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구인은 영장주의 위배로 위헌… 이웃 일본 국정조사 사례 타산지석 삼아야
  •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고영태 씨 등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사건의 핵심 증인들이 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에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고영태 씨 등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사건의 핵심 증인들이 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에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1~2차 청문회가 막을 내렸다. 대기업 총수들과 국정농단 의혹사건의 핵심 연루자들이 대거 증인으로 채택돼 기대를 모았지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는 지적이다.

    대기업 총수들이 출석한 6일의 1차 청문회에서는 국조특위 위원인 국회의원들의 자질 부족이 두드러졌다. 국정조사 대상인 국정농단 의혹사건과는 별 관련 없는 질문과 인신공격, 모욕성 발언을 쏟아냈다.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 해체 등 기업이 자율적으로 조직해야 할 내부 구조에 불필요하게 관여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는 7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해체나 전경련 탈퇴는 개별 기업이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며 "국정조사를 이용해 국회의원이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머리 굴리지 말라' '30분 동안 논할 수 있는 머리가 안된다'와 같은 인신공격을 남발하는 악습도 개선돼야 한다"며 "일부 의원들이 국정조사와 상관없는 내용을 질의하는 것은 월권이고 효율적인 국정조사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질타했다.

    7일 2차 청문회에서는 증인들의 불성실이 부각됐다. 국정조사 명칭 자체에 최순실 씨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데도 정작 최순실 씨는 출석하지 않았다. '최순실 없는 최순실 청문회'가 된 것이다. 동행명령장이 발부됐지만, 응한 것은 장시호 씨 한 명 뿐이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수십 년간 국록(國祿)을 먹은 사람답지 않게 "모른다"로 일관했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것이 거의 없었다. 이러한 국정조사를 생중계로 지켜본 국민들 사이에서 한숨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정조사 무용론이 다시금 고개를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회 국정조사의 실효성을 확보할 방안은 과연 없을까.

    이웃나라 일본에도 국정조사 제도가 있다. 일본국 헌법 제62조는 "(중의원·참의원의) 양원(兩院)은 각각 국정에 관한 조사를 행하며, 이에 관해 증인의 출석 및 증언, 기록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 제61조 1항의 "국회는 특정한 국정 사안에 대해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의 원형이나 다름이 없다.

    일본 국회는 이 헌법 조문에 따라 헌정 70년 동안 수십 차례의 국정조사를 행해왔다. 그러나 국회의 국정조사가 사건의 결정적인 실체적 진실을 들춰낸 적은 거의 없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가 연루돼 유명한 1976년의 '록히드 사건' 당시에도 일본 국회는 국정조사에 돌입했다. 이 때 핵심 증인으로 출석한 오사노 겐지(小佐野賢治) 국제흥업 사주는 성명과 직함을 묻는 질문을 제외한 모든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로 일관했다.

    결국 국정조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를 그 해 일본의 유행어로 만드는 것에 그치고 맥없이 끝났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도쿄지방검찰청 특수부가 다나카 전 총리를 전격 체포하는 등 결국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이는 3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최근에도 다르지 않아서, 2002년 스즈키 무네오 수뢰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당시 자민당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 전 의원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로 일관하자, 민진당 츠지모토 키요미(辻元清美) 의원은 "기억상실금지법이라도 제정해 적용시키고 싶다"고 한탄할 정도였다.

  •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죄송하지만 모른다는 취지의 답변을 하고 있다. 좌우는 차은택 씨와 고영태 씨의 모습.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죄송하지만 모른다는 취지의 답변을 하고 있다. 좌우는 차은택 씨와 고영태 씨의 모습.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한때는 국정조사로 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는 것 아닌가 라는 문제가 제기된 적도 있었다. 국정조사가 TV 등 언론매체를 통해 생중계되자, 국회의원들이 언론 노출과 인기를 의식해 호통만 치고 언성만 높일 뿐 정작 사안의 진실에 접근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국회는 1988년 리쿠르트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앞두고 관련 법령을 개정해 국정조사의 TV 생중계는 물론 녹화중계와 사진 촬영도 금지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조사의 실효성은 딱히 확보되지 못했다. 오히려 국민들 사이에서는 "정말 증인을 소환하기는 하고 있는 것이냐"는 의혹만 높아졌다. 결국 10년 만인 1998년 상공 대출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앞두고 다시 관련 법령이 개정돼 TV 중계가 재개되기에 이르렀다.

    1948년 토건업체 정치자금 사건부터 시작해 록히드 사건, 리쿠르트 사건 등 쟁쟁한 정치 스캔들을 국정조사해온 일본 국회에서도 아직까지 국정조사의 실효성을 높일 변변한 방법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로서는 딱히 국정조사의 실효성을 높일 방안을 찾기 어렵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의원실 관계자는 "유명무실이 돼 있는 변호인의 배석·조력 권한을 활성화해서, 형사소추의 우려가 없는 부분에 있어서는 소환된 증인이 마음놓고 증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며 "증인들도 국회의 동행 명령은 국회의원 개인이 자연인의 자격에서 오라가라 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대의대표로서 부른 것이니만큼 더욱 성실한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에는 증인들이 출석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로 일관하거나 "형사 상의 불이익한 처분을 당할 우려가 있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증언을 거부한다"는 말을 연발할지언정 아예 출석을 거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국권의 최고기관으로서 국회의 권위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2001년 KSD재단 대학 인가 청탁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에서 무라카미 마사쿠니(村上正邦) 전 의원은 본인과 관련된 질문에는 "형사소추의 우려가 있어 증언을 거부한다"로 일관했지만, 그 외 사건 전반의 흐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유의미한 답변을 했다.

    국회도 쓸데없이 증인에 대한 고압적 태도와 망신 주기로 일관하는 대신 변호인의 조력을 인정하면서 사건의 맥락 파악을 위해 노력하되, 위증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해 압박을 높일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1976년 록히드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에서 핵심 증인이었던 오사노 겐지 국제흥업 사주, 히야마 히로(檜山広) 마루베니주식회사 사장, 와카사 도쿠지(若狭得治) 전일본공수(ANA) 사장은 국정조사장에서 각종 거짓말과 변명을 늘어놓았다.

    오사노 사주는 "(록히드 사의 로비스트이자 정계의 비선 실세였던) 고다마 요시오와 ANA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고 했지만 거짓이었다. "결재는 했지만 금품 수수와는 일절 관련된 적이 없다는 보고를 받았기에 그런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는 히야마 사장의 증언, "ANA가 록히드로부터 뒷돈을 받은 것이 없다"는 와카사 사장의 증언 모두 거짓말이었다.

    이들은 모두 위증으로 고발돼, 오사노 사주와 히야마 사장은 실형 선고로 엄단됐다. 와카사 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에 처해졌다. 이후 일본 국회의 국정조사에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할지언정 사건을 혼란에 빠뜨리는 위증 사례는 찾기 힘들어졌다.

    의원실 관계자는 "널리 알려진 증인들이 출석해야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고 국조특위 위원이 주목을 받기 때문에, 이미 위헌으로 결론난 강제구인 등에 아직도 미련을 가지는 의원들이 많다"며 "영장주의에 위배되는 강제구인을 통한 출석 확보보다는 국회는 청문회 문화 개선 등 자정 노력을 통해 권위을 쌓아 증인이 나오도록 이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출석한 증인으로부터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 증언을 얻어내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국정조사에서의 위증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