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된 유가족의 恨풀이 될까, ‘문재인 정권’을 위한 정치적 굿판 될까
  • 지난 3월 초부터 검찰이 '530GP 총기난사' 사건의 재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널A 관련보도 화면캡쳐
    ▲ 지난 3월 초부터 검찰이 '530GP 총기난사' 사건의 재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널A 관련보도 화면캡쳐


    2005년 6월 19일, 국군 장병 8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입었던, ‘530GP 총기난사’ 사건의 숨겨진 실체가 밝혀질까.

    ‘채널A’는 지난 25일 “검찰이 3월 초부터 유족과 생존 장병들을 불러 ‘530GP 총기난사’ 사건 재조사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채널A’는 “사망한 장병들의 상처가 수류탄 파편이나 소총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없고, 사고 당시 최초 보고에는 ‘미상의 화기 9발 피격’이라고 돼 있다”는 유가족들의 주장도 전했다.

    ‘채널A’는 “국방부는 김동민 일병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렸고, 사형이 확정된 김 일병은 육군교도소에 12년째 수감 중”이라며 “하지만 일부 유족들과 시민단체는 북한군의 소행을 남북관계를 위해 조작·은폐했다며 수 년 간 국방부에 민원을 제기했고, 시신을 검안했던 군의관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을 두고 시중에서는 ‘530GP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당시 국방부의 발표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피해 장병 유가족들의 주장은 매우 생소하기 때문이다.

    ‘530GP 총기난사’ 사건은 2005년 6월 19일 경기 연천군 비무장지대 내 GP에서 일어났다. 당시 530GP에는 육군 제28사단 81연대 수색중대가 주둔 중이었다.

    국방부는 “평소 선임병들에게 괴롭힘과 가혹행위를 당하던 김동민 일병이 근무를 나갔다가 수류탄과 실탄 등을 확보, 소초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지고, 세면장, 식당 등에서 총기를 난사해 장병 8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국방부의 조사 결과를 믿지 않았다. 당시 노무현 정권에 반발하던 우파 진영 또한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계속 의문을 제기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530GP’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리라 믿었지만, 끝내 재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 '530GP 총기난사' 사건 직후 현장검증하는 김동민 일병(가운데). ⓒ뉴데일리 DB
    ▲ '530GP 총기난사' 사건 직후 현장검증하는 김동민 일병(가운데). ⓒ뉴데일리 DB


    유가족들은 숨진 장병들의 시신 사진과 엑스레이 사진, 전역한 동료 장병들의 증언들을 모아 당시 상황이 다음과 같았다고 주장했다.

    2005년 6월 19일 오전 2시, 530GP에 주둔 중이던 28사단 81연대 수색중대 병력 14명은 해당 지역에 발령된 ‘진돗개 둘(대침투 작전 단계)’에 따라 인근 지역에서 ‘차단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530GP 주둔 병력 가운데 차단 작전에 참가한 사람은 상병 이상. 이미 한 달 전부터 전군에는 최고 수준의 경계령이 내려져 있는 상황이라 ‘실제 교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지휘관이 ‘선임병’만 데리고 작전을 나갔다.

    이때 갑자기 ‘쾅’하는 폭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인수인계를 위해 미리 GP에 와 있던 신임 소대장 김 소위는 남은 병력들에게 “무슨 소리냐”며 물었다. 전임 소대장은 ‘차단작전’을 지휘하느라 출동한 상태였다. GP에 남아 있던 신병들은 긴장했다. 폭음은 곧이어 6~7회 들렸다. 그리고는 정전이 됐다. 북한군 침투조의 RPG-7 공격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신임 소대장과 GP에 남아 있던 병력들은 즉각 상황을 대대 상황실에 알렸다. 대대 상황실은 ‘고속지령대(각급 부대 지휘관 간의 연락을 위한 긴급통신망)’를 통해 연대 상황실과 사단 사령부, 육군본부, 합동참모본부 상황실까지 당시 상황을 알렸다. 이때 530GP에서 처음 보고한 상황 전파 메시지는 이랬다.

    “북한측 미상화기 9발 피격, 5명 사망”

    유가족들이 만났다는 ‘차단작전’ 참가 대원의 설명은 이렇다.

    2005년 6월 19일 오전 1시 무렵, 530GP 주둔 중이던 수색중대 병력 14명은 철책선 전방 1.5km 지점에서 차단작전을 수행한 뒤 복귀 중이었다. 이때 RPG-7으로 추정되는 로켓추진폭탄 7~9발이 날아들었다. 순식간이었다. 적은 차단작전을 하던 병력 주변과 530GP 옥상에 화력을 집중했다. 아군이 대응할 틈도 없었다.

    연대 본부는 상황에 따라 즉시 ‘원칙’대로 대응 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1시간도 채 되기 전에 ‘상부’의 명령에 따라 ‘내부 총기난사’로 결론을 내더니, 사상자들을 530GP로 데려와 시신을 내무반, 욕실, 취사장 등에 배치하고는 사고 현장을 위장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들의 응급후송도 4시간이나 늦춰졌다. 그 과정에서 사망자도 발생했다.

    이상은 ‘530GP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 유가족과 당시 근무했던 장병의 진술을 종합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이상한 부분이 몇 가지 있다.

    2005년 6월 21일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은 북한을 방문한다. 남북 장관급 회담을 열기 위해서였다. 이후 남북은 한국 정부의 일방적인 지원을 통해 ‘우호적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 2007년 10월 4일 남북 정상회담까지 성사시킨다.

  •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故노무현 前대통령과 김정일, 수행원들의 모습. 그 시작은 2005년 6월 남북 장관급 회담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故노무현 前대통령과 김정일, 수행원들의 모습. 그 시작은 2005년 6월 남북 장관급 회담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530GP 총기난사’ 사건 이후 군 당국의 행태도 수상했다. 희생된 장병들의 전투복에는 피가 묻어 있었는데, 이들의 피복과 총기를 증거물로 보전하지 않고 모두 소각처리 했다고 한다. 이렇게 사라진 총기가 22정이었다고 한다.

    또한 사건이 일어난 ‘530GP’는 즉시 폐쇄하거나 철거하지 않고, 오히려 소초 옥상을 흙으로 덮고 휴게시설을 만들었다.

    ‘530GP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라는 김동민 일병에게 가혹행위를 저질렀다는 다른 소대원들은 모두 조기전역한 뒤 국가유공자로 지정받았다. 해당 부대 지휘관 가운데 김동민 일병에게 가혹행위를 저지른 데 대한 지휘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은 사람이 없다.

    ‘530GP 총기난사’ 사건 당시 군 주요 관계자들은 윤광웅 국방장관, 이상희 합참의장, 김장수 육군참모총장, 김관진 육군 3군사령관, 김은상 육군 제28사단장, 오주석 81연대장 등이 있다.

    이들은 나중에 국방장관을 역임하거나 3군 부사령관(중장 보직), 미군기지이전사업 총괄팀장 등으로 영전했다. 당시 피해자 시신을 검안한 군의관은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6월 19일 ‘530GP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 추모 2주기 행사 당시 인근 OP(전방 관측소)에서 목격된 천공기(지하철 공사 등에 사용되는 대형 굴착기계) 등 굴착시설과 대형 덤프트럭의 용도 또한 여전히 공개되지 않았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2007년 6월 이곳에서는 ‘○○사업’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한군의 남침땅굴 탐지 작업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 2016년 4월 1일 울산에서 작업 중 지하배관을 건드려 가스누출 사고가 일어난 현장. 중앙 멀리 보이는 거대한 기계가 천공기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6년 4월 1일 울산에서 작업 중 지하배관을 건드려 가스누출 사고가 일어난 현장. 중앙 멀리 보이는 거대한 기계가 천공기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처럼 수상쩍은 부분이 한둘이 아님에도 군 당국이 12년째 재조사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대체 뭘까. 혹시 당시 사건을 은폐하려던 ‘유력인사들’이 지금도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어서 그렇지는 않을까. 

    3월 초부터 검찰이 ‘530GP 총기난사’ 사건을 재조사한다는 것에도 우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박근혜 前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인용된 뒤 5월 9일 조기대선 일정이 정해지면서 시중에서는 “정권이 교체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현재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는 문재인 前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문재인 前대표는 노무현 정권의 초대 민정수석을 지낼 정도로 당시 권력층 인사들과 친분이 깊다. 또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남북대화를 가장 먼저 하고, 개성공단을 재개하는 것은 물론 그 규모를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혹시 그가 대통령이 될 경우를 대비해 검찰이 사전에 수사,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려 ‘530GP 총기난사’에 대한 의혹을 아예 제기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는 없는 것일까.

    문재인 前대표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태로 미뤄볼 때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530GP 총기난사’ 사건을 비롯한 여러 의문사 사건에 대한 재조사는커녕 의혹만 제기해도 ‘사법적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