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 대통령은 고육지책… 개방형 총리 제도와 결합하면 갈등 야기할 우려"
  • 개헌추진회의의 대표의원을 맡고 있는 이주영 의원이 29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6차 회의에 앞서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개헌추진회의 연구간사를 맡은 정종섭 의원.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개헌추진회의의 대표의원을 맡고 있는 이주영 의원이 29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6차 회의에 앞서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개헌추진회의 연구간사를 맡은 정종섭 의원.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이 대표의원으로 있는 개헌추진회의의 자체 개헌안 윤곽이 드러났다. 이주영 의원은 30년 만에 설치될 국회 개헌특위 위원장으로 내정됐다는 점에서, 개헌추진회의의 '이주영 초안'은 향후 개헌 논의에 있어서 중대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점쳐진다.

    개헌추진회의는 29일 오전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고 자체 개헌안을 토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개헌특위 위원장으로 내정된 이주영 의원과, 헌법학 교수 출신의 정종섭 의원, 이철우 강효상 김광림 윤영석 김기선 의원 등 새누리당과 가칭 개혁보수신당(보수신당) 의원들이 참석했다.

    회의 직후 총괄간사와 공보간사를 맡고 있는 이철우 강효상 의원이 취재진을 상대로 자체 개헌안을 브리핑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철우 의원은 "개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없애는 것"이라며 "대통령제를 하지 않는다면 내각제 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뽑는 것을 선호하므로 대통령 직선 내각제를 토론했다"고 밝혔다.

    개헌추진회의에서 합의한 '대통령 직선 내각제'는 의회에서 선출된 총리가 행정수반(Head of Government)으로서 국정을 맡되, 국가원수(Head of State)로서 상징적·의전적 기능을 하는 대통령은 의회에서 간선하지 않고 국민 직선으로 뽑는 방식이다. 오스트리아와 포르투갈이 이와 같은 정체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이 외치(外治), 총리가 내치(內治)를 맡는 프랑스 '동거정부' 식의 이원집정부제와는 다르다. 대통령 직선 내각제는 외치와 내치의 구분 없이 실질적인 권력은 모두 총리에게 집중된 방식이다.

    이철우 의원은 "대통령은 외치를 하고 총리는 내치를 하는 이원집정부제는 헌법학자들 사이에서 외치와 내치의 구분이 분명치 않아 마찰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상징적인 일을 하고, 총리가 더 실질적인 일을 관장하는 제도로 가자고 검토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강효상 의원도 "긴급명령권·사면권 등은 총리가 제청해서 대통령이 시행하되, 내각의 의결에 따라 총리가 제청하면 제청에 구속력이 있어 대통령은 따라야 하는 것으로 했다"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앤다는 방향에서 총리를 중심으로 모든 국정이 운영되도록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총리를 선출하는 의회는 현행 헌법대로 단원제로 하고, 총리의 자격은 현역 국회의원에 한정짓지 않고 원외(院外) 인사도 총리직에 오를 수 있는 개방형 총리 제도를 채택하기로 했다.

    강효상 의원은 "통일이 대비해 양원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개헌의 범위가 너무 넓어진다"며 "이번에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제거하는 통치구조 개편에만 집중하기 위해 단원제 모델을 유지하자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이철우 의원은 "다른 (내각제 채택) 국가는 (총리를) 의원이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높지 않다"며 "(개방형 총리 제도를 채택해) 총리를 일반인도 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개헌추진회의의 개헌안은 △단원제 의회 △직선 대통령 △개방형 총리를 골자로 하는 의원내각제 형태의 헌법 체제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대통령을 직선으로 선출하되, 대통령의 권한을 철저히 의전적 기능으로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평이다.

    헌법재판소연구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유일하게 내각제를 채택했던 제2공화국이 망했던 이유는 윤보선 대통령이 의전적 기능을 넘어서 끊임없이 실권을 행사하려고 장면 총리와 마찰을 일으켰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을 간선했던 2공화국도 그랬는데, 하물며 대통령을 직선하면 민주적 정당성이 이원화돼서 더욱 마찰이 일어날 소지가 크기 때문에 대통령에게는 철저히 의전적 권한만 남겨놓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 이주영 대표의원과 이철우 총괄간사, 정종섭 연구간사, 강효상 공보간사 의원 등이 29일 의원회관에서 개헌추진회의 6차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이주영 대표의원과 이철우 총괄간사, 정종섭 연구간사, 강효상 공보간사 의원 등이 29일 의원회관에서 개헌추진회의 6차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다만 차제에 대통령을 의회에서 간선하는 순수내각제를 채택하는 것이 대통령의 국민통합·상징적 지위를 강화하는 한편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 다툼의 가능성을 봉쇄하는데 더욱 적합하다는 지적도 있다.

    대통령이 국민 직선으로 선출되면 총리나 국회의원보다 더욱 많은 표를 얻어 당선되는 만큼,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실권을 행사하려고 나설 경우 불필요한 갈등이 초래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개헌론자인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는 지난 20일 개헌추진회의 초청간담회에서 "독일 사람들은 '상징적인 존재인 대통령을 뽑는데 선거로 하면, 선거 기간에 상처를 많이 받을텐데 어떻게 통합적인 존재로 기능할 수 있느냐'고 하더라"며 "대통령을 국민 직선으로 뽑으면, 선거운동 기간에 상호 비방을 해서 국가의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잘할 수가 없다"고 단언했다.

    대통령 직선에 대한 국민적 욕구와 관련해서는 "87년 이후 국민 손으로 뽑은 대통령 여섯 명이 다 실패했다"며 "대통령을 꼭 직선제로 뽑는다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일반 국민들도 인식하지 않았겠느냐"고 '설득의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헌법재판소연구관 출신의 변호사는 "이론상으로만 보면 당연히 (김종인 전 대표의 말처럼) 대통령을 국회에서 간선하는 방식이 안정적"이라면서도 "개헌추진회의에서 결정한 대통령 직선 내각제는 개헌 국민투표의 성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여지가 있다"고 평했다.

    하지만 개방형 총리와 관련해서는 정치권과 학계에서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은 지역구에서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되는 방식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는 반면, 원외(院外) 인사가 정치권의 합의로 총리가 되는 '개방형 총리'는 국회에서 간선되는 것 이외에 국민으로부터 직접 평가받는 장치가 전혀 존재하지 않아 행정수반(Head of Government)이라는 막중한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민주적 정당성이 현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연구관 출신의 변호사는 "내각제로 개헌하면 총리가 갖는 지위가 매우 막중한데도 '개방형 총리'가 얻는 민주적 정당성이란 대통령제인 현행 헌법 하에서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는 대법관, 감사원장 정도에 불과하다"며 "정치권 사이의 야합으로 '바지 총리'가 설 가능성도 있는 등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했다.

    또다른 변호사도 "내각제란 총리가 의원의 지위를 겸하기 때문에 내각불신임과 의회해산이 동전의 양면처럼 돼서 의회와 내각이 존폐를 함께 하는 것"이라며 "의원이 아닌 '개방형 총리'가 서면 이 관계가 불분명해져 헌법이론상으로도 설명하기 곤란해진다"고 지적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외국의 입법례를 들어 '개방형 총리' 제도의 부당함을 설명하기도 했다.

    영국은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음에도, 헌법관습법으로 상원 의원은 총리가 되지 못하고 하원 의원만 총리를 할 수 있게끔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1963년 총리를 지낸 보수당의 앨릭 더글러스흄 의원은 상원 의원직의 바탕이 된 백작의 작위를 포기했으며, 이후 하원 의원으로 다시 당선돼야만 했다.

    일본 역시 헌법 상으로 분명한 제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지만, 총리는 중의원 의원에서 나오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으며, 참의원 의원은 총리가 될 수 없다. 전후(戰後) 한 차례도 참의원에서 총리가 지명된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영국과 일본 모두 상원이나 참의원 의원도 분명한 국회의원이고, 각료로서 내각에 입각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유독 총리 취임에만 제한을 두는 것은 내각제에서 행정수반에 해당하는 총리의 지위가 그만큼 막중하고 민주적 정당성에 예민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변호사는 "외국은 총리에 한해 더욱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별도의 제한을 두기도 하는데, 내각의 중핵인 총리가 정작 '개방형'으로 돼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여기에 국민 직선으로 선출돼 막강한 민주적 정당성을 보유한 대통령이 끼어들면 국정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 엉망진창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