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키느냐 죽느냐(stand or die),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

     최 응 표 /뉴데일리 고문(뉴욕에서)
  • 한국국민은 왜 ‘怪談(괴담)’에 약하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양심을 마음속의 삼각형에 비유한다고 한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행동을 하면 이 삼각형이 돌아가며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이걸 계속 돌리다보면 모서리가 마모돼 나중엔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국민이 지금 그런 상태다. 良心이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비돼 있는데 善惡의 구별이 되겠는가. 일반 사회의 부조리, 부도덕, 불법행위와 마찬가지로 괴담도 양심의 마모현상에서 나온다. 양심이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사회라야 미래가 보장되는 것, 역사의 법칙 아닌가. 
    지금 한국은 2008년도의 광우병 망령에 휘둘려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국가사업(정책)에 ‘괴담’을 퍼트려 나라를 어지럽히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968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며 김대중이 만들어낸 경부고속도로는 ‘부유층의 전유물’이라는 괴담이 ‘원조’일 것이다. 
    김대중은 거기서 더 나아가 ‘광우병 촛불은 아테네 이후 최고의 직접 민주주의’라는 괴담까지 생산해 광우병 난동에 기름까지 부었다. 그 바이어스가 지금 사드 괴담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사회의 혼란과 불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국민이 괴담에 약한 것은 怪談(과담)을 듣는 귀는 무한대로 進化(진화)하고 있는 반면 眞談(진담-진실)을 듣는 귀는 한없이 退化(퇴화)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진실을 듣는 귀가 없는 사람에겐 밝은 마음이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양심이 마모돼 인간적 고통, 사회적 고통, 국가적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데 괴담과 진담(진실)을 어떻게 구별하겠는가. 善惡을 구별 못하니 괴담에 약해질 수밖에. 
    그래서 後漢(후한)의 王充(왕충)은 “선한 마음이 없는 자는 흑백을 분간하지 못하고 선악을 홍동하여 정치를 혼란케 한다”고 했다. 성주 군민들이 그렇다 기 보다는 괴담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국민들의 분별없는 마음(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미국이 하는 것은 무조건 나쁘고, 중국은 무서워서 알아서 기는 사대근성(노예근성) 탓이 아닌가 한다. 
    미국 앞에선 호랑이, 중국 앞에선 여우 
     북한의 눈치 보기도 모자라 이젠 중국의 눈치까지 보는 신세가 됐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국민정신이 이렇게 썩어있으니 중국으로부터 朝貢國(조공국) 취급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미국과 일본 앞에서는 호랑이처럼 당당하고 뻣뻣한 목이 중국 앞에만 서면 자라목처럼 움츠러드는 事大根性(사대근성)부터 뜯어고치지 않고는 필란드화(Finlandization) 현상(국가적 중대 사항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현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국제질서의 생리가 다 그런 것이지만,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가까이는 하되 믿어서는 안 되고, 의논은 하되 속아서는 안 된다. 북한과의 원조교제 쾌락에 빠져 몸집 값을 못하는 중국은 협력의 대상보다는 경계의 대상이다.
    2008년 신안군 앞바다에서 불법조업 하는 중국어선을 단속하던 우리해경 간부가 중국 선원의 흉기에 맞아 바다에 빠져죽은 참담한 사건을 기억하는가. 
    만일 미국漁船(어선)이 그랬대도 입 다물고 지켜만 보았을까. 지금도 중국어선의 행패에 대해 제목소리를 내는 집단이나 언론은 물론 북한일이라면 입에 거품을 무는 지식인 집단이나 개인도 찾아볼 수가 없다. 사대근성의 극치다. 이런 풍토가 바로 괴담의 진원지가 된다.
    어디 그뿐인가. 2008년 4월 올림픽 ‘성화 봉송’ 문제를 구실로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인 수 천 명이 서울시민을 두들겨 패며 서울 거리를 뒤집어 놓았을 때도 항의하며 촛불 드는 사람은 左든 右든 아무도 없었다. 미국사람들이 그랬어도 입 다물고 구경만 했을까. 
    이번 사드 문제도 그렇다. 미국이 아닌 중국이 관련된 문제라도 지금처럼 혁명하듯 폭력을 행사할까. 시위는커녕 나라가 떠나가라고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냉정하게 따져보자. 미국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고, 중국이 무엇을 그렇게 잘했는가. 미국 때문에 통일이 안 됐다는 말은 많이 하지만 중국 때문에 통일이 안 됐다는 말은 별로 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종북 좌경화의 길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의미다. 
    현명한 선택이 나라를 살린다
    고마움을 알고 부끄러움을 알면 마모된 양심은 다시 살아나고 사회는 정직해진다. 진실을 듣는 귀는 열리고 괴담을 듣는 귀는 닫혀 진다. 나라 살리는 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고마움을 모르고 배신의 시대를 살고도 번영을 누리는 국가와 민족을 보았는가. 
    사드 배치는 타협이 있을 수 없는 국가생존의 문제다. 누구의 눈치를 보고 누구와 합의를 거쳐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지난 19일 북한이 쏜 탄도미사일은 성주와 부산까지 사정권에 두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사드 반대운동을 벌이며 폭력을 휘두를 텐가. 
    미국의 실무담당자는 물론 전문가(국내외)들까지 나서서 사드의 無害(무해)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현재 한국에 떠도는 사드에 대한 오해(괴담)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실례를 들어가며 해명하고 있지만 북한식으로 짜여 진 괴담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오죽하면 지금까지 군사기밀이라 괌 언론에도 공개하지 않았던 괌의 사드기지까지 사드 레이더 전자파의 유해성을 검증하기 위해 괌을 방문한 한국 기자단에 공개했을까. 그만큼 사드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일, 동아일보와 뉴 데일리에는 괌이 지역구인 매들리 보달로 미 하원의원과 한국기자단과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매들리 보달로 의원은 성주 군민들이 레이더 전자파의 유해성 문제로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 듯 “사드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노출된)괌과 주민들을 보호하는 이로운 체계인 만큼 주민들은 사드 배치를 환영했다”고 했다. 
    이어서 “괌의 관광산업은 사드 배치 이후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다”며 “소음이나 전자파와 관련한 민원이 제기된 적도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드 배치 이후 괌에서 눈에 띄는 환경적인 영향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한국에도 마을 한복판이 아닌 고립된 장소에 배치한다면 환경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드가 배치된 지역에서 불임을 호소하는 이들이 속출한다>는 소리는 뭐고, <전자파 참외>는 또 무슨 소린가. 거기에 사드가 <중국 공격용>이라는 괴담은 어디에 근거한 소린가. 
    2008년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숭숭 뚫려 죽는다는 괴담이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지만, 지금껏 미국 소고기를 먹고 죽은 삶은 단 한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법의 심판을 제대로 받은 범법자나 단체는 없었다.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 이어지는 이유다.
    북의 지령 따라 움직이는 종북 좌경세력도 문제지만 중국이라면 오금을 못 쓰는 事大派(사대파)도 문제다. 이 둘은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행동한다.
    사드 배치문제가 공론화되자 중국 사대 파는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며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중국은 벌써부터 중국판 사드 레이더를 동북3성에 배치해 놓고 한반도를 철저하게 감시, 조준하고 있다. 그러면서 되놈근성 그대로 우리보고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중국 사대 파들은 이런 중국의 고약한 갑 질 행태를 아는가? 
    우리가 왜 그래야 하나. 아직도 우리를 100년 전의 朝貢國(조공국)으로 치부하는 되놈근성을 이번 기회에 바꿔놓아야 한다. 언제까지 질질 끌려 다닐 건가. 되놈들의 비위맞추기 여기서 멈춰야 주권국으로서의 위상을 세울 수 있다.
    성주 군민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 괴담과 거짓 선동에 현혹되어 진실을 외면하게 되면 성주 군민들의 위상이 저들의 홍위병 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1일 박근혜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친북, 친중 세력을 향래 “사드 배치 외에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부디 제시해 주셨으면 한다”고 했다.(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NewDaily)
    이어서 박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고심과 번민을 거듭해왔고, 사드 배치를 결단하게 된 것도 북한의 이런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해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왜 안 그랬겠는가. 대통령의 이런 고민과 고독한 결단을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사드 배치문제가 政爭化(정쟁화) 되고 있는 데 대해서는 단호한 어조로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대해서 우리가 분열하고 사회 혼란이 가중된다면 그것이 바로 북한이 원하는 장으로 가는 것”이라며 “모든 문제에 불순세력들이 가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또 “이번 배치가 결정된 지역의 여러분도 대화와 소통으로 최선의 해결 방책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란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항에 이해와 협조를 해주셔서 앞으로 안전한 대비책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란다”고 성주 군민에 대한 위로와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박대통령은 “요즘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면서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군 최고 책임자의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이고, 앞으로도 국민들을 지켜내기 위해 해야 할 것은 최선을 다해 지켜낼 것이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 지금은 정쟁으로 국력을 소모할 때가 아니다. 위기극복을 위해 국민의 역량을 하나로 모을 때다. 정쟁은 그 다음 일이다. 무엇보다 사드 배치 문제에도 광우병과 천안함 괴담 주동자들이 앞장서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이제 지키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서 선택은 전적으로 국민의 몫이다. 진실을 듣는 귀가 열려 국민의 양심이 국가적 고통을 느끼게 된다면 다 같이 살 수 있겠지만, 괴담 듣는 귀가 계속 진화돼간다면 대한민국은 여기서 멈추게 될 것이다. 선택은 국민의 양심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