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 단정한 군복차림의 상병과 병장 계급의 병사 두 명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옆에 빈자리가 있는데도 앉지 않고 있는 걸 보면 다른 누군가를 위해 양보를 하고 있어 보였다.

    외모의 복장에서 드러난 것처럼 대화도 부대 활동을 비롯해 매우 건전한 내용으로 오가는 것이 같은 부대 소속인 것 같았다. 두 병사의 모습이 무척 정겹고 다정하면서도 보는 시민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보이는 것은 아마도 전날 밤 본 뉴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용인즉 어제(3.27)밤 제주도 한 민박집에서 화재가 났는데, 20대 남성들이 불길이 치솟는 건물로 뛰어가고, 한 남성은 편의점에서 소화기를 들고 와 불이 난 불길 속으로 들어가 주저 없이 화재진압에 앞장섰다는 내용이 CC-TV화면과 함께 보도된 것이다. 불길로 뛰어든 남자들은 인근 해군기지에 근무하는 부사관 인들이었다. 3명의 군인들은 잠든 투숙객들을 일일이 깨워 대피 시켰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하사 1명은 연기를 마셔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시뻘건 불길과 자욱한 연기가 퍼지는 밤중에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타인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은 보통 심장이나 용기로 되는 일은 아니다. 우리는 지난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 아파트 주민들을 구한 ‘초인종 의인’사건으로 전 국민이 숙연해 하며 의인을 추모한 바 있다. 같은 일이 이번엔 또래의 또 다른 젊은이, 군인들의 모습을 통해 다시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차내 주변에서 이런 얘기가 들렸다. “아침 뉴스 봤느냐?”하는 말과 함께 “세상에 군인들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훈련하러 가는데 부대에서 부모에게 편지를 보내 훈련을 보내도 되겠느냐며 동의여부를 확인했다는 거야? 이런 군대가 있나? 그런 지시를 내린 지휘관은 도대체 누구며, 누구를 보고 군을 지휘하는 걸까? 나라를 지키라고 군대가 있는데 이런 군대를 믿어도 되겠어? 우리 땐 생각지도 못할 일인데 말이지?” 친구인 듯한 두 사람 사이에서 얘기가 서로 이어지고 있었다.

     수도권 인근 한 부대에서 2년간 60여 명의 병사 부모에게 지뢰제거 작전과 관련해 편지를 보내 동의여부를 묻고 반송 요청까지 했다는 내용의 보도에 대한 시민들의 즉석 논평이었다. 그 중 일부 병사(8명)의 부모가 작전 투입에 동의하지 않아 해당 병사는 작전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물론 이런 내용이 국방부 지시가 아닌 해당 부대 지휘관의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고 하지만 이런 조치, 이런 판단을 한 해당 지휘관의 군인자세, 정신세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런 생각을 품고 있을 군인이, 지휘관이나 참모가 군에 얼마나 있을지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5년 8월4일 북한 김정은 집단은 비무장지대(DMZ) 아군 1사단 GP 통문에 목함지뢰를 설치해 우리 수색대대 장병 2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이로 인해 남북한은 일촉즉발의 초긴장 상황에 군은 비상대기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적이 설치한 지뢰가 폭발한 과정에서 1사단 수색대대 8명의 장병이 보여준 불굴의 군인정신과 전우애는 군인만이 할 수 있는 의로운 행동과 더불어 국민에게 진한 감동 일면 우리 군을 믿어도 되겠다는 안도와 높은 신뢰감을 보여주었다.

     우리헌법 제5조 ②항은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라고 명시해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의무를 적시하고 있다. 또 ‘군인복무규율’에 의하면 ‘국군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보전하고 국토를 방위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나아가 국제 평화의 유지에 이바지함을 그 사명으로 한다’고 군인의 책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는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군 유지의 근간이 되는 지휘관과 참모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휘관은 부하에 대한 훈련을 철저히 시켜 유사시 하나뿐인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국방부장관이나 합참의장, 참모총장과 해병대사령관 등 군의 최고 수뇌가 전후방부대를 방문해 대비태세를 확인하면서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적이 언제 어느 때 도발하더라도 현장 지휘관 판단아래 상응하는 2배, 3배의 보복으로 즉각 응징하라”는 명령과 권한을 주는 것 아닌가.

     열 번 백번 이해해서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린다고 해도 어떻게 군의 훈련이나 중요한 작전 시행을 앞두고 상급지휘관의 지시나 동의가 아닌 병사 부모의 지시, 동의를 받고자 하는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군 최고 사령탑은 현장 지휘관의 강력하고 합리적인 판단과 결심을 요구하는데, 현지에서의 해당 지휘관은 이와 대립되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과연 우리 군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며, 이런 지휘관을 바라보는 국민은 안심해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거듭되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입만 열면 막말과 도발 위협으로 국민은 안보에 대한 불안함으로 어수선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선주자로 나선 인사들 중에는 군복무를 12개월아니 그 이하로 해도 국방을 지키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그 시대 세대들을 선동한다. 군을 이끌고 지휘하는 현장의 군 간부나 군인들이 이런 패거리 문화에 동조하고 휩쓸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국민은 우리 국군과 군을 믿는다. 전우의 몸이 부서지는 순간에도 지체하지 않고 지뢰지대로 들어가 들쳐 업고 나오는 젊은 우리 아들들을 보면서, 화마(火魔)가 날름대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민간인을 구해내는 자랑스런 군인들의 모습에서 국민은 군을 신뢰한다.

     국민의 군대는 무작정 보호하고 감싸주는 이상향 속에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을 던져 내 이웃과 내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정신, 바로 거기에서 국민의 군대는 싹트고 이뤄지는 것이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