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참여인원 50명 이하, 크게 줄어...박원순 시장, 늦은 시간까지 마이크 잡아
  • ▲ '박근혜퇴진운동본부' 회원 20여 명이 15일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를 벌였다. ⓒ뉴데일리 이길호 기자
    ▲ '박근혜퇴진운동본부' 회원 20여 명이 15일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를 벌였다. ⓒ뉴데일리 이길호 기자

    세월호 천막에서 번져 나오는 향내가 전보다 더 짙어진 듯 했다. 대형스피커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발언자의 목소리 만큼이나 앙칼졌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헌재를 믿을 수 없다", "투쟁, 투쟁, 투쟁"….

15일 목요일 늦은 7시,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에선, 20여명의 시위대가 꺼져가는 '분노'의 불씨를 살리려는 듯 뜨거운 입김을 불어대고 있었다.  

노란리본 조형물, 열 맞춰 늘어선 천막, 붉은 바탕에 흰 글자가 적힌 깃발 두 개,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 수십개, 손바닥만 한 팥떡을 물도 없이 먹고 있는 사람들.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 세월호 관계자들은 칼바람이 부는 그 밤에도 열심이었다.

"저건 언제까지 하는 거야?"
어떤 행인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냈지만 집회 참가자들의 얼굴은 모든 시민이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전날인 14일에 모인 인원은 50여 명이다. 평일 촛불의 규모는 분명 줄고있는 추세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떠났음에도 끝까지 남아 피켓을 들고 있는 이들. 차갑게 언 의자에 앉아 이들의 주장을 조용히 들어봤다.

  • ▲ '박근혜퇴진운동본부' 회원 20여 명이 15일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를 벌였다. ⓒ뉴데일리 이길호 기자
    ▲ '박근혜퇴진운동본부' 회원 20여 명이 15일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를 벌였다. ⓒ뉴데일리 이길호 기자
    ◆ "촛불이 이긴다"
    "역설적이게도 최순실 사태로 인해 세월호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희망이 생겨 다행입니다."
    사회자로 보이는 참여연대 소속 장동엽 씨가 말했다. 장 씨는 "오늘 촛불집회는 문화제가 아닌 자유발언 형식으로 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분은 앞으로 나오세요"라고 외쳤다. 
    이 두 마디가 이날 촛불집회의 본질을 '정의'했다. '정부가 위기에 몰렸으니 평소 불만이던 것들을 이 참에 쏟아내자'는 말이었다. 발언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편향된 정치적 주장을 늘어놨다.
    마이크를 가장 오래 잡고 있던 발언자는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다. 그는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 아이들을 수장시킨 학살 정권"이며,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됐음에도 청와대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자와 농민을 저버린 사법부에게 탄핵결정을 맡길 수 없다"면서 "우리가 촛불의 힘으로 이들과 싸우고 박근혜를 당장 감옥에 가두자"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노동개악으로 노동자를 몰아내는 정권, 백남기를 죽인 살인정권, 핵발전소를 짓는 정권,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정권, 재벌과 결탁한 꼼수 정권"이라며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과 관계없는 정치적 구호들을 쏟아냈다.
    경기도 하남시에 거주한다고 소개한 한 남성도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털어놓고 당장 퇴진해야 한다"며 "계속 버틴다면 유배제도를 만들어서 대통령을 무인도로 보내야 한다"고 핏대를 세웠다. 
    한 고등학생은 "독립운동을 했더니 이승만이 가로채고, 독재자를 심판했더니 박정희가 가로채고, IMF로 무너진 나라를 일으켰더니 이명박이 가로채고, 쥐박이(이명박 대통령을 비하하는 단어)를 심판하려니 부정선거의 여왕이자 국정농단의 원인인 박근혜가 가로챘다"며, 우리 현대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참가자들의 발언은 약 1시간 정도 이어졌다. 약 20여명의 참가자들은 행사가 끝난 뒤 서로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이날 계획된 행진은 참가자 수가 적어 현장에서 취소됐다.

  • ▲ 박원순 서울시장.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박원순 서울시장.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박원순 시장이 외친 '정의'
    밤 8시가 지나면서 세종대왕 동상 아래 한 무리가 다시 형성됐다. 마이크를 든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 평일 밤마다 거리로 나온다는 박 시장은 이날도 옆 사람에게 분노의 촛불을 옮겨 붙여주고 있었다. 방금 전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서 농성을 벌이던 이들도 집단 속으로 금세 섞여 들어갔다.
    박원순 시장은 좌편향된 극소수의 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보다 한결 여과된 단어를 사용했지만 메시지는 다르지 않았다.
    그는 특히 특검수사와 헌재의 탄핵 결정을 압박하려는 듯 사법부를 자주 언급했다.
    "내가 법을 배울 때 형사소송법 책을 딱 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 바로 이게 법의 첫 번째 원칙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검찰은 정의를 세우고 있나, 그렇지 않다. 정경유착, 부패, 특권세력을 응징하고 처단하기는 커녕 오히려 보호하고 그 사람들의 시녀가 됐다. 오늘 대한민국에 '검찰개혁'이라는 것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이유다."

    박 시장의 발언이 끝나자, 또 다시 정체모를 이들의 자유발언이 시작됐다.
    9시께, 박 시장이 집회 해산을 선언하면서 외친 구호 삼창이 잔상으로 길게 남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박원순 시장과 민주노총, 참여연대, 세월호 관계자들은, 지난 9년 간 보수정권이 추진한 모든 정책의 폐기를 ‘정의’라고 불렀다. 이들에게 광장의 촛불에 동의하지 않는 ‘침묵하는 다수’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오직 ‘민중’과 ‘투쟁’만이 환영을 받는 광장에서, 살기를 내뿜는 함성이 오래도록 귓가를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