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을 바로 본다 ⑤] 북한에 글로벌스탠다드 들이대다

시대를 넘어 세계를 조망한 반기문의 '넓은 눈'

임기 중 북한인권조사위 보고서… 국제사회에 충격 던진 '이정표'
私情으로 노무현 참배 가는 대신 公義의 대연동 유엔묘역 행보

정도원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6.12.24 06: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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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nited97@newdailybiz.co.kr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2011년 하반기부터 언론계에 몸담았습니다. 2014년 7월부터 본지 정치부 소속으로 국회·정당에 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왕적 권력의 전횡과 중우적 직접정치 시도라는 함정을 넘어, 의회 중심으로 실질적인 의회민주주의가 구현되기를 기대합니다. 의회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반기문을 바로 본다》
① 반기문 10년의 업적, 국내외 평가는 극과 극… 왜?
② 반기문, 기후변화에 맞서 인류저항군을 이끌다
③ 반기문, 인도주의의 등불 든 10년의 임기
④ '기름장어' 비판에도… 반기문, 더 안전해진 세계
⑤ 시대를 넘어 세계를 조망한 반기문의 '넓은 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23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향해 "구(舊)시대의 질서를 누리며 성공해왔던 분"이라고 폄하했다.

문재인 전 대표가 표현한 '구 시대적'이라는 것은 어떠한 기준으로 판단되는 것일까. 생물학적 연령만 낮으면 무조건 신(新)시대가 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바깥세계에 맞춰 얼마나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을 보면 누가 구 시대에 매몰돼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차기 지도자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북한 주민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냉전 시대 운동권적 사고 방식에 매몰돼 북한 정권에 대한 동정적 시각에 사로잡혀 있는지가 관건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임기 10년 동안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꾸준히 이끌어왔다. 임기 1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북한인권결의안이 유엔 총회에서 채택됐다.

특히 임기 후반부인 2013~2014년에 걸쳐 북한인권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북한의 인권 탄압 현황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수많은 관계자들을 면담해 종합적인 보고서를 펴낸 것은 북한인권 관련사에 있어서 불후의 업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북한인권에 관해 반기문 총장이 끊임없이 주의를 환기시킴에 따라, 2013년 3월 유엔인권이사회 47개 이사국은 만장일치로 북한인권조사위원회를 설치하기로 의결했다. 조사위 의장으로는 마이클 커비 전 호주 대법관이 선임됐다.

조사위는 1년 간의 광범위한 조사 끝에 이듬해 2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북한정권이 자국민에 자행하고 있는 끔찍한 만행들을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적시했다. 살인·노예화·고문·투옥·기아·강간·강제낙태 등이 북한정권 하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폭로했다.

커비 의장은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북한정권의 인권유린 만행에) 비견할 수 있는 잔학 행위는 2차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자행된 것 정도"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아울러 "국제사회는 (나치 등) 전체주의 국가들이 만행을 저질렀을 때처럼 '우리가 알았더라면…'이라고 애도할 수 없을 것이다. 모두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보고서 발간의 의의를 강조하며 "이제 국제사회는 이에 대해 대응하고 필요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한정권에 의해 강제수용소에서 자행되는 여러 가지 고문 방식들이 생생하게 그려진 삽화와, 북송된 재일교포가 일본에 남은 자신의 친지들에게 절대 북송선을 타지 말 것을 당부하는, 우표 뒷면에 필사적으로 휘갈겨 쓴 비밀 메시지 등은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새로운 이정표" "획기적인 결과물"이라는 찬사가 뒤따랐고, 반기문 총장 하에서 발간된 북한인권조사위 보고서는 "북한 인권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평가"로 자리매김했다.

보고서 내용에 충격을 받은 유엔인권이사회는 그해 3월 26일 안보리가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에는 김정은 등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정권을 북한주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주체로 보지 않고,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보다도 먼저 찾아가 '당선 인사'를 해야 할 객체로 보는 유력 대권주자도 있다.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 인권 보장의 관점에서 볼 때, 국제사회가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북한정권이 자국민에 대한 인권 탄압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을 향해서도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을 때에도 반응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2010년 3월 26일, 북한정권은 천안함을 기습 공격해 폭침시켰다.


폭침 직후 반기문 총장은 즉각 강경한 반응을 내놓았다. 반기문 총장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안보리에 이 사안을 회부하면, 안보리가 상황의 무게에 걸맞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기문 총장의 비판이 있은 뒤 유엔사령부는 정전협정을 위반한 북한의 도발 행위에 대해 특별조사팀(SIT)을 소집했고, 중립국인 스웨덴과 스위스를 포함한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그해 7월 9일, 안보리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을 담은 의장 성명이 채택됐다.

반면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는 지난해에야 비로소 강화도 해병대대를 찾은 자리에서 "천안함 폭침 때 북한 잠수정이 감쪽같이 몰래 침투해 천안함을 타격한 뒤 북한으로 도주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폭침을 인정하는데 사건 발생으로부터 무려 5년이 걸린 것이다.

야권 일각에서는 반기문 총장이 노무현정권에서 유엔사무총장으로 선출됐는데도, 방한했을 때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묘역을 찾아 참배하지 않는다고 이를 비판하기도 한다.

반기문 총장의 역량이 유엔사무총장을 맡기에 부족했더라면, 설령 백 명, 천 명의 노무현이 나서서 도와줬더라도 당연히 그 막중한 자리에 오를 수는 없다. 따라서 애초부터 반기문 총장이 유엔사무총장이 되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조차 물음표가 달린다.

설령 미미한 도움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사로운 관계일 뿐이다. 공과 사를 구분할 줄 모르는 친노(親盧)들 머릿속에서는 유엔사무총장의 공무로 방한했을 때도 응당 봉하마을로 달려가 참배를 해야 하는 게 법도인지 모르겠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2011년 11월의 방한 때, 반기문 총장이 행한 행보는 진정한 멸사봉공(滅私奉公)의 행보가 무엇인지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이 때 반기문 총장은 세계원조개발총회 참석차 부산을 찾았다. 김해 봉하마을과 지척이지만, 공무로 방문한 자리였으니만큼 사사로운 정으로 방문 목적과는 관련도 없는 참배길에 나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반기문 총장이 발걸음을 옮긴 곳은 부산 남구 대연동의 유엔기념공원이었다. 6·25 전쟁 때 "전혀 알지도 못하던 나라,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만리타국에 파병돼 싸우다가 장렬히 산화한 영국·캐나다 등 영연방 군인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역대 유엔사무총장으로서는 유엔기념공원을 처음으로 공식 방문한 반기문 총장은 이들 영연방 군인들의 묘비를 일일이 둘러보며 헌화하고 묵념했다. 나라를 망친 전직 대통령의 묘역을 사사로운 정으로 찾아가기보다는, 나라를 지킨 유엔 깃발 아래에서의 의기를 유엔의 수장으로서 기리는 공의(公義)의 발걸음을 한 것이다.

새누리당 탈당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진석 전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반기문 총장은 한국인으로서 가장 넓은 눈으로 세상을 본 인물"이라며 "우리가 일찍이 갖지 못했던 경험을 가진, 글로벌 스탠다드를 아는 분"이라고 정의했다.

분단과 대치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반기문 총장의 행보 하나하나를 살피면 철저히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르는 국제적인 관점에서 폭넓은 시야로 발걸음을 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는 80년대 운동권 사고방식과는 질적으로 틀린 것이다.

이 시점에서 과연 무엇이 구(舊)시대의 질서인지, 또 이에 매몰돼 있는 대권주자는 누구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굳이 묻고 답하지 않더라도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따 이 나라를 개화의 길로 이끌겠다던 지사들이 떨쳐 일어났던 1884년부터 청일전쟁이 발발했던 1894년까지의 10년은 우리 스스로 자강(自彊)에 나설 수 있었던 절호의 시기로 손꼽힌다. 그러나 격동하는 국제 질서에 발맞출 세계적 시야를 가진 인물이 없었기에, 그대로 '잃어버린 10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치권 관계자는 "보수와 진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어감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진보는 80년대 운동권 사고방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앞으로 10년간 한반도 정세가 요동칠 것으로 보이는데, 국운이 융성하느냐 망국으로 치닫느냐는 지도자가 얼마나 폭넓은 시야를 가졌느냐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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