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을 바로 본다 ④] 상임이사국의 협조를 이끌어내다

'기름장어' 비판에도…반기문, 더 안전해진 세계

친인척·측근 부패로 얼룩진 코피 아난으로부터 물려받은 이라크
박격포 세례받은 반기문의 현명한 대처와 관리를 통해 안정 찾아

정도원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6.12.23 09: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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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nited97@newdailybiz.co.kr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2011년 하반기에 언론계에 몸담았습니다. 2014년 7월부터 본지 정치부 소속으로 국회·정당에 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왕적 권력의 전횡과 중우적 직접정치의 함정을 넘어, 의회 중심으로 실질적인 대의민주주의가 구현되기를 기대합니다. 의회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반기문을 바로 본다》
① 반기문 10년의 업적, 국내외 평가는 극과 극… 왜?
② 반기문, 기후변화에 맞서 인류저항군을 이끌다
③ 반기문, 인도주의의 등불 든 10년의 임기
④ '기름장어' 비판에도… 반기문, 더 안전해진 세계
⑤ 시대를 넘어 세계를 조망한 반기문의 '넓은 눈'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지난 10년 간의 업적을 비판함에 있어, 이코노미스트나 뉴욕타임즈와 같은 해외 매체의 평가가 자주 인용된다. 전임자인 코피 아난 전 총장에 비해 카리스마가 없고, 강대국에 맞서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과연 그러한가. 전임자인 코피 아난 전 총장이 후임자인 반기문 총장에게 물려준 유산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코피 아난 전 총장이 재임 중이던 1998년, 유엔대량살상무기폐기특별위원회(UNSCOM)가 사담 후세인 정권에 의해 이라크로부터 추방당했다. 유엔안보리 결의의 이행이 방해받았는데도, 코피 아난 전 총장은 놀랍도록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였다.

스콧 리터 전 UNSCOM 무기사찰관은 코피 아난 전 총장을 상대로 "안보리 결의를 이행하려는 의지가 없고 우유부단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결국 한동안 중단된 무기사찰 때문에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은닉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갖게 됐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편집증적인 의심은 더욱 심각해졌다.

코피 아난 전 총장은 유엔의 결의 없이 이라크를 침공하지 말도록 미국에 종용했으나 이는 철저히 묵살당했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이 이뤄져 후세인 정부가 전복되자, 코피 아난 전 총장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BBC에 출연해 "이라크 침공은 유엔 헌장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넋두리를 하는 정도였다.

이것이 "강대국과 맞섰다"는 코피 아난 전 총장의 실체였다. 그의 카리스마 있는 모습은 그 뒤에 드러났다.

이라크에 대한 경제 제재가 이뤄지던 시절에, 유엔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석유 식량 계획(OFP)'을 수립했다. 이라크가 16억 달러 상당의 원유를 수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그 대금은 BNP파리바 은행의 에스크로 계좌에 예치해, 이 한도 내에서 이라크가 식량과 의약품 등 허용된 물품을 수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였다.

이라크 침공이 있은 뒤인 2004년 12월, 이 계획과 관련해 선적검사 회사로 지정된 스위스의 '코테크나'사(社)가 코피 아난 전 총장의 아들 코조 아난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기사가 폭로됐다.

사상 초유의 유엔사무총장 친인척 비리에 코피 아난 전 총장은 폴 볼커 전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수장으로 하는 독립 심문위원회의 설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심문위에서 이뤄진 첫 번째 조사에서 코피 아난 전 총장은 코테크나 사와 접촉했던 사실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나중에야 그는 엘리 조르주 마시 코테크나 CEO를 두 차례 만난 적이 있다고 말을 바꿨다.

조사 과정에서 코피 아난 전 총장의 최측근인 터키령 키프로스 출신 베논 세반 유엔사무국장이 OFP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15만 달러의 뇌물을 받고 AMEP사에 물량을 배정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확인됐다. 베논 세반은 폴 볼커에게 "나는 희생양일 뿐"이라고 호소해, 코피 아난 전 총장과 관련한 의혹이 더욱 짙어지게끔 했다.

최측근과 아들이 연루된 카리스마적인 사상 초유의 유엔 부패 스캔들 때문에 코피 아난 전 총장은 임기 후반부를 레임덕에 빠져 허우적댔다. 그 결과는 더욱 위험한 세계였다. 특히 부패 스캔들의 총본산인 이라크는 아수라장이 됐다.

코피 아난 전 총장이 물려준 유산은 반기문 총장의 목숨마저 위협했다. 2007년 3월, 총장 취임 후 처음으로 중동을 순방한 반기문 총장은 22일 이라크 바그다드의 그린 존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이 때 기습적인 박격포 공격이 있었고, 포탄은 반기문 총장이 서 있는 곳으로부터 불과 80m 떨어진 지점에 탄착됐다. 천만다행으로 사상자는 없었다.

안전하다는 '그린 존'에서 불의의 포격을 당했음에도 반기문 총장은 의연하게 "유엔이 이라크의 정치·사회적 발전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기자회견을 마쳤다.


반기문 총장은 이후 이집트·이스라엘·요르단·레바논을 거쳐 아랍연맹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던 사우디 아라비아에 도착했다. 도중에 요르단강 서안에 들러 유대인 정착촌 건설 문제를 살펴본 반기문 총장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아랍연맹 정상회의에 초청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을 만나 정착촌 문제와 평화 정착 방안에 관해 협의했다.

반기문 총장의 전력투구로 이라크가 코피 아난 전 총장 때보다 훨씬 안정을 찾은 2010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 이른바 '아랍' 권역은 '아랍의 봄'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2011년 '아랍의 봄' 시위가 리비아로 번지면서 내전이 촉발되자, 반기문 총장은 사태 초창기에 이를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한 중재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는 외교적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어떠한 군사행동에도 반대했다.

하지만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최고지도자가 휴전 협정에 비타협적인 자세로 일관하자, 반기문 총장도 리비아에서의 인권 보호를 위해 다국적군의 개입을 허용하는 수밖에 없다는 방향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결국 카다피 독재정권은 전복됐고, 이 과정에서 카다피 본인조차 목숨을 잃었다.

반기문 총장은 이라크에 이어 튀니지·리비아·이집트 등 '아랍의 봄'을 맞이한 나라들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북아프리카·중동 권역에서 코피 아난 전 총장 재임기를 얼룩지게 한 제2차 인티파다와 같은 전면적인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반기문 총장은 상임이사국들의 협조를 이끌어내면서 이들 나라에 더욱 안전한 환경을 조성했다. 이를 감안하면 "강대국에 맞서지 않았다"는 해외 매체의 비판이 얼마나 설득력 없는 것인지는 명백해진다.

전임자인 코피 아난 전 총장에 비해 카리스마가 없었다는 비판도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유엔사무총장은 친인척과 최측근을 동원해 카리스마 있게 부패와 비리를 저지르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라크로부터 튀니지까지 중동 문제를 효과적으로 제어한 반기문 총장이었지만, 시리아 내전은 그의 두 번째 임기를 얼룩지게 했다. 파탄의 주된 원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인 미국·영국·프랑스와 러시아 사이의 이해 대립 때문이었다. 10년 간의 반기문 체제를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던 상임이사국 간의 협조 체제가 무너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기문 총장은 총력을 다해 이해 대립의 당사자인 미국과 러시아의 직접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애썼다.

이 노력은 소정의 성과를 거두면서, 2014년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리아 내전을 종결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회의가 시작됐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상이 이 회담에 직접 임하고 있다.

영국의 유력지 〈가디언〉이 2010년 7월 22일자에서 조지프 나이 미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장의 말을 인용해 "반기문 총장은 유엔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반기문 총장은 이를 잘 관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적인 권위의 영국 공영방송 BBC도 2011년 6월 21일 방송에서 "반기문 총장이 외교관들 사이에서 근면성실하고 진지한 지도자로 명망을 얻고 있다"며 "그는 합의와 조화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라고 극찬의 대열에 가세했다.

중동 외에서도 반기문 총장은 조용히, 보이지 않게 '더욱 안전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그의 행보에 대해 〈뉴욕타임즈〉 고정필진인 제임스 트라우브 정치평론가는 "외교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자세는 사려 깊다"고 높이 평가했다.

반군과의 평화 노력으로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이 지난 9월 개막한 71차 유엔총회 각국 정상 대표연설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반군의 활동 중지와 무장 해제를 감시하고 입증해냈다"며 "그와 같은 정치적 과업을 확고히 해준 것에 대해 특히 감사한다"고 이를 확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단순히 북한을 미국보다 먼저 찾아간다고 해서 저절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세계를 움직이는 강대국들인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 무모한 정면 대결을 현명하게 피하면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반기문 총장의 행보는 독일 통일을 이뤄낸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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