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추의결서도 특정한 범죄사실 적시 않고, 섞어찌개해서 만들면 그만

  • 지금 진행 중인 탄핵절차를 보니 의외로 쉽다. 일단 강일원 재판관부터 탄핵을 하면 된다. 우선 헌법 제65조 전문을 확인해 보자.

    대한민국 헌법 제65조.

    ①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각부의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감사원장, 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해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②제1항의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1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③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
    ④탄핵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 그러나, 이에 의하여 민사상이나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아니한다.


    탄핵은 대통령과 다른 모든 공직자에 대한 절차가 동일하다. 다만 국회에서 의결할 때 정족수만 다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이면 된다.

    강일원 헌법재판관의 임기 만료일을 찾아보니 2018년 9월14일이다. 1년6개월 안에만 탄핵하면 된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몇 개월 지나면 정치상황이 변해서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을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강 재판관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해했는지 아닌지는 검찰이나 특검에게 조사를 시키고 조서만 받으면 된다. 재판까지 해서 판결을 받을 필요 없이 검찰 조서만 있으면 된다.

    그 다음 할 일은 신문기사 수집이다. 아마 이런 저런 신문을 찾아보면 필요한 기사는 쉽게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은 국민여론이다.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하면 어느 정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수준에서 국민이 얼마나 강 재판관을 신뢰하는지 아니면 불신하는지 그 자료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필요하다면 군중집회를 조직하고, 언론사 협조를 받아 그것이 민심의 표출이라고 선전하면 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시 국회가 어떤 방식과 절차로 탄핵을 의결했는지 전혀 따져보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에, 국회 내부적으로 어떤 방식을 쓰던 관계없이, 탄핵의결에 필요한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만 얻으면 된다.

    탄핵결의문에도 강일원 재판관의 특정한 범죄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적당히 이것저것 섞어찌개해서 문건을 만들면 그만이다. 탄핵은 형사재판이 아니고 정치적 판단이라고 했으니, 이렇게 여러 가지 사항을 섞어 넣어도 되고, 그래야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기도 쉬울 것이다.

    강일원 재판관의 혐의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우선 국회 측 대리인, 즉 변호사들에게 어떤 식으로 소송을 진행하라고 지침을 준 혐의가 있다. 원래 40여 페이지였던 소추의결서를 이른바 ‘준비서면’이란 이름으로 다시 만들면서 70여 페이지로 늘었고, 내용도 일부 추가됐다. 헌재 재판부는 이를 기반으로 심리를 진행했다.

    재판관이 의뢰인을 직접 그것도 공개적으로 도운 것이니, 편파적 재판진행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

    그 다음 증인신청 및 신문 과정에서 나온 강 재판관의 발언 등을 잘 조사하면, 여기에도 편파적 재판진행이란 혐의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변호인단이 국회의 탄핵의결 절차를 다시 따져보자고 주장하자, 강일원 재판관이 ‘이미 노무현 대통령의 전례가 있고 법무부의 확인이 있으며, 이중환 변호사와 이동흡 변호사의 구두 동의가 있으므로 그 문제는 더 이상 논의하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 역시, 공정한 재판진행의 원칙을 훼손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밖에도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면 더 많은 혐의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탄핵정국이 시작된 때부터 분(分) 단위로 강일원 재판관의 모든 행동과  전화통화, 금융거래내역을 조사하고, 그의 직계가족 및 친지, 친구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조사하면, 혹시라도 탄핵당사자 일방 즉 국회와 어떤 연락이나 거래 혹은 공모를 한 혐의가 나올지도 모른다.

    박영수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구속했으니, 당연히 강일원 재판관도 먼저 구속한 다음 수사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은, 재판을 어떻게 하고 선고의 결과가 무엇이든 오랜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검찰이 작성한 조서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은 3월13일이 지나면 헌법재판관에서 물러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탄핵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강일원 재판관의 탄핵절차가 완료돼 그가 파면되면, 형사재판에 회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정미 재판관에 대해서도 강 재판관과 유사한 혐의를 추궁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강일원 재판관에 대해 아무런 개인적 감정이 없다. 다만 그가 탄핵재판 과정에서 편파적인 행동을 보였다는 이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탄핵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구체적인 위법사실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검찰의 조서와 몇 개의 신문기사,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숫자만으로  고위공무원들을 탄핵하고 파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앞으로 대통령은 물론 고위행정관료, 법관, 선관위원장 등 모든 공직자는 각별히 몸을 사려야만 할 것이다. 무엇보다 탄핵소추에 있어 투표권을 가진 국회의원을 자주 만나고, 그들의 애로사항을 잘 해결해 주어야만 할 것이다.


    양현수

    전문 번역가, 미국 컬럼비아대 정치학 석사-박사.
    1958년 서울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서울대 서강대 한국외대 강의.
    <장칭: 정치적 마녀의 초상> <트로츠키> 등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