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아래에서는 연대 논의 계속… 한국당·국민의당 쌍방향 열려 있어
  •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권한대행과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23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 매체사의 행사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권한대행과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23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 매체사의 행사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조기 대선을 앞두고 합종연횡의 시나리오가 지나치게 공개적으로 전개되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음일까. 바른정당 지도부가 일단 선 긋기에 나서면서 숨고르기 국면에 돌입했다.

    23일 대전 ICC호텔에서 열린 충청권 정책토론회에 총출동한 바른정당 지도부는 자유한국당에서 다시 발호할 조짐을 보이는 강성 친박(친박근혜)계를 향해 맹공을 가했다.

    주호영 대표권한대행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 간신(姦臣)들의 무능과 오만으로 보수가 궤멸했다"며 "보수를 재정비해야 하는데, 보수의 참된 가치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정비를 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충청권을 대표하는 홍문표 전 최고위원도 "돈에 빌붙거나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바른생각을 가진 의원 33인이 따뜻한 아랫목을 버리고 엄동설한에 용기를 내서 나왔다"며 "부패 패거리 정치를 청산하고, 최순실 국정농단을 옹호하는 세력을 청산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원과 지지자들 앞에서 공개 발언을 통해 한국당 친박계에 강력하게 날을 세운 것은, 연대론의 만발이 지나쳤다고 판단해 제동을 걸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대선을 앞두고 어떤 식으로든 합종연횡이 있을 것은 익히 예상됐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진도가 너무 빨랐다.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과 한국당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회동이 공개되고, 보수합동과 후보단일화 논의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이번에는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연대론을 논의하는 모습이 뉴스통신사에 포착됐다.

    "경선이 끝나기 전에 한국당·바른정당·김종인 3자 간의 후보단일화 추진에 대한 입장 조율을 해놓아야 한다"는 지적에, 정우택 원내대표는 "선대위원장을 추천해보라"며 김황식 전 국무총리와 박관용 전 국회의장을 열거하는 등 장단을 맞췄다.

    이후 정우택 원내대표는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경선 전에 미리 연대 관련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넌센스"라면서도 "각 당 후보가 선출된 이후에 연대가 이뤄질 것"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처럼 지나치게 공개적으로 연대 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전략·전술상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우려가 터져나온다. 각 정당이나 후보들의 지지층 결집에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구(舊) 여권의 핵심관계자는 "뜸을 들이는데 솥뚜껑을 열어젖히고 모두가 들여다보는 격"이라며 "밥이 될 수가 있겠느냐"고 간명하게 빗댔다.

    따라서 일단 경선 과정에서는 각 당의 지지층 결집이 중요하다는 계산에서, 수면 위에서는 다시 날이 서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바른정당 핵심 당직 의원이 유승민 의원에게 "(정책토론회의) 주제를 다양하게 하자"면서, 우회적으로 '보수후보 단일화' 논쟁을 그만할 것을 촉구했다는 것도 이 점을 뒷받침한다.

  •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과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23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 매체사의 행사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과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23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 매체사의 행사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물론 물밑에서는 연대 논의가 계속해서 진행된다. 이날로 대선까지는 불과 47일 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대선을 25일 앞두고 이뤄졌다. 역산해보면, 후보단일화까지는 약 22일의 시간적 여유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연대 논의를 더욱 가속화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라며 "연대론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뿐, 물 위에서 서로 날을 세운다고 그 논의가 중단됐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전했다.

    홍준표 지사가 이날 충북 권역 TV토론에서 김무성 의원 뿐만 아니라 바른정당의 주호영 대표대행, 김성태 사무총장도 만났다고 추가적으로 밝힌 것이나, 유승민 의원이 취재진을 만나 "각 당 후보를 정한 뒤 그 다음의 이야기(는 보수후보 단일화)"라며 "명분이나 원칙이 중요하다"고 설명한 것도 모두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바른정당의 입장에서는 연대의 방향이 오른쪽으로는 한국당, 왼쪽으로는 국민의당이라는 양 방향으로 열려 있다는 점에서, 이날 연대론을 수면 아래로 잠기게 한 것은 합종연횡의 정국에서 보다 포지셔닝을 자유롭게 해서 정국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복안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내달 12일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에서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지는 가운데, 한국당이 당초의 무공천 당론을 번복하고 친박 핵심에 해당하는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공천함에 따라 일단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재보선 연대'는 물건너갔다.

    그런데 경북 권역에 특히 조직이 취약한 국민의당은 한국당·더불어민주당·바른정당이 모두 공천을 마친 이 시점까지도 후보를 물색하고 있을 뿐 공천을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4·12 재선거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간의 선거 연대를 모색하는 장(場)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동시에 한국당과의 연대의 방향도 여전히 유력하게 열려 있다. 정치권 내의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까지 포함하는 3자 연대가 형성된다면, 이 연대의 명분은 개헌(改憲)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의원내각제을 신봉하는 김종인 전 대표와는 색깔이 다르다고 그간 평가돼왔던 한국당 홍준표 지사와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이날 일제히 개헌에 관한 포지션을 다소 유연하게 가져가는 듯한 시사를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는 분석이다.

    홍준표 지사는 이날 충북 권역 TV토론에서 개헌과 관련해 "대통령 권한이 센 미국은 민주주의가 잘 운영된다"면서도 "정말로 대통령제가 문제가 된다면 권력을 분산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유승민 의원도 같은날 대전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나름 생각이 있지만, 개헌에 대해서는 워낙 이야기들을 많이 하니까 생략하겠다"라며, 그간의 완강한 입장에서 다소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