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을 바로 본다 ③]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다

반기문, 인도주의의 등불 든 10년의 임기

다르푸르 사태·미얀마 재난 극적 해결하며 구호 활동 혁신 필요성 절감
임기 중 2만3천명 자문받는 준비 끝에 세계인도주의정상회의 성공시켜

정도원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6.12.21 20: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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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nited97@newdailybiz.co.kr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2011년 하반기부터 언론계에 몸담았습니다. 2014년 7월부터 본지 정치부 소속으로 국회·정당에 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왕적 권력의 전횡과 중우적 직접정치 시도라는 함정을 넘어, 의회 중심으로 실질적인 의회민주주의가 구현되기를 기대합니다. 의회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반기문을 바로 본다》
① 반기문 10년의 업적, 국내외 평가는 극과 극… 왜?
② 반기문, 기후변화에 맞서 인류저항군을 이끌다
③ 반기문, 인도주의의 등불 든 10년의 임기
④ '기름장어' 비판에도… 반기문, 더 안전해진 세계
⑤ 시대를 넘어 세계를 조망한 반기문의 '넓은 눈'


맬컴 턴불 호주 총리는 지난 9월 개막한 제71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지난 10년간 많은 도전에 직면했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리더십과 헌신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반기문 총장은 후임 (유엔 사무)총장들이 국제공동체와 함께 나아가야 할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반기문 총장이 2007년부터 시작된 10년의 임기를 마무리짓고 있고 후임 유엔사무총장으로 안토니우 구테흐스 전 포르투갈 총리가 내정된 상황에서, 턴불 총리는 후임자에게 반기문 총장의 어떠한 '중요한 유산'을 따르라고 촉구한 것일까.

해외 유수의 정치 지도자들과 국제기구들은 지난 10년의 임기 동안 인도주의에 대한 단순한 관심을 넘어, 어떻게 하면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재조직해 실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원조가 제공되도록 할 것인지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한 것을 반기문 총장의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기문 총장은 지난 2007년 1월, 공식 임기를 시작한 첫 달에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로 향했다. 유엔사무총장으로서 첫 번째 공식 해외순방 일정을 아프리카연합의 정상회의 참석으로 정한 것이다.

그가 아프리카로 향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2003년 2월부터 격화된 수단 다르푸르 사태는 심각한 국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랍계 민병대가 비아랍계 토착민들에 대한 '인종 청소'에 돌입하면서, 40만 명이 학살당하고 100만 명이 난민이 발생했다.

난민들은 이웃나라인 차드나 에티오피아로 흘러들어 가뜩이나 불안한 이 지역의 국제정서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사하라 지역의 대위기가 전개되고 있었지만, 부패하고 무능했던 전임자 코피 아난 전 총장은 그 자신이 아프리카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다르푸르 사태에 대해 "섬뜩하다"는 표현만을 남겼다.

전임자가 떠넘긴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기문 총장은 임기 첫 달부터 매달렸다. 오마르 하산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과 만난 반기문 총장은 다르푸르 지역에 대한 유엔평화유지군의 파병을 요청하도록 그를 설득해내는데 성공했다. 그해 7월 31일, 유엔안보리는 2만6000명 규모의 평화유지군 파병을 결의했다.

이후로도 간간이 무력 충돌은 이어지고 있지만, 대규모의 '인종 청소'는 근절됐다. 사망자 단위는 연 십수 명 수준으로 격감했다. 반기문 총장이 인도주의적 과제 해결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임기 2년차였던 이듬해에는 자연재해와 이에 대처하는 현지 정부의 자세가 반기문 총장을 괴롭혔다.

2008년 인도양에서 발생한 태풍 나르기스는 5월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 상륙했다. 400만 명의 인구 중에서 7만7000여 명이 사망했고, 5만5000여 명은 생사가 불분명해지는 등 13만 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의 정권을 잡고 있던 군부는 "해외 원조는 식량과 의약품, 재정 원조로 제한한다"며 "어떠한 형태의 외국 인력의 국내 구호 활동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유가 있었다. 미얀마는 10일부터 헌법 개정에 관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었다. 군부의 영구집권을 가능케 하는 신헌법안에 대해 당시 재야의 지도자였던 아웅산 수치 여사는 강하게 반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인이 구호 활동을 빙자해 입국하게 되면, 민주화운동 세력과 결합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상황은 파국으로 치달아갔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미얀마 군사정권이 "천재(天災)를 인재(人災)로 만들고 있다"고 성토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의 사라 아일랜드 지역책임자는 "깨끗한 식수원을 확보할 수 없다면, 150만 명이 추가로 사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기문 총장은 리처드 홀시 유엔대변인을 미얀마로 급파했지만, 그의 입국도 거부당했다. 홀시 대변인은 9일 방콕에서 "국제 구호 인력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라"고 압박했다. 반기문 총장도 "원조 노력이 방해받지 않도록 할 것"을 촉구했다.

유엔의 압력에 미얀마 군사정권은 10일로 예정됐던 국민투표 실시를 연기했지만, 여전히 외국의 구호 노력에 미온적인 태도였다. 기아와 수인성 전염병의 창궐로 수십만 명의 추가적인 인명피해가 우려되던 21일, 반기문 총장은 미얀마롤 전격 방문했다.

"구호 노력을 가속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일성(一聲)과 함께 탄 슈웨 미얀마 국가평화발전평의회 의장과 회담에 돌입한 반기문 총장은 2시간을 넘는 마라톤 회담 끝에 성과를 도출해냈다.

반기문 총장은 이날 밤 "미얀마 정부가 모든 구호 인력의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며 "외국 함정의 입항과 헬기의 착륙은 여전히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바꾸도록 계속해서 설득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월드비전과 세계식량계획(WFP), 국제구호위원회(IRC)는 반기문 총장의 현지 회견이 있은 직후, 즉각 따뜻한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23일, 반기문 총장은 탄 슈웨 의장과 다시 한 차례 회담을 가졌다. 이후 탄 슈웨 의장은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구호 인력의 입국은 즉시 허용된다"고 재확인했다. 반기문 총장의 판단과 설득은 옳았다. 미온적이었던 미얀마 군사정권조차 27일 "유엔의 원조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임기 초반에 겪은 두 차례의 사례를 바탕으로, 반기문 총장은 유엔사무총장으로서의 인도주의적 노력이 달라진 시대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절감했다.

거시적인 활동에 집착한 전임 총장들과는 달리, 반기문 총장은 비록 덜 주목받을 수 있더라도, 소리없이 조용하게 미시적인 해결책 마련에 천착했다.

오랜 준비 끝에 반기문 총장은 2012년 1월, 달라진 세계 환경에 따른 "인도주의 구호 활동의 경험을 서로 공유하고 모범 사례를 도출해내자"는 주제로 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세계인도주의정상회의(World Humanitarian Summit)로 명명될 이 행사의 준비를 반기문 총장은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에 맡겼다.

다르푸르 사태와 미얀마 재난을 겪으며 반기문 총장이 체감한 문제의식은 회의가 열릴 올해 2월 발표된 '하나의 인류, 책임감의 공유(One Humanity, Shared Responsibility)'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집대성됐다. 인도주의의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한 이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반기문 총장이 10년의 임기 동안 153개 국의 2만3000여 명의 전문가들과 토론하고 자문을 받았음이 밝혀졌다.

반기문 총장은 이 보고서에서 △재난을 예방하고 종결해야 한다 △인도주의 활동에 따르는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 △아무도 낙오되지 않게끔 해야 한다 △(원조받을) 필요 자체를 없애기 위한 새로운 작업이 필요하다 △인도주의에 투자하자는 5가지 핵심 과제를 거론했다.

이는 인도주의 활동의 효율성을 증대하기 위한 핵심 과제들이었다. 또, 인도주의 활동을 혁신하고, 자금 조달을 원활하게 하며, 원조를 필요로 하는 말단의 사람들에까지 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반기문 총장의 만반의 준비 끝에 제1회 세계인도주의정상회의는 올해 5월 23~24일 양일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한 55개 국 정상이 참석했고, 민간 부문과 시민사회, 비정부기구(NGO) 대표까지 포함하면 173개 국에서 9000여 명의 참석자가 운집했다.

세계인도주의정상회의에서는 첫 회의에서부터 세 가지 중요한 성과를 남겼다.

긴급한 구호 자금을 보다 효율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인도주의 활동의 재정 혁신을 단행하기로 했는데, 이는 '그랜드 바겐'이라 명명됐다.

재해 대비를 위한 글로벌파트너십(GPP)을 형성하기로 하는 합의도 있었다. 기후변화에 취약한 43개 고위험군 개발도상국을 선정해, 이들과 유엔, 세계은행 간의 삼각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GPP에 따라 2020년까지 재해 대비 수준이 취약한 20개 국에 기본적인 재해 대비 태세를 갖출 수 있게끔 하기 위한 원조가 제공된다.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의 일환으로 '교육'에 투자한다는 개념이 채택됐다. "원조받을 필요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반기문 총장의 아젠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교육 투자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교육은 미룰 수 없다'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는데, 정상회의 석상에서 영국이 3000만 파운드를 출자하기로 약속하면서 급진전이 이뤄졌다.

이러한 구체적인 성과에 세계 각국으로부터 획기적이라는 찬사가 뒤따랐다. 10년의 임기 동안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혁신하기 위해 수많은 토론과 자문을 거친 반기문 총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지적이다.

영국과 네덜란드의 다국적 기업으로, 국제 구호 활동에 기금을 많이 제공하기로 유명한 유니레버의 경영진은 자사가 출자한 구호 기금이 긴급한 재난에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폴 폴먼 유니레버 CEO는 구호 활동이 혁신될 수 있었던 이유를 "반기문 총장의 식지 않는 열정"으로부터 찾으며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놓였던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대신 싸워준 반기문 총장에게 감사한다"고 극찬했다.

찬사는 경제계로부터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세계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반기문 총장의 임기 마지막 총회가 될 71차 유엔총회에서 다투어 헌사를 쏟아냈다.

수단 다르푸르 사태의 유탄을 맞았고, 이 사태 당시 아프리카연합 의장국으로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상회의를 자국 수도에서 주재하고 있던 에티오피아 정부가 먼저 나섰다.

하일레마리암 데살렌 에티오피아 총리는 "이번 총회가 반기문 총장이 주재하는 마지막 총회이기 때문에, 에티오피아 내각과 국민을 대표해 반기문 총장의 지난 10년 간의 헌신적 봉사에 감사드리고 싶다"며 "에티오피아, 나아가 아프리카는 그와의 우정을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며, 그가 앞으로 보여줄 모든 노력에도 최선의 결과가 따르기를 기원한다"고 축복했다.

아일랜드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재임했던 메리 로빈슨 전 대통령은 "반기문 총장은 무관심 속에서 잊혀질 수도 있었던 고아와 난민, 고통받는 여성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재조명했다"며 "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게끔 이끌어준 반기문 총장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키프로스 대통령도 "반기문 총장의 10년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우리 공동의 선을 증진하기 위한 그의 헌신과 근면의 업적을 되돌아본다"며 "우리 정부는 물론 나 또한 개인적으로 감사를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 정상들의 잇따른 찬사는 유엔이 당연히 해야 할 구호 업무라도, 이를 전임자들이 해왔던 방식대로 무비판적으로, 또 기계적으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 오랜 기간 철저한 준비를 거쳐 이를 혁신하고 보다 효율적인 방식을 추구하고자 했던 반기문 총장의 진정한 인도주의에 대한 헌사로 여겨진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내 일각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폄훼하는대로 반기문 총장이 '역대 최악의 사무총장'으로 해외에서 평가받고 있다면, 왜 유엔회원국 정상들이 후임 사무총장들에게 반기문 총장의 유산을 중시하라고 하겠느냐"며 "오랜 기간 철저한 준비를 거쳐 진정한 인도주의의 등불을 들었던 그의 업적은 국내 정치와 무관하게 냉정히 평가돼야 한다"고 밝혔다.

  • 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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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2011년 하반기부터 언론계에 몸담았습니다. 2014년 7월부터 본지 정치부 소속으로 국회·정당에 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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