    북한의 인권에 실질적인 개선이 있도록 ‘열정’을 가진 스태프들을
    서울 사무소에 배치해 주시기를 탄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